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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00화 (100/250)

100화

100화

팀원들은 약속한 2시가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걸까?

방 안에는 오전보다 조금 적은 20여 명이 있었다. 나와 호규, 그리고 김대팔은 함께 모여 앉았다.

“그럼 3번째 시합, 배팅을 시작하겠습니다.”

서류철이 든 직원이 방으로 들어왔다.

유리벽 너머 필드 위 전광판에는 다음과 같은 배팅율이 띄워졌다.

[제3시합 : 갱벌레 10 ― 4 VS 군단개미 20 ― 6]

갱벌레하고 군단개미? 양쪽 다 쪽수가 많다. 각각의 괴물 등급에서 약체에 속하는 녀석들. 그러나 함께하면 상당한 전투력을 발휘한다.

비율은 군단개미 쪽이 더 많네? 숫자가 많아서 그런가?

“그나저나 10마리 대 20마리라니, 정말 기대되는군요.”

김대팔은 소파에서 일어나 유리벽으로 걸어갔다. TV 화면에 반으로 나뉜 두 괴물의 모습이 비쳤다.

갱벌레들은 우리 안에서도 통통 튀는 게 상당히 흥분한 모습. 반대로 군단개미는 잠잠하다.

갱벌레는 소형견, 군단개미는 대형견 크기. 둘 다 무기로는 입으로 깨무는 것이 전부다. 등급에선 갱벌레가 위지만, 결속력에선 군단개미가 한 수 위다.

2번째 시합과는 달리 이번에는 둘 다 상태가 좋아 보였다. 직접 경험한 바에 따라 추측해 보자면…….

“군단개미에 361만 원!”

직원 서류철에 내 이름을 적으며 웃었다.

“알겠습니다. 김상팔 님, 군단개미에 361만 원 거셨습니다.”

“갱벌레에게 3억!”

억? 나존귀는 직원을 향해 손가락 3개를 뻗고 있었다. 그런 나존귀의 결정에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입도 쩍 벌어졌다.

“네. 나존귀 님, 3억.”

유일하게 직원만이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직원은 찝찝한 미소를 지으며 서류첩에 뭔가를 끄적거렸다.

부럽다. 난 파산할 각오로 하고 있는데, 저 녀석은 그냥 용돈 쓰듯이 하고 있잖아?

진짜 재벌 3세구나. 겉보기엔 그냥 호스트바에서 일 잘하게 생겼는데…….

“재벌 망신은 다 시키는군요.”

김대팔의 티라노 머리도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재벌에 대해 잘 아시나 봐요?”

슬쩍 김대팔을 떠보았다. 그러자 김대팔은 손으로 공룡의 주둥이를 닫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솔직히 아저씨보다 이 자식이 더 수상하다.

“이번에도 이기셨으면 좋겠네요.”

지금 약 올리는 건가? 배팅이 종료되고, 필드 위에 유리 막이 씌워졌다. 그리고 시작부호와 함께 우리의 문이 열렸다.

세 번째 시합 시작.

이번에는 물량전이다! 갱벌레는 스카이콩콩을 탄 초등학생들처럼 우르르 우리에서 몰려나왔다.

통통 튀면서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저것들이 정말 3급 괴물이 맞나 싶다.

반대편의 군단개미는 우리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갱벌레는 우리를 빙 둘러싼 채 제자리 뛰기를 했다.

두 괴물의 습성으로 보건대, 분명 갱벌레가 선공을 하고, 군단개미는 우리 안에서 방어를 할 것이다. 그렇게 포위는 계속되었다.

갱벌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10마리 전부 우리 안을 살피느라 바빴고, 군단개미는 더듬이만 움직일 뿐 우리 안에서 나올 생각이 없었다.

“뭐하는 거야? 어서 싸우란 말이야!”

기다리다 지친 관중에게서 깡통 하나가 날아왔다. 깡통은 유리 막에 부딪쳐 그냥 땅으로 떨어졌으나, 그것을 시작으로 객석에서 수많은 야유가 쏟아졌다.

“싸움을 붙여! 우린 싸움을 원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돈 아깝지 않게 해야지! 뭐하는 거야?”

관객의 요구에도 협회 측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유리 막 근처 직원들은 객석을 외면한 채 필드 위만 바라보고 있었다.

괴물들한테 인간의 말이 전해진 걸까? 갱벌레 한 마리가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우리 안에서 대기 중이던 군단개미들은 자신들의 영역으로 들어온 갱벌레를 경계하며 집게 입을 벌렸다.

갱벌레는 우리 입구에서 머무르며 우리의 안과 밖을 통통 넘나들었다. 갱벌레의 영악함을 근거로 판단컨대 작전이 분명했다.

군단개미들은 갱벌레를 주시하면서도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다.

갱벌레는 조금 더 우리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군단개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와!”

VIP룸이 감탄사로 가득 찼다.

군단개미는 무심한 척하고 있다가 갱벌레가 가까이 오자, 10마리가 우르르 달려들어 일제히 깨물었다.

남은 10마리는 우리 입구로 가 집게 입을 내밀며 다른 갱벌레가 추가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세상에…….”

아무리 숫자가 많고 덩치가 커도, 등급의 차이는 절대적. 그런데 그것을 저런 작전으로 무마하고 있다.

붙잡힌 갱벌레는 무참하단 소리가 절로 나오는 죽음을 맞이했다. 10개의 집게 입이 갱벌레를 거의 해체하다시피 조각냈다. 그러나 갱벌레는 죽으면서도 최후의 발악을 해, 머리와 가장 가까운 군단개미 하나의 머리를 깨물었다.

10마리가 1마리를 죽이는 것에는 꽤 수고가 들었으나, 그 1마리가 다른 1마리를 죽이는 데 걸린 것은 단 한 순간. 갱벌레에게 물린 군단개미는 그대로 주저앉으며 죽었다.

역시 등급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다.

이로써 갱벌레 9마리, 군단개미는 19마리. 양측이 1마리씩 줄었지만, 전력상으로 보면 갱벌레 쪽이 훨씬 불리해졌다.

갱벌레들은 동족이 잔인하게 당했음에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녀석들은 그저 통통 뛰면서 우리 안을 들여다봤다.

“설마, 그냥 정찰용으로 희생시킨 건가?”

괴물이란 것들에게 이성만 존재한다는 이론이 사실이라면…….

갱벌레들은 강철 우리의 가장자리에 몸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9마리의 애벌레의 몸통 박치기. 힘껏 우리에 박아 대는 모습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갱벌레의 박치기에 우리가 뒤집히거나 흔들리진 않았지만, 충격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기에 작은 떨림 정돈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갱벌레의 진짜 의도였다.

“저 자식들…….”

괴물 주제에……? 강철로 된 우리 전체에서 일어난 진동. 그것은 안에 있는 군단개미로 하여금 우리 안을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며 우왕좌왕하게 만들었다.

“저것 좀 보세요, 팀장님!”

호규가 내 팔을 잡으며 소리쳤다. 솔직히 호규만큼이나 나도 갱벌레의 영악함에 놀라는 중이다.

갱벌레 중 3마리가 몸통 박치기를 멈추고 우리 안으로 돌입, 3마리가 한 조로 움직이며 군단개미를 한 마리씩 물어 죽였다.

온몸이 깨져 진물이 흐름에도 6마리의 갱벌레는 몸통 박치기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로 들어간 3마리가 군단개미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동안 갱벌레들의 점프는 계속되었다.

우리 안. 아수라장을 넘어 살육장이 된 그곳은 군단개미의 체액으로 바닥이 흥건했다. 순식간에 군단개미의 수는 19마리에서 6마리로 줄었다.

“팀장님, 망했어요!”

호규가 내 팔을 꼬집듯이 잡았다. 하하하. 팔에 아무 감각이 없다.

날아간다, 내 돈! 사라진다, 내 300만 원! 방 안에서 느껴지는 ‘술렁술렁’의 기운!

눈앞이 깜깜해졌다. 배 타고 가위, 바위, 보 원정 도박을 나가는 신세가 되는 건가.

“앗!”

김대팔이 공룡 손으로 또 인형 옷의 아가리를 벌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런 젠장!”

응? 뭐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우리를 바라봤다.

와. 우리에 열심히 머리를 박던 6마리 갱벌레가 죽어 있었다.

그렇다. 벌레는 아무리 두뇌플레이를 해도 벌레였다! 갱벌레들은 온몸이 찌그러진 상태로 충격이 누적되어 죽은 것 같았다.

남은 갱벌레는 우리 안에 들어간 3마리뿐! 군단개미는 6마리 남았다.

“이겨라, 이겨라!”

주먹을 꽉 쥐면서 위아래로 흔들었다. 속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미치고 팔짝 뛸 듯이 솟구쳤다.

“죽여!”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방 안이 떠나라 고함을 질렀다.

“죽여!”

그래야 내가 돈을 벌어! 나도 모르던 악이 발악하듯 목구멍을 빠져나왔다.

우리 밖에서의 진동이 사라지자 군단개미들은 다시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빠르게 갱벌레를 포위, 일제히 달려들었다.

갱벌레와 군단개미는 서로 얽히고설켜서 혈투를 벌였다. 징그러운 벌레들이 최후에는 정말 벌레처럼 싸우고 있었다.

군단개미 2마리당 갱벌레 1마리. 9개의 집게 입이 사정없이 무언가를 뜯었다. 딱딱한 껍질이 부서지고, 살점이 난자당하며, 체액이 쏟아졌다.

9마리 벌레는 상대의, 혹은 동료의, 어쩌면 자신의 것을 무는 것에만 집중했다.

아홉 덩어리는 하나의 곤죽이 되어 섞여 들어갔다. 그리고 잘게 찢긴 부스러기가 토핑처럼 곤죽 위로 떠올랐다.

“이게 뭐야?”

나존귀는 손바닥으로 유리 벽을 때렸다. 그러나 나존귀의 불만 섞인 손 치기는 그저 분 풀기에 불과했다.

불평하기는 객석도 마찬가지.

“장난하냐? 지금 이딴 걸 결말이라고 내놨어? 배팅한 돈이 아깝다!”

“상업성 위주로 한다면서 겨우 이거냐? 화끈한 시합을 내놔라!”

“괴물은 인간의 적, 괴물을 죽여라! 다 죽여라! 서로 싸우게 해서 죽여라!”

싸우는 괴물과 부추기는 괴물. 우리 안 곤죽은 더 이상 움찔거리지도 않았다. 여기에 가족 단위 관람객이 섞여 있지 않길 바랄 뿐이다.

“팀장님!”

호규가 내 옆구리를 아주 강하게 찔렀다. 덕분에 간지럼과 고통이 동시에 느껴지며 몸이 호규 쪽으로 기울었다.

“팀장님, 저기 보세요!”

잠잠하던 곤죽 속에서 뭔가가 필사적으로 기어 나왔다.

하나만 남은 더듬이, 반쯤 뜯긴 옆구리, 그리고 4개만 남은 다리.

군단개미는 필드 위에 서서 버둥거렸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객석을 한 번 보더니, 그대로 푹 고꾸라져 죽어 버렸다.

[군단개미 승.]

“축하합니다.”

직원이 686만 원을 내게 내밀었다.

“응? 액수가 좀 다른데요?”

원래 받아야 할 금액보다 천 원이 더 많다.

“수수료인 36만 1천 원에서 천 원은 뺀 금액입니다. 저흰 1만 원 밑의 단위는 손님에게 유리한 쪽으로 빼게 돼 있습니다.”

오오! 역시 돈이 무섭다. 이제 2번만 더 맞추면 된다. 그러면…….

“김상팔 님께선 이 방에 계신 손님들 중에서 3연승을 하신 두 분 중 하나입니다. 만약 남은 2시합을 연속으로 맞춰서 5연승을 하신다면…….”

“하면요?”

남은 한 명은 누구지?

“스페셜 매치에 참가하실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스페셜 매치?

“호오.”

김대팔의 공룡 머리가 좌우로 까딱였다.

“VIP룸에 들어온 첫날부터 스페셜 매치라니, 대단하네요.”

김대팔은 알고 있나?

“대팔 씨는 스페셜 매치에 대해 아시나요?”

내 질문에 김대팔은 고개를 돌려 직원을 쳐다봤다. 그리고 직원에게 물었다.

“얘기해도 되나요?”

“괜찮습니다.”

직원의 허락 후에야 김대팔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곳은 분명 VIP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름뿐입니다. 요즘은 어딜 가든지 VIP 천지죠. 누구나 VIP가 되길 원하니까요.”

김대팔의 이야기를 들으며 방 안을 둘러봤다. 대부분은 랭킹 모임에서 봤거나, 나존귀 같은 금수저로 추정. 분명 가진 돈과 명망만 보면 VIP라 칭할 수 있을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위가 있다고?

“VVIP라도 되나요?”

“그런 셈이죠. 스페셜 매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행해지는 특별 시합을 뜻합니다. 여기선 판돈이 무제한이라고 해도 실질적으로 최고액은 억. 가끔 십억을 거는 정도죠.”

이 방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쓴 사람도, 가장 돈을 많이 잃은 사람도 나존귀였다. 그런 나존귀도 10억까지는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차피 배팅의 상대는 협회. 대박은 터뜨릴 수 없죠. 2배씩 돈을 따는 건 위험부담도 클뿐더러, ‘재미’도 없어요.”

재미? 지금 이 요망한 파충류 주둥이가 뭐라고 지껄인 거야?

“스페셜 매치는 다릅니다. 사람들끼리 돈을 걸고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니까요. 적게는 수백억, 많게는 수천억을 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부턴 직원이 말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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