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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69화 (69/250)

69화

69화

“여개 아줌마를 버리고 갈 수는 없어요!”

그렇다.

그 대단하신 여왕벌이자 땅벌 팀의 에이스, 수수께끼의 실력을 지닌 베테랑 에이스인 김여개! 그 사람 때문이었다.

정문은 내 이름으로 등록했기에 내 개인 정보를 입력해야만 열린다. 즉, 정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정문을 열 수 있는 횟수는 단 한 번.

즉, 여기서 우리가 나가 버리면 김여개는 구조대가 올 때까지 홀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냥 버리고…… 가면…….”

안 되겠지.

아란은 내게 간곡히 부탁했다.

“여개 아줌마마저 잃고 싶지 않아요.”

문을 열기만 하면 되는데…… 마지막까지 쉽지 않다.

“좋아요. 그럼 저 혼자서 찾아보고 올게요. 아란 양은 공미 양하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현재 시각, 오후 5시.

하늘 저편이 붉게 물들고 있다. 제한 시간까지 1시간 남았다.

“5시 50분까지 돌아올게요. 만약 제가 그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배낭에서 내 지갑을 꺼내 아란에게 건넸다.

“제 개인 정보를 입력해서 두 사람만이라도 먼저 나가요. 절대 시간 넘기지 말고! 알았죠?”

공미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공미는 흡사 ‘폐인’이라고 해도 될 만큼 반응이 없다.

그 정도로 장달의 배신이 충격이 큰 건가?

애초에 녀석은 장달도 아니다. 그저 장달인 척한 미스터 블레이드일 뿐……. 배신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냥 속고, 이용당한 것뿐이다.

“전부 나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니 참 꺼림칙하다. 녀석들의 수완은 치밀하면서 지독하다.

장달은 적지 않은 시간을 땅벌에서 활동했다.

만약 위장이라면 그 모호한 계획성과 실행력에 박수를 쳐야 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 진짜 장달을 죽이고 위장한 것이라면…….

리볼버를 장전, 그리고 6단봉을 점검했다.

꽤 많은 수의 군단개미와 싸웠지만 아직 두 무기 모두 양호하다. 리볼버의 남은 총알은 장전된 6발과 여유분 4발. 6단봉은 조금 구부러진 정도다.

이걸론 살짝 부족한데…….

“저기 아란 양…….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아란이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하하하. 그렇게까지 진지할 필요 없는데…….

“그게…… 사실은…….”

H력을 보충해야 했다. 일단 아란에게는 적당히 ‘충전’이란 표현으로 둘러댔다. 너무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도, 그렇다고 또 너무 생략할 필요도 없었다.

아란은 군말 없이 순순히 내 손짓을 허락했다.

부드럽게 아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아란의 H력을 흡수.

“고마워요. 충분해요.”

젠장, 내 딴엔 꽉 차게 흡수했는데도 아란은 아무런 부족함을 못 느끼는 듯했다.

이게 타고난 자와 만들어진 자의 차이인가? 이러니 변변한 광탄 하나 못 쓰지.

아란은 손을 흔들며 나름 날 배웅해 줬다.

부디 무사히 재회할 수 있기를 바랐다. 사냥 구역에 들어온 이상, 여기서 나갈 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사모님!”

일단 개미집으로 향했다. 녀석들이 아직 흥분한 상태라면 너무 가까이 가는 것은 위험, 근처 수풀에서 상태를 살폈다.

“응?”

개미집 앞이 허전하다.

아까는 그렇게 바글바글 기어 나오더니, 그새 다 들어갔나?

일단 수풀에서 나와 개미집 앞에 섰다. 그리고 김여개가 도망친 방향을 바라봤다.

“참 대단한 에이스야. 도망치는 것만큼은 ‘헌터 랭킹 100인’에 들 만하겠어.”

김여개가 도망친 쪽으로 괴물의 보금자리가 2개. 둘 다 군단개미에 비하면 그리 위협적이진 않다.

“누가 예상했겠어? 고작 2급짜리들한테 이렇게 털릴지…….”

엄연히 따지자면 2급 더하기 플레잉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우리 팀이었다면……!”

크윽, 분하다. 이렇게 발리다니! 우리 팀이 멀쩡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사모님!”

아무리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다른 괴물한테 당한 건가?

“하하하. 그럴 리가…….”

일반인도 아니고, 정식 헌터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렇게 쉽게 당할 리 없다. 군단개미처럼 2급이 떼로 덤벼드는 것이 아니라면 잘 버티고 있을 것이다.

“사모님!”

이 앞은 ‘갑옷벌레’의 서식지다. 녀석들은 한 마리씩 일정한 거리를 두어 서식하기에 포위될 염려는 없다.

수풀에서 나와 나무들이 우거진 구역으로 발을 들였다.

갑옷벌레가 붙어 사는 나무는 일반적인 나무보다 그 굵기가 남다르다. 가장 굵은 나무 중 하나인 ‘바오밥나무’의 한국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앗!”

죽은 갑옷벌레 하나가 눈에 띄었다. 죽은 괴물은 온몸이 칼자국 천지였고, 부산물을 채취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즉, 죽이기만 하고 그냥 떠난 것이다. 괴물끼리의 싸움이라기엔 상처의 형태가 일정했다. 상처 크기로 보건대 사람이 한 짓이었다.

“사모님?”

이쪽으로 가다가 갑옷벌레랑 마주쳤고…… 죽인 것이다.

온순한 갑옷벌레를 이렇게까지 난도질했다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란 뜻? 일반적으로 갑옷벌레를 잡을 땐 녀석의 껍질 사이의 연약한 부분을 찔러 신경을 노린다. 그러나 죽은 괴물의 경우에는 껍질이고 할 것 없이 찔려서 죽은 것이다.

“사모님!”

나무 위에서 뭔가가 뛰어내려 날 공격했다. 덕분에 뒤로 넘어져 그대로 깔리고 말았다.

“죽어, 죽어, 죽어……!”

패닉 상태? 김여개는 양손에 든 나이프로 날 찌르려 했다.

“죽어라! 날 위해! 내 점수를 위해! 이건 게임이야! 내가 항상 이겨야 된다고! 나만이 승리자야! 나만 주인공이라고!”

김여개의 오른쪽 나이프가 목을 노리고 내려왔다. 일단 머리를 최대한 비틀어 목을 꺾었다.

비틀린 목 한쪽에서 차갑고 따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칼날이 목을 피해 살갗만 살짝 그은 모양이다.

이번엔 왼쪽 나이프. 목표는 내 얼굴이다!

“이아아앗!”

기합을 지르며 몸 전체를 옆으로 돌렸다.

균형이 무너진 탓에 김여개는 내 옆으로 철퍼덕 쓰러졌고, 손에 든 나이프 두 개는 땅바닥에 꽂혔다.

“정신 차려요!”

사람에게 리볼버로 총을 쏠 수 없다. 하지만 6단봉으로 두들겨 줄 순 있겠지!

옆으로 몸을 굴리며 최대한 김여개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6단봉을 꺼내 누운 상태에서 최대 길이로 펼쳤다.

김여개는 벌떡 일어서서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내 눈엔 거슬리는 것은 다 죽어야 해!”

저런 기운을 아까는 왜 안 쓴 거야? 역시 사람은 미쳐야 강해지는 건가!

“미친 것도 정도껏 미쳐야지!”

6단봉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몸을 일으킬 동안 김여개는 덤벼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프를 들고 살기등등하게 날 노려보고 있었다.

“죽어라! 죽어, 죽어, 죽어! 죽어도 죽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말, 죽어. 우리는 툭하면 ‘뭐해서 죽을 것 같다.’나, ‘뭐하면 죽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 아줌마는 한국인의 기준에서도 참 과할 정도로 내뱉고 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로 무슨 후크송을 만드시네. 순순히 당할 내가 아니다!

6단봉을 빙빙 돌리며 김여개를 위협했다.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죽어라!”

김여개가 세상 그 어떤 괴물보다 사납게 덤벼들었다.

양손에 든 나이프는 날카로운 어금니, 몸에 붙은 지방은 두터운 가죽과 같았다. 그래, 마치 암사자. 살육에 눈을 뜬 맹수의 모습이었다.

김여개의 나이프들이 칼날을 세우며 다가온다. 이젠 그냥 목표도 없이 무차별이다. 그저 직선적인 돌진, 김여개는 확실히 이성을 상실한 것이 맞았다.

“하하하!”

처음엔 당황해서 당한 것. 이젠 다르다.

돌진을 옆으로 가볍게 피하니, 김여개는 금방 몸을 돌려 양손에 든 나이프를 휘둘렀다.

김여개의 나이와 체형을 생각하면 상당히 민첩한 편, 확실히 H력으로 강화시킨 위력이다.

“정식 헌터란 말은 진짜인가 보네요? 사실 그것부터가 의심스러웠거든요.”

“찔려 죽어! 쑤셔져 죽어! 찢겨 죽어!”

‘죽어’의 베리에이션이 이렇게나 다양할 줄이야.

김여개의 베기에 일단 무조건 거리를 벌렸다.

저런 무차별적인 베기 공격은 내가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는 한 대응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서로 간의 거리만 유지하면 내가 유리하다. 김여개의 무기는 고작 나이프 두 개, 내 무기는 기다란 6단봉이다. 김여개는 공격할 수 없지만, 난 할 수 있다!

“하앗!”

용서하세요.

6단봉을 눕혀 김여개의 명치를 향해 힘껏 찔렀다. 봉의 찌르기를 방해하려는 듯 김여개의 칼날이 봉의 끝을 사정없이 벴다. 그러나 이 6단봉의 소재는 웬만한 강철보다 강력한 특수 합금!

저딴 싸구려 나이프에 깎이지 않는다. 흠집은 좀 많이 나겠지만…….

“어?”

안 쓰러져?

봉 끝에서 전해지는 감각은 분명 살을 누르는 촉감, 그럼에도 김여개는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연발과 함께 김여개의 나이프가 봉을 쳐 냈다. 덕분에 잠시 균형이 무너졌고, 김여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으며 접근해 왔다.

“죽어라!”

크윽. 나이프 하나가 기어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그거 말고 다른 말은 할 줄 몰라요?”

“뒈져라!”

하하, 할 줄 아시는구나.

기분 참 뭣 같네. 몸을 뒤로 빼서 김여개의 칼날을 옆구리에서 뽑아냈다.

아무리 H력으로 몸을 강화시켜도, 칼에 찔리면 얄짤 없다. 그나마 옆구리에 힘을 줘 근육으로 피를 막는 것이 고작, 물론 이것도 평범한 사람 입장에선 굉장한 일이다.

“제발 정신 좀 차리시죠? 베테랑이잖아요!”

김여개는 일일이 대꾸하지 않았다.

하긴, 정신 나간 사람이 이성적일 리가 없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랐나 보다.

“끼야아앗!”

이젠 사람이 내는 소리도 아니다.

김여개의 입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나왔다.

“얍!”

봉을 투창처럼 잡은 후 냅다 김여개의 안면으로 집어 던졌다. 김여개는 순간적인 공격에 양팔로 얼굴을 가렸다.

“지금이다!”

틈을 놓치지 않고, 김여개를 향해 몸을 띄워 발차기를 날렸다.

지금 내 몸에 흐르는 것은 아란의 H력, 그리고 아란의 능력발현은 바로 ‘발차기’다.

“꾸에에엑!”

발차기가 김여개의 복부에 닿자마자 발끝으로 감촉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김여개의 능력발현은 방어에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오!”

발끝이 아프다.

우리는 함께 쓰러졌지만, 일어선 것은 나 혼자였다.

무슨 통나무를 찬 것처럼 발이 욱신거린다.

“그러게 말로 할 때 들으셨어야죠!”

능력이 아깝네. 저 정도 능력이면 충분히 전력에 도움이 될 터인데, 하여간 무슨 일이든 그놈의 인성이 문제다. 일단 기절한 김여개를 옮겨…….

“응?”

안 옮겨진다? 기절한 김여개가…… 안 들려? 이 사람이 무거운 거야, 아니면 내가 너무 힘이 모자란 거야?

“하는 수 없지.”

배낭에서 밧줄을 꺼내 나뭇가지에 건 후 한쪽 끝을 김여개에게 묶었다.

“이래도 안 움직이나 봅시다!”

밧줄 반대쪽 끝을 힘껏 잡아당기니 그제야 김여개의 몸이 움직였다.

“하하하. 무거운 거였구나.”

대충 상황이 정리되어서인지 옆구리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자 옆구리에 고여 있던 피가 상처로 주르륵 쏟아졌다.

역시 무슨 일이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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