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68화 (68/250)

68화

68화

“뭐야? 다 한 거냐?”

미스터 블레이드의 말.

다행이다.

미스터 블레이드는 내가 똥 폼을 잡는다고 생각했는지 혀만 차고 있었다.

“좀 더 포즈를 취해 봐. 지금 것은 약간 옛날 느낌이잖아? 무슨 에네지파…….”

방심은 패배의 원인이다.

미스터 블레이드에게 구슬이 적중, 정확히는 녀석의 안면에서 거대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일반적인 광탄이 H력을 에너지 삼아 폭발한 것에 가깝다면, 이 구슬 형태의 공격은 H력이 가진 위력 그 자체. 구슬의 폭발로 인한 파장에 대기가 일렁이며 시야가 왜곡될 정도였다.

하늘이 휘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하하. 이젠 내가 방심하고 있네? 하지만 기분이 너무나 좋다. 설마 이걸 써먹어서 성공할 날이 올 줄이야.

미스터 블레이드가 쓰러지자, 당연히 녀석이 조종하던 단검과 칼날은 힘을 잃고 땅에 떨어졌다. 아란과 공미는 쪼르르 달려와 쓰러진 녀석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여자가 어쩌고 어째! 어디 매운맛 좀 봐라!”

아란은 발바닥에 H력을 담아 기절한 미스터 블레이드의 사타구니를 집중적으로 구타했다. 그리고 공미는 방패를 세워서 옆면으로 녀석의 명치를 찍었다.

세상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온다는 말이 절로 생각난다. 지금 이 순간, 이 둘은 세상 그 누구보다 사악하다!

“하하…… 하…….”

설마 죽이는 건 아니겠지? 살려 둬야 하는데…….

살려서 물어볼 것이 너무나 많다. 일단 플레잉이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30분 뒤, 우리는 밧줄로 묶은 미스터 블레이드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만약을 대비해 녀석의 옷은 완전 탈의했고, 날붙이는 모두 한데 모아 수풀 속에 숨겨 두었다.

“크으으으…….”

녀석은 이를 갈면서 깨어났다. 그리고 땅바닥에 앉아서 우리를 올려다봤다.

“어때? 정신이 좀 들어?”

“흐흐흐. 김상팔, 역시 넌…….”

미스터 블레이드가 불길하게 웃었다.

마음 같아선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누군가가 선수를 쳤다.

따귀를 맞은 녀석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김여개의 우렁찬 목소리가 미스터 블레이드의 귀를 때렸다.

“감히 나에게 손을 대? 아버지한테도 맞아 본 적 없는 날? 이런 빨갱이, 쪽발이 같은 자식!”

정치도 하셨나? 양쪽이 다 나오네?

그새 정신을 차린 김여개는 공미에게서 여분의 웃옷을 받아 입은 상태였다.

“하하하! 그냥 콱 죽여 버릴 걸 그랬나? 이 망할 여편…….”

분노한 김여개는 그대로 연달아 무릎으로 미스터 블레이드의 입을 찍었다. 바람직한 니킥의 정석. 녀석이 살인마인 것을 감안해도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었다.

김여개의 구타는 계속되었다. 목표는 주로 녀석의 얼굴. 주먹, 손바닥, 손날, 무릎, 팔꿈치, 발등, 발바닥, 발뒤꿈치 등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수단이 미스터 블레이드를 때렸다.

“그만해요. 그러다가 죽겠어요.”

김여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렸다. 그러나 김여개는 날 밀치며 멈추지 않았다.

“죽어야 해! 너 같은 놈은 죽어 마땅해! 죽어도 싸!”

미스터 블레이드는 입 외에 다른 곳을 맞을 때마다 쉬지 않고 지껄였다.

“하하하! 김상팔, 들었냐? 아무래도 머리가 단단히 돈 모양이야! 사모님이 아니라 여왕님인데?”

내가 보기엔 둘 다 오십보백보인데……. 일단 구하고 봐야겠지?

“그만해요!”

6단봉을 펼쳐서 그 끝으로 김여개를 겨눴다. 김여개는 높아진 내 언성을 듣고는 씩씩거리며 날 노려봤다.

“누굴 위협하는 거야? 우리 집안이 어떤…….”

“그만하라고 했잖아요!”

6단봉으로 세게 맨땅을 내리쳤다.

솔직히 이런 식의 위협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상대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김여개! 이럴 땐 상대보다 더 무식하게 나가는 게 최고다.

“이건 협박이야! 이건 고소감이라고!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주겠어!”

꼴에 무슨…….

내가 협박이면 당신은 직무 유기에 살인 방조야!

“사냥 구역 안에선 대한민국의 형사법이 통하지 않는 건 잘 아시죠?”

민사는 또 모르지만, 지금 그런 것까지 따질 때가 아니다.

“선택해요!

봉 끝에 맞아 땅이 파이고 흙이 튀기니, 그제야 김여개의 입이 다물어졌다.

폭력이란 수단을 선택한 것이 좀 마음에 걸린다.

“이제야 조용해졌군.”

미스터 블레이드는 여전히 지껄였다. 물론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래. 얼굴은 괜찮냐?”

내가 볼 땐 안 괜찮거든.

“이 정도는 약과지. 그나저나…….”

녀석은 눈을 찌푸리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역시 넌 기대 이상이야. 그런 기술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나도 기대 이상이었어. 설마 그거에 당하는 놈이 있을 줄이야.”

“언제 익힌 거지? 우리 쪽 정보에는 그 기술에 대한 건 없었는데…….”

녀석은 아직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혹시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건가?

“노오력으로 얻은 거야. 노오오오오력!”

“그래? 잘도 지껄이는군. 그런 기술은 노력만으로 해낼 수 있는 게 아니야. 역시 너한텐 뭔가 특별한 비밀이 있나 보군.”

뭐라는 거야?

일단 녀석의 멱살을 거칠게 잡았다.

“노오력이라니까!”

“세상엔 노력으로 안 되는 일도 있어. 안 그런가?”

크윽!

나도 모르게 녀석의 멱살을 놔 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지금 녀석이 한 말엔 동감이다. 역시 거짓말에 소질이 없나 보다.

“H력을 이용한 능력발동, 그리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 고유의 능력발현. 거기까지는 노력으로 가능한 범위야. 하지만 H력을 가공, 제어해야만 쓸 수 있는 기술들은 경우가 다르지.”

묶여 있는 상태에서도 녀석은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아란과 공미도 넋을 잃은 채 녀석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재능 없는 녀석들이 할 수 있는 범위는 광탄과 그 응용기 정도야. 하지만 방금 네가 쓴 기술은 그보다 한 단계 위! 어쩌면 미스터 타이거의 주특기인 ‘물질화’와 맞먹을지도 모르겠군. 이건 기대 이상의 성과야.”

“성과라고?”

녀석의 태도가 영 껄끄럽다.

좀 더 기절시켜 놓을까?

왠지 그러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6단봉 끝을 미스터 블레이드의 관자놀이에 댔다.

“네가 얻을 수 있는 성과는 재판할 때 판사님한테 ‘한 번만 봐주세요!’ 하는 거야.”

“미스터 타이거도 나왔는데, 난 못할 거라고 생각하나?”

이 자식! 대한민국 사법기관이 어지간히 우습게 보이나 보네?

“넌 간부가 아니잖아? 간부도 아닌 놈을 빼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조직이 있을까?”

“그래. 난 간부는 아니지 하지만…… 이래 봬도 다이아거든.”

다이아? 다이아몬드? 웬 뜬구름 잡는 소리?

“하하하. 어차피 넌 지게 돼 있어. 죽은 녀석들처럼 되기 싫으면 순순히 협조하는 게 좋을 거야. 솔직히 땅벌한테는 별 감정이 없었어. 그냥 필요해서 죽인 거지. 근데 말이야, 생각해 보면 꽤 재미…….”

녀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미가 달려들어서 녀석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이봐, 이봐! 말수 적은 애들이 무섭다지만, 넌 아니잖아? 넌 ‘착한’ 아이야. 안 그래? 날 꽤나 잘 따랐잖아? 날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공미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공미는 이를 갈면서도 차마 뭐라 말하지 못하고는 그냥 그대로 녀석의 멱살을 놓았다.

“흥. 그럴 줄 알았어. 송사리는 어쩔 수 없…….”

앗! 우리를 비웃던 미스터 블레이드의 배에 갑자기 커다란 송곳 같은 것이 뚫고 나왔다! 녀석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어리둥절하게 바라봤다.

“이, 이게 갑자기 무슨…….”

미스터 블레이드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녀석도, 우리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지 못했다. 녀석의 몸은 개미집 안으로 빨려들 듯 날아갔다.

“저건!”

녀석이 날아가면서 복부를 찌른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가까이 있을 땐 미스터 블레이드의 몸에 가려 몰랐지만, 길고 가느다란 끈 같은 것이 개미집 안에서부터 이어져 있었다.

“젠장! 여왕벌 다음엔 여왕개미냐? 이 망할 팀, 아주 지긋지긋하군!”

미스터 블레이드는 개미집 속으로 끌려 들어가면서 크게 외쳤다.

여왕벌이라는 건 김여개일 테고, 여왕개미?

“여왕개미!”

망했다.

설마 저게 여왕개미의……!

“뭔가가 나와요!”

아란이 개미집을 가리켰다.

미스터 블레이드를 잡은 긴 흰줄이 들어갔고, 개미집에서 군단개미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녀석들 뒤에서 느릿느릿 나오는 개체였다.

“장군 개미!”

부하들을 깔아뭉개며 장군 개미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졸병과 상병의 색이 검다면 장군은 흰색. 딱 봐도 다른 종처럼 보인다. 일단 덩치가 두 배, 졸병과 상병이 여유롭게 통과한 통로가 녀석에겐 좀 좁아 보인다. 게다가 부하 개미에게 달려 있는 것과 달리 장군 개미의 집게 입은 비정상적으로 길다. 거의 몸통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

“말도 안 돼.”

공미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는 장군 개미의 뒤를 가리켰다.

녀석은 혼자가 아니었다. 장군 개미를 뒤따라 똑같은 개체가 3마리 더 튀어나왔다.

장군 개미는 모두 4마리, 그 주위를 상병과 졸병 수십 마리가 호위하고 있다.

“저게 뭐야?”

김여개는 펄쩍 뛰면서 뒤로 물러났다.

“이건 미친 짓이야, 나는 여기서 나가겠어!”

결국 탈퇴 선언인가?

김여개는 뒤도 안 돌아보며 멀리 달아났다.

“저런 사람을 팀에 들인 것 자체가 미친 짓인 것 같아요.”

아란이 몸을 풀면서 말했다.

공미는 망연자실한 채 그냥 바위에 기대에 앉아 있다.

아무래도 싸울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우리도 도망치는 게 어때요?”

슬쩍 아란을 떠보았다.

솔직히 지금 여기선 도망치는 게 정답이다.

사냥을 하다 보면 때론 실패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실패에 집착해서 두 번째 기회를 얻지 못하는 짓이다.

“도망치는 건 싫어요!”

아란은 완전히 전투태세다. 일단 공미를 이유로 들어서 설득하자.

“저나 아란 양은 괜찮을지 몰라도 공미 양은 위험할 거예요.”

아란은 그제야 공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내 말이 어느 정도 옳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럼 그냥 뛰면 되나요?”

“제가 짐들을 챙길 테니까, 아란 양이 공미 양을 옮겨 줘요.”

“네!”

아란은 즉시 공미를 들쳐 멨고, 난 배낭을 한데 모아 줄로 묶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배낭까지 잃어버릴 수는 없다! 장비와 도구는 동료만큼이나 소중하다.

다행히 군단개미들의 움직임은 개미집에서만큼 빠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녀석들의 목표는 방어지, 공격이 아닌 모양이다.

“그럼 튑시다!”

우리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몸에 남은 극소량의 H력은 금방 바닥이 났고, 중간쯤부턴 순수하게 내 완력으로 버텨야 했다.

“아오! 왜 난 매번 이런 꼴인 거야?”

그냥 내가 공미 양을 옮길 것을 그랬나? 내가 왜 짐을 맡았지? 그렇다고 이제 와서 바꾸자고 하는 것은 좀…… 그렇겠지? 참고로 지금 내가 짊어진 짐의 무게는 추정 60킬로그램 이상이다.

우리는 정문으로 돌아와 잠시 문 앞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냥 이대로 사냥 구역에서 나갈 수도 있었지만, 문제가 남아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