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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22화 (22/250)

22화

22화

아저씨는 루호를 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소리는 나도 할 수 있어! 배낭은 내가 더 크거든!”

우리는 주차장에서 나와 정문 앞으로 갔다.

정문 앞에 위치한 관리기는 ATM기나 무인 민원 발급기와 흡사하게 생겼다.

관리기 앞에 서서 화면에 손가락을 대자, 안내 목소리가 지시를 내린다.

[헌터 정보를 입력하세요.]

루호가 나를 대신해 자신의 정보를 입력한다.

헌터 자격이 없는 나로선 이 부분이 가장 큰 어려움, 헌터 자격을 따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루호의 입력이 끝나고, 우리의 사냥 계획을 묻는 창이 뜬다.

[사냥 일정을 입력하세요.]

사냥 목표, 거북악어.

예상 소요 시간, 6시간.

출입 인원, 3명.

인원 중 정식 헌터, 2명.

사냥 방법, 열심히 잘 최선을 다해서.

출입 통제 시간 경과 시 구출 여부, 신청.

마지막 항목은 우리 같은 신생 소규모 팀을 위한 것이다. 일종의 보험이라 볼 수 있는데, 신청하는 것만으로도 수수료를 받는다. 하지만 꼭 신청하는 게 좋다.

대규모 팀이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통제 시간인 오후 6시까지는 사냥 구역에서 나와야 한다.

만약 나오지 못할 경우 자동적으로 구출대가 출동, 수색해 주는 방식이다.

모든 입력이 끝나고 정문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우리는 각자의 배낭을 잘 추스르며 들어갈 준비, 빨리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응?”

보통 경고음이 울리고, 30초 정도 지나면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철문은 경고음만 낼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고장 난 건가?”

아저씨는 투덜거리며 발로 철문을 걷어찼다. 하지만 두께 0.5m의 철판이 꿈쩍할 리 없었다.

아저씨는 찬 발을 움켜쥐며 몸을 굽혔다.

“아이고, 아이고, 내 발…….”

“루호야. 아저씨 좀 끌고 와.”

“예.”

루호는 아저씨를 뒤에서 잡아 질질 끌었다.

정문이 열릴 때 그 가까이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은 자동이기에 문틈에 끼이기라도 하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경고음만 울리기 2분째.

드디어 철문이 움직였다. 그리고 조금씩 벌어지는 철문 사이로 뭔가가 보였다.

“저거 설마 괴물인가?”

아저씨의 지적에 무기를 들었다.

난 정글도, 루호는 배낭에서 꺼낸 유성추.

문틈으로 보인 물체는 울긋불긋한 색상, 사람 크기였다. 실루엣으로 보건데, 짐승이 웅크린 형태였다.

“저거 때문에 문이 안 열렸군요.”

루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철문에는 센서가 달려 있어 문 주변에 생물체가 있으면 자동으로 닫힌다.

조금 전까지는 안 열리고, 지금 열린다는 것은 지금 저 물체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는 뜻? 혹시 사람이면 어떻게 하지?

문틈이 충분히 벌어지자 허겁지겁 안으로 뛰어들었다.

루호와 아저씨가 부르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경계심을 갖고 조심스레 들어가자는 말. 하지만 그것보단 지금 사람 목숨이 먼저다.

“역시!”

사람이었다.

상태가 좋지 않을 것 같다.

철문이 바깥으로 열리기에 망정이지, 만약 안쪽으로 열렸다면…….

형체도 안 남았을 것이다.

가까이서 보니, 누런색 후드 티와 붉은 바지를 입은 남성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루호보다 더 마른 체형의 청년.

머리에 쓴 후드를 벗겨 청년의 상태를 살핀다. 몸에는 특별히 상처가 없고, 피도 흘린 흔적이 없다.

조난자?

“괜찮아요? 이봐요, 정신 차려요!”

앳된 얼굴, 혹시 루호보다 어린 건가?

청년의 인중에 손가락을 댄다. 그렇지만 콧구멍에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서, 설마…….”

일단 청년의 손목을 잡아 맥박을 짚었다.

호흡만으로는 긴박한 상황에서 제대로 생사를 판단하기 어렵다.

너무 희미한 숨결이 거친 손가락에 닿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맥박은 다르다.

미약.

핏줄 속 혈액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진다. 분명히 뛰고 있어!

청년은 죽어 가는 중.

지금이라면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서둘러 아저씨에게 소리쳤다.

“치료해 주세요! 1초가 급해요!”

“젠장. 사냥 시작도 안 했는데, 엄한 데 힘쓰게 생겼군.”

아저씨는 팔을 걷어붙이고 청년에게 손을 댔다.

“끌끌끌!”

아저씨가 능력을 발동시키자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은 즉시 청년의 몸으로 옮겨 갔다. 빛이 점점 옮겨 갈수록 청년의 몸은 밝게 빛나며 서서히 떨렸다.

청년의 얼굴에 화색이 돌자, 아저씨는 청년의 몸에서 손을 뗐다.

“응급조치는 끝났어. 이제 구급차 부르고, 우린 우리 갈 길 가자고.”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새 아저씨의 뒤로 온 루호가 철문 쪽을 가리켰다.

“문이 벌써 닫혔는데요?”

우리는 입을 벌리며 철문을 바라봤다.

정문의 출입은 각각 한 번.

들어가기 위해 연 것으로 한 번, 나가기 위해 여는 것으로 한 번뿐이다.

이미 들어오기 위한 횟수를 소모한 이상, 한 번 더 문을 열면 오늘 사냥은 그걸로 끝이다.

퇴장을 위해 문을 연 시점에서 우리는 공식적으로 이곳에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럼 어떻게 하죠?”

아저씨는 씩 웃으며 말한다.

“어떻게 하긴, 여기에 두고 가야지.”

“그건 안 됩니다. 분명 괴물한테 잡아먹힐 거예요.”

루호는 아저씨의 의견에 반대.

나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방법이 없다면 그냥 오늘 사냥을 포기하는 쪽이 낫다.

“그럼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자는 거냐? 목숨을 살려 줬으면 됐지, 무슨 보호를…….”

“데리고 가죠.”

“뭐?”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녀석을 데리고 사냥을 하자고?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루호는 청년을 유심히 살폈다.

“여기까지 혼자 왔다면 나름 실력이 있을 겁니다. 직접 치료하셨으니, 몸소 느끼셨을 텐데요?”

아저씨는 입을 다물며 얼굴을 찌푸렸다.

“쳇! 호구열전이군.”

루호는 한참 동안 청년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확인 삼아 루호에게 물었다.

“아는 얼굴이야?”

“아니요. 처음 봅니다.”

아저씨는 혼자 앞서가며 나와 루호에게 말했다.

“그 아인 너희끼리 알아서 해라. 난 먼저 걸어간다.”

뭐지?

호구 좋아하시는 거 아니었나?

아저씨랑 너무 거리가 벌어지면 안 되기에 나와 루호는 서둘렀다.

청년은 내가 업기로 하고, 루호는 내 배낭을 대신 짊어졌다.

비명횡산을 오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본격적인 등산로 입구에는 표지판과 함께 대략적인 지도가 그려진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에는 비명횡산에서의 주의사항과 각 지점에서 출몰하는 괴물의 이름이 적혀 있다.

목표인 거북악어의 출몰 지점은 중턱에서 조금 아랫부분. 도착까지는 1시간 남짓.

경사가 완만하기에 우리는 휴가를 온 기분으로 산을 올랐다.

등산로는 길 양쪽으로 일정 간격마다 나무 기둥이 박혀 있고, 그 나무 기둥 사이를 쇠사슬이 잇고 있다.

위에는 플라스틱 지붕, 바닥엔 돌로 만든 계단이 깔려 있다.

무슨 터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다만, 이렇게 잘 정비된 길도 완벽히 안전한 것은 아니다.

길 곳곳에 파손된 곳을 보면 거대한 발톱 자국과 괴물의 털 같은 것이 남아 있다.

“그런데 달랑 셋이서 거북악어를 잡을 수 있겠냐?”

혼자 앞서가던 아저씨가 뒤를 돌아봤다.

거북악어의 위험도는 3급 사냥 구역에서 중간 정도.

실제 사냥 경험이 전혀 없는 팀으로서는 조금 버거운 상대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직접 경험한 아저씨의 치료술과 루호의 재능, 그리고 내가 밤새 조사한 정보를 합친다면 해볼 만한 상대다.

“아마도요?”

“끌끌끌. 참 느긋하군.”

가는 도중 몇몇 사냥 지점을 지나쳤다.

3급 사냥 구역에서 가장 위험도가 낮은 검치삵, 고기가 맛있다는 뿔멧돼지, 물리면 큰일 나는 금살모사 등등.

그냥 대충 돈 좀 벌 수 있는 괴물로 바꿀까 했지만, 기념적인 첫 사냥이기에 그럴 수 없었다.

거북악어의 지점 직전에 위치한 휴식장. 등산로를 오르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탁 트인 원반 같은 바닥에 벤치와 탁자가 여러 개 놓여 있다.

“잠시 쉬었다가 가자고. 도착하면 바로 싸워야 할지도 모르잖아.”

아저씨는 이마에 난 땀을 닦았다.

뒤따라오던 나와 루호도 쉬는 것에 동의.

우리는 휴식장에 짐을 풀고 숨을 돌렸다. 청년은 적당한 벤치에 눕혀 놓고, 배낭도 모두 내려놓았다.

“쉬면서, 간식이나 먹을까?”

아저씨는 배낭을 내려놓은 후, 자연스럽게 배낭을 뒤졌다.

너무 배가 부르면 오히려 싸울 때 방해가 될 텐데…….

뭐, 아저씨니까 어련히 알아서 잘하시겠지.

루호는 물병을 꺼내 몇 모금 마셨다. 그리고 아까 보여 준 유성추를 꺼내 시험 삼아 다루며 연습을 시작했다.

특수 섬유로 만든 가느다란 실. 그리고 그 실 끝에 걸린 주먹 크기의 강철 추.

추는 곡선을 그리며 허공을 휘젓는다. 바람 소리와 함께 원형의 철구가 루호의 손짓, 팔짓에 의해 여러 방향으로 날아간다.

던지고, 휘두르고, 당기는 방법으로 철구의 이동 방향은 무한대처럼 보인다.

“어려운 걸 쓰는군. 부드러운 것일수록 다루기 힘든 법이지.”

아저씨는 손에 든 감자칩을 먹으며 나처럼 루호를 구경하고 있다.

조금 걸어서 그런지 갑자기 과자가 먹고 싶네.

“저도 몇 개 먹어도 돼요?”

“안 돼. 먹을 거면 돈 내고 먹어라.”

쳇! 여기가 무슨 성수기 관광지입니까?

과자 몇 개에 너무하시네.

“얼만데요?”

“개당 500원.”

감자칩 하나에?

한 봉지가 아니라 낱개로?

바가지가 아니라 그냥 양아치잖아!

“너, 너무 비싸잖아요! 감자칩 몇 개면 한 봉지 가격, 말이 안 되죠!”

“끌끌끌! 인생이란 원래 타이밍이야.”

아저씨는 꿋꿋이 과자를 먹었다.

“치사해.”

물로 목을 축이면서 아저씨로부터 청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으으으으…….”

때마침 청년의 눈꺼풀이 흔들린다! 깨어나려는 건가?

청년에게 다가가 내려다봤다.

“여, 여기는…….”

청년이 눈을 떴다. 무슨 이유에선지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다.

“정신이 좀 들어요?”

내 목소리에 청년이 깜짝 놀라며 두 눈을 번쩍 떴다. 청년은 몸을 일으켜 나에게 떨어진 후 잠시 주변을 살폈다.

“다, 당신들은 누구죠?”

“누구긴 누구야? 생명의 은인이지!”

아저씨가 후다닥 달려와 청년에게 고개를 내밀었다.

청년은 아저씨의 얼굴에 더 놀라 손바닥으로 아저씨의 뺨을 후려쳤다.

“어이쿠!”

아저씨는 청년의 따귀에 맞아 휙 날아갔다. 아저씨가 날아간 건 둘째 치고, 청년의 손을 잘 보니까 손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역시 능력자였구나.

“저기…….”

어떻게든 대화를 해 보려는 내 목소리에 청년은 주먹을 쥐며 경계했다.

기절했던 충격 땜에 제정신이 아닌 건가?

일단 청년을 진정시키는 게 먼저일 것 같다.

“제가 해 보죠.”

루호가 유성추를 든 채 청년에게로 향했다.

청년은 가만히 서 있는 나에게서 무기를 든 루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만히 계시면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설사 유혈 사태가 일어나도 저희가 당할 일은 없겠지만요.”

크윽! 저 여유가 부럽다.

나는 언제 저런 여유 있는 말을 하게 될까?

청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루호의 눈빛에 기가 죽어 버렸다. 그리고 순순히 자리에 앉아 깊은 한숨을 쉬었다.

“죄송합니다.”

모기 같은 목소리. 하지만 이걸로 안심이 된다.

“아참,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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