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46화
미스터 타이거는 일단 제자리에 멈춰 크게 웃었다.
“타타타! 항복하는 거야? 시시하구나!”
어느새 입안에까지 갈퀴칼날을 만들어 낸 미스터 타이거는 검치호처럼 두 개의 군도형 송곳니를 벌려 날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주 그냥 날 잡아먹어라! 안 죽인다며? 살려서 데려간다며? 이 망할 악의 조직! 악의 조직이면 악의 조직답게 진실 된 자세로 싸워야지! 왜 정정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를 쓰는 거야?
“그럼 각오해라!”
미스터 타이거는 날 향해 크게 점프,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 사냥하려 했다.
“이크!”
옆으로 몸을 날려 미스터 타이거를 피했다. 그러나 타이밍이 살짝 늦은 탓에 미스터 타이거의 갈퀴칼날에 바지가 찢겨 나갔다. 팬티 차림이 된 대신, 미스터 타이거는 벽에 부딪혔다.
거구의 몸집과 순간적인 점프력, 그리고 입과 손에 달린 칼날로 인해 미스터 타이거와 부딪힌 벽이 무너지면서 천장에까지 금이 갔다. 미스터 타이거는 완전히 파편에 깔려 사라졌고, 흙먼지와 함께 콘크리트 가루가 날리며 시야를 가렸다.
“젠장.”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미스터 타이거가 부딪친 벽은 뻥 뚫려서 구멍이 생겼다. 저곳으로 나갈 수 있지만, 나가 봤자 죄수고릴라가 기다리고 있다.
엥?
다리가 따뜻하다. 오줌이라도 지린 건가? 아니다. 다리가 따뜻하면서 따갑다. 팬티 차림임에도 알아차리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린 이유는 역시 공포 때문일 것이다.
왼쪽 다리에 수직으로 긴 상처가 있다. 이 정도면 무사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피가 정말 살벌하게 흐른다.
“H력을 써서 근육을 지압하면 지혈은 되겠…….”
그때 파편 더미가 둘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미스터 타이거가 걸어 나왔다. 옷이 엉망이 된 미스터 타이거는 몸에 묻은 파편을 털어내며 날 칭찬했다.
“지금 공격을 피한 건 칭찬해 주마. 하지만…… 정면승부를 피한 건 봐줄 수가 없구나!”
미스터 타이거는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혀 네 발로 바닥을 짚었다.
이번엔 피할 공간도 없다. 바로 코앞에서 쓰냐?
“피하지 마! 도망치지도 마! 그렇게 시간을 번다고 해서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아!”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이쪽에선 전력으로 도망쳐 주마! H력을 전개, 전력 질주로 발표장 안을 돌았다. 다리에서 피가 흘러내려 발이 미끄럽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아이고.”
또 미스터 타이거에 의해 구석에 몰리고 말았다. 이번에는 도망칠 구멍도 없는 상황. 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돌아가라, 내 머리! 일해라, 두뇌여!
이곳은 헌터협회 대한한국 지부이자, 한국 사냥꾼들의 중심지. 그런데 그곳이 이렇게 엉망이 되는 동안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다? 비록 이곳이 외지고,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되고, 직원들은 죄다 수습 불능 상태라 하더라도 상황이 너무 안 좋다. 최소한 협회 맞은편에 있는 버스 종착역에서라도 뭔가 기별이 왔어야 정상 아닌가? 도대체 플레잉이란 조직이 뭐지?
하는 수 없지.
한 가지를 반드시 확인하기 위해 미스터 타이거에게 물었다.
“내가 싸우면 다른 사람들은 건들지 않을 거냐?”
미스터 타이거는 듣고 싶었던 말에 씩 웃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약속하지! 우리 목표는 우수한 인재니까, 건들지 않겠다. 너만 희생하면…….”
배에 힘을 주면서 남은 H력을 한곳에 모았다.
어차피 남의 것, 양도 많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놈에게 한 방 먹일 정도는 될 것이다. 딱 한 대만 때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야구의 4번 타자처럼 옆으로 서서 목도를 양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해보자!”
내 외침에 미스터 타이거는 낮고 빠르게 뛰어들었다. 생쥐를 노리는 호랑이의 눈. 그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한쪽 다리를 들면서 그대로 목도를 휘둘렀다.
간다, 학 다리 타법 스윙!
미스터 타이거의 칼날에 몸이 찢길 각오로 H력을 계속해서 배에 집중하며 하나로 뭉쳤다.
“네가 날 엉망진창으로 만든다면, 난 목도로 널 쑤셔 주마!”
“멍청한 놈! 그런 뭉툭한 걸로 어떻게 쑤시겠단 거냐?”
미스터 타이거의 오른손 칼날 3개가 내 왼쪽 옆구리를 관통, 그대로 상체를 조각낼 듯 그어졌다. 하지만 정확히 배꼽까지 온 칼날은 거기서 정지하며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뭐지? 네 녀석 배 속에 뭘 넣고 다니는 거냐?”
제기랄.
분수처럼 솟구치는 통증과 소름끼치도록 명백한 장기의 감촉에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모든 H력을 모으고, 또 모아서 응축시키는 일뿐이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아주 큰 엿을 먹이고 죽어 주마!
“인공 장기? 철판? 아니야, 이렇게 못 벨 리가 없어. 그, 그렇다면…….”
미스터 타이거는 내 배에 박아 넣은 오른손을 빼내려 했다. 그러나 더 이상 베어지지 않는 것처럼 오른손을 빼는 것 역시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오른손은 마치 강철이 강한 전자석에 달라붙은 것처럼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뭐, 뭐야?”
H력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내 몸속에 남은, 그리고 내 몸과 연결된 미스터 타이거에게 있는 모든 H력을 배로 향하게 했다.
내장이 역류하고, 살갗이 벌어진 상태로 피와 체액이 쏟아진다. 하지만 이미 H력에 온 정신을 뺏긴 터라 상관없다. 고통도, 감각도 잊는다. 풍부한 H력의 흐름에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런 거라면…… 죽어도 좋아.
“하하하!”
내 배에서 미처 모이지 못한 H력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미스터 타이거가 보여 준 것과 대등한 수준. 내심 미스터 타이거가 얼마나 대단한 실력자인지 한 번 더 깨닫게 되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미스터 타이거는 자신의 H력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갈퀴를 해제했다. 이미 힘을 뺏길 대로 뺏겨 갈퀴칼날은 바짝 말라 버린 상태. 능력을 해제하자마자 가루가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손을 떼어 낸 미스터 타이거는 재빨리, 그리고 단숨에 거리를 벌렸다.
“타타타! 어설프구나! 역시 실전 경험이 없는 애송이였어!”
미스터 타이거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 정도의 상처라면 굳이 내가 마무리를 하지 않아도 되겠지. 어떻게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정도의 H력이라면 나라도 좀 위험하거든. 타타타!”
충분히 모인 H력을 목도로 보냈다.
더 앞으로, 더 길게, 더 탄탄하게! 빛나라. 김대팔의 광탄처럼, 미스터 타이거의 갈퀴발톱처럼.
천천히 목도의 끝을 미스터 타이거에게로 뻗었다. 미스터 타이거는 내 자세를 보며 긴장했다.
“광탄? 하지만 광탄을 무기로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렇다면 역시 능력발현인가?”
미스터 타이거는 내가 미지의 능력을 발현할 것이라고 판단, 즉각 양팔을 교차해 상체를 방어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것은 나와의 거리, 내 예상 능력, 모인 H력의 양, 그리고 자신의 신체 방어력을 고려한 최적의 선택이었다.
“타타타! 너 따위가 쓰는 능력을 겁낼 것 같아? 내가 받아…… 아, 아니?”
H력은 목도 끝까지 뻗어 그곳에 맺혔다. 아지랑이는 점점 형체를 갖추며 흰색의 결정으로 변했다.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 바지와 신발을 적셨지만, 지금 나한테는 피의 손실보다 H력의 손실이 더 중요했다.
H력을 최대한으로 보존해 배에서 손, 그리고 손에서 목도 끝으로 옮긴다. 여기서부턴 정신력 싸움이다.
“받, 아, 라!”
화살처럼 날아간 H력의 광선. 그것은 그대로 미스터 타이거의 팔을 관통, 가슴을 찌르며 미스터 타이거의 등으로 뚫고 나왔다.
“이, 이게 뭐야?”
미스터 타이거는 자신을 뚫어 버린 광선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한 H력이나 광탄이 아닌 ‘물질’이었다.
“말도…… 안 돼……. 이걸…… 해냈단…… 말인가?”
깔끔하게 뚫린 탓에 상처에서는 피 한 방울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미스터 타이거의 육체는 지금 관통당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미스터 타이거가 보여 준 H력의 결정체인 칼날. 엄청난 H력의 양에도 불구하고, 너무 길고 얇게 구현한 탓에 칼날은 금방 형태를 잃으며 사라졌다. 꼬치 상태였던 미스터 타이거는 잠시 그 자세를 유지하면서 서 있다가 이내 정신을 잃으며 제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해, 해냈다…….”
미스터 타이거가 쓰러지는 것을 보자 나도 똑같이 몸이 무너졌다. 정신이 흐릿해지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다.
다들 날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하하하. 아저씨랑 훈련한 게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폐교에서 한 훈련은 아주 기초적인 것이었다. H력의 운용, 감지, 그리고 응용. H력만 충분하다면 흉내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다. 아저씨가 그렇게 개같이 훈련을 잘 시키는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마 광탄이란 것도 연습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연습할 수명이 남았을 때의 이야기다.
저절로 감기는 눈꺼풀이 야속하기만 하다. 감고 싶지 않고 감으면 어떻게 될지 알지만, 감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내 의지가 아닌 생명에 대한 복종. 약해져 가는 호흡과 달리 옆구리의 통증이 점점 강해진다. 그리고 식은땀이 눈을 타고 눈물처럼 흐른다.
죽어 가는 와중에도 귓가에 들려오는 ‘끌끌끌!’ 소리가 거슬린다.
설마 아저씨처럼 생긴 저승사자가 온 건가?
절로 미간을 찌푸려지는 것 역시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반응이다.
죽는다는 건 꽤 나쁘지 않다. 부드럽다고 할까?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것처럼 몸이 느슨해진다. 호흡도 편안하고, 고통도 사라진다.
“아아…….”
좋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늘나라 가나? 아니면 존재가 사라지나?
드디어 나도 인류 최대의 불가사의 중 하나를 알게 될 것이다.
“끌끌끌!”
아오.
저 정감 가면서도, 재수 없는 웃음소리.
저거 은근히 잘 들리네? 아까부터 계속 귀에 거슬린다. 시야가 어두운 와중에 이 웃음소리가 날 자극한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배가 등대를 본 것 같다.
체했다가 체증이 쓱 내려간 것처럼 기분이 개운하다.
“어?”
빛.
웃음소리가 동아줄이 되어 날 끌어 올린다. 그리고 눈이 떠진다.
내가 누군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다.
불길하다. 나한테 무릎베개를 해 줄 만한 사람이 있나?
“끌끌끌!”
썅!
서, 설마……?
벌떡 상체를 일으켜 상대를 바라봤다.
“일어났냐?”
아저씨?
아저씨다!
뒤룩뒤룩 살찐 얼굴이 참 복스럽게 보인다. 처음으로 아저씨가 멋있어 보여!
아저씨의 손길이 날 살린 거구나!
아저씨는 내 몸에 손을 대고 H력을 흘려 넣고 있었다.
역시 아저씨의 치료술은 대단하다.
반쯤 잘렸던 몸통이 어느새 거의 다 아물어 가고 있다. 아저씨에게서 나온 기운이 꿀렁꿀렁 내 속으로 흘러들면서 빠르게 상처와 기력을 회복시켰다. 배에서 흐르던 피가 멈추고, 하마터면 두 동강 날 뻔했던 몸통이 스르륵 이어졌다.
아저씨는 새로 이어진 살을 손가락으로 쓸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야! 어디 사시는 어르신인지 참 잘 붙였어. 끌끌끌! 이것 참, 오늘 구경하러 왔다가 치료비 꽤 걷겠는데? 치료비는 꼭 줘야 된다?”
“아저씨가 계신다는 건……. 그럼 바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