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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25화 (25/250)

25화

25화

아저씨의 쭉 튀어나온 입술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러자 내 몸으로 아저씨의 H력이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읍읍! 읍읍읍!”

아저씨는 입술이 잡힌 상태에서 무어라 항의의 소리를 냈다. 물론 본인이 자초하신 일이기에 반론은 일절 허용하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아저씨는 차고 넘칠 정도로 H력을 뿜어내 주셨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고마워요, 아저씨.”

“죽지나 마라.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우리의 대화는 그걸로 끝.

거북악어의 등 껍데기가 들썩였다.

우리는 미리 상의한 대형으로 섰다.

맨 뒤엔 한돈 아저씨.

중간엔 나.

전방엔 루호와 호규.

호규는 H세포의 힘을 끌어냈고, 루호는 유성추를 돌렸다.

나도 등 껍데기를 향해 발사기를 조준.

놈이 등 껍데기에서 튀어나오기만 기다렸다.

“나왔다!”

검은색 물체가 등 껍데기에서 휙 빠져나왔다.

물체는 단숨에 불길을 뛰어넘어 우리 앞에 착지.

타이어 공기 빠지는 소리를 냈다.

전체적인 모습은 검은색 자루. 길쭉한 머리부터 뭉툭하고 펑퍼짐한 몸통은 일체형. 길이는 대략 2~3m 정도.

몸 군데군데 가시가 돋아난 모습이 혹 해삼이나 성게 같기도 하다.

“역시 가시거머리였어.”

가시거머리는 머리를 마구잡이로 움직였다.

몸에 난 가시도 꿈틀거리며 휘두르는 것으로 봐 혼란스러운 상태로 추측된다.

“제가 먼저 쏠게요!”

이럴 땐 선빵 필승!

먼저 공격하는 게 좋다.

망설임 없이 발사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조명탄은 ‘푸슉’ 소리와 함께 총구에서 날아가 가시거머리의 몸에 박혔다.

마치 네일건으로 못을 날리듯 가시거머리의 몸통 안으로 파고든 조명탄의 끝이 보였다. 그리고 조명탄을 중심으로 가시거머리의 몸통이 부글거리더니, 불꽃이 일었다.

“좋았어!”

가시거머리의 상처에서 활활 붉은 형광이 피어올랐다.

가시거머리가 고통에 못 이겨 입을 활짝 벌리자, 원형의 입 안쪽에 촘촘히 붙은 이빨들이 보였다.

먹장어나, 달팽이 같은 이빨 나열.

저런 데 한 번 물렸다간 몸이 믹서기에 갈린 것처럼 엉망이 될 것이다.

가시거머리는 가시를 촉수처럼 늘려 몸을 제대로 가눴다.

고통에 미친 걸까?

아직 불이 활활 타고 있는데도 녀석은 우리를 향해 가시를 겨눴다.

“다들 준비해요!”

가시거머리는 가시 촉수를 길게 뻗어 가장 앞에 있는 루호와 호규를 노렸다.

루호는 철구를 날려 촉수를 쳐 냈고, 호규는 정글도를 휘둘러 촉수를 잘라 냈다.

둘 다 우려와는 달리 능숙한 솜씨. 그러나 반격에 나설 정도는 아니었다.

재빨리 주머니에서 조명탄을 꺼내 발사기에 장전.

배낭에 넣어 뒀던 탄들도 모두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계속 버티고 있어!”

가시거머리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루호와 호규는 가시 촉수를 막아 내는 것에 고전.

아저씨는 특별히 뭔가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한 방 더 발사.

이번엔 거머리의 입속으로 쏙 들어갔다.

가시거머리는 입안에서 불을 내뿜는 자태로 미친 듯이 머리를 털었다. 그러나 한 번 붙은 조명탄의 불꽃은 그리 쉽게 꺼지지 않았다.

가시거머리는 고통에 의해 온몸의 가시를 뻗었다.

한 번에 수십 개의 가시 촉수가 다가오자, 이번엔 루호와 호규도 어쩌지 못해 뒤로 물러났다.

가시 촉수는 무차별적으로 허공과 주변을 찌르며 사방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발광에 가까운 공격.

패턴이나, 규칙이 없는 몸부림이다.

“어떻게 하죠?”

루호가 물었다.

일단 우리는 다 함께 뒤로 물러났다.

“제풀에 지칠 때까지 기다리자.”

어떤 괴물이든 미쳐서 날뛸 땐 가만히 놔두는 게 상책.

어중간한 실력으론 건드려선 안 된다. 괜히 건드렸다간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가시거머리의 발광은 조명탄이 꺼질 때쯤 잠잠해졌다. 두 번의 큰 화상 때문인지 가시거머리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변했다.

가시 촉수도 힘없이 축 늘어진 상태.

지금이 공격하기에 가장 제격이다.

“가자!”

발사기에 조명탄 장전.

우리는 루호, 호규를 앞세워 가시거머리를 향해 돌진했다.

가시거머리는 우리의 접근에 의한 진동을 감지했는지, 갑자기 몸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뭐지?”

호규가 정글도로 가시거머리를 찍으려다가 멈칫했다. 구 형태로 몸이 부푼 거머리는 마치 밤송이처럼 가시를 빳빳이 세워 우리의 공격에 대비. 심지어 가시 촉수 끝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앗!”

10cm 길이의 날카로운 단검. 그리고 15cm 길이의 묵직한 원뿔.

검치삵의 엄니와 뿔멧돼지의 뿔이다.

그밖에 다른 괴물의 무기가 주렁주렁.

아무래도 가시거머리가 잡아먹은 괴물이 한두 마리가 아닌 모양이다.

만약 이런 무기들에다가 거북악어의 등 껍데기까지 있었다면…….

난 내 선택을 후회했을지 모른다.

수십 개의 촉수, 그리고 거기에 달린 수십 개의 무기.

거대한 밤송이가 무수한 촉수에 의해 지면 위로 떠올랐다. 가시거머리는 촉수로 몸을 높이 들어 올린 채 유유히 촉수를 휘둘렀다.

각 괴물이 지닌 최강의 무기가 우리를 위협했다.

“하앗!”

루호의 유성추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촉수를 튕겨 냈다.

줄을 돌리는 루호의 손놀림에 따라 철구는 엄니에서 뿔, 뿔에서 엄니로 튀었다. 그리고 철구와 부딪친 촉수는 제 방향을 잃고 힘없이 늘어졌다.

“합!”

루호가 무력화시킨 촉수를 호규가 잽싸게 베었다. 한낱 정글도와 철구지만, 두 사람 손에서 최고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가시거머리의 촉수는 끝없이 내려와 우리를 노렸다.

루호와 호규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숫자에서부터 밀리는 상황.

하는 수 없이 발사기로 거머리를 다시 노렸다.

“또 발광시키는 게 찝찝하지만, 어쩔 수 없지.”

호규의 정글도가 부러지는 것을 신호로 발사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감히, 내 정글도를……!

내가 그거 사려고 무기 가게 아줌마랑 얼마나 싸웠는데! 안 깎아 준다는 걸 겨우 우기고, 매달리고, 애원해서 산 거란 말이야!

내 정글도의 원수!

원수에게 불벼락을 쏴 주마!

필살, 불벼락 파이어!

“받아라!”

조명탄이 본래의 사격 방향대로 위를 향해 휘리릭 날아올랐다.

목표는 당연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가시거머리.

붉게 타오르는 불꽃이 거대한 밤송이를 향했다. 그러나 조명탄이 거머리에게 닿기 전 가시 촉수 하나가 잽싸게 움직여 불꽃을 꿰뚫었다.

관통된 불꽃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제길…….”

“단세포 치곤 학습 효과가 있군. 도대체 얼마나 처먹은 거야?”

아저씨는 가시거머리를 올려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놈이 보여 준 엄니와 뿔 같은 것은 대략 수십 개.

대략적으로 추측을 해 봐도 정상부근의 강한 괴물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괴물이 지금 저 거머리 배 속에 있는 것이다.

어쩌면 갱벌레들이 서식 지점을 이탈한 것도 가시거머리에게 쫓겨서일지 모른다.

“전력으로 가지 않으면 당하겠어.”

조명탄을 장전.

루호와 호규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낸다.

슬슬 무리를 할 때다.

“제가 놈을 끌어내리겠습니다. 호규 씨랑 형은 그때를 놓치지 마세요.”

“알았어!”

루호는 심호흡을 하더니, H세포를 빠르게 전개했다. 능력이 발동됨을 알리는 아지랑이가 그 어느 때보다 넓고 진하게 피어올랐고, 루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하아아앗!”

루호의 전신이 아지랑이로 뒤덮였다.

루호는 자신의 능력에 몸을 맡기며 눈을 감았다.

루호를 감싼 아지랑이는 누에고치처럼 변하며 흰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점점 크기가 불어나더니 어떤 생물체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저게 천재의 능력이군. 오호, 끌끌끌!”

아저씨는 박수를 치며 웃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시다니…….

역시 아저씨다.

호규는 루호의 모습에 놀라 말을 잃은 상태.

나도 ‘사슴’이란 키워드가 이렇게 딱 맞아떨어질 줄 몰랐다.

타원형의 균형 잡힌 몸매, 굵고 긴 흰색 털, 초롱초롱한 검은 눈망울. 그리고 그 위로 돋은 한 쌍의 뿔. 나뭇가지처럼 갈라진 뿔은 그 끝이 예리하기 그지없어 위협적.

루호는 흰 사슴으로 변해 있었다.

“백구 생각나네.”

루호네 개집에 사는 백구가 꽃사슴이라면 루호의 변신은 가히 맹수. 육중한 체격이 실로 든든하다. 사슴보단 순록에 가까운 생김새에서 고고함이 느껴진다.

그야말로 품위와 위압을 동시에 지닌 생명체. 만약 괴물이었다면 사냥하기보단 카메라에 담고 싶었을 것이다.

루호는 옆의 나무를 향해 뛰어올라 나무를 박차고 한 번 더 점프, 가시거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거침없이 나아가는 그 모습은 흰색 탄환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가시거머리는 루호를 향해 촉수를 몇 가닥 뻗어서 찔렀다. 다른 괴물의 엄니와 뿔이 흰 사슴의 가죽과 털을 뚫으려 했다.

와!

루호가 공중에서 몸을 한 번 털자, 그를 찌르려던 촉수들이 모두 떨어져 나간다.

루호는 머리를 아래로 숙이며 가시거머리를 향해 낙하했다.

날카로운 뿔 끝이 가시거머리를 찍으며 낙하 무게로 강타.

가시거머리의 촉수들이 무너지며 몸통이 지면으로 떨어졌다.

루호는 지면에 충돌하기 전 재빨리 거머리를 발로 차 유유히 착지.

가시거머리의 옆에 서서 우리를 향해 울부짖었다.

“좋았어! 갑시다, 호규 씨!”

“예!”

조명탄을 가시거머리를 향해 발사.

가시거머리의 몸통이 환하게 빛났다. 가시거머리는 조금이라도 불꽃의 위력을 줄이기 위해 몸부림을 치려 했지만, 곧이어 호규의 비명이 날아왔다.

호규는 크게 숨을 들이쉰 후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진동으로 인해 생긴 힘은 가시거머리를 짓누르며 원형의 자국을 팼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불꽃은 압력에 밀려 가시거머리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가 더욱 거세게 일었다.

가시거머리는 졸지에 몸 전체에서 붉은 형광을 냈다.

꼭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단 전구 같다.

귀를 틀어막으면서도 호규의 소리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런 위력이라면 혼자 사냥하러 돌아다녀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소리의 범위 안은 그야말로 초토화. 나무고, 바위고, 흙이고 남아나질 않는다.

호규의 공격은 딱 호흡 길이만큼 이어졌다. 숨이 끊기고, 호규가 입을 다물었다.

“대단하네요. 고막이 찢어질 뻔했어요.”

어느새 인간으로 돌아온 루호가 내 옆에 서 있었다. 슬쩍 고개를 숙여 루호에게 속삭였다.

“난 네가 더 대단한데?”

루호는 멋쩍은 듯 코를 긁었다.

“아직 방심하지 마라! 저 녀석, 아직 안 죽었어!”

뒤에서 들려오는 아저씨의 호통.

그 소리에 우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뿔싸!

가시거머리는 찌그러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꼴이 누가 봐도 다 죽어 가는 모습이지만 방심은 금물.

확실하게 보내 버려야 한다.

“루호야. 아까 변신, 그거 한 번 더 할 수 있냐?”

발사기를 재장전하며 루호에게 물었다.

“예. 하지만 오래 지속할 순 없어요. 길어야…… 1분일 거예요.”

“좋아! 그럼 뿔로 저놈 입 좀 벌려 줄 수 있냐?”

“해 보죠.”

루호는 한 번 더 아지랑이를 피워 흰 사슴으로 변했다. 그리고 뿔을 앞세워 가시거머리에게 돌진했다.

가시거머리는 루호를 잡아먹을 심산으로 입을 크게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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