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62화
“오늘 사냥하는 건 그냥 별 볼일 없는 개미 떼인데, 사람이 이렇게 우글우글 가면 몫이 줄어드는 거 아니에요? 내가 점수를 못 내잖아?”
점수? 이게 게임입니까?
“그렇긴 하죠.”
오늘 인원은 날 포함해 7명. 날 뺀다고 해도 몫은 무조건 6등분이다. 군단개미의 체액을 얼마나 채취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6명이서 나눠도 충분할 금액은 아닐 것이다. 다만, 팀의 수준을 생각한다면 아직은 수익을 내는 것보단 경험을 쌓고 협동심을 기르는 쪽에 주력해야 한다.
“음, 생각해 보면 우리 팀은 의외로 잘 헤쳐 왔네?”
사실 우리 팀은 개개인에게 치명적인 수준의 단점이 있어서 그렇지, 실력은 다들 수준급이다. 냉정히 생각하면 의외로 팀장인 내가 우리 팀의 구멍일 것이다.
김여개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당당히 불까지 붙였다.
다른 괴물을 사냥하는 것이라면 담배는 절대 금지. 냄새를 맡거나 연기를 보고 괴물에게 기습당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여기는 그런 유형의 괴물이 없기에 그냥 내버려 뒀다.
“흥, 이런 시시한 게임은 질색인데……. 남자들이 사내구실을 못하니 이 모양이지! 이봐, 꼬맹이랑 노인네!”
김여개의 호출을 받은 장달과 길국은 군말 없이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
김여개는 그야말로 어깨를 으쓱이며 거드름을 피웠다.
“후후후. 내가 없으면 이 팀은 쓰레기나 다름없다는 거 알지? 기분 나쁘지 않게 잘해!”
장달과 웃는 얼굴로 김여개의 비위를 맞췄다.
“예예. 사모님 덕분이죠.”
아, 땅벌에서도 ‘사모님’이라고 부르는구나! 누군가에겐 생업, 누군가에겐 취미. 이게 현실이다.
반면에 길국은 이를 갈면서 말했다. 나이 때문일까?
“하, 하, 하. 우리 사모님, 참 대단하십디다.”
우와! 방금 ‘디다.’로 끝났어? ‘니다.’가 아니야?
박자공은 침울한 얼굴로 혼자 나무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왠지 좀 처량하게 보인다.
혼자 있는 것은 공미도 마찬가지. 하지만 공미의 경우엔 박자공과는 다른 방향으로 분위기가 무겁다. 침침하다고 해야 하나? 마치 번데기 속의 애벌레 같다.
김여개의 투덜거림은 계속된다.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키는 거야! 하여간 사냥이 시시하기만 해 봐, 이딴 팀에서 당장 나갈 거니까!”
“네. 물론이죠. 하하······.”
저런 말에 계속 맞장구치는 장달이 불쌍하다. 저런 모습이 한국 헌터들의 현재가 아닌가 싶다.
김여개는 담배를 세게 빨았다.
빨갛게 타오르는 담배 끝. 그리고 거기서 피어오르는 연기.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연기처럼 이 팀의 미래가 흐지부지될 것만 같다.
일단 명목상 팀장인 박자공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팀 상태가 좀 복잡하신가 보네요?”
“예. 이런저런 사람들이 섞여 있죠.”
박자공은 김여개를 가리키며 작게 속삭였다.
“여개 씨는 저희 팀에서 유일한 베테랑 헌터입니다. 정말 어렵게 모셨죠. 비록 저분은 취미더라도 저희한텐 절실합니다.”
베테랑?
“그럼 나머지 분들은 사냥 경험이 전부······?”
설마 저 아줌마 빼고 다 초보란 주장은 아니겠지? 내가 본 서류로 판단컨대 그렇게까지 무능한 팀은 아니다.
“아! 아닙니다.”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내 눈빛에 박자공은 허둥거렸다.
“저기 길국 씨도 경험이 꽤 풍부한 보조 헌터입니다! 달이도 겉모습은 무방비 자체지만, 나름 잘 싸우죠. 게다가 매년 정식 자격시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올해 시험에선…… 필기가 어려워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장달도 나랑 같이 시험 봤구나. 하긴, 이번 필기시험이 좀 거지 같긴 했지. 실기를 아무리 잘해도 그런 가증스러운 필기에서 떨어지면 아무 소용없으니 참······. 그런데 왜 본 기억이 없지?
“그래도 오늘 사냥은 꼭 성공할 겁니다. 좋은 정보를 얻었거든요.”
박자공은 무슨 대단한 비밀을 이야기하듯 더욱 목소리를 낮췄다.
“어떻게 좋은데요?”
괴물은 괴물. 사람이나 동물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 가뭄이 들 때 동물들이 물을 찾아 메말라가는 강 주변에 모여든다면, 괴물들은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녀석들의 신체 구조는 대충 알려져 있지만, 몇몇 기관의 존재 이유와 그 기능은 아직도 의문에 싸여 있다.
놈들의 기본적인 욕구는 살생. 그저 다른 생물을 죽이고, 싸우는 것 외엔 관심이 없다. 오죽하면 서로 같은 종의 괴물끼리 싸우는 영상이 트튜리팟에 올라오기도 한다. 그렇기에 군단개미나 갱벌레 같은 녀석들은 특이 취급을 받는 것이다.
“아는 헌터에게 들은 건데요. 최근 군단개미의 활동이 뜸하다고 합니다. 집 밖으로 잘 안 나온다고 하더군요. 주기적으로 이렇게 행동할 때가 있거든요.”
괴물 중엔 행동 패턴이 매우 뚜렷한 녀석도 있다. 분명 요맘때라면…… 군단개미가 산란을 하는 시기로 알려져 있다.
“그게…… 정보인가요?”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 하하하. 팀장씩이나 된다는 사람이 겨우 이따위 정보를 토대로…….
“네. 아주 어렵게 손에 넣은 겁니다.”
하하. 미치겠네. 이 아저씨, 사람 좋은 것 빼곤 아무것도 없잖아! 와, 이런 유형은 또 처음이네. 한돈 아저씨의 완벽한 안티테제다.
인성과 능력이 아주 정확히 반비례하고 있어!
“그, 그렇군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리고 내 경험상 불길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그럼 슬슬 출발할까요?”
내 말에 땅벌은 몸을 일으켰고, 우리는 천천히 개미집으로 접근했다. 박자공의 엄청나게 희소한 정보대로 개미집엔 입구를 지키는 졸병 개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입구부터 시작되는 통로는 높이와 너비가 약 2m의 정사각형 모양. 군단개미의 일반적인 크기가 대형견보다 조금 더 큰 것을 감안하면 천장이 너무 높다. 아마 이 크기는 소수의 장군 개미와 가장 덩치가 큰 여왕개미를 위한 형태일 것이다. 뭐,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일단 모두 준비해 온 안전모를 착용.
전방 부분에 달린 랜턴을 켰다. 이번 사냥은 군단개미의 체액 채취. 졸병이든 상병이든 상관없다. 원래 계획은 입구 부분을 지키는 소수를 유인,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획이란 변경의 연속. 일단 땅벌에게 내 생각을 전했다.
“산란기에는 여왕 주변으로 개미들이 밀집해요. 그리고 극소수의 개미들만이 방어를 위해 활동하죠. 그러니 우리는 그 활동 중인 녀석들을 노려야 해요.”
“오오. 그렇군요!”
박자공은 박수를 치며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이 정도로 감탄을 하면 안 되는데…….
오늘은 땅굴전에 대비해 청재킷과 청바지를 입고 왔다. 심지어 배낭도 청바지와 같은 소재! 재킷 주머니에는 각각 리볼버와 접이식 6단봉이 들어 있다.
두 가지 모두 신형으로 산 새 물건이다. 특히 리볼버의 경우에는 그 전의 싱글액션이 아닌 더블액션용이다! 패닝을 못하는 게 좀 걸리지만, 어차피 나한테는 맞지 않는 기술이다. 가격은 당연히 싱글액션보다 훨씬 비싸다.
일반인의 총기 소지에 깐깐한 우리나라 특성상 다른 나라보다 거의 10배 이상의 가격. 6단봉과 합쳐서 그동안 저축한 돈의 상당수가 날아갔다.
“좋았어.”
다른 사람들도 장비의 점검이 끝났다.
이제 시작이다.
“출발!”
우리는 둘씩 짝지어 줄을 지었다.
맨 앞이 나와 박자공.
그다음이 장달과 공미.
그 뒤가 아란과 길국.
맨 마지막이 김여개.
응? 짐꾼인 길국이 왜 김여개보다 앞이지?
짝과 순서는 땅벌 쪽에서 제안한 것. 줄을 서자마자 바로 박자공에게 물었다.
“왜 김여개 씨가 맨 뒤죠? 비전투원인 길국 씨가 뒤에 있어야 하지 않나요?
“하하하. 그게…….”
박자공은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대답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길국 씨를 보호하기 위해서죠. 갑자기 뒤에서 습격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평소라면 이 말이 꽤 믿음직스럽게 느껴졌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늘은 활동하는 개미가 극소수. 많아야 십여 마리 정도일 것이다. 게다가 여왕의 보호 때문에 밀집한 곳을 맴돌기만 할 뿐일 텐데, 과연 뒤에서 습격해 올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협동의 시작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서로 간의 개성을 존중해 주지 않으면 어떤 팀이든 같이 오래 일할 수 없다.
우리 팀만 봐도…… 하아…….
통로는 일직선.
우리는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일반적인 개미집을 생각한다면 지하로 들어가면서 여러 갈래로 길이 나눠지고, 좁아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군단개미는 괴물. 녀석들의 통로는 정사각형을 유지한다. 너무나 인위적이라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디…….”
휴대용 기압계를 꺼내 기압을 확인. 그것으로 지금 우리가 조금씩 지하로 들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완만하게 통로가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개미집의 깊이를 생각하면 이 통로는 3급 사냥 구역 비명횡산의 ‘보의 길’보다 길지도 모른다.
현재 시각 정오 12시.
2급 사냥 구역에서 집합한 시간이 오전 10시.
개미집 앞에 온 것이 11시.
제한 시간이 오후 6시.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은 약 4시간 정도다. 물론 앞으로 계속 들어갈수록 거기에 비례해 시간은 더욱 빨리 줄어들 것이다. 돌아올 때 걸리는 시간도 생각해야 한다.
“이봐요!”
김여개의 외침.
그 소리에 다들 흠칫 놀라며 목을 움츠렸다.
지금 여기가 무슨 식당인 줄 아나? 소리 듣고 개미가 몰려오면 어쩌려고……!
침착하자.
일단 발은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뒤로 돌렸다.
“왜 그러시죠?”
“다리 아파요. 잠시 쉬었다가 가죠. 점심도 먹고요.”
점심?
그렇군. 다들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왔을 테니, 슬슬 배가 고플 때가 된 것이다.
인식을 해서 그런지, 갑자기 나도 배가 고픈 게 느껴졌다.
일자형 통로. 다른 우회 경로는 없다. 여기서 밥을 먹어도 괜찮겠지. 놈들이 안에서 기어 나와도 즉각 밖으로 도망칠 수 있다.
“그럼 식사할 동안 두 사람이 교대로 망을 보도록 하죠.”
“그러든지…….”
김여개는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자리에 풀썩 앉았다. 그리고 손으로 박수를 두 번 ‘짝짝’ 치자, 길국이 잘 포장된 도시락을 대령했다.
포장만 봐도 고급스러움이 넘쳐난다. 거기에 와인이 든 비닐 팩까지!
“처음은 제가 서겠습니다. 다음은…….”
박자공이 처음을 자처. 그러나 아무도 그다음이 없다. 팀장의 말에 팀원들이 호응을 안 한다.
하아, 슬슬 이 팀의 바닥이 보이는 것 같다.
“다음은 제가 하죠.”
똑같은 팀장으로서 박자공에게 측은지심이 든다. 물론 연령은 박자공 쪽이 훨씬 위.
헌터로서의 경험은 어떨지 모르겠다.
일단 박자공이 통로 안쪽 망을 보고 나머지는 식사를 시작했다. 내 점심은 밥이 아닌 간식, 초코바 2개였다.
“휴우.”
빠르게 식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