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35화
뭐라고? 혹시 몰라 박장에게 되물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그냥 가만히 있어. 이러다가 합격자 수가 미달되겠어! 왜 올해는 지원자 중에 정상인이 적은 거야?”
박장은 그냥 내 서류에 동그라미를 치고는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갑작스럽게 덜컥 끝나 버린 면접에 머리가 새하얘지면서 돌처럼 굳어 버렸다.
나 다음으로 뺨에 흉터가 있는 여성, 이름은 초조선이었다. 초조선도 이름만 부르고는 통과. 무슨 엿 장수 마음대로냐?
다음 갈리.
“갈, 리? 갈씨가 있네?”
박장은 갈리의 서류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김익조는 갈리를 천천히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갈리 씨. 인적 사항을 읽어 보니, 경력이 아주 인상적이군요. 주로 혼자서 일한 것 같은데……. 5급 괴물도 잡으셨네요? 도대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 거죠?”
갈리는 씩 웃으며 입을 벌렸다. 그러자 입꼬리가 귀까지 찢어졌고, 혀가 뱀의 그것처럼 길게 늘어져 허공을 핥았다.
괴담 속 주인공, 빨간마스크. 옆모습만 봐도 소름이 끼치는데, 정면으로 마주 보면 어느 정도일까?
“흐흐흐.”
‘전설의 귀향’에서나 나올 법한 웃음소리.
고막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소리.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면접관들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갈리는 H력을 혀끝으로 내보냈다. 혀끝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면접관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능력은…….”
“능력은?”
세 면접관이 동시에 물었다. 그러자 갈리는 낮은 톤으로 답했다.
“저……주…….”
와……, 와. 저거……. 저…… 뭐지? 신종 협박인가? 저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
이 순간 내가 면접관이 아니라 다행이다. 지금 면접관들 얼굴이 참 볼만하다.
박장은 안경을 벗어 안경닦이로 열심히 닦았고, 김익조는 연신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내렸다.
“그, 그게 정말 통합니까?”
박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갈리는 더 크게 웃으며 답했다.
“고통스럽게…… 죽지…….”
갈리는 대뜸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다들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었다.
“낄낄낄!”
본색을 드러낸 건가?
면접관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몸을 떨었다.
“보여 줘? 누굴 저주할까?”
갈리는 노골적으로 박장을 바라봤다.
우와. 대단하다. 은근 반말인데, 아무도 거기엔 신경을 안 쓰네?
박장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돼, 됐습니다! 미, 믿어 드리겠습니다!”
박장을 따라 다른 두 면접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갈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꼭 다물고 침묵했다.
“하아…….”
면접관들은 한숨을 쉬며 갈리의 서류에 무어라 휘갈겼다. 그러고는 마지막 면접자를 불렀다.
“가능하면 서로 쉽게, 쉽게 가자고요. 알았죠, 주아란 양?”
박장은 아예 대놓고 정상적일 것을 강요했다.
삐삐머리 소녀, 주아란은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네.”
“좋아요, 그럼 아란 양한테는 어떤 질문을……. 이게 좋겠군.”
박장은 서류를 들어서 아란에게 들이밀었다.
“아직 미성년인데, 왜 지원한 거죠? 대학 졸업하고 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미성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지원자들까지 아란을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아란은 살짝 볼을 부풀리면서 고개를 삐딱하게 틀었다.
“그건 제 마음이죠. 대학가고 싶은 애들은 대학가는 거고, 사냥하고 싶은 사람은 사냥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어차피 대학 나와도 백수잖아요?”
“그래도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에 충실한 게 낫지 않을까요?”
박장의 말에 김익조와 이서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란은 박장에게 주눅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쏘아붙였다.
“지금 면접을 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설교를 하시는 거예요? 제가 지금 어리다고 놀리시는 거예요?”
박장은 서류를 다시 책상에 내려놓으며 인상을 썼다.
“그럼 다른 걸 묻도록 하죠.”
이번엔 이서현이 나섰다.
“헌터로서 기대하고 있는 수입이 어느 정도죠?”
질문을 들은 아란의 얼굴은 다소 밝아졌고, 김익조나 박장 역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날 포함한 다른 지원자들도 내심 자신의 기대 수입을 상상하면서 아란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란은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뭐, 신인이니까 욕심 안 내고 월 300정도? 그래도 나중에는 결혼도 해야 하니까, 그것보단 더 벌었으면 좋겠어요.”
김익조는 깊은 한숨을 쉬면서 지원자 전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만약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빠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구체적으로 그 적을 ‘플레잉’이라 가정하겠습니다.”
플레잉이란 이름에 몇몇 지원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박장이 손가락 세 개를 뻗어서 지원자들에게 보여 줬다.
“앞으로 3분간 시간을 드릴 테니, 모두들 생각을 정리하시면 됩니다. 발언 순서는 처음 지목한 순서대로 하겠습니다.”
앞으로 3분, 면접실 안에 침묵이 흘렀다.
경찰이나 협회에서 쉬쉬하기에 알려진 정보는 모두 추측인 범죄 조직, 플레잉. 헌터, 혹은 헌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이름이다.
이름의 유래는 플레잉카드, 우리가 흔히 트럼프카드라 부르는 것이다. 규모는 가히 범세계적으로 전체 조직원 수는 파악 불가. 손대는 범죄 종류는 괴물 밀렵, 부산물 밀수입, 암거래 시장 운영, 환각제 유통, 요인 암살, 무기 판매 등등. 그야말로 사람 파는 것 빼고 다하는 현존 최악의 조직이다. 몇몇 음모론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참사나 흉악 범죄에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 녀석들과 싸우게 된다?
녀석들 중에는 능력자가 많을 뿐 아니라 능력자를 상대하는 데 특화된 자들도 많다. 그래서 협회 측 요원과 1대 1로 싸우면 플레잉이 이긴다는 소리가 있다.
“그럼, 다음은 김상팔 씨!”
싸우게 된다? 어떻게 싸워야 하지? 난 H력도 못 만드는 몸이잖아? 할 수 있는 거라곤 남의 걸 흡수하는 게 전부라고? 과연 전투 도중에 조금씩 흡수하는 걸로 충분할까?
“김상팔 씨? 자요?”
만약 싸우게 된다면……. 괴물이 아닌 사람과 싸우게 된다면 사냥할 때처럼 망설임 없이 쓰러뜨려야 하나? 죽이든, 살리든 신경 쓰지 않고? 동정심 없이? 사람을……?
“김상팔 씨? 야!”
야?
생각을 끊고 정면을 바라봤다.
“누가 나한테 ‘야!’라…….”
눈을 부릅뜨면서 정면을 노려봤다. 그러나 곧 후회. 눈으로 살인할 기세인 면접관들과 눈이 마주쳤다. 특히 박장은 아예 서류를 구겨서 던지기까지 했다.
“너 말하라고! 너! 너! 너!”
“예? 아, 예……. 그러니까…….”
팔을 꼬면서 무안함을 달랬다. 내가 그렇게 오래 생각했나? 그런데 정작 결론이 없는데……. 열심히 머리를 쥐어짰지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나올 리 없었다. 기다리는 면접관들의 얼굴은 점점 험악하게 변해 가는 중. 에라, 모르겠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불리하면 도망치는 것이 당연하고, 유리하다면 싸우는 게 당연하죠. 일단 협회 분들의 지시에 따르겠지만, 만약 반드시 싸워야 한다면 목숨을 걸고 싸우겠습니다!”
다른 두 면접관은 입에서 ‘오’ 소리가 나오며 감탄했다. 그러나 박장은 한 번 더 물고 늘어졌다.
“반드시 싸워야 하는 상황의 예시를 들어 보시죠.”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냥 불리하면 도망치는 거지.
“가령…… 소중한 사람을 지켜야 한다든가, 뭔가 중요한 걸 되찾아야 한다든가…… 아니면 미래가 걸려 있다든가……. 당장 생각나는 건 이 정도네요.”
아오, 닭살 돋네.
다른 지원자 몇몇이 비웃음이 섞인 탄식을 뱉으며 키득거렸다.
박장은 너무 뻔뻔한 내 대답이 마음에 썩 들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반드시 싸워야 하는 이유가 사람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겁니까? 누가 봐도 죽을 게 분명한데도 싸우겠단 겁니까? 동료들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형님, 저 마음에 안 들죠?
“각자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하여 강요하진 않을 겁니다. 혹여 저 혼자서 싸워야 한다고 해도, 세상에는 절대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싸웁니다.”
“좀 식상하긴 하지만, 나쁘진 않군.”
박장의 소감에 이어 이번에는 김익조가 질문을 이었다.
“싸움 도중 살인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잠시 고민.
너무 한쪽으로만 생각했던 걸까?
김익조의 질문은 박장과 그 성격이 다르다.
“싸움은 적의가 아닌 의지, 마음의 표현입니다. 전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려는 게 아니라 회피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김익조는 입을 다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른쪽에 앉은 이서현이 양손을 맞대면서 빙긋 미소 지었다.
“김대팔 씨 의견하고 정반대인 점이 재미있네요.”
반대? 뭐라고 한 거지?
티라노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문득 날 보는 티라노의 입안 속 안광과 눈이 마주쳤다.
복잡한 느낌이 드는 눈길. 흥미와 혐오가 뒤섞인 기분이다.
일단은 그냥 내 쪽에서 먼저 시선을 피했다.
“그럼 이걸로 1조의 면접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모든 면접이 끝났고, 1조는 의자에서 일어나 면접실을 나섰다.
도대체 김대팔이 무슨 대답을 한 것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본인을 붙잡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애초에 공룡 인형 탈을 입은 사람을 붙잡고 뭔가를 물어본다는 것부터가 넌센스다.
여기가 무슨 놀이동산이냐?
***
다른 조 심사가 진행될 동안 또 도시락을 먹는다. 그래도 입안으로 맨밥을 쑤셔 넣으니, 참으로 안심이 된다. 아, 반찬도 쑤셔 넣을 수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내 인생에서 밥보다 반찬을 더 많이 먹어도 주머니 부담이 없어질 날이 올까?
밥을 먹고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참가자들은 저마다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아! 정말 맛없었다. 그래도 먹으니까 포만감이 드네.”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띄엄띄엄 앉은 사람들을 살피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천장을 보며 휘파람을 분다.
“응?”
맨 뒷자리. 누가 봐도 수상한 2인조가 보인다.
한 명은 작은 체구의 안경잡이.
다른 한 명은 근육질의 야구 모자.
나이는 둘 다 20대로 보이는데, 어찌 분위기가 이상하다.
무슨 대화를 나누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얼굴빛으로 추측할 때 심각한 것 같다.
단발머리의 안경잡이는 이 사람, 저 사람을 가리키며 근육질 남자에게 무언가를 설명했다.
근육질 남자는 짜증이 나 안달이 난 표정, 꼭 똥마려운 개……가 아니라 살쾡이? 뭔가 무시무시하다.
건달인가?
두 사람을 관찰하던 중, 발표장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갑작스러운 암전. 모두가 웅성거리고, 발표장 전방 무대 위에서 스크린이 내려왔다.
“드디어 합격자 발표구나!”
흰색 스크린에는 [최종 합격자]란 글씨와 함께 그 밑에 10명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오오!”
내 이름이 있다! 합격했어? 우와. 이런 날이 오다니!
너무 기뻐서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번듯하게 쓰여 있는 [김상팔].
이름이 밑 부분에 있었지만, 합격했으니 상관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이름 밑에 쓰인 붉은 글씨였다.
[추가시험 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