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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33화 (33/250)

33화

33화

“하압!”

안구의 능력발현.

아지랑이가 안구의 몸을 감쌌다.

공기를 흔들어 시선을 왜곡시키는 아지랑이는 안구의 몸을 덮으면서 스르륵 옅어져 소멸. 마치 녹아서 사라진 형상이다. 그것을 따라 안구의 모습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어?”

사라졌어? 뭐지?

일단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직원을 바라봤다. 놀란 것은 직원도 마찬가지. 직원은 턱을 어루만지며 링 주변을 돌았다.

“일단 대기하십시오.”

직원의 말이 옳다.

확실하게 판단이 설 때까진 함부로 추측하면 안 된다.

이 망할 H세포란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 혼을 쏙 빼놓기에 참 좋은 것이다.

“에비, 에비!”

확인 차 목검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그러나 딱히 목검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역시 링에서 사라진 걸까?

H력으로 H세포를 발동, 감각을 최대한 예민하게 만들었다.

평소에도 예민한 내 오감이 H세포의 힘으로 강화된다면 못 찾을 리 없었다.

“안 보이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신, 뭔가 느껴진다?

희미하지만, 허공을 휘젓는 뭔가가 있다.

아지랑이보다 더 희미한 움직임.

투명하지만, 질감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한, 공기 중에 움직이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안구가 날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나?

“앗!”

깜짝 놀라 최대한 뒤로 물러났다.

안구의 능력은 투명화!

생각보다 까다로운 능력이다. H력을 전신에 골고루 보내야 싸움에 도움이 되는데, 안구를 감지하려면 온 H력을 머리에 집중해야 한다.

반면에 안구는 투명화와는 별개로 원래의 신체 강화까지 가능한 상태. 확실히 내가 불리하다.

“으악!”

보이지 않는 죽도가 내 머리를 정통으로 때렸다.

내 머리와 쪼개진 대나무 사이에서 일어난 타격음이 고막에 울리며 이중으로 통증을 유발.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아오!”

홧김에 마구잡이로 목검을 휘두르지만, 역시나 걸리는 것이 없다.

이런 쥐새끼 같으니……!

“악!”

이번엔 왼쪽 옆구리.

충격에 의해 몸이 오른쪽으로 밀렸다. 안구는 때린 즉시 이동, 내 감지 범위에서 사라졌다.

“젠장!”

사면이 뚫린 곳은 위험하다. 일단 최대한 빈 공간을 줄이자.

당장 링의 코너로 가 등을 붙였다.

이렇게 하면 최소한 뒤통수를 맞을 일은 없다.

공격이 올 방향은 확실하게 정면, 그렇다면 공격을 받는 순간 나에게도 반격의 기회가 올 것이다.

“와라! 나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투명한 뭔가가 서 있는 모습이란 마치 아침에 막 벌어진 눈꺼풀 사이에 낀 눈곱 같은 것. 집중하지 말고 약간은 무심하게 초점을 풀면 공기 중 안구의 형상이 도드라진다.

물론 보인다고 해서 공격을 되받아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좀 별개의 이야기.

왼쪽에서 보이는 흐릿한 공격.

일단 목검을 비스듬히 숙여 경로 자체를 차단했다.

직후 묵직한 충격이 목검을 강타, 양손으로 잡은 목검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하앗!”

죽도를 흘려 버리고, 이번엔 내가 안구를 공격했다.

목검을 눕혀 냅다 허공을 찌르니, 안구의 신음 소리와 함께 목검 끝에서 촉감이 전해졌다.

좋았어!

안구는 손으로 내 목검을 잡아 밀었다. 양손임에도 H세포의 힘 차이로 인해 내 목검이 조금씩 안구의 몸에서 떨어졌다.

지금의 일격으로 안구가 꽤 피해를 입었단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완력에 의해 목검이 떨어졌지만, 나와 힘겨루기를 하는 안구의 손이 제법 떨리고 있다.

그것은 강인함이 아닌 고통에 의한 것.

적어도 이제부턴 안구가 함부로 덤비지 않을 것이다.

“흐음…….”

그냥저냥 해볼 만한 상대인데, 다들 왜 그렇게 무섭게 말한 거지?

이상하네.

“저 녀석, 안구가 보이는 건가?”

아니요. 안 보여요.

“그렇군! 저 녀석의 능력은 탐지야. 그래서 안구가 보이는 거라고!”

아니거든요? 그냥 어쩌다 보니, 최선을 다해서, 성실히, 잘 하고 있는 것뿐이거든요!

“안구보다 더 굉장한 녀석이 나타났어! 저 녀석은 정체가 뭐야?”

김상팔이요. 아까 직원이 내 이름 부르는 거 다들 들었잖아요?

“어이쿠!”

안구의 죽도가 사정없이 날아왔다.

아예 작정하고 돌격한 건가.

목검을 들어 죽도를 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안구의 공격은 거침없이 내 몸을 두들겨 팼다.

“으악, 으악, 으악!”

방어하고 싶어도 눈앞에 별이 핑핑 돌았다.

죽도라는 게 이렇게 아픈 거였나?

역시 대나무로 만든 것은 정말 강력하다.

“윽!”

젠장.

눈앞이 붉어진다. 아무래도 눈을 잘못 맞은 듯하다.

“떨어져!”

안구의 하반신이 있을 법한 자리로 대강 목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아무리 때리고, 찔러도 안구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이 자식 이성을 잃은 건가? 날 죽일 셈이냐?

목검으로 죽도를 쳐 내려 해도, 성공률은 열 번에 일곱 번 정도.

나머지는 차례차례 내 몸에 적중한다. 게다가 쳐 내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 힘은 배로 든다.

머리에서 끈적끈적한 것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얼굴이 잔뜩 당겨지는 느낌이 추가로 생겼다.

아무래도 오늘 잘하면 링 위에서 하얗게 불태울 것 같다.

근데 안구 저놈은 날 생포해야지, 왜 죽일 것처럼 때리는 거야? 젠장, 어떻게든 공격을 해야 하는데…….

“하는 수 없지.”

이대로 가다간 끝장이다. 내 인생이 끝장나든, 시합에서 지든 어쨌든 끝장.

그렇다면 이쪽도 이판사판이다!

일단 목검의 손잡이에서 손을 떼 목검의 검신 한가운데를 잡았다. 공격에 쓸 수 있는 길이가 훨씬 줄었지만, 대신 사용하기에는 훨씬 수월해졌다.

“얍!”

죽도가 왼쪽 어깨를 깊이 파고드는 순간 오른손에 든 목검으로 나 역시 안구를 깊게 찔렀다.

길게 잡을 때와 비교도 안 되게 묵직해진 목검이 안구의 몸속을 파고들며 안구의 비명 소리가 방 안 전체에 퍼졌다.

“으아아악!”

이번엔 놓치지 않아!

완전히 결판을 내 주겠어.

목검을 놓은 채 그대로 몸을 날려 안구를 끌어안았다.

한 덩이가 된 우리는 링 위를 몇 바퀴 구른 후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어린애들의 난투처럼 기술도, 눈치도 없는 막싸움.

내 손에 피가 묻었지만, 아직도 안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막싸움에 일가견이 있다.

보통 막싸움엔 전법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두 종류가 있다.

티 나게 때리기와 티 안 나게 때리기.

난 두 종류 다 능숙하다.

서로의 주먹에 담긴 H력 덕에 H세포가 중간에 끊길 일은 없었다.

응? 뭐지?

뭔가가 H력을 타고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일주일 전, 그리고 사흘 전 기억.

한 시간짜리지만, 둘 중 하나가 아주 흥미롭다.

이 자식, 버스에서 젊은 여성의 엉덩이를 추행한 적이 있다.

게다가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너였냐? 네가 아침에도 주아란한테 손을 댄 거야?”

내 말에 안구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퉁퉁 불은 우동 면발 같은 얼굴, 피멍으로 얼룩진 눈매, 땀과 피로 젖은 옷.

혹시 나도 이런 상태인 건가? 그보다 난 별로 많이 때리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많이 다쳤어?

이렇게 많이 다치면 안 된다고!

“어서 말해. 네가 범인이지?”

안구의 목을 조른 손에 힘을 주었다. 안구는 ‘켁켁’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으로 봐도 되는 거겠지? 절대 고통에 의해 몸부림치는 게 아닐 거야.

잡았다, 요놈!

박치기로 안구를 응징.

번쩍하는 빛과 함께 머리에 충격이 일었다.

“항복하지 않으면 이번엔 네가 추행을 당할 거야! 링 위에서, 모두가 보도록, 적나라하게!”

일부러 안구의 바지를 만지작거리며 협박했다.

직원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방관한다. 아직은 허용 범위 이내인 듯하다.

안구는 바지가 내려감에 따라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자, 잠깐! 잠깐! 이러는 게 어디 있어? 난 당하는 건 싫어. 당하는 건 싫다고!”

울먹이는 꼴을 보니 더욱 가관이다.

그냥 확 진짜로 벗겨 버릴까?

“항복해!”

“항……복.”

좋았어!

만세, 만만세!

의기양양하게 몸을 일으켜 직원을 쳐다봤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승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링에서 내려오고 나서 내가 어떤 시선으로 보였는지 깨달았다.

“역겨운 놈.”

“게이 강간범!”

“변태 새끼. 아무리 맞았어도 그렇지, 어떻게…….”

다들 크게 말하지 않고 작게 수군거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소리가 나한테 100% 다 전달된다는 점. 심지어 아란조차 날 이상한 눈으로 보며 피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직원들이 누워서 훌쩍이는 안구를 방 밖으로 옮겼다. 지금 이 방 안에서 피해자는 안구, 가해자는 나였다.

난 응급 처치를 받으면서도 어느 누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

“미치고 팔짝 뛰겠네.”

내가 안구의 기억을 읽었다고 말하면, 지금 상황에서 과연 사람들이 내 말을 믿어 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란이 믿어 주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증명하려면 또 기억을 읽어야 하는데, 지금 다른 사람 몸에 손을 댔다간 정말로 잡혀갈지 모른다.

젠장, 제기랄!

분노가 극에 달하니까 오히려 냉정해진다. 그리고 몸이 차갑게 식으며 졸음이 몰려온다.

격렬한 싸움 끝에 찾아온 피로감.

나도 모르게 응급 처치용 침대 위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뭐, 때 되면 알아서 깨워 주겠지?

그래, 일단은 자자. 푹 자고 이 더러운 기분을 씻어 내자!

내가 다시 일어난 것은 정확히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다른 합격자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은 날 직원이 발견해 깨워 주었다.

참고로 직원이 날 깨워 준 이유는 퇴근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지부 건물을 나서니, 탁 트인 평야로 석양이 지는 게 보인다.

온통 황금빛으로 물드는 이 시간에 이렇게 홀로 서 있는 신세가 참 처량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날 씁쓸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정말로 ‘혼자’란 사실이다.

“이제 내일 면접만 보면 돼. 그러면 나도 어엿한 헌터야!”

두고 보자.

이 더러운 세상. 내가 악착같이 버티고, 버텨서 올라가 주겠어!

이를 갈면서 석양에 대고 주먹을 올렸다.

마음 같아선 주먹감자를 올리고 싶었지만, 뒤에서 한 직원이 입에 담배를 문 채로 날 째려보고 있어서 그만두었다.

확 그냥 저 사람한테 주먹감자를 올릴까?

다음 날.

깊은 한숨과 함께 헌터 협회를 방문했다.

다들 날 ‘게이 강간범’이라고 부르며 수군대는 게 귀에 쏙쏙 들어온다.

어제 시험에서 남은 사람은 정확히 20명. 이 중에 과연 몇이나 남을지 모르겠다.

날 포함한 생존자들은 발표장에 모여 앉아 직원의 안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씩이나 걸러 낸 끝에 남은 사람이어서 그런지, 다들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풍겼다.

날 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는 주아란.

바바리코트 차림에 기분 나쁜 미소를 띠는 갈리.

두 사람 말고도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인형 탈로 가리고 있는 녀석.

공룡 인형 옷을 입고 시험에 응시한 거야? 저게 가능해?

“자기 조가 몇 조인지 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10명이 한 조가 되어 ‘심층 면접’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심층 면접이란 말에 전 좌석이 술렁였다.

10명이 동시에 보는데, 어떻게 그게 심층 면접이지? 심층 면접이면 보통 지원자 한 명을 여러 면접관이 다굴 치는 걸 말할 텐데?

여기저기서 말이 쏟아졌다.

“심층 면접? 무슨 몸 쓰는 직업을 뽑는데, 심층 면접을 봐?”

“망했다……!”

“완전 시험관 마음대로네.”

“헛소리! 이건 평범이 아니라 기괴야! 사냥꾼한테 국가 정책을 물어보거나, 돌발 질문해서 어디다가 쓰게? 사냥꾼은 사냥만 잘하면 장땡이라고!”

맞는 말이다.

1조의 이름이 무대 위 스크린에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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