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86화
나이트윙의 눈가리개가 위아래로 벌어졌다.
마치 생물의 입이 열리듯 갈라진 갑옷, 그 속에 드러난 것은 바로 우리가 이제껏 힘들게 상대해 온 녀석의 맨얼굴이었다.
지금까지 꽁꽁 숨겨 놨던 얼굴을 왜 이제 와서……?
유리알 같은 눈에 들창코, 거기에 쫙 찢어진 입. 특히 입을 보고 있으니 미스터 버드가 생각난다.
기분 나쁘게 큰 입. 나이트윙은 그 입을 벌리며 그 안에서 뭔가를 발사했다.
“윽!”
음파란 즉, 소리의 움직임이자 공기의 떨림. 그리고 거기서 사람의 감각기관이 감지할 수 없는 높은 주파수의 음파를 ‘초음파’라 한다.
무광탄과 비슷한 파동의 힘. 다만 무광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광탄은 압축된 것이 폭발하는 것이고, 초음파는 지속적으로 떨린다는 것.
“큭?”
지금 나이트윙이 뱉는 초음파의 경우에는 무려 사람이 들을 수 있다. 아주 고통스럽게!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지만 소용없었다. 초음파는 우리의 몸속으로 직접 파고들어 몸 안에 흐르는 피를 타면서 사정없이 신체 내부를 유린했다.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 녀석은 눈가리개가 갈라지면서 만들어진 입의 형상과 그 안에 있는 진짜 입, 두 개의 입 벌림을 조절해 가며 교묘하게 위력을 높이고 있다.
“이런 미친……!”
초음파가 미친 듯이 대기를 흔들지만 지상은 평온했다. 기껏해야 풀잎이 떨리는 것 정도다. 그러나 목표인 우리에게는 미치고 환장할 공격이다.
이건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다들 무기를 놓은 채 땅바닥을 뒹굴었다.
고막에서부터 시작된 찢어질 것 같은 고통, 할 수만 있다면 귓속으로 손을 넣어 달팽이관을 주무르고 싶다.
“으으으윽!”
어금니를 꽉 물면서 필사적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머릿속이 찌릿찌릿한 가운데 간신히 시선이 회복되었고, 머리를 떨면서 상체를 일으켰다.
“우웁……!”
토할 것 같다. 그냥 도로 누울까?
나이트윙은 여전히 요지부동. 아무래도 초음파를 쓸 땐 움직일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불리한 상황.
다들 누워서 귀만 막고 있다. 한순간의 희망이 몇 초도 안 돼서 절망으로 바뀌어 버렸다.
“후, 후방조는……?”
경련이 일어난 목을 억지로 돌려 뒤를 돌아봤다. 다행히 나이트윙의 초음파는 후방조에게까지 미치지 않았는지 다들 무사해 보였다.
“젠장……!”
망할 박쥐, 미라 놈. 이렇게 재미없게 나온다 이거지? 그렇다면 나도 생각이 있어!
기어서 호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거의 기절 직전인 호규의 뒷덜미를 잡은 채 한 손으로 기어서 후방으로 이동했다. 젠장, 젠장……! 예비군 훈련 때 포복한 게 생각난다.
북한하고 종전 상태인데 왜 예비군이 필요한 거야? 어차피 괴물하고 전쟁하면 땅개는 다 죽는다고!
망할.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어서 와라.”
우릴 발견한 한돈 아저씨가 접근, 내가 끌고 온 호규를 들어서 후방으로 옮겼다. 응? 저는요?
결국 난 내 힘으로 후방조에 도착. 그리고 한바탕 위장 속을 비워 냈다.
남들의 시선 따윈 상관없이 한바탕 쏟아 내니까, 속이 좀 가볍게 느껴진다.
“너희는 그나마 거리가 있어서 괜찮은 거야. 다른 녀석들은 꼼짝도 못 하고 있어.”
최고의 최고 팀장인 모배구가 망원경으로 전방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최고의 최고 팀원 하나가 내게 다가와 체력을 회복시켜 주었고, 덕분에 한결 기분이 편해졌다.
“끌끌끌! H력도 필요하지?”
아저씨가 한손으로는 호규, 다른 손으로는 내 몸에 댄 후 H력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다른 치료술사의 경우 체내로 넣어 주는 H력이 곧장 분해되어 일종의 생명력으로 변환된다. 그러나 아저씨의 H력은 분해되지 않고 곧장 체내로 흡수, 고스란히 내 H력이 된다.
“아아, 좋다!”
뭉친 근육을 꾹꾹 누를 때 밀려오는 쾌감! H력이 회복되자마자 당장 신체가 안정되는 것이 전신의 근육에서부터 느껴졌다.
호규도 금방 회복, 우리는 한 번 더 함께 돌진할 준비를 했다.
“호규 씨, 이제 호규 능력을 보여 줄 때예요. 팍팍 질러요, 알았죠?”
아끼다가 똥 돼요. 이렇게 된 이상 소리 대 소리, 호규의 목소리로 나이트윙의 초음파를 억제하는 방법밖에 없다.
저 벌려진 얼굴이야말로 녀석의 필살기이자, 약점. 일반적인 피부도 강할 테지만, 그래 봐야 갑옷 피부만 하겠어?
어쨌든 눈가리개가 벌려져 눈코입이 다 드러난 안면을 노리는 것이 최선책이다.
“팀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호규가 후드를 벗으며 투지를 불태웠다.
헝클어진 머리와 빛나는 눈동자. 왠지 이제야 겨우 호규란 놈의 진면목을 보게 된 것 같다. 호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해요.”
“이거 가져가라!”
아저씨가 우리에게 뭔가를 던졌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온 작은 조각, 그것은 바로 귀마개였다.
“끌끌끌! 없는 것보단 나을걸? 어쨌든 근접해야 하잖아?”
그렇긴 하죠! 아저씨를 향해 엄지를 세웠다.
우리는 귀마개를 귀에 틀어넣은 후 다시 한 번 나이트윙을 향해 돌격했다. 달리면서 무전기로 모두에게 작전을 알렸다.
누구에게서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큭!”
가장 먼저 눈이 울렸다.
초음파의 파장에 전신이 진동. 금방이라도 실핏줄이 터질 듯 혈압이 높아지는 게 느껴진다.
마치 공기로 가득 찬 풍선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나이트윙과의 거리는 불과 5m. 다행히 우리와 녀석의 직선 사이에 아무도 없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와중에도 다들 알아서 잘 기어간 모양이다
그때 녀석이 우릴 발견했다! 난 즉시 호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지금!”
호규에게 신호를 줌과 동시에 직각으로 방향을 튼 후 나이트윙의 측면으로 향했다. 그리고 3초 뒤 나이트윙의 눈가리개가 열린 뒤 처음으로 땅의 울림이 멈췄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해냈구나.”
감탄은 짧게. 호규의 목소리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제 ‘우리’ 차례다.
내가 나이트윙의 측면에 선 것을 시작으로 하나둘 전투가 가능한 인원들이 모였다.
정면조는 약 절반, 측면조는 2명이 전투 불능인 상황. 후방조에서 불타는 고구마 4명이 합세했다.
목표는 당연히 나이트윙의 맨얼굴. 서둘러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호규가 버티는 동안 우리는 사정없이 녀석의 얼굴을 공격했다.
이판사판! 이번엔 무광탄이 아닌 양손으로 광탄을 날렸다.
발사, 발사, 발사! 무광탄과 달리 광탄은 충전할 필요가 없어 편하다.
김대팔에 비하면 한참 느리지만, 내 광탄도 꽤 쓸 만하다. 더구나 H력은 풀 충전! 몸도 가뿐하다.
두 음파가 힘을 겨루는 동안 우리의 방해에 의해 조금씩 나이트윙의 초음파가 밀리기 시작했다.
역시 다구리엔 장사 없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힘, 확실한 한 방이 부족하다. 시간이 늘어질수록 녀석에게 유리할 뿐이다.
“하는 수 없지.”
광탄 쏘는 것을 포기, 무작정 나이트윙에게로 접근했다. 그리고 나이트윙의 다리에 직접적으로 접촉!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풀 충전은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지금까지 쭉 남의 H력을 얻어 쓰면서 한 번도 꽉 차 본 적이 없다.
그도 당연할 것이 H력이란 본래 H세포가 가진 힘, 일종의 생명력이다.
부족해서 곤란한 적은 많이 봤어도 충분해서 문제가 생긴 것을 본 적은……. 초음파를 쏘기 전 나이트윙의 눈가리개에선 분명 ‘아지랑이’가 나왔다.
그것은 H력의 흔적, H력이 발동되면서 생기는 일종의 표식이다. 괴물이 H세포를 가졌단 소리는 들어 본 적 없지만, 만약 그게 미스터 버드 때문이라면…….
딱 하나 놈을 멈출 방법이 있다.
나이트윙의 등 뒤로 뛰어올라 목덜미에 착지, 양손을 놈의 머리에 댔다.
“간다!”
처음으로 해 보는 풀 충전! 예전에 아저씨가 자신의 H력을 잔뜩 주입했음에도 꽉 차지 않은 용량이다.
너 죽고, 나…… 에라, 모르겠다!
그냥 다 죽자! 양손이 빨판처럼 나이트윙의 갑옷 피부에 흡착, 찌릿한 감촉과 함께 몸 안으로 정체불명의 H력이 빨려 들어왔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던 종류, 보통 능력자의 것이 맑은 물이라면 이건 구정물에 가깝다.
지긋지긋한 H력. 난 이게 없어서 늘 문제였는데, 이젠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되겠구나!
“하하하, 최고야. 아주 좋아!”
어디 한번 분에 넘칠 만큼 가져 보자. 내 흡수에 나이트윙의 초음파가 빠르게 작아졌다.
역시 이 초음파는 H력에 의한 능력. 이 개체는 평범한 나이트윙보다 훨씬 강력한 녀석이었다.
협회에서 준 문서의 정보대로였다면 진작 사냥이 끝났어야 한다.
혈압이 높아지면서 뜨거운 피가 순환하는 것이 느껴진다. 피가 얼마나 빠른지, 인체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심장의 펌프, 감각기관의 예리함, 뼈와 근육의 탄탄함까지. 머리카락이 빳빳해져서 고슴도치가 될 것 같다.
몸속이 H력으로 충만한데도 흡수는 계속된다. 그러자 눈앞이 흐려지면서 전신에서 아지랑이가 흘러나오기까지 한다.
거기에 새로운 기억이 주입된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미처 내가 다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들. 그런 것들이 엄청나게 들어온다.
결국 나이트윙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호규의 고함이 나이트윙을 강타, 얼마나 소리가 큰지 나이트윙이 서 있는 땅까지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리고 그 충격에 나이트윙이 또 한 번 뒤로 넘어졌다.
“아이고!”
나이트윙과 함께 쓰러지니 정신이 없다.
몸에 힘이 넘치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만큼 주체가 안 된다. 더욱이 나이트윙의 목에서 떨어졌는데도 몸에 상처 하나 없단 것이 참 대단하다.
이제 좀 죽어라, 제발! 다들 미친 좀비 떼처럼 나이트윙 위로 올라갔다.
체력은 고갈, 정신은 황폐. 이젠 힘든 것보단 귀찮다. 죽음의 공포도, 괴물의 위협도 인간의 ‘귀찮음’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더블 무광탄을 먹여 주려던 찰나 최향자를 보고는 그만 생각을 접었다.
다들 기어서 올라가는 와중에 최향자는 혼자 펄쩍 뛰어서 나이트윙의 머리 위에 착지했다.
최향자의 얼굴이 평소보다 더 딱딱하다. 까지고 피가 나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은 표정.
역시 원한의 힘은 무섭다. 아마 지금 최향자 눈에 나이트윙의 얼굴은 미스터 버드 그 자체로 보일 것이다.
“잘 가라.”
최향자의 대검 끝이 나이트윙의 얼굴을 찔렀다. 그러자 나이트윙은 크게 한 번 몸을 움찔거리더니 그대로 축 늘어졌다.
다들 뛸 듯이 기뻐하며 방방 뛰었다. 역시 검은 곰! ‘한 방’이란 범위 안에서는 최강이다.
더 이상 서 있을 힘이 없는지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이트윙이 쓰러진 것을 본 후방조가 전원 뛰쳐나와 부상자를 날랐다.
“아주 잘했어.”
듣는 순간 소름이 쫙 뻗치는 목소리. 나이트윙 주위에 있던 십여 명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아오, 이 녀석을 잊어버리고 있었네.
“키키키!”
죽은 나이트윙의 얼굴, 최향자의 바로 옆에 미스터 버드가 서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붕대를 감은 미라와 검은 곰.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봤다.
“너…… 이 새끼!”
최향자가 대검을 고쳐 쥐어 높이 들었다. 단번에 내려칠 기세다.
“오랜만이야, 검은 곰.”
미스터 버드가 최향자에게 인사를 건넨다? 역시 최향자의 기억 속에서 본 게 녀석이 맞구나!
“죽은 애인은 잘 계시나?”
미스터 버드의 입이 쫙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