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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96화 (96/250)

96화

96화

레스토랑과 병원의 거리는 걸어서 약 50분. 그러나 H력을 사용해 달리면…….

“10분 안에 돌파해 주겠어!”

지치지 않는 전력 질주, 그것이 가능한 게 바로 H세포의 힘이다.

“이럴 거면 그냥 전화로 알려 주시지!”

굳이 만나서 이야기할 내용이었나? 길 가는 행인은 곧 장애물. 지그재그로 방향을 틀면서 사람을 피했다.

평일이라 인도는 한산, 유일한 방해는 신호등뿐이었다.

“크윽, 확 무단횡단 할까?”

하고 싶다. 정말 간절히 횡단하고 싶다. 그러나 바로 맞은편 신호등 아래 경찰관이 서 있다.

이 망할 머피 놈의 법칙.

“크윽!”

초록 불을 기다리며 제자리 뛰기. 아직 여유만만이다. 옆에서 날 보는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진다.

나 말고도 일상생활에서 능력 쓰는 사람 많을 텐데?

그중 경찰관의 눈이 가장 껄끄럽다. 날 요주의 인물 보듯 하는 게 영 불편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뉴스에서 ‘능력자는 잠재적 범죄자’란 특집 기사를 다뤘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 어떤 식으로 취재를 했는지 아직도 그 충격이 가시질 않는다.

대충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선 헌터 전문 쇼핑몰에서 쇼핑을 하고 나오는 헌터를 기자가 고용한 실험맨이 급습, 그 사람이 갖고 있던 가방을 강탈해 도망간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미 여기서부터 잘못된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히 가방을 도둑맞은 헌터는 능력발동을 사용, 엄청난 속도로 실험맨을 따라잡는다. 이때 헌터가 실험맨을 따라잡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 둘이 함께 넘어진다.

실험맨은 넘어진 상태에서 반항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헌터는 결국 실험맨과 거친 몸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그러던 중 헌터의 과도한 힘에 실험맨이 부상, 이때 기자와 미리 대기 중이던 경찰이 함께 난입해 ‘헌터’를 체포한다.

실험이 끝나고 헌터가 어떻게 됐는지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기자는 뻔뻔하게도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잠재적 폭력 범죄자들이 많이 산재해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들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막장. 이 보도는 ‘반’능력자 집단에서까지 까이며 한동안 세간을 시끄럽게 했다.

만약 H세포를 가진 것만으로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한다면, 땅콩은 항로를 변경시키고, 야구방망이는 구타를 유발하며, 우유는 갑질을 하게 만들 것이다.

“좋았어!”

딴생각하는 동안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다시 전력 질주. 단숨에 조물주 의원에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접수처에는 아직도 ‘수습 간호사’란 명찰을 달고 있는 노건이 있었다.

언제나 여기 올 때마다 마주치지만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었다.

“면회 왔는데요.”

노건은 별다른 조치 없이 ‘휴게실’을 가리켰다.

“변해라 씨, 유정 씨. 두 분 다 휴게실에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또 봬요.”

얼른 휴게실로 직행, 다른 환자들과 함께 멍하니 TV를 보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변해라! 유정 씨!”

두 사람은 날 반갑게 맞아 주었다. 특히 변해라는 예전에 비해 훨씬 밝아져 있었다.

“오랜만이야.”

끝까지 반말이냐?

“어, 그래. 건강해 보인다?”

“언니랑 둘이 재미있게 지내서 그런가?”

“그래?”

앗! 잠깐, ‘언니’라고? 화들짝 놀라 유정을 바라봤다.

유정은 활짝 웃으며 변해라를 와락 끌어안았다.

“우연히 들키게 됐어요.”

“걱정 마세요. 언니 비밀은 제가 꼭 지켜 드릴게요!”

오, 생각보다 두 사람이 활기차다? 참 보기 좋은 광경. 흐뭇한 기운이 절로 느껴진다.

“불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불칸’이란 단어에 변해라의 얼굴에서 빛이 싹 사라졌다. 변해라는 유정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고개를 저었다.

“좀 더 생각해 볼게.”

역시 ‘세바스찬’의 트라우마가 컸던 모양이다.

“힘내.”

유정의 품 안에서 쑥 튀어나온 변해라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최대한 부드러운 손길로 변해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상팔아.”

내가 너보다 연상이야. 심지어 10살이나 많거든?

“그래. 얼른 나아라.”

유정과는 짧게 덕담을 나눴다.

“유정 씨도 얼른 나아 주세요. 유정 씨 빈자리가 너무 커요.”

빈자리 이야기는 진심이다.

“네. 저도 팀장님이 그리워요.”

두 사람에 대해선 괜한 걱정을 한 것 같다. 변해라와 유정은 내 예상과는 정반대로 아주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럼 이제 진짜 본론으로…….”

휴게실을 나와 다시 접수처로 돌아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은 오늘의 주요인물과 한 번 더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노건 씨.”

수습간호사 노건. 아니면 ‘광전사, 노건’이라고 불러야 할까?

사람은 의외로 쉽게 죽을 수 있다.

정말 재수가 없으면 길 가다가 껌을 밟고 미끄러져 뒤로 넘어졌는데도 이마가 터질 수 있다.

아니면…….

평소엔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이 갑자기 눈알이 뒤집혀 내 멱살을 잡고는 힘껏 집어 던져 벽을 뚫고 날아가 건물 외벽에 처박히게 할 수도 있다.

결론은 내가 반쯤 초주검이 됐단 것이다.

그 뒤, 정신을 잃은 날 의사 선생님이 치료해 주시고는 일이 일단락되었다.

“형?”

흠칫. 노건에게 두들겨 맞은 일로 심장이 긴장하고 있던 중 루호가 말을 걸어왔다.

“왜?”

“괜찮으세요?”

하하하. 지금 내 얼굴은 정상이 아니다. 벽으로 던져지기 전 노건에게 두들겨 맞아서 반창고와 멍이 얼굴을 뒤덮은 상태.

H력을 썼음에도 노건의 공격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렇게 무자비한 공격은 처음이었다.

“괜찮은 사람 하나 찾았는데, 너무 강해서 내가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노건 씨 말인가요?”

오늘은 헌팅페스티발이 시작되는 날. 다 함께 축제장으로 가는 밴 안이다.

이미 노건에 대해선 내 상처와 함께 우리 팀 전원이 알고 있었다.

참고로 오늘 운전은 내가 아니라 유정.

“그래. 그 사람, 정말 세.”

“다음엔 저도 함께 가요. 제가 지켜 드릴게요.”

루호가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했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너마저 다치면 내가 정말 괴로울 것 같아.

“끌끌끌!”

맨 뒷줄 자리에 앉은 한돈 아저씨가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도 제법인데? 그 광전사한테 당하고도 멀쩡하다니 말이야.”

얼굴이 함몰될 뻔했는데요?

“지금 불난 집에 유조차 떨어뜨리십니까?”

루호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한술 더 떠서 루호를 향해 검지를 뻗었다.

“나한테 그따위로 말하면 안 될 텐데?”

“무슨 뜻이죠?”

아저씨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지금 이 밴에 탄 사람들은 모두 내 ‘인질’이거든.”

인질? 오늘 밴에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타고 있다.

나, 루호, 아저씨, 호규, 유정, 아란, 주아라, 변해라, 공미, 그리고 불타는 고구마 4명.

총 13명이다.

주아라와 공미, 그리고 변해라는 우리 팀에 정식 합류했다. 이제 우리 팀도 제법 소규모에서 중규모 수준의 팀으로 커 가고 있다. 다만 불칸에 대해선 변해라가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인질이라니요?”

루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아저씨는 검지 이외 다른 손가락을 하나씩 펴기 시작했다.

난 본능적으로 그것이 어떤 행위인지를 깨달았다.

“카운트다운이다!”

모두에게 경고, 이건 사명감을 갖고 해야만 한다!

“무슨 카운트다운?”

앞줄에 앉은 변해라가 고개를 쭉 빼서 물었다.

“창문 열어. 방구총이다!”

앗! 모두가 그 말에 재빨리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저씨 손의 모든 손가락이 펴지더니…….

아저씨의 엉덩이가 가스를 살포했다.

육안으로 방귀가 보이진 않았지만, 1초도 안 되어 차 안의 공기가 따뜻해지는 것이 ‘촉감’으로 느껴졌다.

“이런 미친……!”

여자들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며 발버둥 쳤고, 남자들은 아저씨를 향해 주먹을 내밀었다.

“미치셨어요?”

“끌끌끌! 그래, 나 미쳤다. 어쩔 테냐?”

아저씨는 오히려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옛말에 ‘방귀 뀐 돼지가 성낸다.’란 말이 있었지?

“난 돼지가 아니야!”

뜨끔.

갑자기 아저씨가 날 향해 소리쳤다. 분명 혼자 속으로만 생각했는데?

“아, 아무 말도 안 했는뎁쇼?”

일단 잡아떼자. 의외로 아저씨는 쉽게 내 말을 믿었다.

“그래? 이상하다. 어디선가 날 보고 ‘방귀 뀐 돼지’라고 했는데…….”

아저씨의 말에 두 번 놀랐다. 독심술? 아저씨를 빤히 바라보는 동안 밴이 멈추고, 운전석의 유정이 말했다.

“도착입니다.”

“유정 오빠는 운전도 참 잘하시네요.”

아란이 엄지를 세우며 유정을 칭찬했다.

“오늘은 놀러온 게 아닙니다. 다들 이 점을 명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차에서 내리기 전 루호가 모두에게 주의를 주었다.

일반인에게 헌팅페스티발은 축제의 장이자 1년 중 가장 기대되는 유흥거리,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의 장이자 주 수입을 능가하는 부수입을 얻을 돈벌이 수단이다.

“지난번 나이트윙 때 너무 무리했어. 그 덕에 랭킹 헌터가 되긴 했는데…….”

그래도 길바닥 신세가 되지 않아 다행이다. 이른 아침임에도 주차장은 만원이다. 과연 빈자리가 있을까?

“일단 먼저 가 계세요. 주차하고 뒤따라갈게요.”

“부탁드려요.”

가득 찬 주차장에서 빈자리 찾는 그 짜증을 잘 알기에 유정의 희생이 너무나 값지게 느껴졌다.

주차장 상황으로 볼 때 최소한 30분은 돌아다녀야 할 것이다.

축제 개막식은 진작 끝났고, 오늘 주요 행사 중 하나는 아직 준비 중이었다.

“유정 오빠 기다리면서 구경 좀 해요!”

루호 말이 끝난 지 아직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아란은 자기 혼자 신나서 축제장으로 뛰어갔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네오강화도’ 한가운데, 섬 전체가 축제장으로 지정된 상태다.

“아란아! 여기서 미아 되면 못 찾아!”

언니 주아라가 아란의 뒤를 따라갔다. 오늘은 다들 평상복 차림, 무기나 사냥 도구는 그 소지와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그건 그렇겠지.

지금 강화도에 모인 인구는 족히 200만은 넘을 것이다. 관광, 협회, 치안, 의료, 소방, 정부, 종교 등등 여러 이유로 사람이 모여 있다.

오늘을 포함해 10일간 펼쳐질 축제에 정말 터무니없는 인구가 매료된 상태다.

“그냥 놔둬도 될까요?”

호규가 후드를 바짝 조이며 물었다.

“애들도 아닌데요. 좀 구경하게 해 주죠, 뭐…….”

“끌끌끌! 그러다가 나중에 피똥 싼다?”

아저씨의 말에 실소가 터졌다.

“아저씨가 하실 말씀은 아니실 텐데요?”

“내가 왜? 난 그냥 너희 하는 거 구경하다가 적당한 때를 봐서 노점상을 열 거야.”

노점상?

“불법이잖아요?”

이 아저씨가 진짜 빅 엿을 먹이려고 하시는 건가?

“오늘 같은 날 잘못 걸리시면 제가 큰일 난다고요!”

빈말이 아니다. 랭킹 헌터가 된 이상 보통의 정식 헌터보다 훨씬 더 몸을 사려야 한다.

일주일간의 축제 기간 동안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평가의 대상이 된다.

“일단 투기장으로 가요. 곧 첫 번째 행사가 시작될 거예요.”

공미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그래요. 일단 우리는 투기장으로 가자!”

남은 팀원들과 함께 투기장으로 향했다. 지금이라면 행사가 시작되기 전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것이었다.

가는 길은 온통 상점과 푸드 트럭의 향연이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물건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벌써부터 협회 주머니 차는 소리가 들리는구먼?”

아저씨는 비아냥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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