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80화
어차피 최향자에게는 말해 줘도 되지 않나?
“협회에서 나온 사람들인데, 우리랑 서로 모른 척할 거래요.”
“흥! 마음대로 하라지.”
최향자가 온 김에, 팀장들을 전부 소집시켰다. 아직 변해라가 오직 않았지만, 시간상 슬슬 준비하지 않으면 늦을 것이었다.
작전 회의 시작!
“우선…….”
“짠!”
막 설명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한광일이 내 말을 끊었다.
한광일은 손을 번쩍 들면서 모두가 보는 가운데, 중앙에 섰다.
“뭐야?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노구가 한광일의 돌발행동에 호응을 했다. 제기랄, 이러면 안 되는데!
“호후호! 저희가 엄청난 걸 준비했어요. 짜잔!”
한광일은 팀이 가져온 상자 중 하나를 가리켰다. 거기엔 영어로…….
“바로 다이너마이트예요!”
이런 미친……! 폭발물을 가져왔어? 다른 팀장들의 표정도 떨떠름하다. 폭발물의 사용은 가장 엄격히 제재되고 있는 상황, 자칫 사냥 구역을 둘러싼 방벽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날 수 있는 공중형 괴물이라도 영역을 벗어나는 경우는 없다. 그렇기에 방벽이 가진 상징은 절대적인 것. 사람과 괴물의 공간을 가른다는 의미에서 방벽은 어떠한 경우에도 손상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와아…….”
좋아해야 하나? 아니면 화를 내야 하나? 그런데 이 인간이 과연 내 말을 들을까?
한광일은 어깨를 으쓱이며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이게 아주 좋은 폭탄이에요. 이거 하나면 다른 건 필요 없답니다. 호후호!”
변태 같은 웃음소리. 아직 사냥 전인데, 벌써부터 짜증이 확 밀려온다.
다른 팀장들도 수군거리며 한광일이 가져온 다이너마이트에 눈을 떼지 못했다.
“다시 작전 회의로 돌아가지.”
최향자의 엄숙한 선언. 그러자 다들 순식간에 입을 다물고 시선을 내게로 모았다.
역시 카리스마 하나는 최고다.
“어머, 어머!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있잖아? 너 몇 살이야? 오빠 알아? 오빠 유명한 사람이야.”
앗! 한광일이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최향자에게 다가간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은 사람인데……. 아마 제 딴엔 지금 저걸 우아한 말투라고 생각하면서 쓰고 있을 것이다.
“몇 살? 어른이 말하면 대답을 해야지? 호후호. 혹시 지금 겁먹었니? 오빠가 조금 급이 높긴 해.”
부탁이야, 그만둬! 두 사람 사이로 가서 말리고 싶은데……. 지금 내 마음 속에서 두 생각이 싸우고 있다. 한쪽은 ‘그냥 내버려 둬! 최향자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를, 다른 한쪽은 ‘왜 말려? 최향자한테 한번 당해 보라고 해!’를 주장하고 있다.
응? 둘 다 비슷한 것 같은데?
최향자는 독기가 오른 눈으로 한광일을 노려보고 있다.
의외로 두 사람의 키가 비슷하다. 한광일이 평균 이상임을 감안하면 최향자가 키가 큰 편임을 알 수 있다.
한광일은 감히 최향자의 턱을 잡으며 엄지로 최향자의 입술을 문질렀다.
이미 최향자에 대해 알고 있는 다른 팀장들은 나처럼 이 상황을 매우 즐겁게 관람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는 사람이 없다.
“입술 참 예쁘다. 호후호!”
한광일은 뭔가에 도취된 듯 기분 나쁜 미소를 띠었다. 저 미친놈이, 진짜 죽으려고 그러나?
“이, 샊…….”
최향자가 한 글자, 한 글자 끊어서 말한다.
근데 저 두 글자하고 한 자음만으로도 벌써 문장이 완성된 것 같다. 한광일은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다.
하는 수 없지.
빠르게 한광일의 뒤로 접근, 나도 모르게 소량의 H력을 오른발에 실었다.
“독수리…….”
그냥 최향자가 해결하게 놔두면 되는데……. 양팔을 옆으로 쫙 펴서 독수리의 날개를 형상한 후 오른 다리를 뒤로 들면서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이것이 바로 전설의 슛! 이거 알면 아재!
최향자는 한광일의 면상에 주먹을 날리기 전, 한광일의 뒤에 나타난 날 보며 동작을 멈췄다.
“슛!”
내 오른발이 한광일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독수리 슛이란 이름답게 오른발에 차인 한광일은 마치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위로 붕 떠올라 우렁차게 울부짖었다.
“쌰아아앙!”
와, 참 우아하다. 우아한 사람은 비명도 우아하게 지르는구나. 하하하, 쟤도 ‘썅’이래.
내심 한광일이 더 높이 날아오르길 바랐다.
첫 사냥에서 겪은 죽음의 공포와 굴욕. 정말, 다른 역할은 다 할 수 있지만 ‘미끼’만큼은 또 하기 싫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날아오른 것은 언젠가 추락하는 법. 땅바닥에 떨어진 한광일은 기절한 채 널브러졌다.
지면에 충돌한 순간 어디선가 ‘뿡’ 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 자잘한 것은 신경 쓰지 말자.
“앗! 저도 모르게…… 그만…….”
일단 잡아떼자. 그래, 이건 불가항력이다. 내 의지가 아닌 본능, 잠재의식 속 ‘복수’란 마귀가 벌인 짓이다.
잘했어, 마귀! 간만에 좋은 일 했구나.
똑바로 눕힌 한광일은 입에 거품을 문 채 눈알이 뒤로 돌아가 있었다. 이어지는 모배구의 진찰,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다.
아마 오른 순간 H력을 전개시켜 몸을 보호한 모양이다. 역시 ‘급’이 다른 헌터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최향자는 팔짱을 낀 채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혹시 내가 가로챘다고 생각하는 건가? 자기가 때릴 사람한테 먼저 손댔다고 화내면 어떻게 하지?
그건 미처 생각 못 했는데……?
최향자는 천천히 내게로 다가와 살짝 옆으로 비껴서 지나갔다. 그리고 날 스치는 순간, 주먹으로 내 명치를 정확히 툭 때렸다.
가벼운 주먹이지만, 명치는 급소다.
맞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정말로 나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고꾸라졌다.
“까불지 마.”
최향자는 그렇게 말하며 노구의 옆에 가 섰다. 내가 맞는 것을 본 노구는 잔뜩 쫀 채 최향자를 경계했다.
“저 머저리는 혼자 자빠졌어. 그렇지?”
응? 대뜸 최향자가 다른 팀장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것은 압박이자, 협박. 오직 최향자만이 가능한 ‘설득’이었다. 지금 상황을 본 것은 팀장들뿐, 다른 팀원들은 열심히 사냥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찬성!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진 거예요.”
다른 팀장들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주아라가 번쩍 손을 들며 외쳤다.
가장 기가 센 두 사람의 연합.
그것으로 이미 진실은 포장돼 버렸다. 노구, 모배구, 오박은 차례로 고개를 끄덕이며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반대라도 했다간…… 두 여자한테서 살아남을 수 없다.
모배구가 한광일을 치료하는 동안 반도의 자식들 팀원 중 하나를 불러 대신 설명을 듣게 했다.
“사냥감의 목표는 바로 ‘나이트윙’이에요.”
“나이트윙!”
주아라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어라? 혹시 겁먹은 건가? 천하의 주아라가?
“왜 무서워?”
“아니. 너무 좋아! 그거 인터넷에서 봤는데, 도끼로 때리면 드럼통처럼 소리가 울릴 것 같아!”
묘하게 구체적인 게 좀 불안하네. 그래도 뭐, 긍정적인 적이라 다행이다.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말을 이었다.
“나이트윙은 갑옷을 입은 박쥐처럼 생겼지만, 비행은 하지 않아요.”
그렇다. 박쥐처럼 생겼지만, 날 수는 없는 아이러니한 괴물.
대신 기사란 이름에 걸맞게 방어력이 무지막지하다. 뭐, 6급 괴물이 다 그렇긴 하지만…….
“대신 나이트윙은 높은 나무에 서식하기 때문에 놈을 발견하면 제일 먼저 나무에서 내려오게 해야 해요.”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녀석이 사는 나무는 보통 나무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굵은 나무 중 하나인 바오밥나무.
너비가 최대 10m 이상 자라며, 높이는 20m를 넘어가는 그야말로 괴물 나무다.
괴물이 전부 동물 형태만 있어서 다행이지, 만약 식물 형태의 괴물이 있었다면…….
아마 세상은 지옥이 됐을 것이다.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위치는 이미 알고 있다.
적당히 근처로 가서 찾는 시늉만 하면 된다.
“나무에서 어떻게 떨어뜨릴 거지?”
노구가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좋아, 바로 이거야! 이런 반응을 기다렸어. 이게 바로 일반적인 회의라고!
“이걸 쓸 거예요.”
우리 팀이 가져온 나무 상자 하나를 가리켰다. 상자에는 ‘최루탄’이라고 쓰여 있었다.
“하하하! 좋은 생각이군. 아무리 갑옷으로 꽁꽁 싸매도 제 까짓 게 숨은 쉬겠지.”
노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녀석이 내려온 다음에는요?”
한광일의 치료를 끝낸 모배구가 물었다. 한광일은 아직 깨어나지 않은 채 쿨쿨 자고 있었다.
“놈은 육탄전으로 덤빌 거예요. 제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녀석의 무기는 바로 양 날개에 달린 칼날이에요.”
“잠깐!”
주아라가 손을 들었다.
“아깐 녀석이 못 난다고 하지 않았어?”
이것도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못 날지만, 날개는 있어. 금속처럼 튼튼한 날개 끝이 칼날처럼 날카롭기 때문에, 녀석은 그걸 무기로 쓰는 거야.”
“쩐다!”
주아라는 씩 웃으며 어깨를 돌렸다. 설명을 들으니 날뛰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나 보다.
“하이퍼맨과 반도의 자식들, 그리고 각 팀에서 뽑힌 헌터들이 가장 앞에서 녀석의 주의를 끌어 주면, 나머지 팀들이 녀석의 측면에서 단숨에 공격할 거예요.”
협회에서 준 자료에는 ‘녀석을 단숨에 죽임으로써 사냥에 성공했다’라는 말로 끝나 있었다.
결국 장기전은 금물, 속전속결이 최선인 것이다.
“좋아. 난 찬성!”
가장 위험한 하이퍼맨 팀장 노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른 팀장들도 이렇다 할 이견 없이 내 작전에 찬성했다.
정면 조의 멤버는 노구를 포함한 하이퍼맨 10명, 검은 과부들의 박유화, 한광일을 포함한 반도의 자식들 9명, 세손가락의 다움 형. 총 21명으로 정해졌다.
측면조의 멤버는 검은 과부들의 최향자와 장마리, 세손가락의 주아라, 그리고 우리 팀에서 루호, 호규, 유정, 아란, 변해라. 총 8명으로 정해졌다.
마지막으로 후방조의 멤버는 지휘를 맞은 나와 더불어 치료술사인 한돈 아저씨, 모배구를 포함한 최고의 최고 4명, 세손가락의 문일, 짐꾼인 불타는 고구마 4명. 총 11명으로 정해졌다.
“그럼 각자 장비 챙겨서 문 앞에 서세요. 현재 오후 1시. 오후 1시 30분까지 준비를 마쳐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각 팀장들은 서로의 팀으로 돌아갔다.
팀끼리 띄엄띄엄 모여서 각 팀장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모습이 무슨 선생님 기다리는 초등학생들 같다.
우리 팀으로 가자마자 제일 먼저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끌끌끌! 어떠냐? 큰물에서 놀려니까 힘들지?”
“조금요.”
때마침 커다란 트럭 하나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바로 변해라와 세바스찬의 등장!
기다리던 비장의 무기가 온 것이다.
“드디어 임시 멤버가 오셨네요.”
변해라는 트럭 보조석에서 내린 후 우리에게 다가왔다.
“잘 부탁해요.”
변해라는 고개만 까딱거리며 인사를 했다.
다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인사를 받았지만, 아저씨만은 그것을 고깝게 여겼다.
“어린놈의 자식이……! 똑바로 인사 안 해? 그게 지금 생사를 같이 할 사람들한테 인사하는 거냐?”
오, 웬일로 옳은 말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