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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30화 (130/250)

130화

130화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최향자의 완력 강화.

짐승처럼 변한 팔에 근육이 두드러지며 더욱 우람해졌다. 그냥 능력발동과는 비교도 안 되는 힘이 넘쳐났다.

주아라의 각력 강화.

다리도 팔 못지않게 두툼해지면서 바지가 몽땅 찢어졌다. 다행히 팬티는 무사했다.

주아란의 신체능력 강화.

팔다리의 변화에 맞춰서 몸의 나머지 근육도 부풀어 올랐다. 평소에 내 체형은 마른 몸에 근육이 자잘하게 붙었다면, 지금은 과도하게 근육이 붙어서 거의 유연성을 포기한 것처럼 느껴졌다.

한유화의 갑옷 생성.

겨드랑이를 기점으로 긴 가림막 같은 것이 생겨났다. 검은색의 가죽 막은 아래로 쭉 내려와 민망한 반나체를 가려 줬다.

호규의 목소리.

이건 딱히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이 없…….

“엥?”

순식간에 목 부분에서 뿔 같은 게 튀어나와 얼굴 앞까지 자라났다.

대충 보니 성대 부분에서 자라난 것 같다.

이거……진짜로 괴물이잖아? 아이고, 한 번에 너무 많은 종류의 능력을 쓰면 이렇게 되는구나.

그 와중에 보기보다 몸이 유연하게 움직여서 놀랐다.

“하는 수 없지. 이걸로 해 보는 수밖에……!”

성큼성큼 미즈 드래곤에게 돌진했다. 발소리가 크게 울리며 미즈 드래곤이 날 돌아봤다.

“뭐야?”

미즈 드래곤의 표정은 정확히 2단계의 변화를 겪었다. 첫째는 놀라움과 경계심, 그리고 둘째는 망연자실. 그야말로 못 볼 것 본 표정이었다.

“흉해.”

적에게서 나온 솔직한 감상이 내 심장을 후볐다.

웬만하면 ‘흉하다.’란 표현은 잘 쓰지 않는 법. 그만큼 지금 내 외관은 형편없다.

“뚱뚱한 사람한테 ‘돼지’라고 놀리면 안 된다고 안 배웠냐?”

상처 받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힘껏 왼팔을 휘둘렀다. 지금의 힘이라면 한 방에 끝낼 수 있었다. 온몸에 힘이 넘쳐 났다.

미즈 드래곤은 손을 위로 올렸다. 그러자 녀석의 앞에 있던 바닥 일부가 원기둥 모양으로 뽑혀 나와 내 팔을 막았다.

“알 게 뭐야!”

그냥 힘으로 원기둥을 부수며 미즈 드래곤을 후려쳤다. 내가 부순 원기둥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면서 먼지가 일었다. 그러나 주변에는 파편만 있을 뿐 미즈 드래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지?”

두리번거리며 녀석을 찾았다.

계속 고개를 돌리던 중 뒤통수에서 타격이 느껴졌다. 목에 난 뿔이 지탱해 준 덕에 머리는 조금도 앞으로 밀리지 않았지만, 대신 아픔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뒤냐!”

“하앗!”

뒤로 돌면서 양팔을 크게 휘둘렀다. 이번엔 뭔가가 팔에 걸려서 날아가는 게 느껴졌다.

당첨이다! 돌아선 내 시야에 미즈 드래곤이 바닥을 뒹굴고 있는 게 보인다.

“끝장을 내 주지!”

숨을 들이켠 후 힘껏 소리를 내지르려 했다. 지금의 육체적 힘이라면 소리 역시 클 것이었다.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내 바로 위의 천장이 무너졌다.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파편 더미에 깔렸다. 머리를 제외한 몸 전체가 파묻혔다.

미즈 드래곤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내게 맞은 한 방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미즈 드래곤은 양팔을 휘저으며 천장, 바닥, 벽의 자재들을 뜯어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내 위로 계속 쌓았다. 결국 머리마저 파편 더미에 묻히고 말았다.

내가 무서운 건가? 후후, 귀엽네.

가볍게 힘을 주며 몸을 털었다. 그러자 파편 더미가 사방으로 날아가 흩어졌다.

미즈 드래곤은 능력으로 중력을 높여 자신 주변으로 날아오는 파편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후후후.”

기절한 김익조에게 다가가 손을 댔다. 그리고 잔뜩 김익조의 H력이 빨아들였다.

몸에서 힘이 넘쳤다.

“간다!”

이번엔 양팔을 휘둘러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했다.

미즈 드래곤은 내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했듯 양팔을 뻗어서, 내 팔을 잡았다.

어라?

팔이 꼼짝도 안 한다. 정말 엄청난 힘이다.

단순히 능력에만 의존해서 보스가 된 건 아니란 거지?

우리는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조금의 요동도 없이 두 쌍의 팔이 전력으로 상대를 밀치려 했다.

어차피 미즈 드래곤의 능력은 나한테 안 통해!

조금씩 내가 미즈 드래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근거리 음파. 그것을 정통으로 맞은 미즈 드래곤의 얼굴이 잔뜩 찡그러졌다. 일반인이라면 즉사할 수도 있을 위력이지만, 녀석에겐 코피가 터진 정도였다.

미즈 드래곤은 내 손을 놓은 후 재빨리 내 뺨에 주먹을 꽂았다.

이빨이 빠졌는지 입안에 피가 흥건하며 잇몸이 뜨거웠다.

위력은 서로 비등하다.

“퉷!”

빠진 이를 피와 함께 미즈 드래곤에게 뱉었다. 날아간 피는 미즈 드래곤의 눈을 맞추며 시야를 가렸다.

“하앗!”

전력으로 미즈 드래곤의 복부에 주먹을 질렀다. 몸은 여전히 힘이 넘쳤지만, 몸이…….

아무래도 몸 안에 있는 H력이 바닥난 모양이다.

하체부터 능력발현이 풀리기 시작했다.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다급한 마음에 발을 앞으로 들어서 그대로 미즈 드래곤을 내려찍었다. 내 뒤꿈치가 녀석의 어깨에 걸쳐지며 아래로 강하게 눌렀다. 그러나 이젠 정말 한계였다.

미즈 드래곤은 씩 웃었다. 그리고 얼굴 중심으로 흐르는 피를 혀를 내밀어 핥았다.

“날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건 네가 처음…….”

미즈 드래곤의 얼굴이 피보다 더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녀석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응? 왜 말을 하다 말아?

뒤늦게 느껴진 하반신의 허전함. 미즈 드래곤은 그냥 날 집어던졌다.

“으아아악!”

그냥 평범한 나체 남자가 되어 버린 난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날아갔다. 이렇게 된 이상 날려진 힘을 이용해 최후의 공격을 할 뿐이었다.

“받아라!”

목을 움츠리며 머리로 박치기를 준비했다. 비록 나체의 상태지만, 튼튼한 것 하나는 자신 있었다.

내 덜렁이가 사타구니 사이에서 마구잡이로 덜렁거렸다. 심지어 살짝 고개 숙인 나에게 ‘안녕하쇼!’라고 인사까지 했다.

어, 그래. 안녕? 근데 너 이렇게 보니까, 좀 낯설다?

“크악!”

내 머리는 김익조의 등에 명중, 강한 충격으로 김익조를 타격했다. 기절한 김익조의 입이 쩍 벌어지며 본능적인 비명이 튀어나왔다.

맛이 어떠냐? 사람을 갖고 논 대가다!

갑자기 내 주위의 중력이 강력해졌다. 덕분에 난 김익조 위에 포개진 그대로 고꾸라졌다.

“재밌었어.”

미즈 드래곤은 날 보며 웃었다. 그러나 아까처럼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여기까지야.”

녀석은 날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살짝 힘을 주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장난이란 듯 내 주변이 아래로 푹 꺼졌다. 그냥 살이 눌리는 게 아니라 몸 전체가 함몰되어 가는 게 느껴졌다.

“으아아악!”

짜낸 즙처럼 눈에서 피가 흘렀다. 코에서도 콧물이 아닌 뭔가가 흘러내렸다.

“꼼짝 마!”

갑자기 문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전신보호구에 살상용 총기, 거대한 진압방패. 중무장한 협회 요원들이 보였다.

미즈 드래곤은 나에게서 뒤돌아섰다.

살았단 생각에 긴장이 풀리며 눈이 감겼다. 하지만 눈만 감겼을 뿐 청각은 똑똑히 깨어 있었다.

엄청난 소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총 소리, 비명 소리, 금속의 마찰음, 미즈 드래곤의 웃음소리.

고막이 출렁이며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서 입을 벌리고 시원하게 아래 깔린 김익조에게 토했다.

상관없겠지. 이 자식이 한 짓을 생각하면 이건 나쁜 것 축에도 못 들어.

울긋불긋하고 걸쭉한 토사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것이 김익조의 옷으로 퍼지며 시큼한 냄새가 진동했다.

시원하게 토하고 나니, 더 이상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기운이 생겨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제기랄.”

이를 갈면서 사방에 널린 살점과 시체 더미를 바라봤다. 시체들은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대부분 위에서 아래로 눌려서 무슨 인간 블록처럼 보였다.

제어실에 있던 미스터 빅과 똑같다. 아마 몸을 감싼 보호구가 없었다면, 그냥 개떡처럼 납작하게 눌렸을 것이다.

미즈 드래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방 안에서 멀쩡한 사람은 나와 김익조, 박장, 아저씨뿐이었다.

김익조.

네 기억은 내가 반드시 알아야겠어!

내가 토사물 범벅이 되지 않은 김익조의 하반신에 손을 댔다. 그리고 미세하게 느껴지는 H력을 말끔히 빨아들였다. 아까는 흡수 그 자체에 집중했기에 기억을 볼 여유가 없었다.

기억의 단편. 보통은 그게 무작위로 보이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걸 인위적으로 고르는 편법을 쓸 생각이다.

“하앗!”

눈을 감은 채 능력발동. H력을 무의미하게 소비하며, 빠르게 머릿속으로 기억을 살핀다. 내가 원하는 기억이 아니라면 즉시 H력의 출력을 높여 빠르게 소비한다. 그리고 H력이 바닥나면 다시 김익조의 몸에 손을 대 다시 흡수, 그리고 기억 판별. 이걸 반복하는 것이다.

별별 기억을 다 보게 된다. 어제 아침식사, 협회 인사관리 업무, 그저께 점심식사, 검사장과 술자리, 저번 주 저녁식사, 기업 총수에게 기부 강요, 샤워 중 소변, 청와대 직통전화, 고급 외제승용차 운전, 지부장이 미성년자에게 손을 댄 증거가 어떤 기자에게 넘어가자 협회의 힘으로 해당 언론사를 깔아뭉갠 일 등등.

앗! 드디어 내가 원한 기억이 보인다.

눈 덮인 설산,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

기억 자체는 그리 양질이 아니다. 군데군데 색이 바라고, 장면이 뚝뚝 끊긴다. 하는 수 없다.

이건 지난번에 본 아저씨의 것과 같은 시간대. 그때 본 기억은 매우 선명했지만, 이번 것은 좀 흐릿했다.

이걸로 각각 기억의 주인이 해당 기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기억의 시작 시점은 아저씨의 것에 비해 훨씬 앞이다. 아저씨의 기억이 등산 중이라면, 이번엔 등산 전이다.

‘흐흐흐. 잘 생각했네.’

헌터 협회 한국지부장 천민일. 예전임에도 지금처럼 꼬부랑 할아버지다. 추한 웃음처럼 검은 천을 두르고 있다.

무슨 변장인가?

‘자넨 역시 될 놈이야. 될 놈, 안 될 놈은 결정적인 순간에 판별되는 법이지. 자네 스승은 그게 안 돼. 참으로 쓸모없는 부류야.’

기억의 시선, 젊은 김익조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약속은 지키시는 거겠죠?’

‘물론이지. 내가 시킨 일만 완수하면 돼.’

김익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목소리에 비장함이 넘친다.

천민일은 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 김익조에게 주었다.

내용물은 반짝이는 은빛 액체, 흔들리는 모양이 묵직하다.

김익조는 유리병을 받아 주머니에 고이 넣었다.

수은? 하지만 보통 수은을 저렇게 비밀스럽게 전달할 필요가 있을까?

김익조는 천민일과 헤어져서 일행에게로 향했다.

일행은 김익조를 제외하고 20명. 절반은 등산을 도와줄 현지 세리파로 보이고, 나머지 절반은 한국에서 온 헌터인 것 같다. 근데 그 10명의 헌터 중 아저씨로 보이는 얼굴이 없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김익조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꽂힌다. 그런데 그 사람의 얼굴이……!

여기서 기억이 끝났다.

기억을 더 읽고 싶었지만, 나와 김익조는 떨어지고 말았다. 또 다른 구조대가 방 안에 도착했고, 우리를 옮기는 중이었다.

“조금만 버티십시오!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습니다.”

들것에 실려서 지금까지 내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고 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시체와 잔해가 뒤섞여 널브러진 게 보였다.

헌팅 페스티벌엔 우리보다 훨씬 강한 헌터들도 많았다. 그런데 목숨 걸고 싸운 것은 별다른 명망도 없는 우리 팀이었다. 지부장이 살아남았다면 그 공으로 위로 올라갔겠지만, 결국 살아남은 사람은 김익조였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우리와 플레잉 모두 김익조에게 놀아난 것이었다.

쉬고 싶다. 생각하기도 지친다. 이젠 정말 마음을 놓아도 되는 걸까.

“저기…….”

날 옮겨 주는 구조대원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저희 팀원들은……?”

“걱정 마십시오. 그분들은 여러분보다 먼저 구조됐습니다.”

다행이다!

이제 안심하고 쉴 수 있다. 눈을 감은 후 몸의 힘을 뺐다. 그러자 스스로 놀랄 정도로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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