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74화
“세바스찬, 앉아!”
여성의 명령에 검은 개의 머리가 사무소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저씨는 물에 빠졌던 사람처럼 연신 ‘어푸어푸’거리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게 웬 날벼락이야? 변태신! 넌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하냐!”
변태신은 쓰러진 아저씨에게 수건을 건네며 크게 웃어 젖혔다.
“하하하. 한 방 먹으셨군요.”
“지금 웃음이 나와? 여전히 저런 미친 것을 키우는구먼?”
아저씨는 변태신의 손을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하하하. 뭐, 나름대로 꽤 귀엽거든요.”
“귀엽다고? 저 ‘괴물’이……?”
괴물! 아저씨의 말에 얼른 문 쪽으로 가서 밖을 살폈다.
문 바로 앞에 앉아 있는 형체. 겉보기엔 검은 개와 생김새가 흡사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분명 녀석은 괴물이었다.
잡티 하나 없는 검은 털. 소만 한 덩치. 불에 타오르는 것처럼 새빨간 눈. 뱀처럼 길게 늘어져 땅까지 닿는 혓바닥. 꼬리는 잘라 낸 것처럼 아예 달려 있지 않다.
기본적인 형태는 개와 비슷했지만, 결정적으로 한 부분이 달랐다.
바로 양 옆구리에 난 뿔이나 뼈 같은 것. 돌기 같기도 하고, 껍질 같기도 했다.
“앗!”
갑자기 어떤 이름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었던 괴물이자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흉수. 그러나 무분별한 사냥에 의해 현재는 멸종위기로 지정된 보호종.
현재는 대한민국에서 녀석들을 보기가 매우 힘들어진 상황이다.
일명 ‘뿔개’라고 불리는 괴물이 지금 우리 눈앞에 있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뿔개의 위험도는 4급. 무방비 상태라면 상위 헌터도 위험할 수 있는 상대다.
“뿔개?”
내 외침에 변태신이 팔짱을 끼며 씩 웃었다.
“오, 뿔개를 알아? 대단한데? 역시 요즘 헌터들은 수준이 높아. 하하하.”
변태신의 칭찬에 매서운 눈매의 여성이 한껏 날 쏘아붙였다.
“수준이 높은 게 아니라 뇌만 단련해서 그런 거예요. 저런 타입들이 정작 실전에선 쓸모가 없다고요!”
뭐야? 왜 팩트 폭력을 하는 거야! 눈에 불을 켜고 똑같이 여성을 노려봤지만…… 금세 포기, 눈싸움을 하기엔 너무 수준 차이가 나는 상대였다.
눈매에서 느껴지는 사나움만으로는 최향자와 동류, 알 수 없는 분노 같은 것이 느껴졌다.
변태신은 여성을 가리키며 나와 아저씨에게 소개했다.
“얘가 바로 제 딸, 변해라입니다.”
음, 왜 이름이 명령조 같지? 눈빛도 무섭고…….
“변해라라고 해요. 적당히 하다가 가요, 다치기 싫으면……!”
변해라는 이를 갈면서 나와 아저씨를 번갈아 봤다.
난 얼른 변해라의 눈빛을 피했고, 아저씨는 변해라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모자라.”
“예?”
변태신이 화들짝 놀라 아저씨에게 물었다.
변해라도 자기 아버지를 따라 아저씨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모자라다고. 네 아버지는 한창때 뿔개보다 더 굉장한 괴물들을 끌고 다녔어. 그런데 그 딸인 넌 고작해야 4급? 그것도 아주 간신히 유지하고 있구나. 고작 그 정도의 그릇이라면 아버지의 뒤를 잇기엔 모자랄 것 같은데?”
우와, 이 아저씨! 또 대놓고 시비를 거시네?
“하하하. 아직 성장 중이니까요. 금방 수준이 오를 겁니다.”
변태신은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서둘러 아저씨와 변해라 사이로 움직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야를 차단, 문을 닫으면서 변해라에게 세바스찬의 정리를 시켰다.
“자자, 도로 식사를 하시죠. 저 아인 이따가 나중에 따로 먹으면 됩니다.”
아저씨는 군말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아 고기를 먹었다. 나도 아저씨 옆에 앉아 젓가락을 집었다.
변태신은 우리 맞은편에 서서 아저씨에게 말했다.
“여전히 말이 따가우시네요.”
아저씨는 고기를 씹으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당연하지! 자네가 너무 무른 거야, 다른 사람 조련시킬 때처럼 했다면 진작 큰 재목이 됐을걸? 자네 딸이잖아? 재능은 확실하지!”
“그럴까요?”
변태신은 고개를 숙이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 정도로 만족해선 안 돼. 더, 더, 높은 경지를 바라봐야지. 사람은 만족하는 순간 볼 장 다 보게 되는 거야. 더 이상의 발전은 없어. 고인 물처럼 썩어 버린다고!”
뜨끔. 뭐지? 갑자기 가슴 한쪽이 따갑다.
“알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친구는……?”
변태신이 고갯짓으로 날 가리켰다.
“상팔이? 초보자는 아니니까, 마지막 단계부터 시작하면 돼. 숙박비는 쟤가 지불할 거야.”
“예?”
왜 제가? 여기 오자고 한 건 아저씨잖아요! 마음속으로 항의를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 온 것은 나의 부탁. 나의 수련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난 오히려 ‘제발 수련시켜 주세요!’ 하면서 매달려야 할 입장이다.
과정이 좀 껄끄럽지만, 지금은 순순히 따르는 것이 맞다.
“괜찮을까요? 그래도 기초부터 하는 게…….”
날 훈련시켜야 할 변태신이 오히려 날 걱정하며 말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한술 더 떠서 요란스럽게 받아쳤다.
“그럴 필요 없어! 기초라면 벌써 질리도록 했거든. 솔직히…….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너무 기초만 한 나머지, 기초밖에 모르는 얼간이가 됐어. 보통은 기초를 알면 자연스럽게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거든? 그런데 이 녀석은 하나를 알려 주면 둘도 알려 줘야 돼!”
다시 내 욕하는 시간인가?
“이 녀석의 유일한 단점이지. 하나밖에 몰라. 아주 답답해! 살아 움직이는 발암물질이라니까!”
와, 요새 왜 이렇게 내 멘탈을 노리는 사람이 많은 거야? 남의 멘탈 박살 내면 누가 상이라도 주나?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발암물질’은 아저씨거든요? 아저씨가 뿌린 암세포 때문에 우리 팀은 전원 입원해야 할지도 모른다고요!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참 안타까워. 감각도 좋고, 성실도 하고, 열정도 있는데…… 애가 개념이 없어. 끌끌끌!”
차라리 욕을 하세요! 그냥 쌍욕을 해요! 양손에 달린 중지로 날 가리키라고!
변태신은 점잖게 아저씨를 말렸다.
“그만하세요. 시작도 하기 전에 기를 죽이시면 안 되죠.”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아저씨를 째려본 걸까? 하지만 이건 정당방위다.
일단 깊은 한숨으로 속을 진정, 스스로 다짐을 했다. 긍정적으로, 긍정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지, 암! 긍정적이기만 하면 돼! 그럼 다 할 수 있어!
그렇게 나의 조련……이란 이름의 수련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세 달이 지났다.
눈을 뜬다.
내가 누워 있는 곳은 컨테이너로 된 사무소 안 바닥 위에 깔린 패드 위. 날씨가 따뜻해서 이불 대신 얇은 담요를 덮고 잔다.
옆에는 아저씨.
일광욕하는 돼지처럼 배를 드러낸 채 똑바로 누워 입을 벌리고 있다. 입가로 흐르는 침이 패드를 넘어 바닥까지 이어진다.
저러다 입안으로 벌레 들어가겠는데?
“읏차!”
상체를 세운 후 쫙 기지개를 켰다.
상쾌한 아침, 퀴퀴한 냄새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제법 익숙해진 참이다.
핸드폰으로 확인한 시간은 언제나 똑같은 오전 5시. 여기도 여느 농장에서처럼 하루가 빠르다.
침대 2개는 이미 비어 있다. 농장 주인인 변태신과 그의 딸 변해라는 훨씬 전에 일어나 개를 돌보러 나간다. 여기 지낸 세 달 동안 둘보다 더 일찍 일어나 본 적이 없다.
두 사람은 참 부지런하다.
“아저씨, 일어나세요.”
아저씨를 흔들었다. 그러나 아저씨는 코만 골 뿐,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럴 땐 아저씨를 깨우는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식사하세요.”
“끼요요옷!”
돼지 멱따는 소리와는 다른 기괴한 소리.
푹 자고 있던 아저씨는 괴성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는 동작도 소리만큼이나 평범함의 영역을 초월, 무슨 무협 영화처럼 부자연스럽다.
아저씨는 누워 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몸을 허공으로 띄운 후 그 상태에서 270도 회전, 제자리에 착지했다.
“밥!”
아저씨는 연신 ‘밥’을 외치며, 사무소를 나갔다.
“하아.”
난 혼자서 아저씨와 내가 잔 자리를 정리한다. 늘 이런 식, 이렇게 세 달을 사니까 이젠 그러려니 한다.
아침 식사는 야외에 있는 탁자에서 간단하게 한다. 오늘 메뉴도 잼 바른 토스트. 의외로 다들 잘 먹는다.
사실, 요리 담당인 변해라가 만든 것 중에서 이게 그나마 제일 먹을 만하다.
다른 요리는 흉기다.
먹으면 죽는다! 심지어 아저씨도 먹다가 토하고, 제자리에서 공중제비 세 번을 한 후 설사와 구토를 동시에 뿜어냈을 정도.
그야말로 양방향 오물 분수 쇼였다.
“아…… 상상하고 말았어.”
식사를 간단하게 마치면 오늘도 변함없이 ‘조련’ 시작이다. 일단 머리부터 발끝까지 특수복을 입는다.
특수복은 두툼한 두께와 푹신한 질감을 가진 소재를 이용해 만들어진 일종의 보호복이다.
흰색 타이어를 겹겹이 쌓아 놓은 것 같은 모습. 왠지 프랑스 유명 타이어 회사의 마스코트나 꿈도, 희망도 없는 RPG 게임의 양파 갑옷과 비슷하다.
움직임은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 사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비틀비틀 걸어서 농장 대부분을 차지하는 운동장 가운데에 서면, 변해라가 개들을 이끌고 날 둘러싼다.
국방색 카고바지에 두툼한 조끼를 입은 변해라는 복장만큼이나 단호한 얼굴로 물었다.
“시작한다?”
이젠 일일이 대꾸할 필요도 없다. 대답은 고갯짓으로 충분, 그것으로 수련이 시작된다.
“공격!”
처음 우리가 여기 왔을 때 개들이 하려던 짓.
개들이 사방에서 나에게 덤벼들었다. 그리고 이빨과 발톱이 내가 입은 특수복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상황. 수십 마리의 개가 날 개 껌처럼 물어뜯었다.
30kg이 넘어가는 보호복의 무게와 개들의 힘이 합쳐지면 서 있는 것 자체가 고난이다.
H력을 써도 겨우겨우 버티는 수준. 수련을 시작한 지 10분 만에 온몸이 땀에 젖는다.
살짝 H력을 더 방출해 개들에게서 팔다리를 빼냈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 아저씨에게서 받은 H력은 아껴 써야 한다. 처음부터 풀 파워를 써서 완전히 벗어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없다.
애초에 H력을 만들 수 없는 나에게 있어 지속적으로 H력을 써야 하는 상황이 가장 힘든 문제.
지속적으로 이런 상황에 처함으로써 단련하는 것이 내 몸을 조련하는 방법이다.
해가 뜨고 질 때까지 조련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점심식사를 거른다는 점은 좀 참기 힘들지만, 그 외엔 견디기 수월하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보낸 시간만 세 달. 이 점이 가장 내 마음을 힘들게 한다.
해가 지고, 개들은 각자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변해라와 변태신이 개들을 갈무리하는 동안 난 혼자 수돗가로 가서 옷을 벗었다.
이제 초여름, 어둑어둑해진 하늘에서 날아든 날벌레들이 전등 주변을 맴돌았다.
특수복을 벗은 몸은 펄펄 끓는 증기를 뿜어내며 체온을 식혔다.
우선 수도꼭지에 연결된 샤워기를 틀어 특수복을 세척, 그 후에 내 몸을 닦았다.
“하아. 어떻게 씻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냐?”
조련의 목표는 특수복을 입은 상태에서 개들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 하지만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쓰러지지 않는 것이 고작이다.
일류와 이류, 그리고 삼류 사이의 벽이 느껴진다. 이런 걸 일주일 만에 해낸다고?
분명 일류란 사람들은 정상이 아닐 것이다.
완전히 해가 지고, 젖은 몸이 전등 빛에 빛나는 것을 바라봤다.
흠흠, 나도 꽤 봐줄 만한데? 역시 내 이상이 너무 높은 걸까?
“오오!”
옆에서 들려온 감탄사.
재빨리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렸다. 사실 수돗가에 걸어 놓은 수건을 쓰면 더욱 좋았겠지만, 순간적으로 당황한 상태라 두뇌회전이 되질 않았다.
아저씨가 박수를 치면서 내 ‘거시기’를 노골적으로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