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125화
미스터 빅은 유정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변해라에게 그랬듯이 유정에게도 주먹을 올렸다.
유정은 전신에서 H력을 뿜어냈다. 그러자 유정의 머릿결이 아지랑이처럼 물결치며 휘날렸다. 그것은 바람을 탄 사자의 갈기처럼 사방으로 펴지며 유정의 분노를 대변했다.
하나가 된 두 손. 유정은 겹쳐진 두 손 위로 H력을 응축했다.
“너 같은 놈들이 날 가장 열 받게 만들어.”
손바닥 안에 모인 H력은 구체 형태의 에너지로 감기며, 거칠게 휘몰아쳤다.
“광탄.”
유정은 야구공 크기의 광탄을 만들었다.
미스터 점프는 그런 유정을 조롱했다.
“여자는 여자답게 꾸미고 남자에게 사랑받는 게 당연한 거야. 그런 여자도, 남자도 아닌 모습으로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을 걸?”
유정은 대답 대신 힘차게 팔을 뻗었다. 그리고 광탄을 날렸다.
새하얀 빛을 뿜어내는 광탄은 곡선으로 날아갔다. 총알만큼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일반적인 반사 신경으로는 보는 것이 고작인 속도였다.
“그걸 정하는 건 네가 아니야.”
마치 스텔스기의 폭격처럼 광탄이 미스터 빅의 헬멧에 명중, 이어지는 폭발에 미스터 빅의 걸음이 완전히 멈췄다.
효과가 있다!
유정은 심호흡을 한 후 한 번 더 양손을 모아 광탄을 준비했다. 이번엔 더 빠르게 같은 크기의 광탄을 만들어 냈다.
미스터 점프는 이를 갈면서도 굳이 미스터 빅의 앞으로 나서진 않았다.
“말이 안 통하는 계집이군. 계집이면 계집답게…….”
그사이 미스터 빅은 고개를 저으며 광탄의 충격을 떨쳐 냈다. 녀석의 헬멧에 난 눈구멍으로 진한 아지랑이가 뿜어져 나왔다.
“하앗!”
유정은 한 번 더 광탄을 발사했다. 광탄은 처음 것보다 더 빠르게 날아갔다.
또 머리에 명중. 헬멧에는 두 번의 공격으로 인해 그을림과 흠집이 나 있었다.
미스터 빅은 손을 앞으로 뻗은 채 유정에게 다가갔다.
유정은 급한 마음에 광탄을 연속으로 발사했다.
미스터 빅은 유정을 향해 계속 손을 뻗어 갔다. 몇 발은 손으로 걷어 내고, 몇 발은 그냥 헬멧으로 맞아 가면서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8발을 쐈을 때 미스터 빅의 손이 근접, 결국 유정은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양손에 산탄총을 하나씩 쥐고는 총들의 개머리판을 양 옆구리에 껴서 고정시킨 후 고무탄을 난사했다.
여전히 목표는 헬멧. 유정의 목표는 명확했다.
산탄총들의 고무탄이 떨어지면, 그 다음은 양손 리볼버, 유정은 뒷걸음질을 치며 집요하게 사격을 이어 갔다.
보다 못한 미스터 점프가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미스터 빅! 능력을 써!”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스터 빅의 눈구멍에서 나오던 아지랑이가 더 짙어졌다. 그리고 미스터 빅의 몸집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신체가 거대해짐에 따라 갑옷은 조각조각 갈라지며 마치 부분갑옷처럼 변했다. 미스터 빅의 몸은 통로 천장 끝까지 커졌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유정의 투지로 공포가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미스터 빅은 한걸음에 유정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그 걸음걸이로 인해 통로 전체가 흔들려 모두들 휘청거렸다.
“하하하! 저능아지만, 능력 하나는 일품이란 말이야.”
미스터 점프는 미스터 빅의 바로 뒤에 숨어 상체를 내밀었다.
“그만 항복하는 게 어때? 그럼 내 전속 노리개로 써 줄게. ‘네 친구’처럼 나쁜 남자랑 어울려 보고 싶지 않아?”
쭉 내민 혀. 다리만큼이나 긴 혓바닥은 족히 30cm는 되어 보였다.
“‘나쁜 남자’가 아니라 그냥 ‘나쁜 새끼’겠지. 그리고 내 동료를 모욕하지 마!”
유정은 모았던 손을 푼 후 빠르게 리볼버를 들어 미스터 점프의 혀를 쐈다.
완전히 방심하고 있던 미스터 점프는 혀를 집어넣다가 대신 어깨에 총을 맞았다.
“개 같은 년! 미스터 빅, 죽여 버려!”
미스터 빅은 힘껏 다리를 움직여 유정을 걷어찼다.
거대한 야구방망이에 맞은 듯 유정은 무기력하게 공중으로 띄워져 천장에 부딪쳤다.
천장에서 바닥으로, 날개 없는 인간이 추락해 동료들 옆에 쓰러졌다.
‘철수해요! 더 이상 싸우는 건 위험해요! 제발!’
그때 변해라가 눈을 떴다.
“언……니?”
변해라는 눈을 비비며 현실을 바라봤다. 그리고 유정을 부축해 일으켰다.
‘도망가요!’
‘알고 있어!’
변해라는 유정과 함께 공미의 어깨를 들어서 도망쳤다. 그러나 환자 둘이서 기절한 사람을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 딜, 도, 망, 가!”
미스터 점프의 목소리.
녀석의 잔인한 발길질이 세 사람을 덮쳤다. 유정과 변해라는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미스터 점프는 쓰러진 두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밟았다.
“하하하!”
유정과 변해라는 울었다. 그것은 분함에서 나오는 눈물, 자신의 나약함을 꾸짖는 강함이 흘리는 분노였다.
“하하하! 얼굴이 망가져서 재미는 못 보겠네? 난 그래도 상태가…….”
지껄이던 미스터 점프의 턱이 산탄총의 개머리판에 맞아 탈골됐다.
개머리판이 박살나며, 동시에 미스터 점프의 정신도 박살났다.
“끄아아아…….”
미스터 점프의 눈에 생기가 사라졌다. 녀석은 눈도 감지 못한 채 기절하고 말았다.
쓰러진 미스터 점프 옆에는 정신을 차린 공미가 서 있었다.
“넌 싸울 때 방심하지 말란 말도 못 들었어?”
공미는 기절한 미스터 점프에게 침을 뱉었다.
“그리고, 난 네 구역질나는 친구랑 끝났어. 지금, 내가 찼거든!”
공미는 힘든 몸으로 유정과 변해라를 벽에 기대어 앉혔다.
“괜찮아요?”
두 사람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전혀 괜찮지 않다.
세 사람 모두 중상, 움직이는 것 자체가 생명력을 깎아 먹는 행위다.
잠시 숨을 돌리고, 셋은 미스터 빅을 쳐다봤다.
미스터 빅은 마치 로봇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놔둬도 될까요?”
공미의 질문에 유정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여기에 그냥 둘 순 없어요. 혹여나 다른 플레잉이 와서 움직이게 하면 정말 큰일이에요.”
무식할 정도의 위력.
몸소 그것을 체험한 세 사람은 몸을 떨었다.
유정은 머리카락을 정리해 다시 머리에 두건을 감았다.
“녀석들의 언행을 보면, 거의 일방적으로 조종하는 것 같아요.”
변해라는 호기심에 통로의 파편 하나를 집어 미스터 빅에게 던졌다.
미스터 빅이 입고 있는 갑옷으로 날아간 파편은 충돌하면서 완전히 바스러졌다.
미스터 빅은 묵묵부답.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조용하니까, 더 무섭네.”
공미가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팀장님, 어떻게 하죠?’
유정의 질문. 일단 곰곰이 생각을 정리했다.
미스터 빅. 미스터 점프와 미스터 블레이드의 언행으로 봐선 동료라기보단 도구에 가까운 듯하다.
지능이 낮고,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무기. 그러나 분명 갑옷 안의 내용물은 사람임이 분명했다.
현재 능력발동으로 인해 거대해진 육체는 갑옷 밖으로 삐져나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였다.
솔직히 처음엔 로봇이 아닐까 싶었다.
녀석들이 미스터 빅을 다룬 것은 오로지 말. 행동에 정해진 패턴이나 암호 같은 것은 없었다.
최면이나 정신 지배 같은 걸까?
‘흠…….’
생각해 보면, 피아식별도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녀석들도 동료가 아닌 그저 도구로 취급했던 것이다.
슬며시 변해라에게 말을 걸었다.
‘뭐야? 지금 엄청 피곤하니까 장난치지 마!’
피곤한 애가 신경질은 한결 같네.
‘해라야, 한번 시도해 볼래?’
미스터 빅은 그야말로 무지의 괴물.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변해라의 능력이 필요할 때다.
최소한 시도해 볼 만하다. 지금 우리 팀 상황으로선 살짝 불안하다.
‘미쳤어?’
‘못 하겠냐? 실력이 부족해서 못 할 것 같으면, 그렇다고 말해. 괜찮아. 후후후!’
물론 네 자존심은 안 괜찮겠지.
‘쳇!’
변해라는 벌떡 일어서서는 엉덩이를 털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미스터 빅에게 접근했다.
‘잘못되면 상팔이, 너 용서 안 할 거야!’
그래, 그래. 장하다. 우쭈쭈!
유정에게도 내 생각을 전했다.
“좋은 생각이에요. 해라 양, 부탁해요.”
유정도 자리에서 일어나 변해라의 옆에 섰다. 홀로 앉아 있던 공미는 부상의 누적으로 인해 침을 질질 흘리며, 몸을 떨었다.
‘서둘러라. 공미 씨, 상태가 별로 안 좋아.’
‘알았어.’
변해라는 한숨을 쉬며 H력을 끌어냈다. 그리고 양손을 미스터 빅의 헬멧을 향해 뻗었다.
“하압.”
변해라는 양손에서 H력을 뿜어냈다. 손바닥에서 나온 아지랑이가 공기 사이로 흘러서 변해라의 키보다 훨씬 위에 있는 미스터 빅의 머리로 향했다.
H력은 미스터 빅의 헬멧에 난 눈구멍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리고 머리가 떨리며 규칙적인 진동을 일으켰다.
“앗?”
변해라는 즉각 능력발현을 중단했다. 사실 지금 한 것은 그저 간 보기에 불과했다.
“정말 될지도……?”
변해라는 화들짝 놀라며 유정에게 도움을 청했다.
“저 좀 도와주세요. 미스터 빅의 어깨로 올라가야겠어요.”
유정은 남은 H력을 쥐어짜서 능력발동으로 신체를 강화, 변해라를 번쩍 들어서 던졌다.
변해라는 가볍게 미스터 빅의 어깨에 착지, 녀석의 헬멧을 잡은 채 한 번 더 능력발현을 시도했다.
“팀장님?”
변해라의 H력이 헬멧의 눈구멍, 그리고 그 안의 눈동자를 통해 직접적으로 미스터 빅의 머릿속으로 들어간다. 미스터 빅의 H력이 일시적으로 저항, 그러나 이내 변해라의 H력과 섞이며 하나가 된다. 즉, 변해라의 능력은 직접적으로 뇌에 H력을 남겨 원격으로 제어하는 것. H력이란 것이 결국 생명력이기에 천천히 소모되고, 그렇기에 주기적으로 계속 주입해 줘야 하는 것이다.
“팀장님?”
중계로 연결된 나조차 미스터 빅의 머리와 변해라의 머리가 연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팀장님!”
엥?
3번, 내 고막으로 직접 들려오는 육성. 방금 들린 목소리는 호규의 것이었다.
3번 통로 상황은 잠시 관심 밖으로 밀어 두었다. 그리고 육안으로 직접 2번 통로의 광경을 살폈다.
한동안 쭉 전방을 가득 채웠던 연기가 거의 다 사라져 가는 중. 그런데 어디에도 미스터 터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제발 쓰러져라. 연기가 사라지면 쓰러진 모습으로 나타나란 말이야! 괜히 꼴사납게 반전이랍시고 반격하지 말고……!
호규가 내 어깨를 잡으며 마구 흔들었다. 덕분에 머리까지 흔들려서 어지러웠다.
“호규 씨, 그만둬요.”
토할 것 같아요.
“저기 보세요!”
호규가 가리킨 손가락 끝. 거기에는 우릴 향해 전진해 오는 방어막이 있었다.
“앗!”
이 자식! 비겁하게 약속을 어기는 거냐?
방어막은 연기에서 빠져나와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나 아까와 달리 이동속도가 현저히 느린 것으로 봐선 내부에 뭔가 변화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무, 물러서죠?”
호규가 오두방정을 떨며 물었다.
“아니요. 가만히 서 계세요.”
느낌이 왔다. 지금 저 방어막의 전진 속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방어막은 우리 바로 앞까지 와선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어때?”
내부의 미스터 터틀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눈은 반쯤 뜬 채 흰자가 드러나 있었고, 입에선 거품 같은 이물질이 뚝뚝 떨어졌다. 질식 직전이었다.
녀석의 방어막은 정말로 외부와 내부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기술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생존에 꼭 필요한 산소를 스스로 차단한 결과가 나온 것!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산소의 양이 적다. 거기에 자기가 숨을 쉬면서 계속 새로운 이산화탄소를 만들어 내기에 점점 그 농도가 옅어진다.
질식 과정도 처음엔 후덥지근하다가 점점 정신이 몽롱해진다. 눈치챘을 땐, 이미 무의식 상태 직전이었을 것이다.
해제를 하고 숨을 쉬면 수면 연막탄에 의해 기절, 해제를 하지 않아도 질식, 녀석에게 남은 방법은 연기에서 빠져나와 방어막을 해제하는 것뿐이다. 물론 그렇게 되더라도 우리가 가만히 놔두지 않겠지만?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