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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56화 (56/250)

56화

56화

아저씨는 입술을 움찔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역시 싫으신 건가……. 하지만 하는 수 없다.

“다른 분들은 서둘러 가세요.”

그렇게 우리 셋만 남긴 채 다른 사람들은 아래로 향했다. 일행이 멀어져 갈수록 위에서 내려오는 이들이 점점 가까워졌다.

“아저씨는 뒤에 잘 숨어 계세요.”

“오케이!”

아저씨는 잽싸게 야영장 안으로 들어가 유리문을 닫았다.

“호규 씨!”

“준비됐습니다.”

나와 호규는 각각 리볼버와 소총을 든 채 사격 자세를 취했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까지 발포하면 안 돼요. 알죠?”

“네!”

흙먼지가 바로 코앞까지 와서야 저쪽의 대략적인 모습이 파악됐다.

일행은 모두 4명. 맨 앞에 선 남자는 대머리, 바로 뒤에 산발을 한 여자가 따라고 있다. 그리고 그 뒤를 두 여성이 따라 달리고 있다.

헌터가 4명씩이나 있는데, 갱벌레한테서 도망친다고? 싸우면 되지 않나?

“뭐, 덕분에 이 특수 탄의 위력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쌍두하피 땐 일반 탄만 쏴서 리볼버에 장전한 특수 탄을 쏠 일이 없었다.

“와요!”

네 사람도 우리의 존재를 눈치챈 것인지 달리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좋았어, 계속 그렇게 달리는 거야. 여기까지만 오면 우리가…….

“저 사람들…… 손에 뭔가…….”

호규의 어눌한 목소리.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하게 전해졌다. 내 눈에도 맨 뒤에 선 여성 둘의 손에 뭔가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조금 전까진 빈손이었는데?

“저거…….”

미끼. 정확히는 방향성 미끼다.

벌레형 괴물을 유인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물건. 전에 아저씨도 정반대의 효과를 지닌 걸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저걸 꺼내 든 거지?

돌연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간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우리는 도와주려고 했는데, 설마 그런 빅엿을…….

“와요!”

호규의 외침과 동시에 네 사람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맨 앞의 남자의 눈빛, 그리고 산발 머리 여성의 얼굴을 본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다.

망했다.

뒤쪽 두 여성이 우리를 지나가면서 손에 든 미끼를 떨어뜨렸다.

역시, 이건……!

“일단 쏴요!”

“네!”

방아쇠를 당기자 리볼버가 불을 뿜는다. 총구에서 날아간 것은 일반적인 총알이 아닌 할로우포인트. 일반적으로 줄여서 HP라 부르는 물건이다. 끝을 파냈기에 총알을 세워 놓으면 꼭 뻥 뚫린 화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호규의 총에 맞은 갱벌레는 총알에 몸이 관통되어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반면에 내 총에 맞은 갱벌레는 총알이 껍질에 닿는 순간 변형, 보기 흉하게 찌그러지며 안에 든 것이 바깥으로 흘러내렸다.

HP의 위력은 관통이 아닌 타격용, 사람이 맞아도 관통보단 뼈가 우선적으로 부러진다.

녀석들은 관통하는 것보단 때려죽이는 게 효과적이다.

호규의 총에 맞은 갱벌레 하나가 발악의 일환으로 몸을 질질 끌면서 기어 왔다.

불쌍한 녀석.

리볼버의 총구가 불을 뿜었고, 갱벌레는 온몸이 터지며 너덜너덜해졌다.

이걸로 상황 종료.

이제 이 배은망덕한 녀석들을…….

엉?

“뭐, 뭐야?”

네 사람은 어느새 야영장 유리 돔에 들어가 있었다.

심지어 아저씨는 제압된 상태.

아저씨를 제압할 정도라면 보통 실력이 아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죠, 팀장님?”

호규가 물어 오지만, 어이가 없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아저씨는 언제 제압되고, 저것들은 왜 우리한테 빅엿을 날린 거지?

일단 호규에게 손짓, 총구를 겨누게 하고는 혼자서 천천히 유리 돔에 다가갔다. 리볼버는 주머니에 넣은 채 양 손바닥을 녀석들 방향으로 폈다.

“다가오지 마!”

산발 머리 여자가 아저씨를 붙잡은 채 손끝으로 아저씨 목을 겨누고 있었다.

맨손? 혹시 능력자인가? 아저씨가 인질로 잡히실 줄이야…….

언제나 보기 좋게 내 예상을 벗어나시는군.

“원하는 게 뭐죠?”

유리 돔의 문을 벽 삼아 나와 네 사람은 서로 마주 섰다.

남자 하나와 여자 셋.

음……. 얼굴들은 모두 앳되다. 남자는 민머리에 체격이 좋은 편. 키는 한 180cm? 참 건장도 하네. 그런데 얼굴은 좀 험상궂다. 학교 다닐 때 껌 좀 잘근잘근 씹었을 것 같다.

여자 셋 중 아저씨를 붙잡은 쪽. 얼굴은 넷 중 가장 순해 보인다. 산발 머리가 길어서 꼭 무슨 삽살개 같은 느낌. 하지만 체격은 넷 중 가장 왜소하다.

남은 둘. 얘들은 무려 쌍둥이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헤어스타일, 똑같은 복장. 그래도 머리 색이 달라 다행이다. 단정한 단발머리지만 한쪽은 노란색이고, 다른 한쪽은 보라색이다. 마르고 길쭉한 체형이지만,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무슨 양아치처럼 생겼는데요?”

호규가 내 등 뒤로 이야기한다.

그래, 맞는 말이야. 이것들 꼭 일진 같은데?

넷 모두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의기양양해하는 게 썩 기분이 나쁘다. 복장은 넷 다 검붉은 색의 바람막이 잠바. 남자는 양손에 각각 몽둥이 하나씩, 여자들은 셋 다 맨손이다.

나쁜 짓 하는 나쁜 놈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길 바라면 너무 과한 욕심일까?

이 망할 자식들!

“우리가 원하는 건 단 하나야. 쌍두하피를 잡고 얻은 부산물을 내놔.”

남자가 대놓고 목적을 밝혔다.

이 녀석이 리더인 건가?

녀석은 인질로 잡힌 아저씨의 왼쪽 볼을 몽둥이 끝으로 누르며 위협했다.

“꾸물거리면 이 아저씨가 어떻게 될 수도 있어? 우린 한다면 하거든.”

이 자식들…….

갱벌레를 끌고 와서 빅엿을 날리더니, 이젠 남의 소득을 가로채려 해?

마음 같아선 아저씨째로 그냥 총으로 갈기고 싶다. 아저씨 생명력이면 괜찮지 않을까? HP로 쏘면 죽진 않으실 것 같은데?

나중에 보상금 좀 드리면…….

“갱벌레한테서 구해 줘서 고마워. 하마터면 당할 뻔했거든.”

와!

진짜 억울해서 말이 다 안 나오네. 갱벌레 따위한테 당할 녀석들한테 삥 뜯기고 있는 거야?

나도 모르게 손이 리볼버가 든 주머니로 간다.

크윽, 유리 돔만 없었어도 쐈을 텐데…….

“설마 그 무서운 쌍두하피를 해치울 줄이야. 죽은 쌍두하피의 시체를 보고 정말 놀랐어. 3급 사냥 구역에 그런 게 돌아다닐 줄 몰랐거든. 뭐, 덕분에 우린 목숨도 건지고…… 돈도 벌게 됐지. 하하하!”

삼류 악당이나 할 소리. 하지만 지금 녀석들을 응징하기엔 우리 쪽 상황이 너무 불리하다.

하다못해 아저씨가 자력으로 빠져나오…….

“응?”

아저씨가 이상하다?

아저씨는 지금 산발 머리 여자에게 잡혀 있는 상태. 정확히는 여자가 아저씨를 뒤에서 안은 형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저씨의 표정이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유리 돔에 투영되는 바람에 표정이 왜곡된 게 아니라면…….

아저씨는 지금 흐뭇해하고 있다.

좋아하고 있어? 인질인데?

“서, 설마…….”

이 이 사림이 일부러……? 아저씨는 지금 여자의 몸에 자신의 몸을 최대한 밀착 중이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머리를 들썩이며 여자의 상체에 얼굴을 부비는 중…….

아저씨는 즐기고 있다!

젠장, 망할 한돈! 빌어먹을!

돈을 밝히든지, 여자를 밝히든지 하나만 하라고!

와, 진짜 미치고 팔짝 뛰겠네.

“착하게 생긴 오빠. 너무 시간 끌지 마.”

노란 머리가 말했다. 노란 머리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보라색 머리가 거기에 말을 덧붙였다.

“우린 참을성이 없거든. 아저씨가 ‘아야’ 할지 몰라?”

‘아야’라…….

귀여운 소리를 지껄이네.

쟤네 지금 자기들이 ‘누굴’ 인질로 잡은 것인지 알고는 있는 걸까? 알면 기분 나빠서 버릴 텐데…….

일단 유리 돔 안에 있는 녀석들을 공격할 방법이 없다. 이 유리 돔은 괴물의 습격도 막아 낼 만큼 튼튼하다. 웬만한 능력으로는…….

아니, 잠깐!

대화는 잘만 되잖아?

심지어 소리가 작지도 않다. 그렇다는 것은 소리는 통과가 잘 된다는 뜻?

즉시 호규를 돌아봤다.

드디어 호규를 써먹어 보는구나!

“잠깐 기다려 줘! 동료와 상의해 볼게.”

“좋아.”

남자의 허락에 일단 재빨리 호규에게 달려갔다.

내가 눈치챈 것을 놈들이 알아선 안 된다.

우리는 바로 귓속말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내 설명을 들은 호규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우리는 함께 씩 웃으며 유리 돔으로 걸어갔다.

“뭐야, 의외로 금방 정했네?”

대머리 녀석은 낄낄거리며 아저씨의 배를 주먹으로 툭툭 쳤다. 덕분에 계속 기분 좋았던 아저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하는 거야? 어린놈의 자식이, 버르장머리를 학교에서 배웠냐?”

아저씨는 대뜸 H력을 발동, 완력을 강화시켜서 주변의 여자들을 밀쳐낸 후 대머리 녀석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뭐, 뭐야? 이 아저씨, 갑자기 왜 힘이 펄펄 넘쳐?”

대머리는 당황, 여자들도 아저씨의 힘에 놀라 넘어진 채로 그냥 있었다.

“한참 기분 좋았는데, 너 때문에 다 망쳤잖아? 어떻게 책임질 거야? 이 정신적 피해 보상을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이 자식, 면상을 보니까 진짜 어린놈의 자식이네?”

갑자기 우리가 악당이 된 것 같네. 하지만 계획에 변경은 없다!

아저씨를 제물로 삼아 복수다.

“호규 씨, 실행하세요.”

“네!”

호규는 어제의 한을 담아 잔뜩 숨을 들이마셨다.

일단 난 호규의 뒤로 대피, 쪼그리고 앉아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와아아아!”

호규의 절규.

H력이 담긴 거대한 울림이 유리 돔을 때렸다. 단순한 소음을 넘어선 음파! 호규의 뒤에 있음에도 지면의 떨림으로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호규의 고함은 굵고 짧다.

소리를 내고 약 10 초경과.

소리를 끝까지 낸 호규가 입을 다물었다.

“어디…… 살아 있나?”

호규의 뒤에서 나와 유리 돔을 바라봤다.

하하하.

호규의 등을 두드리며 본 유리 돔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엄청난 충격은 아니더라도 유리의 미세한 틈으로 통과한 충격은 그대로 녀석들에게 적중한 모양이다. 녀석들은 머리를 부여잡은 채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고, 산발 머리 여자는 아예 기절까지 했다.

아마 심한 멀미가 느껴질 것이다.

아저씨는 제정신이 아닌 여자애들을 이리저리 번갈아 가며 살펴보고 있었다.

아니, 한돈 아저씨는 왜 멀쩡한 거야?

“아저씨, 문부터 열어 주세요.”

“끌끌끌. 이야, 이거 우리 상팔이 잔머리가 점점 좋아지는데?”

이게 잔머리의 영역인가?

갸우뚱거리면서도 일단 열린 유리문을 통해 돔 안으로 들어갔다.

“전화해서 먼저 간 사람들 보고 돌아오라 할까요?”

호규가 녀석들의 상태를 보고는 내게 물었다.

“아니요. 그냥 놔두세요. 제가 볼 땐 별로 대단한 놈들이 아니에요.”

너무 심했나?

호규의 능력이 너무 강력한 것인지, 아니면 이 녀석들이 너무 약한 것인지 헷갈린다.

“끌끌끌. 애들이 양아치인 척을 해서 그렇지, 생긴 건 다들 괜찮은데?”

아저씨는 이 와중에 외모 평가를 하고 계신다.

와, 진짜……!

“일단 묶죠. 아저씨 밧줄 좀 주세요.”

우리는 아저씨 배낭에서 꺼낸 밧줄로 녀석들을 한데 묶었다. 아직도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녀석들은 별다른 반항 없이 우리의 손짓에 순순히 몸을 움직였다.

“이 녀석들, 도대체 정체가 뭘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냥 기분 좋게 하산하려다가 날벼락 맞은 꼴이다.

“글쎄다.”

아저씨는 돌아가면서 손가락으로 녀석들의 얼굴을 콕콕 찔렀다.

음, 저거 엄청 기분 나쁘겠는데? 다음에 나도 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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