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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95화 (95/250)

95화

95화

카멜레더는 완전히 묵사발이 나고 있었다.

“히히히…….”

주아라가 웃고 있다?

“히히히!”

카멜레더가 상처를 입으면서 붉은 피가 여자들에게 튀겼다. 그리고 주아라는 예전에 내가 알던 그 황홀한 얼굴로 자신에게 묻은 피를 한 손으로 문지르며 더욱 넓게 발랐다.

“죽이자!”

주아라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죽인다고? 주아라의 양손으로 아주 찐한 아지랑이가 보였다.

다른 여자들이 그냥 화풀이 정도라면 주아라가 모은 H력은 살상의 영역, 완전히 이성을 상실한 선택이다.

“이런 미친…….”

기운 차렸다고 안심했더니!

“주아라를 잡아!”

우리가 달려가기엔 늦었다. 일단 여자들에게 소리쳐 주아라를 제압해 주길 바랐다.

“언니를 잡아요!”

아란이 쌍둥이에게 말하며 자신이 먼저 언니 주아라의 양팔을 잡았다. 그러나 아란의 실력은 아직 언니에게 미치지 못했다.

“꺼져!”

주아라는 오로지 힘으로 자신을 구속하려는 세 사람을 밀쳤다.

아란과 아미니, 그리고 아미리는 주아라에게 밀려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분명 셋은 H력을 이용해 능력발동인 상태였다.

“히히히!”

주아라가 이번엔 동공이 풀린 카멜레더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대팔 씨, 아라를 향해서 쏴요!”

김대팔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김대팔의 손에서는 광탄이 발사, 주아라의 안면에 제대로 명중했다.

“애를 말리라고 했지, 죽이라고 안 했…….”

김대팔은 내 말을 끊으며 주아라를 가리켰다.

“안 죽었습니다. 이렇게 약하게 쏜 광탄에는 아무도 안 죽습니다.”

헉!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주아라의 모습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혀를 축 내민 채 기절한 카멜레더. 그 카멜레더를 밟고 선 주아라. 그녀의 얼굴은 광탄에 의해 까맣게 그슬렸다.

주아라는 자신의 손에 카멜레더의 피를 묻혀 얼굴에 바르고 있다.

붉게 충혈된 눈과 메기처럼 벌어진 입, 그리고 얼굴의 빈틈을 메우는 피. 주아라는 우리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히히히! 같이 놀래? 놀아 보자!”

김대팔과 호규는 즉시 포복, 주아라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상팔 씨, 살아남으세요.”

“팀장님, 그럼 이만…….”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주아라는 온몸에서 아지랑이를 뿜어내며 나에게 걸어왔다.

“각오해, 김상팔!”

역시 나한테 악감정이 있었구나.

선빵 필승! 주아라가 나에게 오기 전에 내가 먼저 주아라에게 덤벼들었다.

“하압!”

왼손에 주먹을 쥐어 주아라의 복부에 깊게 질렀다.

“윽!”

배를 맞은 주아라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입에서 침이 질질 흐른다. 내가 아는 주아라라면 이런 뻔한 공격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마무리다!”

오른손으로 당수를 내려쳐 주아라의 뒷목을 때렸다. 그러자 주아라의 머리가 가볍게 떨리더니, 힘이 빠져 축 늘어졌다.

“휴우!”

이것으로 오늘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세 종류의 괴물은 모두 생포에 성공했고, 주아라와 공미의 투지도 어느 정도 되살아났다.

앗! 새로운 문제가 하나 생겼다.

“어떻게 우리 언니를…….”

기절한 주아라와 날 번갈아 바라보는 아란. 그리고 아란의 뒤에 서서 팔짱을 낀 쌍둥이 자매.

“여자를 때리다니……!”

“실망이에요, 팀장 오빠!”

미치겠네. 결국 세 사람의 집단폭행에 쓰러지고 말았다. 비겁하게도 김대팔과 호규는 날 구하는 대신 카멜레더를 옮기는 쪽을 선택했다.

그렇게 의뢰를 완료됐다.

며칠 뒤. 간만에 아저씨와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장소는 무려 러시아 요리 전문레스토랑. 예약한 사람이 아저씨인 것을 감안하면…….

불길하다.

“이참에 그냥 저희를 정식 팀원으로 넣어 주시면 안 될까요?”

“응?”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 우연히 불타는 고구마를 만났다. 그리고 오박으로부터 생각지도 않은 질문을 받았다.

“뭐라고?”

“저희를 헌한발의 정식 팀원으로 삼아 달라고요!”

그러고 보니, 아직 팀 이름 변경 신청을 안 했구나. 이놈의 헌한발, 꼭 바꾸고 말 테다!

주먹을 불끈 쥐면서 이를 갈았다.

“안 돼! 미성년자는 정식 헌터가 있는 팀에선 정식 팀원으로 못 받아 줘.”

그게 협회의 규칙이다.

“팀장 오빠, 참 서운해요.”

“저희가 싫으세요?”

쌍둥이가 잽싸게 내 양옆으로 붙었다. 얘네 이젠 아주 노골적이다. 싫다고 하면 놔주려나?

“어른 되고 생각해 보자.”

엄연히 따지자면, 미성년자를 데리고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

하다못해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하며, 술 담배를 파는 곳에서는 그마저도 절대 금지인 게 현행법이다.

아직도 헌터에 관한 법률에는 구멍이 참 많은 것 같다.

불타는 고구마와 함께 레스토랑에 도착,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다른 곳과 차단된 방으로 들어갔다.

레스토랑에도 이런 방이 있구나?

“팀장이 꼴찌로 오면 어떻게 해? 빠져가지곤……!”

한돈 아저씨가 버럭 소리를 쳤다.

“딱 맞춰 왔는데요?”

심지어 3분 전인데요?

“최소한 10분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어야지. 끌끌끌!”

그냥 단순히 놀리시는 겁니까?

“그 애들은 뭐야? 이젠 여자들 끼고 다니는 거냐?”

이 아저씨가 어디서 큰일 날 소리를? 황급히 불타는 고구마에게서 떨어졌다.

“우연히 만났어요!”

자리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양손에 깍지를 껴 그 위에 턱을 받쳤다.

“끌끌끌! 이왕 온 김에 비싼 것 좀 먹고 가라. 맛은 보장 못 하지만…….”

직접 예약한 곳인데, 맛을 보장 못 한다굽쇼? 일단 다 같이 자리에 앉았다.

“협회에서 문자가 왔어요. 저번 랭킹 의뢰로 점수를 꽤 땄나 봐요.”

실제 랭킹 헌터들은 랭킹 의뢰를 잘 수행하지 않는 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좋아, 좋아. 팀장 랭킹이 올라가면 팀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아저씨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왜 갑자기 안 어울리시게 분위기를 잡으시는 거야? 그래 봤자 난쟁이 똥자루이신데…….

웨이터가 오고, 아저씨는 우리들 머릿수대로 음식을 주문했다.

유창하게 러시아어로 된 음식을 주문하는 아저씨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뭐랄까, 국밥집에 가서 주인아줌마한테 ‘여기 토렴해요?’라고 묻는 외국인을 보는 것 같다.

“그럼 밥 먹기 전에 이야기를 할까?”

“무슨 이야기요? 오늘 그냥 밥 먹자고 부르신 거 아니에요?”

제삼자가 세트로 있는 와중에 웬 이야기? 설마 심각한 건가?

“주아란 말인데…….”

아란?

“아란 양이 왜요?”

“걔 언니를 팀에 넣는 게 어떻겠냐?”

“주아라를 우리 팀에요?”

“어차피 세손가락도 해체했고, 자매가 둘 다 있으면 좋지 않겠냐? 아란이도 널 잘 따르고…….”

아란이가 날 잘 따른다고?

“글쎄요…….”

일단 심호흡을 한 후 진지하게 고민했다.

주아라의 실력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주아라 정도라면 분명 우리 팀에 든든한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문제는 인성. 여태껏 생각한 것이지만, 주아라는 피를 보면 사람이 돌변한다.

그런 저돌적인 면이 돌격대장으로 제격이라 여태껏 세손가락의 사냥을 책임질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주아라가 곧 팀의 공격이‘었’다.

연합 사냥을 제외하면 우리 팀은 조금 변칙적인 방법을 선호하는 편.

사실상 방어, 공격, 지원이라는 삼박자와는 동떨어진 팀이다. 당장 우리 팀 멤버 중 방어를 전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상대의 약점을 공략해 철저하게 속전속결로 승부하는 쪽을 고집해 왔다.

물론 대부분 처음 계획과 다르게 결판이 났지만…….

“아라를 넣으면 너무 공격 위주가 되지 않을까요?”

반대는 아니다. 다만, 너무 한쪽으로 팀의 밸런스가 치우치는 것은 주의하고 싶다.

“끌끌끌!”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다. 그래서 한 명 더 추천하고 싶은 놈이 있어.”

아저씨는 의자 옆에 내려놓은 무식하게 큰 배낭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 녀석도 넣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

응? 쪽지를 받아서 아무 망설임 없이 펼쳤다.

“이 사람은……?”

쪽지에 적힌 이름은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역시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쪽지를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때마침 들어온 웨이터가 음식을 나르는 동안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 녀석도 예전에 랭킹 헌터였어. 너처럼 딱 100위였지.”

역시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내가 모르는 랭킹 헌터가 이렇게 바로 가까이에 있었을 줄이야.

그런데 왜 갑자기 이일이 생각나는 걸까?

“녀석은 아주 튼튼해. 그래서 지금도 가끔 스카웃 하러 사람이 찾아온다고 하더구나. 끌끌끌!”

튼튼함, 우리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다. 역시 방어를 전담해 줄 사람이 한 명 정도 있어야 든든하다.

그 점을 이번에 손평화의 로봇을 보면서 잘 배웠다. 이번엔 팔 하나가 아니라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가. 아직 죽긴 싫은데…….

“그럼 주아라 건은 이야기가 끝난 거냐?”

아저씨는 붉은 국물이 담긴 접시에 숟가락을 담갔다. 그리고 걸쭉한 국물을 떠서 한 입 크게 떠먹었다.

“예. 전 찬성이에요. 그리고 이 사람도 제가 직접 만나 볼게요.”

“그래, 그래. 그게 중요한 거야. 성의가 최고지! 물론 돈도 최고고……!”

‘성의’라…….

저번 사냥 때 생포한 불칸 중 가장 덩치 큰 녀석을 변태신 아저씨에게 넘겼다. 변태신은 아저씨는 고마워하시면서, 한편으론 씁쓸해하셨다.

‘해라가 과연 순순히 받아 줄까?’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얼굴. 거기엔 감히 그 어떤 의문이나 이의를 내밀 수 없었다.

아무래도 변해라하고도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불타는 고구마 4명은 웨이터가 가져온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아저씨는 그런 넷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너희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녀석들은 잘 퍼먹다가 아저씨의 질문에 흠칫 놀랐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얼굴을 맞대고 쑥덕거리다가 차례대로 대답했다.

먼저 오박.

“헌한발에 뼈를 묻겠습니다!”

나도 묻을까, 말까인데 네가 감히?

다음은 김미수.

“성인이 되면 꼭 여기 들어올 거예요.”

그래, 그 마음 변치 마라. 나중에 다른 곳에 스카우트 들어올 때 두고 보자.

쌍둥이 중 노란 머리인 아미리.

“제 몸을 바치겠습니다!”

안 바쳐도 돼. 받으면 김영랑법으로 안 끝나!

보라 머리 아미니.

“제 영혼을 바치겠습니다!”

한번 바쳐 봐라. 도대체 어떻게 바치나 구경 한번 해 보자.

역시 불타는 고구마답다고 할까. 답이 없다. 이 자식들 완전 꽉 막혔다.

“정 우리 팀에 들어오고 싶으면 정식 헌터 자격을 따. 그러면 언제든지 받아 줄게.”

따지고 보면 아란도 엄연히 미성년자다. 아란은 받아 주고, 이 녀석들은 안 받아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그럼 합격 못 하면 절대 못 들어가는 거예요?”

김미수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하아. 어쩐다?

“그건 아니고……. 정식 헌터가 아니어도 성인이 되면 받아 줄게.”

내 말에 오박이 냅다 손을 들었다.

“전 성인입니다!”

응, 아니야.

“넌 안 돼. 막내인 쌍둥이가 성인이 되면 그때 세트로 받아 줄게.”

오박은 허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쌍둥이 아미니, 아미리가 오박을 향해 한마디씩 내뱉었다.

“오빠, 사람이 분수를 알아야 하는 거야.”

“오빠는 우리보다 좀 떨어지잖아?”

풋.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나왔다. 예전에 오박처럼 잉여 취급 받았던 때가 생각났기 떄문이다.

“전 바빠서 먼저 일어나 볼게요.”

당장 조물주 의원으로 가야 했다. 아저씨 말대로 그 사람이 계속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있다면, 1초가 아까운 상황이다.

“잘 가라.”

아저씨의 인사를 뒤로하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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