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141화
뱀처럼 긴 목, 코끼리의 상아, 상어의 주둥이. 그리고 그런 머리를 지탱하고 있는 비대한 몸통. 거기에 길쭉한 팔 2쌍, 다리 2쌍이 달린 기묘한 모습이었다.
크기는 대략 10여 미터로 줄었다.
“저게 뭐…….”
눈을 깜빡이는 동안 킹메라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답답한 허물을 벗은 듯 녀석은 단번에 뛰어가 태한에게 접근했다.
처음 모습 때와 비교도 안 되는 속도와 민첩성. 태한이 녀석을 피해 움직였지만, 한발 늦었다.
킹메라의 팔들이 태한을 집중 공격했다. 상대적으로 작은 태한에게 거대한 주먹들이 차례대로 명중했다.
“크윽!”
태한이 신음을 내면서 몸이 꺾인 상태에서 신속하게 광탄을 발사.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당연 태한이 쏜 광탄은 놀라서 손을 떼게 만드는 용도였을 뿐, 피해를 준 것은 아니었다.
“치료!”
태한은 몸을 절뚝이며 최마군에게 말했다. 최마군은 조용히 태한의 몸에 손을 댔다.
태한이 치료를 하는 동안 김대팔이 홀로 광탄을 쏴서 시간을 벌려고 했다. 그러나 폭발적으로 빨라진 킹메라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쏘는 족족 광탄이 빗나갔다.
젠장! 나라도 나서서 돕자는 생각으로 달렸다. 공포특급은 위기의식이 전혀 없는 것인지, 여전히 그놈의 차례를 지키고 있었다.
“사, 상팔 씨! 도, 도와주세요.”
김대팔의 당황한 목소리에서 사태의 시급함이 더해졌다. 저 인간이 쩔쩔매는 건 처음 본다.
“하앗!”
오른손에 광권, 그리고 무광탄을 모았다. 다른 손으로는 광탄을 쏘며 김대팔을 도왔다.
나와 김대팔은 양쪽에 서서 킹메라를 교란시켰다. 녀석이 어느 한 쪽을 노리지 못하도록 쉬지 않고 광탄을 쐈다.
무광탄의 압축은 절반 정도. 그런데 이 느린 공격을 명중시킬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녀석이 껍질을 벗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영거리로 쏠 생각이었는데, 지금의 상태로는 그것도 힘들어 보였다.
“대팔 씨!”
킹메라는 결국 나보다 훨씬 빠르게 광탄을 쏘는 김대팔을 노렸다. 내가 계속 녀석의 뒤통수에 광탄을 날려도 녀석은 무시했다.
“으아아아!”
김대팔은 뒷걸음칠 쳤고, 난 앞으로 달려갔다. 킹메라는 금세 김대팔을 따라잡았고, 태한에게 한 것처럼 주먹으로 난타했다.
“지금이다!”
펄쩍 뛰어올라 광권 손바닥에 모은 무광탄을 킹메라의 몸에 댔다. 그리고 폭…….
“앗!”
사라졌다. 폭발시키기 직전, 녀석의 모습이 스르륵 사라졌다! 그리고 내 뒤에서 거대한 기척이 나타났다.
“젠…….”
엄청난 힘이 내 후방을 때렸다. 예전 트럭에 치였을 때가 떠올랐다. 최초 충돌은 아무 느낌이 없었지만, 엄청난 힘에 의해 몸이 꺾이며 실시간으로 장기가 터지는 게 느껴졌다.
“젠……장!”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가속도가 붙은 내 몸은 킹메라의 주먹에서 벗어나 쭉 날아갔다. 홍보용 바람 인형처럼 온몸이 바람에 흔들렸다. 성한 관절이 없었다.
“아아아악!”
수십 미터 이상을 가볍게 날아갔고, 결국 고원바위 아래로 떨어졌다. 죽는 건가? 젠장!
눈을 감지 않았다. 이왕 죽는다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살아 있고 싶었다.
“베이비!”
지면에서 흰색의 무언가가 뛰어올라 나와 접촉했다.
“우태훈 씨?”
“섹! 시!”
흰 천을 쓴 우태훈이 날 낚아챘다. 그리고 나와 함께 다시 고원바위로 날아갔다.
“킹메라 녀석! 용서하지 않겠어. 감히 나보다 튀어 보이다니!”
천에 뚫린 구멍으로 드러난 우태훈의 눈이 이글거렸다. 이 사람, 중증의 관종이 분명하다.
“구,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감사에 우태훈은 코웃음을 쳤다.
“강자가 약자를 돕는 건 당연한 거야. 그런데…….”
“그런데?”
“너 누구냐?”
엥? 내 귀를 의심하는 말. 뼈가 부러진 팔을 겨우 움직여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벼 팠다. 내가 잘못 들었나?
“뭐라고요?”
“너 누구냐고?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아! 혹시 네가 그 김대팔이냐?”
이 인간, 닭대가리인가? 관종이자, 변태이자, 닭대가리라……. 고생길이 훤히 보인다. 그래도 품 안이 참 폭신하다.
우태훈은 순식간에 일행에게 도착했다. 내가 날아간 사이 몸을 회복한 태한과 차례가 된 최마군이 싸우고 있었다.
“상팔 씨! 무사하셨군요.”
사상 최초! 전무후무! 오지고, 지리고, 레잇고! 김대팔의 인형 옷이 찢겨져서 맨살이 드러나 있었다. 드디어 벗겨졌다, 요망한 티라노!
아쉽게도 맨살이 드러난 부분은 팔과 몸통 일부였다. 어디서 꺼냈는지 수건 같은 걸로 가리고 있었지만, 내 집념은 그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피부가 매우 희다. 엄청난 도련님? 타고난 체질? 관리하는 남자? 하다못해 털이라도 좀 보였으면……!
“대팔 씨. 많이 다치셨…….”
우태훈이 날 그냥 바닥에 떨어뜨렸다. 여기저기 부러진 내 몸은 무력하게 바닥에 널브러졌다. 뭐하는 짓이냐?
“저보단 상팔 씨 치료가 먼저인 것 같군요. 그런데 어쩌죠? 지금 마군 씨가 싸우는 중이시거든요.”
“하는 수 없지. 내가 치료할게.”
남주나는 다친 내 몸에서 피를 빨더니, 블러드 포스를 발동했다. 그러고는 붉게 변한 손을 내 몸에 댔다. 붉은 피부처럼 화끈한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피가 달궈지면서 내 몸의 세포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한돈 아저씨의 치료술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출혈과 통증은 깔끔하게 멎었다.
“내 치료술은 재생 수준이 아니라서 이게 최선이야. 남은 건 네 몸의 생명력…….”
갑자기 남주나의 말이 끊겼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너! 지금……!”
몸을 일으키며 남주나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얼이 빠진 남주나의 얼굴을 쳐다봤다.
“왜요?”
“몸!”
“몸?”
내 몸이 어쨌다고? 몸 여기저기를 손으로 짚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말끔하게 나아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남주나는 화를 내며 김대팔의 몸에 손을 댔다. 그리고 나를 치료해 줬듯이 그를 치료했다.
이 정도의 재생력은 아저씨의 치료술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 아저씨의 능력을 쓴 걸까?
사실 내가 가장 많이 받은 H력은 아저씨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저씨의 치료술을 조금도 사용하지 못했다. 같은 조건이라도 사람에 따라 능력의 효율이 달랐기 때문이다.
가설은 두 가지다. 아저씨의 능력이든가, 아니면 내가 몸에 손을 댄 남주나, 최마군, 손평화의 H력이 내 안에서 새로운 힘을 만들어 낸 것이다.
“블러드 포스라는 건 자기 피로도 가능한가요?”
내 질문에 남주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른 사람의 피여야만 해. 이유는 나도 몰라.”
쳇! 그렇다면 당장 사용하는 건 무리가 좀 있다. 하는 수 없지.
리볼버를 재장전. 실린더를 특수탄이 아닌 가장 빠른 일반탄으로 채웠다. 그리고 다시 킹메라에게 향했다.
최마군은 수준 높은 치료술을 바탕으로 매우 잘 버티는 중이었다. 킹메라의 강력한 공격이 적중해도 그에 못지않은 속도로 몸이 재생했다. 그야말로 파괴력과 회복력의 대결이었다.
“쿠오오오!”
최마군은 기합을 지르며 온몸으로 킹메라의 주먹을 붙잡았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한 바퀴 회전, 킹메라를 통째로 돌리며 집어던졌다.
“지금이다!”
아무리 움직임이 민첩해도 공중에 뜬 상태에서는 무방비. 재빨리 리볼버를 뽑아 킹메라의 머리를 쐈다. 패닝으로 1초도 안 돼 전탄 소비! 총알들이 빠르게 날아갔다.
“엥?”
말도 안 돼! 내가 쏘는 것을 본 킹메라는 긴 목을 튕겨서 총알들을 모두 피했다.
“쳇!”
리볼버를 집어넣은 후 이번엔 양손으로 광탄을 쐈다. 급하게 모은 것이라 위력은 별로였지만, 이번엔 두 발 모두 명중했다. 이번에 노린 것은 바로 목과 몸통의 연결 부위였다.
킹메라는 입을 쩍 벌려서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바닥에 착지. 분노에 가득차서 내게 달려들었다.
“와라!”
밟히기만 해도 끝장인 상황. 나만 한 크기의 발이 위에서 내려왔다. 광권으로 양손을 강화시켜 힘으로 킹메라의 발을 받쳤다.
“크옥!”
녀석의 체중이 실리면서 후회가 밀려왔다. 그냥 피할 것이지, 미쳤다고 이걸 받아 낸 거지? 몸이 점점 수그러졌다.
“지금이다!”
최마군과 태한이 동시에 킹메라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의 공격에 내 옆으로 킹메라의 두 팔이 떨어졌다. 하나는 깔끔하게 절단, 하나는 통으로 뜯어낸 것이었다.
“으악!”
“케엑!”
두 팔을 뜯어내도 아직 팔이 두 개 더 남아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킹메라의 공격에 맞아 자신들이 분리시킨 팔들 옆에 쓰러졌다.
“두, 두 사람!”
큰일이다. 치료술사인 최마군이 당하면 더 이상의 장기전은 불가능하다! 아니, 그보다 나 좀 구해 줘!
허리가 구부러지다 못해 완전히 몸이 찌그러졌다. 어떻게든 버티려 안간힘을 썼지만, 이제 한계였다.
“다크마이트 드릴 빔!”
응? 바닥까지 닿은 내 시야에 마다랑의 쫄쫄이 발이 보였다. 벌써 선수 교대한 거냐?
킹메라의 울음소리가 고막을 찢을 기세로 울렸다. 녀석은 제자리에서 마구 날뛰며 몸을 비틀었다. 녀석의 발이 위로 들려진 순간 재빨리 몸을 굴려 옆으로 빠져나왔다.
“헉!”
마다랑의 손에서 나온 광선이 킹메라의 몸을 꿰고 있는 중이었다.
흔히 생각하는 광선이라면 단숨에 대상을 관통하거나, 태우는 것일 터. 그러나 ‘다크마이트 드릴 빔’은 번쩍인다는 것만 빼면 무슨 꼬챙이 같았다. 심지어 내가 몸을 일으키고, 몸에 묻은 먼지를 털고 있는 와중에도 광선은 아주 천천히 킹메라의 몸통을 지나고 있었다. 무슨 레이저 죽창이냐? 그래도 킹메라의 움직임을 막았으니, 참 대단하긴 하다.
“퉷!”
입안에 들어온 먼지와 이물질을 침에 섞어서 뱉어 냈다. 그리고 양손 광권의 손바닥에 무광탄을 모았다.
“최대한 붙잡아 주세요!”
광선에 꿰인 킹메라는 아주 손쉬운 표적이었다. 녀석을 향해 무광탄을 쐈다.
천천히 날아가는 두 발의 무광탄이 작렬.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며 킹메라의 몸이 두 번 꺾였다.
“젠장!”
꺾인 것은 아주 잠시뿐이었다. 충격이 가시자, 킹메라의 몸은 원래의 형태를 되찾았다.
“뭐하는 거야? 빨리 끝을 내라고!”
마다랑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계속해서 H력을 소모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전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광탄을 한 번 더 양손에 모았다. 그리고 또다시 발사. 이번엔 두 발을 한 곳에 집중시켰다.
“됐다!”
목이 몸통에서 떨어지며 갈가리 찢겼다. 머리를 잃은 몸은 자기 자신을 찢으며 광선에서 빠져나왔다.
“서, 설마?”
찢어진 몸통 속에서 또 뭔가가 튀어나왔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전처럼 또 다른 형태라는 것을 알아챘다. 더 작아진 킹메라는 마다랑에게 직행해 그를 공격했다.
“커억!”
마다랑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크마이트 드릴 빔이 멈췄다.
마다랑의 복부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약 2m의 덩치가 된 킹메라는 마다랑의 모습을 본 딴 것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인간과 같은 몸, 등에 달린 박쥐 날개, 머리에 달린 뿔, 긴 꼬리, 그리고 입 밖으로 튀어나온 날카로운 이빨들. 그야말로 ‘악마’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