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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72화 (72/250)

72화

72화

아저씨는 숟가락을 건네며 웃었다.

“어떤 훌륭한 분이 이런 말을 했지, ‘인생은 전진과 후퇴뿐이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다!’라고.”

그 훌륭하신 분 정체가 왠지 하나도 안 궁금한데? 그나저나, 그 말을 하신즉…….

“전진하시겠단 거죠?”

“끌끌끌! 역시 날 잘 아는군.”

우리는 다 함께 팥빙수를 퍼먹었다.

팥빙수와의 한판 승부!

우리의 전투 지역은 얼음판이요, 적은 얼음과 섞인 단팥이었다. 언 과일은 딱딱하기만 하고, 팥에서 우러나오는 단맛은 혀가 녹을 정도. 입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팥빙수의 맛이 아니라 히말라야 산맥에서 조난당한 어느 등반가의 배낭 속에 잠들어 있던 건전지의 맛이었다.

“크윽!”

머리가 찡하다.

아저씨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두통이 생겼잖아! 머리는 아프고, 혀는 마비되어 간다. 왠지 배도 아파 오는 것 같고…….

“으윽!”

호규가 숟가락을 떨어뜨리며 탁자 끝에 머리를 찌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은 힘든 모양이다.

“죄, 죄송…….”

호규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당분의 과다 섭취로 기절한 건가? 단것을 많이 먹었다고 해서 기절할 수 있는 거야? 아니면 그저 그런 시늉만 하는 건가?

“우웁! 화, 화장실……!”

두 번째 탈락자는 유정.

감히 무단으로 냅다 전투 지역에서 이탈했다.

손으로 입을 막은 것을 보니, 구역질이 난 걸까? 저 비겁한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부럽다. 나도 그만 먹고 싶어!

“나약한 녀석들! 그러니까 너희는 성공할 수 없는 거야. 중요한 순간에는 자기 자신을 아끼는 것보다 승리로 향하는 길에 더 집착해야 돼! 끌끌끌, 그래야만……!”

아저씨는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개똥철학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옆으로 쓰러졌다. 먹는 속도가 우리 중 가장 빨랐고, 먹은 양도 혼자서만 거의 5분의 1. 결코 적지 않은 양이었다.

아저씨의 탈락은 너무나 뼈아픈 손실이다.

아저씨는 두 눈이 뒤로 돌아가 흰자위를 드러냈다. 그리고 입안에 가득 우겨넣었던 팥빙수가 벌려진 입에서 주르륵 흘러내렸다.

“우욱!”

아저씨의 추접한 모습에 루호가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루호는 아저씨의 맞은편 자리, 아마 루호의 시선에선 아저씨의 입안 사정이 아주 훤하게 보일 것이다.

결국 루호는 비위가 상해서 포기.

살아남은 것은 나와 아란뿐이었다.

“아란 양. 포기하면 안 돼요. 용기를 가져요, 알았죠?”

실제 사냥이라고 생각하면서 버텨라!

이것은 실제 상황. 지면 죽는 것이다!

혹독한 적과 싸우는 치열한 전투!

“네!”

“좋았어. 바로 그…….”

그 말을 끝으로 나도 뒤로 넘어갔다.

딱 그때 필름이 끊기면서 ‘뭐든 많이 먹으면 죽을 수 있겠구나!’란 교훈을 얻었다.

“으으으…….”

무슨 숙취가 온 것처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 나타났다.

영상, 뭔가 이상한 기억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누구의 기억이지? 나? 아니면 다른 사람? 모르겠다. 이런 기억…… 읽은 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다.

나는 기억 속의 주인공.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알 수 없다. 주인공이 있는 장소는…… 산? 모르겠다. 외국 같은데…… 산이 보인다. 현재 서 있는 장소는 산 중턱.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 싸여 있다. 산맥?

산 위고, 아래고 할 것 없이 사방이 눈으로 덮여 있다.

시선의 주인 말고도 산을 오르는 일행이 몇 명 더 있다. 그중엔…….

“힘내세요. 선생님.”

김익조.

헌터 자격시험에서 만난 면접관이자, 헌터협회 한국 지부의 ‘지부장직속총괄팀장’인 높으신 분. 그런데 지금 보고 있는 남자는 내가 아는 그 김익조와 비슷하지만 훨씬 젊다.

대충 봐도 30대 초반 정도?

얼굴에 수염이 하나도 없다. 복장은 털이 북슬북슬 달린 점퍼와 두꺼운 바지, 그리고 갖가지 장비가 딸린 배낭이다.

잠깐만!

선생님? 그렇다면 지금 내가 아저씨의 기억을 보고 있는 건가?

아저씨로 추정되는 시선은 말없이 움직인다. 발밑은 눈밭, 아저씨의 체형을 생각하면 발이 푹푹 빠져서 걷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시선의 움직임은 매끄럽고, 경쾌하기까지 하다.

“조금만 더 힘냅시다! 곧 블리자드래곤의 서식지입니다!”

시선의 목소리.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아저씨의 것이 아니다?

도대체 이 사람 누구지?

일행은 계속 산을 올랐다.

시선 끝으로 보인 모습을 추측하건대, 아저씨와 체형이 완전 다른 사람이다.

일단 이 사람은 날씬하다! 키는 다른 일행과 비교해 볼 때 170언저리.

이 역시 내가 아는 아저씨의 키보다 크다. 체지방은 조절할 수 있더라도 키를 조절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계속 올라가던 중, 머리 위에서 어떤 울음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시선의 주인은 재빨리 몸을 낮추고 고개를 들었다.

“블리자드래곤이다!”

누군가의 외침처럼 하늘 위에는 푸른색의 거대한 용이 날고 있었다.

긴 목과 긴 꼬리, 네 개의 다리와 네 개의 날개.

용의 날갯짓 한 번에 일행이 있는 곳으로 눈보라가 휘날렸다.

“선생님!”

김익조의 고함과 함께 시선의 주인을 향해 푸른색 불꽃이 날아왔다.

하늘에서 뿌려지는 파란 화염.

시선은 바닥에 몸을 바짝 엎드린 채 주변을 살폈다.

다른 사람들은 바위나 산의 경사에 몸을 숨기는 중, 오직 김익조만이 시선의 당사자 뒤에 엎드려 있었다.

“어떻게 하죠?”

김익조의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이다.

현 한국 지부의 간부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표정,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모습인 걸까?

“이건 그저 인사에 불과한 거예요, 익조 씨.”

어? 목소리가……? 루호? 조루호랑 비슷한 것 같은데? 말투도 그렇고…….

“녀석의 기분이 나쁜 모양이에요. 오늘 사냥은 징조가 좋은데요?”

“선생님은 너무 긍정적이세요. 저희도 그만 몸을 숨겨야 하지 않을까요?”

시선의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H력을 뿜으며 온몸에서 아지랑이를 피웠다.

“잘 보세요. 지금부터 새로운 전설…….”

끝. 응?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마치 오래된 텔레비전 영상처럼 눈앞이 점차 흐려지더니, 갑자기 눈에 보이는 광경이 변했다. 빛이 일그러지고, 명암이 뒤집히면서 새로이 나타난 것은…….

본래 내가 있던 카페의 천장이었다.

“여, 여기는……?”

카페 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자리에 앉은 채 쓰러진 날 훔쳐보며 비웃고 있었다.

팀원들은 아직 팥빙수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끌끌끌. 어떠냐? 정신이 좀 드냐?”

아저씨?

한돈 아저씨가 내 몸에 H력을 불어넣고 있다.

정확히는 H력을 이용한 치료술.

덕분에 실시간으로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아저씨가 치료하는 틈을 타 나도 모르게 아저씨의 기억을 훔쳐본 건가? 당혹스럽다.

기억의 주인은 분명 아저씨와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을 훔쳐보는 정도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 대상은 반드시 H력을 실시간으로 나눠 준 사람이란 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게 만약 아저씨의 과거라면……. 조사해 볼 단서는 충분하다!

“괜찮아요.”

민망함에 바닥에서 일어나 원래 내 자리에 앉았다. 다른 팀원들은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은 채로 실신, 깨어 있는 사람은 나랑 아저씨뿐이다.

“아무래도 얘들한테는 좀 가혹했나 보다. 하긴, 돈 벌기가 어디 쉽나?”

“아저씨……. 여쭐 게 있어요.”

흠칫. 아저씨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혹시 아저씨도 짐작하고 계신 걸까?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일단 물어보자!

“혹시…….”

“미안하다.”

아저씨는 엄숙한 얼굴로 내게 허리를 숙였다. 도대체 뭐가 미안하단 거지?

“뭐가요?”

“사실…….”

아저씨는 쑥스러운 듯이 호주머니에서 반쯤 접힌 쪽지 하나를 꺼내어 건넸다.

“이거.”

“네.”

조심스레 쪽지를 받아서 펼쳤다. 과연 뭐라고 쓰여 있을까? 아저씨의 정체? 김익조와의 관계? 그것도 아니면 내가 먹은 약의 비밀?

[헌터협회 한국 지부장은 발기부전]

“엥?”

“끌끌끌! 우리 팀 이름으로 어때? 아주 딱이지?”

우리 팀에 미성년이 한 분 계시다는 것을 그새 잊어버리셨나? 소개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러다가 잡혀 가세요.”

진짜로 잡혀 가십니다. ‘철컹철컹’이라고요!

“끌끌끌! 마음에 안 드냐? 난 파격적이라 좋은데?”

“파격적이다 못해 좀만 더 심하면 고소당할 것 같아요! 저번에 뉴스에서도 대놓고 말씀하셨죠? 인터넷에서 영상 봤어요!”

아저씨는 헛기침을 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끌끌끌! 어떠냐? 나 화면발 잘 받지?”

아저씨의 말에 입술이 움찔거렸다.

“앞으로는 함부로 팀 이름 같은 것 지어내서 말씀하시지 마세요. 그러다가 정말 그런 이름으로 굳혀지면 어떻게 해요!”

“거 참…….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구먼.”

“아저씨야말로 걱정이 너무 없으신 거예요!”

아저씨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 대신에…….”

아저씨의 얼굴이 또 한 번 의미심장한 빛을 띤다.

“플레잉에 대해 이야기할까?”

꿀꺽. ‘플레잉’이란 말만 들어도 절로 긴장이 된다. 녀석들에게 찍힌 이상 뭔가 확실한 수가 필요하다.

일이 없을 땐 아저씨를 만나거나, 혼자서 훈련을 해 왔다.

장소는 폐교와 약수터. 훈련 방법은 오래달리기와 턱걸이, 그리고 팔굽혀펴기.

“지금까지 해 온 훈련 말고 다른…… 특별한 뭔가가 필요해요.”

아저씨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찌푸렸다.

“그 미스터 타이거란 녀석, 정말로 위험한 놈이더구나. 협회에서 잡았을 땐 그냥 이야기 안 하고 넘어갔지만, 조사해 보니까 미제 사건 수십 건에 연루되어 있더라니까? 간부라는 말, 진짜일 게다.”

어떻게 미해결로 처리된 사건의 정보를 아셨는지 궁금하지만, 일단은 넘어가자.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일을 의논해야 한다.

“아저씨께서 도와주신 덕에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뭔가 더 강한 힘이 필요해요. 미스터 블레이드란 녀석한테 쓴 기술보다 더 실용적인 뭔가가…….”

“‘무광탄’ 말이지?”

예? 무슨 광탄……? 이, 이 아저씨! 방금 전에 안 그러겠다고 하시고선 또 그새 자기 마음대로 이름을 지은 거야!

“뭐…… 그렇다고 치죠.”

일단은…… 무광탄도 통과. 지금은 아저씨의 지식이 먼저다.

“결론은 강해지고 싶단 거지? 끌끌끌. 잘 생각했어. 그게 현명한 거야.”

아저씨는 몸을 당겨 얼굴을 가까이했다.

“헌터란 그런 거지. 살려면…… 살고 싶다면, 스스로 지키는 수밖에 없는 거야. 왜냐? 우리는 평범하지 않아. 우리들은 능력자야. 일반인 눈에 우리는 별종으로 보일 게다. 더러는 초인, 더러는 괴짜, 더러는…… 같은 사람으로조차 보지 않을걸?”

“하긴…….”

당장 여기만 해도 우릴 보는 시선들이 남다르다. 수군대는 소리, 손가락질, 조롱에 찬 눈빛, 그리고 무언가 안도하는 표정. 선망과 의혹이 뒤섞인 그것은 마치 우리와 자신들 사이의 선을 긋는 것 같았다.

“경찰은 우릴 그렇게 달갑게 보지 않아. 녀석들 입장에서 우린 통제 불가능한 문제아거든. 능력자들은 대부분 협회에서 관리한다고 여기니까,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을 거야.”

맞는 말이다.

능력자에 의한 사건은 경찰이 항상 협회 측에 지원을 요청한다. 물론 능력자를 제압하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어느 쪽이든 비능력자 입장에선 껄끄럽다.

“그렇다고 협회 쪽에 가서 손 벌릴래? 걔네가 과연 ‘아이고! 우리 선생님, 겁먹으셨어요? 그럼 저희가 해결해 드려야죠. 별것 아닌 선생님을 위해 협회의 예산과 인력을 총동원해 드리겠사옵니다.’라고 해 줄까?”

너무 극단적이지만…… 이것도 맞는 말.

한국 지부가 썩었단 소리를 괜히 듣는 게 아니다. 심지어 사냥 구역에서 고립된 헌터를 구하는 구조대조차 뒷돈을 줘야 더 빨리 움직인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아저씨는 검지를 흔들며 여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 꼬마 친구! 자네의 고민을 위한 좋은 방법이 있어.”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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