21화
21화
아저씨는 오시는 중.
오늘은 팀 결성을 위한 중대 발표를 할 예정이다.
팔이 제자리를 잡아 가니,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때인 것이다.
“김상팔이, 쏴라 있눼에?”
아저씨가 병실을 문을 박차며 들어왔다.
루호는 날 염려해 아저씨를 제재했다.
“여긴 병실입니다. 환자에게 해가 될 언행은 삼가 주시죠.”
크윽, 교과서 같은 말.
이 녀석, 아저씨와는 상극일 것 같다.
“아, 그러셔요? 눼에, 눼에 알겠습니다요.”
아저씨는 인중을 최대한 아래로 늘리며 고까운 표정을 짓는다.
우와, 당사자의 감정이 이렇게까지 생생히 전달되는 얼굴은 처음이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아저씨를 공격하고 싶어진다.
루호는 아저씨를 매섭게 째려봤다.
뭐, 이심전심. 내 생각이랑 같은 거겠지.
아저씨와 루호의 불편한 눈싸움이 이어졌다.
“뭐? 어쩌라고? 때릴 거야? 때려 봐! 자, 자 때려 봐. 어서! 어서 때려 봐, 네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조, 루, 옹?”
아저씨는 루호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도발했다.
루호는 기가 막혀서 고개를 저었다.
난 루호의 눈치를 살피며 아저씨에게 대꾸했다.
“조루옹이 아니라 조루호예요.”
“뭐? 조루옹이 아니라 조루횽이라고?”
아오, 얄미워.
일부러 한쪽으로 기울이며 양손을 귀에 대는 저 행동.
아저씨는 역시 여러 가지 의미로 미친 존재감이다.
“조루횽이 아니라 조루호요.”
“조루횽이 아니라 롤로노아 조루라고?”
이 아저씨가 길 가다가 돌 맞으려고 작정하셨네? 왜 이렇게 시비를 거시는 거야?
루호는 그냥 아저씨를 무시하며 나머지 사과 조각을 내게 건넸다.
“드세요.”
담담한 루호의 반응.
아저씨는 살짝 당황했다.
“어? 어, 어…… 끝이냐?”
루호의 참을성에 박수를 보낸다.
팔씨름할 때 태도로 봐선 지금 화 많이 날 텐데…….
혹여나 두 사람이 싸우기라도 하면…… 나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루호야, 참아야 한다. 그냥 개가 짖는다고 생각해. 아니지, 돼지인가?
아저씨는 루호가 반응하지 않자 콧방귀를 한 번 크게 뀌었다. 그리고 루호 옆에 앉아 남은 사과 조각을 집어서 입에 넣었다.
“오늘은 드디어 고대하던 팀 결성이냐?”
“예. 아직 팀 이름은 정하지 않았지만, 일단 서로 인사부터 하려고요.”
“흠…… 만나서 반갑다! 난 한돈이라고 한다.”
밥상 위의 국가대표, 한돈.
“조루호라고 합니다.”
아저씨와 루호는 서로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악수를 나눴다.
흠, 이거 처음부터 제대로 삐걱대네.
왠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걸?
자기가 영입하라고 시키더니, 저렇게 싸우는 건 좀…….
“그래. 앞으로는 어쩔 거냐? 몸은 거의 다 나은 거겠지?”
“예. 일단 협회에 팀 신청부터 하려고요. 정식으로 팀을 등록하면 협회로부터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거든요.”
실제로 협회는 헌터들 간 팀 활동을 권장하고 있다.
우선 팀을 만들면 사냥 성공률과 함께 헌터의 생존율이 올라간다.
사람이 곧 자원인 사냥 업계에서 생존율을 올려 유능한 헌터를 다수 보유하는 건 최우선 과제.
특히 우리나라 지부는 올해 처음으로 헌터 지수가 하락해 국제 랭킹에서 한 계단 낮아진 상태다. 그래서 더욱 실력 있는 헌터와 팀을 육성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팀을 등록해 활동하면 세금 감면, 장비와 인력 무상 지원, 협회 차원에서의 사냥 의뢰 등의 혜택이 따른다.
검은 과부들 주도의 드래건 사냥도 여기에 해당한다.
“근데 팀 이름은 어떻게 할 거냐? 그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니야?”
루호도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건 아주 중요해요. 협회에서도 나름 팀 이름에 따라 대우가 다르다고 들었거든요. 가장 유명한 예로 협회에 협조적인 팀 중 노골적으로 차별 대우를 받는 팀이 있는데, 그 팀 이름이 ‘내 팬티 노래요.’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정신병자가 팀 이름을 그따위로 짓지? 아니, 누가 자기 팬티 색깔 알고 싶대? 아저씨보다 더한 감수성이 있었네!
아저씨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 팬티 노래요.’가 뭐야? 적어도 ‘엄마랑, 옆집 아저씨랑.’ 정도는 돼야지. 끌끌끌!”
아까 한 말 취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 주시는 분이네. 아무리 팀 이름이 마땅치 않아도 아저씨한테 지으라고 하면 안 되겠어. 이 사람 진짜 아무 이름이나 막 갖다 붙일 거 같아.
일단 아저씨는 무시, 루호와 의논했다.
“그럴듯한 이름은 거의 다 등록되어 있지 않을까?”
사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멀쩡한 이름은 상당 부분 선점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활동 중인 헌터 수가 부풀려져 있듯이, 팀 이름만 등록하고 활동하지 않는 경우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흠…….”
루호는 손으로 턱을 짚었다. 그리고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했다.
“어이, 이봐!”
아저씨의 외침에 나와 루호는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우리가 함께 쳐다보자, 아저씨는 우쭐한 자세로 코웃음을 쳤다.
“끌끌끌! 그건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도 되지만, 그전에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있지 않아?”
“훨씬 더 중요한 문제요?”
아저씨는 삿대질로 날 가리켰다.
“그래. 바로 너의 정식 헌터 자격! 그래도 명색이 우리 팀의 팀장인데, 설마 쭉 보조 헌터로 있으려고?”
“음, 제가 팀장인 건가요?”
난 당연히 아저씨나 루호가 팀장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당황스럽다.
“당근이지! 생각해 봐라. 한돈이랑 조루가 팀장이면 좀 모양새가 떨어지지 않겠냐?”
흠, 본인 입으로 저렇게까지 말씀하실 줄이야.
하긴,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
“제 체질에 대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루호한텐 아직 정확한 상황을 알려 주지 않았다. 일부러 말을 안 한 것은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 말할 틈이 없었다.
어차피 한 팀으로 일할 거라면 이참에 시원히 밝히는 게 나을 것이다.
“당연히 감춰야지! 너 그거 들키면 바로 해부실행이다. 끌끌끌!”
우와, 태연하게 웃으시네.
아저씨의 웃음이 음흉하다.
이 아저씨, 왠지 누가 나 팔라고 하면 그냥 팔 거 같아. 진짜로 그러시진 않겠지?
아저씨 이야기를 잘 생각해 보면, 이건 보통 큰일이 아니다.
일단 정식 헌터 자격시험은 굉장히 힘들다. 아무리 업계에 사람이 부족하다고 해도 목숨 걸고 하는 일에 아무나 합격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보조 헌터야 사실상 일반인, 그냥 듣기 좋으라고 부르는 호칭일 뿐이다. 실제로 보조 헌터는 정식 헌터보다 더 희소하며, 특히 나처럼 몇 년씩 버티는 사람은 더 드물다.
대부분은 한두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 뒤도 안 돌아보고 업계를 떠난다.
그런 헌터 자격시험을 H세포의 힘없이 응시하라고?
차라리 그냥 한강 다리 가서 뛰어내리는 게 더 점잖지 않을까요? 자격시험보다 죽는 사람도 매년 한 명씩 나온다고 하던데…….
H세포 없이 시험 봐서 합격한 사람이 있긴 할까?
휴대전화를 꺼내 이번 헌터 자격시험 일자를 확인.
안내를 꼼꼼히 읽는다. 접수는 앞으로 일주일 뒤, 시험 날짜는 한 달 뒤다.
한 달이라……. 뭔가 수련이라도 해야 하나?
용기를 내서 루호에게 내 체질에 대한 비밀을 말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루호는 자기가 먼저 비밀을 지킬 것을 약속했다.
멋진 녀석이다.
“실전만큼 좋은 수련은 없겠지?”
루호에게 묻자, 루호는 빙그레 웃었다.
아저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거들었다.
“끌끌끌. 그럼 팀 결성 기념 첫 사냥 계획을 세우자고!”
우리는 그날 사냥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새웠다.
삐거덕거리던 첫인상과 달리 아저씨와 루호는 한마음, 한뜻으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 물론 중간중간 서로를 향한 비아냥거림은 좀 있었다.
내 팔이 완치된 것은 정확히 일주일 뒤. 병원 치료와 아저씨의 치료술 덕에 다치기 전보다 팔이 더 튼튼해졌다.
언뜻 봐선 잘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심지어 양팔의 굵기가 달라지기까지 했다.
크고 굵어진 오른팔을 보고 있자니, 참 묘한 기분이 든다.
자격시험 응시 접수 후, 우리는 드디어 첫 번째 사냥에 나섰다.
***
미니밴은 좁은 산길을 따라 깊고 험한 지형을 달리고 있다.
터널 몇 개와 언덕들을 넘으면서 든 생각은 ‘이런 곳까지 도로를 깔다니,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섭구나.’였다. 참고로 운전은 나, 루호와 아저씨는 뒷자리에 편히 타고 있다.
“이야, 이렇게 소풍 가는 기분을 느껴 보는 게 얼마 만이냐? 끌끌끌.”
백미러로 본 아저씨는 창문에 얼굴을 대고 바깥구경에 정신이 없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녀석을 잡으러 가는 거냐?”
“거북악어요.”
“악어거북?”
루호가 차가운 얼굴로 아저씨의 말에 나 대신 대꾸했다.
“악어거북이 아니라 3급 사냥 구역에 서식하는 괴물 거북악어입니다.”
거북악어. 루호의 말처럼 3급 사냥 구역에 서식하는 파충류형 괴물. 생김새는 우리가 흔히 아는 동물 악어거북과 흡사하지만, 세세하게 다른 점이 있다.
가장 먼저 사이즈.
일단 몸 크기가 하마만 하다. 다리는 일반적인 악어보다 두 배 이상으로 길고, 움직이는 속도는 사람과 매우 흡사하다.
등껍질을 짊어지고 있단 것을 감안하면, 기초 근력도 3급 중에선 수준급.
물론 거북악어 최고의 무기는 무는 힘, 물리는 순간 그냥 신체를 포기하면 된다.
눈앞에 3이라 크게 쓰인 장벽의 정문이 보였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 정문 옆에 마련된 주차장으로 이동, 미니밴을 세우고 사이드브레이크를 올렸다.
“내립시다요!”
3급 사냥 구역은 일반적으로 소규모 사냥팀의 결전 장소로 불리고 있다. 1급과 2급에선 날고 기더라도 이곳에서는 상당수가 나가떨어진다.
장벽은 저 멀리 산등성이 위를 휘감아 올라간다.
3급을 주 수입원으로 활동하는 헌터가 전체 헌터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볼 때 이곳의 넓이는 광활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의 규모와 넓이에 대해 감탄하면서도, 눈앞에 있는 산봉우리에 오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다리가 저려 오는 것 같다.
여긴 올 때마다 실시간으로 질린다.
“야, 설마 우리 저기까지 올라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
아저씨가 걱정스럽게 묻었다.
“만약 나보고 저기까지 올라가라고 한다면, 난 그냥 여기서 포기하련다. 생각해 봐라! 이 몸매로 저기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냐?”
“잘 구르시겠죠. 아니면…… 계란처럼 깨지실까요?”
내 대답에 자기 짐을 내리던 루호가 피식 웃었다.
아저씨는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쳇, 하여간 요즘 어린것들은…….”
“걱정 마세요. 꼭대기까진 안 갈 거예요. 저도 저기는 가고 싶지 않아요.”
“끌끌끌! 그래야지!”
아저씨를 달래며 미니밴에서 짐을 내렸다.
평범한 등산용 배낭, 30cm의 정글도, 조명탄 발사기와 조명탄 6발이 든 플라스틱 케이스.
케이스를 열어 발사기와 조명탄을 꺼냈다. 그리고 조명탄 한 발을 장전.
남은 조명탄 중 하나는 상의 주머니에 나머지는 배낭 앞주머니에 넣었다.
3급 사냥 구역의 산은 일명 ‘비명횡산’이라 불린다.
뭣도 모르고 들어갔다간 괴물과 지세에 휘말려 비명횡사할 수 있단 뜻.
산 자체는 높지 않지만, 너무 넓기에 등산로에서 벗어나면 100프로 실종된다.
“두 사람은 무기 없어요?”
아저씨는 어깨를 으쓱였다.
“난 후방에서 치료 지원인데 무기가 왜 필요하냐? 내가 무기를 쓸 상황이면 그냥 끝장난 거 아니냐?”
하긴, 아저씨한테 너무 의지했다간 전멸하겠지.
루호는 멘 배낭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이 안에 필요한 건 전부 들어 있어요.”
역시! 믿을 건 루호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