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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23화 (23/250)

23화

23화

“됐다, 이놈아. ‘아참, 아저씨’께선 무사하시다! 사람이 맞아서 날아가면 진작 신경을 써 줘야지!”

아저씨는 흙먼지를 툭툭 털며 우리 옆으로 돌아왔다.

스스로 치료를 하는 모습이 왠지 처량하다.

“괜찮으세요?”

“그래. 근데 이 배은망덕한 걸 어떻게 할 거냐? 죽어 가던 걸 살려 줬더니, 얼굴에 발톱을 들이밀어?”

아저씨는 방방 뛰었다.

루호는 아저씨의 모습에 고소해하면서도 청년에 대해선 걱정스러워했다.

“이런 사람을 데리고 거북악어를 사냥하긴 힘들 것 같아요. 그냥 여기 두고 가는 게 어떨까요? 여기라면 사냥 지점하고도 가까우니, 무슨 일이 벌어지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H세포를 다룰 줄 아니까 쉽게 당하지도 않을 거고요.”

루호랑은 이런 데서 의견 차이가 나네.

“난 H세포가 있기 때문에 데리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루호가 단호히 말했다.

“믿을 수 없는 자와 함께 싸울 순 없습니다. 그냥 여기에 놔두고 가죠.”

끙, 루호 말에 따라야 하나?

그런데 옆에서 아저씨가 툭 한마디 던진다.

“끌끌끌! 그럼 난 믿는단 거냐?”

“아니요. 하지만 상팔 형은 믿습니다.”

아아. 루호야! 눈물이 앞을 가리네.

아저씨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쳇! 할 말 없군.”

아저씨는 루호에게서 돌아서 청년에게 가까이 갔다. 그리고 청년이 반응하기도 전에 빠른 손놀림으로 청년의 목을 찔렀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아저씨의 민첩함에 청년은 무방비로 당했다.

아저씨가 저렇게 빨랐나?

나와 루호는 청년이 기절한 것보다 아저씨가 빠르단 사실에 더 놀랐다.

아저씨는 우리의 반응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배낭에서 푸른색 단지를 꺼내 그 안의 녹색 가루를 청년의 주변에 뿌렸다.

가루는 청년이 눕혀진 벤치에 빙 둘러졌다.

“이걸 뿌려 놓으면 안전할 거다. 괴물들이 이 냄새를 아주 싫어하거든!”

“이게 뭔데요?”

몸을 낮춰 가루의 냄새를 맡아 봤다.

거의 무취에 가깝지만, 살살 구린내 같은 게 올라온다.

“내 응가 가루.”

충격적인 대답과 함께 돌연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가루가 날려 내 얼굴로 날렸다.

“퉤퉤퉤퉤! 퉤퉤퉤퉤!”

“끌끌끌! 그럼 이제 가 보…….”

배낭을 집으려는 아저씨의 움직임이 멈춘다.

휴식장 주변.

나무와 수풀이 움직이며 우리를 둘러싼 공간이 흔들렸다.

루호는 유성추를 돌리며 외쳤다.

“포위당했습니다!”

“쳇! 오늘 사냥은 참 여러 가지로 꼬이는군.”

아저씨는 얼른 배낭을 멨다.

나는 허리에 찬 정글도를 꺼내 들고 루호와 함께 수풀을 응시했다.

원형의 휴식장을 빙 둘러싼 무리.

분명 뭔가의 무리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지점을 이탈한 놈들인가?

3급 사냥 구역에서 이렇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놈들이라면…….

“갱벌레?”

갱벌레.

소형견 크기의 애벌레.

한 마리, 한 마리의 위험도는 별로 높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이놈들의 조직적인 행동에 있다.

무리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개미나 벌의 그것보다 훨씬 질서정연하다.

“갱벌레가 왜 이런 데까지 내려왔지? 원래는 높은 곳에 사는 놈들일 텐데?”

아저씨의 말에 루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로선 최악의 상황.

한 마리를 셋이서 상대하는 작전을 세워 온 터라 이런 많은 숫자는 힘들다.

“지금이라도 빨리 등산로를 내려갈까요?”

루호가 나와 아저씨에게 물었다. 난 고개를 저었고, 아저씨는 말로써 대답했다.

“그건 안 돼. 놈들이 어떤 식으로 우릴 포위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움직이는 건 위험해. 자칫 놈들 속으로 돌진하게 될 수도 있어.”

수풀 속에서 갱벌레들의 머리가 쑥 나온다.

머리의 각도는 정확히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45도.

여차하면 우리 머리 쪽으로 뛰어들 것이다.

“이쪽은 부상자가 있는데……!”

루호의 말에 아저씨가 바로 받아쳤다.

“지금 우리 중에 걔가 제일 안전해! 잔말 말고 싸워.”

그렇다면?

혹시나 해서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냥 저희도 저 가루를 뿌리고, 그 영역 안에 있으면 안 돼요?”

“그건 안 돼! 그건 어디까지나 예방 차원이야. 만약 우리가 모두 그렇게 하면 놈들이 조금 무리를 해서 가루를 넘을 수 있어.”

갱벌레들은 동시에 뛰어올라 우리를 덮쳤다.

쩍 벌어진 집게 입이 사방에서 우리의 팔과 손을 노리며 날아온다.

“하앗!”

가장 가까이 온 녀석을 정글도로 베어 두 동강을 냈다.

두 쪽이 난 갱벌레의 체액이 얼굴에 닿아 시야를 가린다.

“에잇.”

서둘러 눈을 닦지만, 벌써 다른 갱벌레들이 내 양팔과 오른쪽 다리를 문다.

벌에 쏘인 듯 뜨끔한 통증에 나도 모르게 몸을 턴다. 그러나 놈들은 떨어지지 않는다. 계속해서 다른 놈들이 다가온다.

“상팔 형! 빨리 떼어 내세요.”

루호는 유성추를 요요처럼 튕기며 가까이에 있는 갱벌레들을 모두 처리했다. 손목 스냅에 휘둘러진 줄이 물결처럼 요동치며 철구를 고무공처럼 움직였다.

“떨어져라, 떨어져!”

루호의 충고대로 열심히 몸을 털었다. 하지만 갱벌레들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힘을 주어 살을 물었다.

“앗, 따거!”

털어 내는 것은 포기, 정글도로 놈들을 하나하나 쳐 냈다. 새로이 뛰어드는 갱벌레들은 발놀림으로 피했다.

“아저씨는?”

맨손인 아저씨가 걱정……은 개뿔!

아저씨는 나랑 루호와는 달리 H세포를 쓰는 데 조금도 제약이 없다.

지금 우리 중 가장 잘 싸우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저씨!

아저씨는 마음껏 능력 발동을 하며 갱벌레들을 먼지 털 듯 쓸어버리고 있다.

“끌끌끌! 벌레 같은 놈들. 살충제를 안 가져온 게 아쉽구나!”

갱벌레는 첫 기습이 신통치 않자 전략을 바꿨다.

우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사각형.

갱벌레들은 빈틈없이 우리를 에워싸고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계속 싸우면 못 이길 상대는 아니지만, 도망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배낭을 멨다.

“쟤는 너희가 알아서 해라. 내가 앞장서마.”

청년은 아까처럼 내가 업고, 루호는 남은 배낭을 챙겼다. 우리는 아저씨의 인도를 따라 갱벌레들을 그냥 밟으며 위로 올라갔다.

응?

“왜 위로 올라가요? 아래로 내려가야죠?”

“모르는 소리 마라! 이렇게 위로 올라가는 게 녀석들을 더 쉽게 따돌릴 수 있어!”

뒤를 돌아보니, 갱벌레들은 통통 튀면서 우릴 쫓아오고 있다. 하지만 아저씨 말처럼 점점 거리가 벌어지고 있다.

기거나, 뛰어다니는 녀석들한테 경사가 있는 길은 고역.

만약 내 말대로 내려갔다면 오히려 녀석들에게 유리했을 것이다.

“그냥 이대로 거북악어 지점으로 가요! 거기 가면 녀석들도 오지 못할 거예요.”

“그 사람은 어떻게 하실 거죠?”

루호가 청년을 가리키며 물었다.

사실 나도 그게 걱정인데…….

일단 루호에게는 괜찮은 척 씩 웃어 보인다.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책임질게.”

책임질 능력은 쥐뿔도 없지만…….

약한 여러 마리를 상대하는 것보단 강한 한 마리를 상대하는 쪽이 더 안전할지 모른다.

거북악어의 영역으로 가면 갱벌레들은 자연스럽게 물러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거북악어와 싸울 땐 계속해서 우리 쪽을 노리게 할 생각이다. 그러면 최소한 청년의 안전은 보장된다.

중턱 부근에 있는 작은 언덕을 넘자, 등산로 옆으로 표지판이 보였다.

[거북악어, 출몰 지점]

우리는 그곳으로 꺾어 들어갔고, 예상대로 갱벌레들은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괴물 사이에도 엄연히 상도덕이 있나 보다. 그런 점에서 괴물이 사람보다 낫다.

“여기서부턴 천천히 가죠. 어디서 거북악어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요.”

아저씨와 루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살폈다.

등산로를 벗어나 처음으로 밟은 산길.

올라가는 것이 아닌 산의 옆으로 가는 것이라서 그런지 길 자체는 널찍한 편이다.

우리는 휴식을 겸해 천천히 나아갔다.

거북악어는 혼자서 살기에 여러 마리가 뭉쳐서 나타날 일은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응?”

앞서가던 아저씨가 갑자기 나와 루호에게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정지.

우리는 아저씨의 신호에 맞춰 걸음을 멈췄다.

“저거 거북악어지?”

조심스레 아저씨의 어깨 너머로 목을 뺐다.

우리로부터 약 10m 전방.

바위 같은 등 껍데기가 보였다.

확실한 거북의 등 껍데기.

각 각판마다 뿔이 최대한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다.

마치 평범한 등 껍데기에 삼각뿔들을 붙인 형태.

분명 거북악어의 것이다.

“뭔가 좀 이상한데요?”

루호가 내 옆에서 같이 목을 빼고 등 껍데기를 살폈다.

루호의 말을 듣고 천천히 살펴보니, 과연 뭔가가 좀 이상하다.

일반적인 경우 거북악어는 등 껍데기에 숨어도 특유의 긴 꼬리가 노출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등 껍데기에는 아무것도 튀어나온 부분이 없다.

즉, 빈껍데기란 뜻.

등 껍데기 주변으로 뼛조각 같은 게 보인다.

“저희 말고 다른 헌터한테 사냥당한 걸까요?”

루호의 질문에 아저씨가 대답을 가로챘다.

“그건 아닐걸? 헌터가 한 거라면, 저 등 껍데기를 갖고 갔겠지. 저거 얻으려고 사냥하는 건데, 가장 중요한 걸 안 챙긴다고?”

흠, 맞는 말이다. 우리도 오늘 저 등 껍데기 얻으려고 여기 온 건데……. 왜 저걸 두고 갔지?

“챙길 여유가 없었던 것 아닐까요?”

“글쎄다.”

“혹시…….”

루호가 내 등에 업혀 있는 청년을 가리켰다.

“사냥에 성공하고, 어떤 이상이 생겨서 도망쳤던 것 아닐까요?”

혼자? 혼자서 거북악어를 잡았다고?

“그건 아니지!”

아저씨가 얼른 루호의 말을 부정한다.

“만약 사람이 잡았다고 쳐도, 저건 너무 깨끗하지 않아? 잡자마자 썩는 고기가 어디 있어? 게다가 땅을 봐라.”

땅?

아저씨는 등 껍데기 아래 땅바닥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다른 곳과 다르게 흙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검붉은 흙에서 신선한 피 냄새가 올라온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군요.”

루호가 아저씨의 말에 동의.

나도 그 말엔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

“다른 괴물한테 잡아먹힌 걸까요?”

“그럴 확률이 가장 높지. 문제는…….”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었다.

“그만한 괴물이 아직도 이 근처에 있다면, 우린 이미 놈에게 찍혔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아놔, 이거 오늘 하루 계속 똥개 훈련하는 기분이냐?”

아저씨의 불평을 들으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3급 사냥 구역, 비명횡산.

이곳에 살면서 거북악어를 사냥할 역량이 되는 괴물. 등 껍데기를 훼손하지 않으며, 속살만 파먹을 수 있는 괴물. 몇몇 후보가 빠르게 지나간다. 하지만 그중에서 딱 하나.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녀석이 떠오른다.

“설마…… 가시거머리?”

가시거머리.

사람 크기의 거머리형 괴물.

일반 거머리랑 다른 점이라면 이동할 때 기어 다니는 게 아니라 몸에서 가시 같은 촉수를 뻗어 걷는다는 것이다.

가시는 전투용으로도 쓸 수 있어서, 찔리면 치명적이다.

“가시거머리라……. 끌끌끌! 재수 옴 붙었군. 어떻게 할래? 사냥할까?”

가시거머리가 아직 여기 있다면, 거북악어의 등 껍데기 속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시거머리는 사냥에 성공하면 사냥감의 살점을 빨아 먹은 후 남은 신체에 달라붙어 휴식을 취하는 습성이 있다.

“거북악어의 등 껍데기를 쓴 가시거머리……. 조금 버겁지 않을까요?”

루호가 살짝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루호 말이 맞다. 오늘은 짐짝도 있으니까, 다음에 오자꾸나.”

아저씨가 청년을 보며 말했다.

아저씨와 루호의 걱정.

어떤 두려움이 있는지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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