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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77화 (77/250)

77화

77화

“저번 쌍두하피에 대한 보고는 참 인상 깊었습니다. 일을 조용히 처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일은 앞으로 상팔 씨의 경력에 크게 남을 겁니다.”

‘비공개’적으로 말이죠? 근데 사람을 보고 이야기하시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설마 칭찬하려고 부르신 건 아니시겠죠?”

김익조는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단정한 외모와 고고한 눈에서 흘러나오는 소위 ‘높으신 분’의 카리스마.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상팔 씨에게 일을 하나 맡기고 싶습니다.”

“일이요?”

간부가 직접? 협회의 의뢰라면 굳이 이렇게 직접 만나지 않아도 지시를 내릴 수 있을 텐데? 김익조와 나 사이의 연결고리라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거든요. 대신 보상도 그에 상응하지만요.”

“그런 일이라면…… 더 실력 있고, 유능한 분들한테 맡기는 게 낫지 않나요?”

헌터 랭킹 100인은 뒀다가 국 끓여 드실 건가요?

“이 일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유능할 것. 둘째, 욕심 부리지 말 것. 셋째…….”

김익조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손수건으로 입가의 수염을 닦았다.

“셋째, 확고한 의지가 있을 것. 아무리 뛰어난 헌터가 많아도 이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한 분 있더군요.”

내 이야기는 아니고……. 아저씨? 역시 한돈 아저씨를 말하는 건가.

“‘플레잉’에게 노려지고 계시죠, 상팔 씨?”

앗! 플레잉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가슴 한쪽이 따끔하다.

협회의 정보력을 너무 무시하고 있었나? 역시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아무리 썩었어도 협회는 협회.

김익조는 내 얼굴을 살피며 느긋하게 말했다.

“아시다시피 협회와 플레잉은 매우…… 불편한 관계입니다. 협회가 빛이라면, 플레잉은 그림자. 능력자와 괴물의 세상에서 생겨난 불순물이죠. 돈이 모이다 보면…… 항상 파리가 꼬이는 법이니까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잉에 대해 모르는 헌터는 없다.

“저희는 상팔 씨를 전적으로 돕고 싶습니다. 상팔 씨에겐 플레잉과 싸울 용기가 있나요?”

설마 지금 플레잉하고 싸우라고 등 떠미는 거야? 이런 미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도무지 예측이 안 되는데요?”

지금이라도 아저씨를 부를까? 확 다 뒤엎어?

“말씀드렸다시피……. 의뢰입니다.”

김익조는 옆자리에 놓은 서류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녹색의 적외선으로 촬영된 사진.

화질로 봐선 동영상의 한 부분을 출력한 것이거나, 급하게 찍은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이 찍혔냐는 것.

“이 사람을 봐주십시오.”

사진을 본 순간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전신의 붕대, 그리고 붕대 사이로 드러난 눈. 분명 최향자의 기억에서 본 녀석이다!

“누, 누군데요?”

일단 시치미를 떼지만, 보는 순간 얼굴에 다 드러났을지도 모른다.

김익조 정도 되는 인물이 과연 눈치채지 못했을까? 김익조는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름은 미스터 버드.”

엥? 버드라면…… 새? 보기엔 딱 미라 같은데?

“저번에 지부에서 난동을 부린 미스터 타이거와 동급의 간부입니다. 플레잉 내부에선 하트의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하트? 그러고 보니 미스터 블레이드가 자기는 다이아몬드라고 그랬지? 무슨 조직 내 계급인 것 같긴 한데…….

김익조는 내 뚱한 표정을 보고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아예 처음부터 설명을 드리는 편이 낫겠습니다.”

김익조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플레잉에는 계급이 있습니다. 조직원들끼리의 서열을 플레잉 카드에 빗대어 정해 놨죠. 가장 최하위가 클럽. 이들은 주로 소모적인 일을 맡습니다. 신입이나, 상대적으로 무능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계급이죠. 클럽 정도는 경찰에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는요?”

미스터 블레이드의 실력으로 보건대 클럽의 위가 다이아몬드일 것이다. 미스터 블레이드의 실력으로 보아 경찰이 처리하기에는 좀 버거운 상대다. 물론, 자동화기를 사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클럽의 다음, 어느 정도 검증된 조직원이 받게 되는 계급이 바로 다이아몬드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능력자인 경우가 많죠. 현재 대한민국에서 활동 중인 다이아몬드 조직원은 수십 명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능력자를 보유한 폭력 조직은 많지만, 이렇게 수십 단위로 보유한 조직은 플레잉뿐입니다.”

심지어 그것도 협회처럼 ‘지부’란 것이 문제다. 플레잉이 워낙에 큰 조직이다 보니, 한국에서 활동하는 플레잉은 사실상 ‘플레잉 한국 지부’인 셈이다.

“그 위가 간부인 하트입니다. 미스터 타이거, 미스터 터틀, 미스터 버드, 그리고 또 한 명의 밝혀지지 않은 조직원이 이 계급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벌어지는 범죄에는 이들이 배후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그럼 한국 조직 보스는 스페이드인 건가요?”

남은 문양이 그것 하나밖에 없다. 그건 그렇고, 간부인 하트는 무슨 사천왕이냐?

“그건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상팔 씨는 하트 계급까지만 아시면 됩니다.”

김익조는 남은 커피를 모두 비우고 웨이터를 불러 커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그럼 다시 의뢰 이야기로 돌아가죠.”

“예.”

김익조는 다시 사진 속 미스터 버드를 가리켰다.

“그가 6급 사냥 구역에 설치된 저희 측 보안 CCTV에 찍힌 것은 약 일주일 전입니다. 아무래도 녀석들의 목적은…… 괴물의 병기화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

나도 모르게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소리를 질렀다.

김익조는 예상했다는 듯 무덤덤하게 말했다.

“진정하시죠. 듣는 귀가 많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괴물의 병기화? 괴물이 무슨 동네 똥개나 도둑고양이인 줄 아나? 녀석들을 병기로 만들어?

물론 변태신과 변해라처럼 길들이는 사람도 소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능력에 의한 것. 변태신의 말에 따르면 1마리가 고작이며, 그것도 언제 통제가 풀릴지 모르는 매우 불안정한 행위라고 한다.

즉, 변해라와 세바스찬의 관계는 교감보단 최면에 의한 강제적인 것이다. 거기에 추가로 협회로부터 감시를 받게 된다.

“그게…… 가능한가요?”

김익조는 여전히 무감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지난 수십 년간의 정보로 따지자면, 불가능합니다. 물론 일부 능력자들이 괴물을 거느리고 다니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플레잉이 노리는 것은 완전한 병기로서의 재탄생. 완벽한 통제와 복종을 목표로 수 개월간 무슨……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중요한 정보를 왜 나한테 알려 주는 거지? 갑자기 불안한데…….

저번 불타는 고구마의 이야기…… 호규의 기억…… 만약 이 모든 것이 최향자의 기억에서 본 미스터 버드의 소행이라면……?

녀석들은 꽤 오래전부터 일을 꾸몄다는 건가?

“현재 미스터 버드가 괴물 하나를 6급 사냥 구역에서 빼내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어떻게든 괴물이 사냥 구역 밖으로 나오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군하고 협력해서…… 요격해 버리면 되지 않나요? 사냥 구역 밖으로 나왔을 때 말이에요.”

생각보다 일의 크기가 엄청난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여기선 성급하게 달려들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것도 고려해 봤으나, 다른 조직에는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희의 결론입니다. 즉, 이 작전은 순수하게 협회 자체의 힘으로 진행될 겁니다.”

이 와중에 아귀다툼을 신경 쓴단 소리야? 아니, 아무리 협회의 입지가 중요해도 이렇게까지…….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가 괜히 당한 게 아니야.

“이번 의뢰는 너무 눈에 띄면 안 됩니다. 그러니 유명한 헌터에겐 맡길 수 없습니다. 저희 측 인력도 ‘지원’이란 명목으로 도움을 드리겠지만, 전력은 아닙니다. 메인은 어디까지나 헌터의 개인적인 사냥인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쉽게 말해서…… 자기들이 치워야 할 똥을 내가 대신 치우면 뒤에서 손 씻을 물 정도는 준비하겠단 뜻. 나중에 엄청 선심 쓰듯이 으스대지나 않았으면 좋겠네.

“정확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뭘 하면 되죠?”

설마 플레잉하고 전면전이라도 하라는 건 아닐 테고……. 6급 사냥 구역이니까…….

“간단합니다.”

김익조는 서류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거기에는 어느 괴물에 대한 정보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미스터 버드가 이 녀석을 데리고 나가기 전에 사냥 구역 안에서 죽이시면 됩니다. 평범한 사냥, 그리고 우연한 마주침. 여러분은 미스터 버드의 괴물에 집중하시면 됩니다. 미스터 버드 본인은 저희 측 인원이 상대할 겁니다.”

6급 괴물…… 그것도 훈련된 녀석이라……. 서류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갑자기 소화가 안 되는 것처럼 속이 답답하다. 커피 마시고 체했나?

드래건 사냥 때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어떻습니까?”

솔직히 하기 싫다. 이거 잘해 봐야 본전치기고, 잘못했다간 괜히 똥물만 튈 일이다. 하지만 쌍두하피 때처럼 미스터 버드에 의해 훈련된 괴물이 본래 서식지를 벗어나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된다면…….

상상도 못 할 만큼 거대한 혼란이 될 것이다. 괴수가 나오는 영화는 꽤 좋아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화 속 이야기이기에 좋아하는 것이다.

“보수는요?”

일단 들어나 보자!

혹시 알아? 액수 듣고 마음이 바뀔……. 응?

김익조는 말 대신 손가락 3개를 들었다.

3억? 많은 금액처럼 보이지만, 사실 조금도 많은 금액이 아니다. 드래건 때를 돌이켜보면 일단 기본 30명 정도로 연합을 해야 한다. 만약 30명 전원이 살아서 돌아간다면 3억은 30등분, 1인당 천만 원이 된다.

정식 헌터니까 수수료는 낮다고 쳐도 장비, 무기, 그리고 치료를 위한 입원비 등을 생각하면 천만 정도는 금방 소진된다.

받게 될 천만 중 순이익은 절반이 조금 넘는 5~6백 정도. 물론 적지 않은 액수다. 하지만 목숨을 걸기엔……. 아무리 돈이 궁해도 보수가 너무 적다. 게다가 장비를 더 좋은 것으로 구할수록 순이익은 더 줄어든다.

거절하자!

“아무래도 못 할…….”

“괴물의 보수와 미스터 버드의 현상금. 그리고 의뢰의 보수. 세 가지 모두 별도 지급입니다.”

“별도?”

그럼…… 3억이 3개니까…….

“9억?”

김익조는 손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9억…… 9억…… 9…….”

총액수가 세 배. 순이익은 세 배 이상. 갑자기 몸에 활기가 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수전노 기질이 있었지? 하하하!

한편으로는 고작 천만 원 조금 넘는 금액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내 신세가 참 처량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게 헌터의 삶이다!

“그럼 상팔 씨께서 맡아 주시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김익조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서류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웨이터에게 검은색 신용카드를 건네주고는 계산을 기다렸다.

“팀을 꾸리고, 준비를 철저히 하십시오. 이런 말씀드리기 뭣하지만, 아마 그 어떤 6급 괴물보다 힘들 겁니다.”

그렇겠죠.

“그러고 보니…… 왜 팀 이름을 그렇게 지으셨죠?”

응? 이건 또 무슨 소리?

“예?”

김익조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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