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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83화 (83/250)

83화

83화

“그러게요. 이런 건 또 처음인 것 같아요.”

저녁을 짓는 밥솥 근처에 대기 중인 하이퍼맨 팀원들, 벌써 텐트에 들어가 눈을 붙이는 최고의 최고 팀원들, 루호는 밥솥을 지키고, 호규는 찌개와 국의 중간 정도 되는 국물 음식을 만들고 있다.

유정은 빠르게 칼을 휘둘러 햄을 썰고 있고, 아란은 언니가 속한 세손가락과 함께 수다를 떨고 있었다.

“빨리 밥이나 먹었으면 좋겠구나. 저 녀석들도 배가 많이 고플걸?”

아저씨가 가리킨 것은 바로 불타는 고구마.

거대 배낭에서 해방된 녀석들은 그냥 맨바닥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점 없는 눈동자와 창백한 얼굴, 그리고 짙게 농축된 땀. 내가 짐꾼이었을 땐 녀석들보다 더 나약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녀석들은 분명 앞으로 더 강해질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성실하게 살면 충분히 될 재목이다.

저녁 식사는 김치, 밥, 그리고 일명 정체불명 찌개. 의외인 맛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규한테 이런 요리 실력이? 그냥 헌터 말고 식당을 해도 될 정도다. 부대찌개의 감칠맛, 김치찌개의 얼큰함, 그리고 청국장의 구수함. 거기에 홍합탕의 시원함까지!

아저씨는 밥과 찌개를 세 번이나 새로 받아 먹었다.

“저 녀석…… 설마 세 달 동안 요리 수행을 한 건 아니겠지?”

아저씨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호규를 째려보면서도 숟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그야말로 마성의 찌개, 이름처럼 정체불명의 매력이었다.

오늘 밤 불침번은 1시간씩 돌아가며 짧게 서기로 했다. 일단 처음 4시간은 짐꾼인 불타는 고구마에게 양보하는 것으로 했다. 녀석들은 짐꾼인 자신들이 불침번까지 서야 된단 사실에 불만을 토로했지만, 딱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거부하면 곧바로 ‘최향자’니까!

그래도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불침번을 선 사람도 충분히 잘 수 있도록 내일 기상 시간은 무려 오전 10시로 정했다.

불타는 고구마 다음은 제비뽑기를 통해 적당히 뽑기로 했다. 불침번 시작은 오후 10시, 끝나는 것은 오전 6시. 추가로 필요한 사람은 넷. 남은 36명 중에 겨우 4명이다.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음모가 분명해. 날 방해하려는 국가적 음모라고!”

우리 팀에선 딱 한 사람, 한돈 아저씨가 걸렸다. 그리고…….

“어머나, 세상에! 이게, 이게 뭐야? 난 안 돼! 수면 부족은 피부 미용의 적이라고!”

반도의 자식들에서 한광일이 걸렸다. 다른 두 사람은 하이퍼맨 한 명과 또 다른 반도의 자식들 팀원이었다.

모두가 잠자리에 든 시간.

2인용짜리 텐트에 나와 아저씨가 자리를 잡았다. 아저씨는 눕자마자 코를 골면서 깊은 잠에 빠졌다. 다른 건 몰라도 저 빠른 숙면 체질만큼은 정말 부럽다.

그나저나 박장이랑 협회 요원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솔직히 저녁에는 야영장으로 와서 합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주차장에서 만난 것을 끝으로 한 번도 보질 못했다.

“우리가 모르는 틈에 당한 건 아니겠지?”

그 정도로 허당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아마 숲에서 노숙하는 거겠지? 그래, 그런 걸 거야. 그래도 명색이 협회 요원인데…….

정확히는 헌터 협회 한국 지부 전략수습부 소속.

“음냐, 음냐.”

아저씨의 쩝쩝거림이 의외로 백색소음처럼 작용한다. 소리가 귀에 들리긴 하는데, 딱히 거슬리지 않는다.

“음냐, 음냐……. 우동사리…….”

우동사리? 포장마차 꿈이라도 꾸시는 건가?

“음, 음……. 우동사리를 뽑아 주마. 이 개 같은……!”

뭘 뽑아?

“감히…… 네깟 놈들이…… 감히…… 그런 끔찍한 짓을……!”

뭐지? 무슨 소리야? 김익조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처음엔 아저씨의 기억에 호기심이 있었다.

김익조와의 일도 그렇고, 아저씨의 과거도 그렇고 수수께끼투성이다.

요즘 들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예전엔 그저 아저씨를 존중하기 위해 기억을 함부로 읽지 않았다면 지금은 두려워졌다.

아저씨의 정체, 그 진실이 혹시라도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아저씨를 외면해야 할까? 멀어져?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도 쉽지 않다.

아저씨에게는 빚이 많다. 아저씨는 언제나 날 도와주셨고, 최소한 나에게 있어선 늘 성의 있게 대해 주셨다.

“애매하네.”

“끌끌끌…… 어린놈의…… 한심하고…… 역겨운…… 기회주의적…… 기생충…… 쓰레기…….”

쓰레기? 그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도대체 누굴까? 감히 전설의 ‘안 타는 쓰레기’에게조차 ‘쓰레기’라고 불릴 정도라니?

분명 엄청난 인간쓰레기일 것이다. 역시 뭐든지 밑바닥 밑엔 더한 밑바닥이 있는 모양이다. 하하, 이 말은 아저씨한테 절대 하면 안 되겠지?

혼자 소리 없는 폭소를 터뜨리며 편안히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 일찍부터 모이고, 이동하고, 연합하고, 또 이동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이 피곤한 상태였다.

다음 날.

피로에 의한 숙면 덕에 다들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아침밥은 간단하게 라면. 다행히 다들 컨디션은 최고였다. 야영장을 정리한 후 다들 한 번 더 장비를 점검했다. 그리고…….

이제 진짜 결전의 시간이다.

“찾았습니다!”

유리 돔 앞에서 대기한 지 약 20분. 정찰을 나간 루호와 유정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나이트윙으로 추정되는 괴물이 바오밥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강하면 강할수록 혼자 넓은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 괴물의 본능 중 하나다.

협회에서 보내 준 자료에 의하면 이 부근이 확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발견한 나이트윙이 우리가 찾는 개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미스터 버드란 놈이 안 보인다는 것. 루호와 유정은 나이트윙 외에 다른 것은 보지 못했다.

일단 정상적인 사냥을 진행하기로 했다. 여차하면 어딘가 숨어서 우리를 엿보고 있을 요원들이 도와줄 것이다.

유리 돔을 떠난 우리는 어느 바오밥나무 아래 멈췄다.

넓은 초원, 드문드문 서 있는 검은색 바오밥나무, 그리고 40명의 헌터. 밝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온통 찍힌 자국으로 가득한 바오밥나무의 꼭대기, 거기에 군청색으로 번쩍이는 뭔가가 있었다.

“저거구나.”

금속처럼 반짝반짝 햇빛을 반사하면서, 직각의 형태가 군데군데 보이는 육각형의 물체.

바로 나이트윙이었다.

지금은 아마 수면 중, 몸을 말고 있는 형태일 것이다. 이제 녀석을 땅으로 내려오게 해야 한다.

“최루탄 준비!”

우리는 가져온 최루탄을 바오밥나무 아래에 쌓았다.

약 50여 개의 최루탄이 쌓였고, 불을 붙일 날 제외한 모두가 나무에서 멀리 떨어졌다. 일단 팀장들끼리 무전기를 하나씩을 나누어 가졌다.

“진형을 갖추세요! 곧 내려올 거예요.”

곤히 자고 있는 녀석을 자극하는 일인 만큼 그 여파가 상당히 클 것이다. 미쳐 날뛰는 괴물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내 말에 다른 사람들은 4갈래로 흩어졌다.

일단 나무를 바라본 채 일렬로 똑바로 선 정면조. 그 양옆에 서서 언제라도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2개의 측면조. 그리고 상당히 먼 뒤쪽에 물자와 도구를 갖고 대기 중인 후방조.

“파이어!”

너 죽고, 나 살자! 최루탄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연기가 폭발적으로 크게 일며 나무를 감쌌다.

연기가 커지는 것을 확인한 후 재빨리 후방조 쪽으로 달렸다.

“저게 뭐지?”

누군가의 목소리. 모두들 목소리를 따라 어딘가로 시선을 모았다.

후방조에 합류한 후 나도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게 뭐야?”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최루가스는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 육각형 물체를 완전히 뒤덮었다. 그러나 애초 계획과는 달리 나이트윙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고, 대신 뭔가가 연기를 뚫으며 쭉 내려오고 있었다.

겉보기엔 특수 고무로 만든 검은색 끈. 끝엔 원뿔 형태의 거대한 물체가 달려 있다.

원뿔도 나이트윙의 몸처럼 햇빛을 반사하는 것으로 볼 때 비슷한 물체인 것 같다. 무슨 다우징 같기도 하고, 루호가 쓰는 유성추와 비슷해 보인다.

“저런 건…… 정보에 없는데?”

처음으로 엇나간 계획. 나이트윙의 몸과 연결된 끈은 쭉 늘어져서 끝에 달린 원뿔을 땅바닥까지 내렸다. 그 모습에 누구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고, 나 역시 함부로 지시를 내릴 수 없었다.

“일단 다들 대기하세요!”

무전기에 대고 말하자 각 팀장들의 대답이 돌아왔다. 저 물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되지 않는 한 다음 계획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앗?”

내려온 원뿔과 불이 붙은 최루탄 더미가 닿는 순간, 갑자기 검은 끈이 크게 요동치며 원뿔을 휘둘렀다.

원뿔은 빠르게 움직이며 최루탄 더미를 쳐 냈고, 최루탄은 뿔뿔이 흩어지며 연기가 꺼지고 말았다.

“한 방에…… 불을 껐어?”

오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불길하다, 불길해! 원뿔은 최루탄을 없앤 후 더듬듯이 주변 땅을 찔러 댔다.

아무래도 저 원뿔엔 감각기관은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원거리에서?

“사격 가능한 인원 준비해 주세요! 원뿔 위에 있는 끈을 조준!”

각자 가지고 있는 총으로 줄을 겨눴다. 원뿔은 땅을 마구잡이로 찌른 후 잠시 멈춘 상태, 원뿔을 조종하는 줄도 지금은 휘청거리지 않고 있었다.

만약 저 원뿔과 줄이 나이트윙의 신체 부위라면……. 원뿔의 경우는 본체와 비슷한 강도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줄을 노리는 것이 합당하다. 신축, 수축을 반복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연약’하단 뜻.

아마 특수 고무 정도의 강도를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적어도 원뿔을 쏘는 것보단 검은 줄을 쏘는 것이 더 낫다.

“발사!”

내 구호에 맞춰 각 조별로 총성이 울려 퍼졌다.

내 예상대로 총알 세례를 받은 검은 줄은 잠시 버티는 것 같다가 툭 끊겼고, 원뿔은 똑바로 떨어져 나무 앞에 꽂혔다.

“좋았어.”

그럼 다시 최루탄? 최루탄을 다시 설치하려던 발길이 멈췄다.

“저게…… 뭐야?”

최루가스가 사라지고 드러난 육각형의 본체에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

육각형에서 뭔가가 ‘돋아나’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키……키……키…….”

저 웃음소리! 최향자의 기억에서 본……. 육각형에서 돋아난 것은 사람의 상반신, 정확히는 ‘붕대’를 두른 남자였다.

붕대의 흰색과 나이트윙의 군청색이 극과 극으로 갈리며 너무나 눈에 띄었다. 합체라도 한 건가? 저게 녀석이 괴물을 길들인 비결? 그렇지만 저게 변해라의 능력보다 월등하다고 할 수 있나?

붕대남, 미스터 버드는 우리를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아주 인상적이야. 마침 너희 같은 녀석들이 필요했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마치 소리가 확대된 것처럼 우리들을 짓눌렀다.

젠장! 나도 모르게 주위를 살폈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미스터 버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사실을 전부 알고 있는 최향자, 그리고 항상 침착한 루호뿐이었다.

“끌끌끌! 저건 또 뭐야? ‘타는 쓰레기’인가? 불이 붙으면 잘 타게 생겼는데?”

유독 아저씨만 함박웃음이다. 흠, 타는 쓰레기라……. 좋은 별명이네.

아저씨 말이 들린 걸까? 미스터 버드의 입이 쩍 벌어지며 뱀처럼 긴 혀가 입 밖으로 기어 나왔다.

“키키키! 좋아, 그럼 잘 부탁해. 쓰레기들끼리 말이야!”

미스터 버드의 몸이 도로 나이트윙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뭉쳐 있던 육각형이 꿈틀거리며 본모습으로 돌아갔다.

육각형의 정체는 바로 나이트윙이 몸을 구부리고 있던 것. 원래 형태로 돌아온 나이트윙은 바오밥나무에 난 흔적처럼 발톱으로 나무를 찍으며 아래로 내려왔다.

육중한 크기와는 다르게 날렵한 움직임. 와, 젠장. 드래건 때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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