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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98화 (98/250)

98화

98화

전광판에 거대한 글자가 뜨면서 두 괴물은 잠에 빠졌다.

“좋았어!”

이제야 입이 터지며 목소리가 나왔다.

긴장의 긴장이 계속된 첫 시합.

다행히 내가 건 괴물이 승리를 따냈다. 더불어 내가 건 100만 원도 200만 원으로 불어났다.

방 안으로 돌아온 직원은 수레에 돈다발을 갖고 왔다. 그리고 백만 단위로 돈을 건 승자에게는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천만 단위로 돈을 건 승자에게는 협회에서 발행된 수표를 지급했다.

“190만 원입니다.”

아, 수수료를 깜빡했네. 어쨌든 이 기세를 이어 나가면 자금이 부활! 확률은 극히 낮지만,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필드를 정리하고 다음 괴물을 준비할 때까지 약 30분.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배가 고팠다.

“뭣 좀 드실래요?”

먹는 것 하면 아저씨, 아저씨하면 먹을 것이다. 아저씨는 대답도 하지 않으며 쪼르르 벽에 달린 전화기로 향했다.

“여기 VIP룸 1호실인데, 메뉴에 있는 거 하나씩 다 갖고 와!”

엥? 이, 이 아저씨가!

“그래! 계산은 나중에 한꺼번에 다 할 거야.”

저거 딱 봐도 나보고 쏘라는 것 같은데? 내가 언제 사 준다고 했어요! 더치페이하자고 한 건데…….

아저씨가 전화로 주문한 지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거대한 카트에 실린 간식들이 방으로 배달됐다.

카트에는 길거리 음식부터 제법 공을 들인 요리까지 갖가지 먹거리가 있었다.

“끌끌끌! 상팔아, 잘 먹으마.”

아저씨는 카트에서 음식을 꺼내서 탁자 위에 펼쳐 놨다.

“이거…… 다해서 얼마예요?”

카트를 끌고 온 직원은 말 대신 계산서를 내밀었다.

81만 원.

“어?”

내가 잘못 본 건가? 눈을 비비고 한 번 더 숫자를 바라봤다.

131만 원.

와, 시발. 금액이 더 늘어났어. 너무하네. 8이 두 개로 찢어지며 13이 되는 마술!

망했다.

바가지를 아주 제대로 씌우는구나. 아무리 비싸도 100만은 안 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산은 나갈 때 한 번에 하기로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전진이다!”

팀원들과 함께 탁자 위 음식을 섭취, 다음 시합을 기다리며 시간을 죽였다.

오늘 시합은 모두 5번. 지금 끝난 첫 번째 시합을 제외하면 앞으로 4번 남았다.

“전초전치곤 꽤나 화려하군.”

김익조가 직원에게 말했다. 직원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올해 흥행은 제법 기대해도 되겠어. 맛보기가 이 정도라니 말이야.”

맛보기? 네팔구미호랑 거북악어가 맛보기? 내 동요를 알아챘는지 김익조가 날 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진짜’ 승부를 보시죠.”

두 번째 시합.

[제2시합 : 검치삵 2 ― 1 VS 뿔개 ― 9]

3급 검치삵 2마리와 4급 뿔개의 대결.

일단 일반 관객의 배팅 비율은 무려 1대 9. 검치삵이 2마리인 것을 감안해도 엄청난 차이다.

“두 마리면, 검치삵 쪽이 무조건 진다고 볼 수도 없는데…….”

검치삵은 검처럼 날카로운 엄니를 가진 삵. 양 옆구리에 뿔을 갖고 있는 뿔개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 맹수형 괴물이다.

직원은 또 서류철을 들고 서서 우리에게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30분간 배팅을 받겠습니다. 참고로 현재 배팅 비율의 차이가 너무 크므로 특별히 검치삵에 배팅하시는 분께는 승리하실 경우, 3배의 이익을 드리겠습니다.”

보통의 2배가 아닌 3배? 일반인은 어디까지나 밑밥일 뿐이고, 진짜는 VIP의 배팅이구나!

VIP룸은 수십 개, 그렇다면 적어도 이 투기장 내에 VIP가 수백 명은 있단 소리다.

우리 방은 좀 소소한 편이지만, 분명 어마어마한 금액이 오가는 방도 있을 것이다.

크윽, 고민되는데……. 그때 김익조가 직원에게 말했다.

“방 안에 있는 화면에 녀석들을 띄워라.”

“예!”

직원이 리모컨을 꺼내 버튼을 누르자, 벽에 걸린 대형 화면에 영상이 나왔다.

반으로 나뉜 영상은 지금 막 싸우게 될 두 괴물의 근접 촬영이었다.

“세세히 보고 결정하십시오.”

김익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존귀는 대뜸 직원에게 소리쳤다.

“결정했어! 검치삵에 1억 9천만.”

보지도 않고 결정하냐? 그것도 1억 9천!

“네. 나존귀 님, 검치삵에 1억 9천만 배팅하셨습니다.”

3배라는 추가 이득과 나존귀의 돌발 배팅으로 인해 방 안의 흐름이 급변했다.

“나도 검치삵에 천만!”

“난, 3백만!”

“두 마리짜리한테 8백 7십만!”

VIP들의 돈이 거의 다 검치삵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앗!”

유정하고, 티라노 대가리? 김대팔이 분명하다. 언제나 입고 다니는 공룡 인형 탈이었다. 저거 빨기는 하는 거겠지?

유정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다들 여기 계셨군요.”

주차에 성공하셨군요. 유정과 김대팔은 사람들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상팔 씨.”

“안녕하세요, 대팔 씨.”

간단하게 김대팔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혼자 오셨나 보네요?”

“상팔 씨를 만났잖아요.”

김대팔은 아예 자기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그러고는 TV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들 검치삵 2마리한테 거셨군요.”

“대팔 씨는 어디에 거실 거예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전 돈놀이는 안 합니다. 진작 졸업했거든요.”

아, 그러세요? 참 잘나셨네. 김대팔을 무시하고, 조용히 화면에 집중했다.

시합에 나온 뿔개는 상당히 관리가 잘된 개체.

눈이 맑고, 털에 윤기가 좔좔 흐른다. 양 옆구리에 달린 뿔도 뾰족하면서 손상이 없다.

변해라가 키웠던 세바스찬과 비슷한 수준의 뿔개다.

“해라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변해라를 돌아봤다.

변해라는 딱딱한 얼굴로 유리벽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애써 참고 있는 걸까? 아니면…….

“유정 씨, 방금 오신 분한테 이런 말씀드리기 좀 그렇지만…….”

“편하게 말씀하세요.”

유정은 빙그레 웃었다. 하아, 저 웃음을 떠나보내야 한다니……. 가슴이 아프다.

“해라 데리고 둘이서, 아란 양하고 아라 좀 찾아와 주실래요?”

“알겠습니다.”

유정은 변해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해라야.”

“네.”

변해라의 얼굴은 유정의 손을 잡고 나서야 한결 밝아졌다.

유정은 그렇게 변해라를 데리고 방을 나갔다.

“둘이 분위기가 이상한데? 저러다가 둘이 사귀는 거 아니야?”

아저씨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키득거렸다. 지독하게 짓궂다! 유정이 여자인 거 뻔히 알면서…….

“그나저나…….”

다시 화면에 집중. 이번엔 뿔개와 싸울 검치삵을 살폈다.

검치삵, 3급 괴물.

비명횡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괴물 중 하나다. 물론 흔하다고 해서 만만하단 소리는 절대 아니다.

고양잇과 동물인 삵에게 스테로이드를 주입한 후 엄니를 긴 칼로 바꿔 단 형체. 그 모습은 흡사 빙하기 생물인 ‘검치호’의 하위 버전 같기도 하다.

뿔개가 소만 한 것을 감안하면 덩치에서는 다소 밀리지만, 검치삵 쪽은 두 마리. 협동 여하에 따라 충분한 변수가 된다.

“김상팔 님, 어느 쪽에 거시겠습니까?”

직원이 물어 온다.

남은 배팅 시간은 5분.

“잠시만요.”

검치삵의 건강 상태는? 두 마리의 모습은 극과 극이었다.

한 마리는 뿔개 못지않게 건강하다. 검치도 광이 나는 것이 사람이 일부러 닦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반면에 다른 한 마리는 영 꽝이다. 녀석은 눈이 반쯤 감겨 있고, 혀도 축 늘어졌다.

털의 상태도 꼭 찬물로 감고 제대로 안 말린 머리카락처럼 뻣뻣한 상태. 두 마리 모두 베스트 컨디션이라면 해볼 만하지만, 한 마리만 베스트라면…….

“뿔개한테 190만 원이요.”

“네. 김상팔 님, 뿔개한테 190만 원 거셨습니다.”

모험을 할 순 없다. 여기선 안전하게 간다!

배팅 종료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그리고 필드 위로 거대한 유리 막이 씌워지고 우리의 문이 열렸다.

“시작됐다!”

뿔개와 검치삵은 우리에서 걸어 나와 필드를 돌아다녔다.

첫 번째 시합과는 다른 분위기. 대뜸 상대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검치삵끼리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 같은 종이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서로 화기애애하게 친분을 쌓는 것 같지도 않다.

세 마리가 독자적으로 움직인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괴물에는 성별이 없지.”

아저씨가 코를 후비면서 말했다.

“성별이 없는데, 알은 어떻게 낳죠?”

호규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코를 파던 손가락을 빼내며 호탕하게 웃었다.

“괴물 탐험, 신비의 세계! 인간 따위가 이해할 수 없는 대자연의 농간이지. 연구가 불가능한 미지의 영역이다!”

알은 존재하지만, 알이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해선 모른다? 김익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괴물은 생물의 형태를 띤 다른 존재가 아닐까요?”

불쑥 티라노 대가리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김익조가 화들짝 놀라며 김대팔을 째려봤다.

천하의 김익조가 째려봐? 김대팔이 한 말에 일리가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공룡 인형이 말하는 게 신기한 건가.

“드디어 한 마리 죽었다!”

뭣이?

“헉!”

필드 위. 앞으로 곧게 뻗은 뿔개의 왼쪽 뿔에 검치삵 한 마리가 꿰어 있었다.

상태가 안 좋은 개체. 녀석은 내가 한눈을 판 사이, 단 한 방에 뿔개에게 당하고 말았다.

뿔개의 왼쪽 뿔이 쪼그라들며 꿰인 검치삵을 빼냈다. 그러나 그 틈을 타 다른 개체가 오른쪽 옆구리를 기습, 검치로 뿔개를 꽉 깨물었다.

뿔개는 몸을 왼쪽으로 틀면서 검치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검치삵의 엄니에 옆구리가 뚫리진 않았지만, 가죽 속 근육이 으깨지고 자칫 내장까지 다칠 수 있는 공격이었다.

“물어라! 물어서 죽여라!”

“찔러라! 찔러서 해치워!”

관객들의 환호가 저주처럼 들린다. 발밑에서 들려오는 탐욕의 주문.

뿔개와 검치삵은 한 덩이가 되어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검치삵은 집요하게 뿔개의 옆구리를 물고 늘어졌고, 뿔개는 어떻게든 검치삵을 떼어 내려고 몸부림쳤다.

“제법이군.”

김익조가 뒷짐을 지며 말했다.

“혹시 돈을 거셨나요?”

슬쩍 김익조에게 배팅을 물었다. 김익조의 판단이라면 상당히 신빙성 있을 것이다.

“네. 역시 이럴 땐 참가하는 게 즐거우니까요.”

“어디에 거셨나요?”

그 말에 김익조는 씩 미소 지었다.

“이기는 쪽이죠.”

하하하. 너무 뻔한데? 김익조는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시합을 바라봤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두 번째 시합이 끝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치 상황이 된 지 10분 정도 됐을 때쯤. 뿔개는 오른쪽 옆구리로 검치삵을 끌며 앞을 향해 달렸다.

검치삵의 주둥이는 좀처럼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신 머리를 제외한 몸 대부분이 필드 바닥에 쓸리며 상처를 입었다.

뿔개는 유리 막 안을 몇 바퀴 돌며 검치삵을 거의 장신구 취급했다. 결국 힘이 빠진 검치삵의 입이 벌어졌고, 녀석도 먼저 당한 개체처럼 뿔개의 뿔에 꿰뚫려 죽었다.

“젠장!”

나존귀가 유리벽을 향해 주먹을 질렀다. 무려 1억 9천만의 분노가 담긴 주먹. 그러나 주먹이 유리벽에 부딪힘과 동시에 나존귀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아악! 아파! 아프다고!”

나존귀는 주먹을 감싼 채 뒤로 벌러덩 드러누워 뒹굴었다. 참으로 꼴사나운 광경이다.

[뿔개 승.]

“김상팔 님, 축하드립니다. 여기 상금 361만 원입니다.”

직원은 다른 승자에게도 돈을 나눠 준 후 방을 나갔다.

190만 원의 2배인 380만 원에서 190만 원의 10%인 19만 원을 제외한 금액. 신사임당 72장과 세종대왕 1장이 내 손에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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