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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38화 (38/250)

38화

38화

아니, 조용히 해 달라고 말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황급히 아저씨의 입을 틀어막았다.

모두가 눈살을 찌푸리는 가운데 직원이 아저씨를 제재했다.

“조용해 주십시오! 지금부터 심사와 상관없는 발언을 하시는 분들은 퇴장 조치하겠습니다!”

아저씨는 입을 꼭 다물었지만, 여전히 입술과 볼을 움찔거리며 못 다 한 말을 오물거렸다.

“그럼, 장혁 씨. 격파해 주십시오.”

장혁은 H력도 없이 순수한 완력을 사용한 손날 가르기로 빠르게, 그리고 깔끔히 기왓장을 절단해 냈다. 터진 풍선에서 공기가 날아가듯 깨진 조각들이 링 여기저기로 튀겼다. 가까이 앉은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거나, 손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 순수 완력으로는 1등인 셈이다.

장혁이 내려가고, 직원은 다음 순서를 불렀다.

“다음, 김대팔 씨!”

티라노가 뒤뚱거리며 링 앞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김대팔에게 손가락질하며 키득거렸고, 직원도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제비 상자를 내밀었다.

“뽑으시죠.”

“괜찮으시다면 대신 뽑아 주시겠습니까? 보시다시피 손이 이래서요.”

봉제 인형이나 다름없는 티라노의 손으로는 팔을 움직이는 것은 가능해도 물건을 집거나 하는 정밀 동작은 불가능했다. 직원은 살짝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가 서둘러 제비 하나를 뽑아 펼쳤다. 혹시 저거……?

“7번, 대리석 10장!”

어, 조작이 아니네? 김대팔은 순순히 링 위에 올라가 격파대 위에 대리석이 쌓이는 것을 지켜봤다. 10장의 대리석은 앞서 나왔던 송판, 기왓장하고는 다르게 일반적인 석판이었다. 하지만 담장 짓듯 차곡차곡 쌓이니, 그 옆면의 위용이 어마어마하다.

그때 누군가가 손을 들어 직원에게 외쳤다.

“그래도 격파할 땐 공룡 탈을 벗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거 입고 격파하면 반칙이잖아요?”

‘반칙’이란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안 된다!’, 누군가는 ‘된다!’를 외치며 점점 소리가 커졌다. 아저씨는 눈을 반짝이며 좋아했다.

“벗어라! 누군 가리고, 누군 맨살이냐?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대한민국 만세! 홍익인간 포에버! 어서 벗어라! 벗어서 속살을 보여라! 벗어, 벗어, 벗어……!”

아저씨의 말을 기점으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고함 소리로 탈바꿈했다.

“뭐가 잘났다고 면상 가리는 거야?”

“얼굴이 알려지면 안 되나?”

“혹시 범죄자 아니야?”

“벗어! 그런 꼴로 우릴 얕보려는 수작이지?”

“너만 특혜받는 건 참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링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러나 정작 분란의 원흉인 아저씨는 흐뭇한 얼굴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나도 아저씨를 따라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아저씨의 어깨를 두드렸다.

“참, 대단하시네요. 그나저나 공룡 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저씨는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내 생각엔 아마 괜찮을 거 같다. 저거 입는다고 특별히 유리하거나 할 것 같진 않아. 부정행위 여부 같은 것도 사전에 이미 협회 쪽에서 확인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꼴로 남았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협회에서 뒤를 봐주려고 해도 저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하진 않아.”

직원은 티라노와 사람들 사이를 번갈아 보다가 세부 규칙이 적힌 서류를 읽어 내렸다.

아저씨는 혀를 차며 직원에게 손가락질했다.

“게다가 아까 직원이 설명했잖아? 수단은 자유라고. 격파를 몽둥이로 하든, 망치로 하든 상관없다는 뜻이야. 그렇다면 저 인형 옷도 일종의 수단으로 봐야 하는 거 아니냐? 순간의 불신감이 낳은 이런 선동질이 가장 위험한 거야. 명심해라.”

우와, 꼭 ‘난 나쁜 놈이지만, 그래도 나쁜 짓은 나빠!’라고 하시는 것 같네. 다시 링 쪽으로 고개를 돌려 직원의 해답을 기다렸다.

“확인 결과 복장 규정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저희 측에서 인형 탈에 대한 검사를 마쳐 부정행위가 없음을 확인했고, 또한 규정에는 인형 탈에 대한 항목이 없습니다. 그럼 평가를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너무 과하면 모자란 것만 못한 법. 그냥 인형 탈 검사했단 소리만 했으면 됐을 텐데……. 직원의 말에 분위기는 한층 더 험악해졌고, 다들 금방이라도 들고일어날 것처럼 이를 빡빡 갈면서 링 위를 노려보았다. 그때 티라노가 큰소리로 이렇게 외치며 사람들을 잠잠히 만들었다.

“여러분,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전 이 인형 옷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법으로 격파를 할 겁니다. 아마 제 격파를 보게 되시면 지금 흥분하셨던 분들은 스스로 부끄러울 겁니다.”

차분한 태도와 발칙한 해답에 사람들은 일단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입술 안쪽에서는 여전히 이빨을 마찰시키고 있는 중. 그러거나 말거나 김대팔은 대리석 바로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그럼, 준비하시고. 격파!”

직원의 신호에 김대팔의 손바닥에서 순간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섬광탄을 터뜨린 듯 짧은 시간, 엄청난 폭으로 터진 빛은 연습장 전부를 채움과 동시에 사람들의 눈을 마비시켰다. 특히 맨 앞에서 빛을 쬔 사람들과 직원은 바닥에 머리를 처박으며 몸을 뒹굴었다. 난 아저씨 뒤로 고개를 가리며 가까스로 빛의 테러에서 무사할 수 있었다.

“으아아아! 내 눈!”

“빌어먹을, 누가 눈앞에서 용접이라도 한 거 같아!”

사람들의 비명 소리. 그 와중에 아저씨는 또 병이 도졌다.

“협회를 죽입시다! 협회는 우리의 원수!”

아저씨는 어디서 꺼냈는지 무려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빛이 사라진 후 사람들은 두 눈을 비비며 격파대를 쳐다봤다. 그리고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말도 안 돼. 저게 작년 탈락자라고?”

평가 대상 대리석 10장. 파편은커녕 부스러기와 격파대까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 대리석이 쌓여 있던 자리에는 링 아래까지 구멍이 뻥 뚫려서 바닥이 훤히 드러난 상태였다. 사람들은 눈을 비비며 할 말을 잃고 마냥 바라만 봤다.

“자, 이러면 아무 문제없겠죠?”

“아…… 예…….”

직원은 난처해하면서 서둘러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사이 티라노는 링 위에서 슬금슬금 내려가 사람들 사이에 섰다. 티라노 바로 옆 사람들은 김대팔과 거리를 벌리며 몸을 사렸다.

“방금 그게 뭐죠? 무슨 섬광수류탄이 터진 것 같기도 하고, 장풍을 쏜 것 같기도 하고…….”

아저씨는 선글라스를 벗은 후 허리를 뒤로 젖혔다.

“그건 ‘광탄’이라는 기술이다. H력을 물리적인 힘으로 바꿔서 쏜 것이지. 힘을 유지해야 함은 물론이고, 섬세한 조절 능력도 필요해. 이미 대팔이 녀석의 수준은 일반적인 헌터의 조절 능력을 훨씬 뛰어넘었어.”

광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다. 보조 헌터로 일하면서 이런 기술을 쓰는 헌터는 본 적이 없다.

“아저씨도 쓸 수 있어요?”

아저씨는 어깨를 으쓱이며 엄지를 세웠다.

“당연하지! 다만 위력 면에서는 녀석보다 떨어질 게다. 애초에 난 치료술 전문이거든. H력만 있으면 누구나 광탄을 쏠 수 있지만, 전문적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실전에서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긴 어려워.”

직원들 여럿이 우르르 몰려와 나무판자로 대충 링 위의 바닥을 메우면서 상황이 수습되었다. 다시 격파대가 설치, 다음 순서인 4번이 제비를 뽑았다.

“하하! 어떤 게 나와도 나한텐 식은 죽 먹기라고! 별거 아닌 광탄에 쫄 거 없단 말이야!”

4번, 이이는 등에 멘 곤봉을 꺼내 바닥에 세웠다. 약 2M 길이의 강철 곤봉은 타격 부분에 가시가 있어 실로 무시무시한 외관을 뽐냈다.

직원은 또 뭔가 대단한 격파를 기대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종이를 폈지만, 이내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아꼈다.

“이이 씨는…… 10번……입니다.”

“물음표?”

“10번이 뭘까?”

“드디어 알 수 있겠어!”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던지며 격파대 위를 주시했고, 직원은 떨리는 손으로 다른 직원들에게 손짓했다.

“‘그걸’ 가져와.”

다른 직원들 역시 살짝 경직된 얼굴로 자기들끼리 눈빛만 교환하면서 머뭇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결국 열린 문으로 큰 나무 상자를 옮겨 와 링 위로 올렸다. 정사각형 모양의 상자는 폭과 길이가 각각 3m, 높이는 2m 정도 되었고, 건장한 남성 10명이 쩔쩔매면서 옮길 무게였다.

직원은 이이를 보며 씩 웃더니, 링 아래에서 자세를 굽히며 상자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 보시면 끈이 있습니다. 그걸 직접 잡아당기시면 상자가 열리고, 격파 대상이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이이는 기분 나쁜 직원의 웃음에 신경질적으로 상자에 달린 끈을 잡아당겼다. 끈이 쏙 빠지면서 상자의 사면과 뚜껑이 힘없이 쓰러지며 내용물이 드러났다.

사람의 허리까지 오는 높이. 그리고 2m가 조금 넘는 너비. 그것은 거북의 등껍데기였다.

“저거…… 그거잖아?”

“거북이 껍질?”

“엄청나게 크다! 웬만한 장수거북보다도 크겠는데?”

사람들은 동물원에 온 어린아이들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등껍데기를 바라봤다.

“끌끌끌! 협회 놈들, 이번엔 인정해 주마. 아주 재미있는 걸 준비했구먼? 하긴, 이런 깜짝쇼가 있어야지. 저게 뭔 줄 아냐?”

새끼 거북악어? 물론 아닐 것이다. 거북악어의 등껍데기는 표면이 거친 반면, 이것은 훨씬 매끄럽다. 거기다 거북악어가 코끼리 사이즈인 것에 비해 이건 사람 정도다.

“저건 말이야. 히말라야거북의 등껍데기라고! 녀석은 이름대로 히말라야와 같은 고산에서만 서식하지. 3급 중에선 꽤 사냥하기 힘든 경우에 속할걸?”

3급? 그럼 거북악어와 동급이잖아? 그 말에 히말라야거북의 등껍데기를 자세히 살폈다. 등껍데기는 평범한 거북의 것에 비해 훨씬 두껍고, 매끈한 모양. 구멍은 앞뒤로 두 개만 뚫려 있었다. 아마 상체와 하체로 모든 사지가 쏠려 있는 형태인 것 같다. 허리가 엄청 긴 건가?

“3급이라…….”

나 혼자서 잡을 수 있을까? 숫자로만 보면 밑에서 3번째지만, 3급은 엄연히 위험한 등급에 속하는 괴물이다. 1급과 2급이 초보자용이라면 3급부터는 숙련자용. 아직 내 수준은 초보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 4번, 이이 씨. 격파를 준비해 주십시오.”

이이는 등껍데기를 내려다봤다. 비록 높이는 이이의 시선보다 아래일지라도 덩치는 2배. 자칫 내려쳤다간 손가락이나 손목이 다칠 수도 있었다.

“흥! 그 무엇이든 부술 뿐!”

‘무엇이든 부숴 보세요?’란 건가? 이이는 H력을 전개, 손바닥에서 손잡이를 통해 곤봉 끝으로 흘려보냈다. 김대팔의 그것처럼 빛나진 않았지만, 아지랑이가 곤봉 전체를 감싸며 곤봉 끝자락에 머물렀다.

“과연 그게 네 뜻대로 될까?”

저주와 같은 아저씨의 비아냥거림. 일단 경고의 의미로 아저씨의 입을 손으로 가렸다. 아저씨는 짜증이 섞인 눈으로 날 노려봤다.

아지랑이를 더욱 뿜어내며 이이는 힘껏 곤봉을 들었다.

“단숨에 두 동강을 내 주마! 우리 이씨 십 형제의 명예를 걸고.”

10형제였구나. 줄줄이 아들만 낳으려면 확률이…….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이이가 곤봉을 휘두르며 히말라야거북의 등껍데기를 내려쳤다.

“빠샤!”

투박한 곤봉 끝이 등껍데기를 후려치며 굉음과 함께 격파대가 흔들었다. 그리고 분명하게 부서지는 소리. 사람들은 휘파람을 불거나, 박수를 치면서 이 엄청난 공격에 환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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