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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45화 (145/250)

145화

145화

주말. 몸을 풀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조물주 의원 방문 후 휴대전화로 정한 대결 장소는 바로 예전에 아저씨와 훈련했던 폐교. 노건은 나보다 먼저 운동장에 있었다.

“일찍 나오셨네요?”

노건은 간단한 추리닝 차림. 저기에 댕기머리 가발만 쓰면 딱 주아란 코스프레다.

“시작할까요?”

노건은 살짝 흥분한 상태. 폭발하길 기다리는 활화산 같았다. 일단 부드럽게 그를 말렸다.

“준비운동 좀 하고요. 그래도 되죠?”

내 질문에 노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에게서 떨어져 운동장 한쪽에서 팔다리를 움직였다.

“후웁, 후웁, 후웁…….”

심호흡. 긴장감에 몸이 잔뜩 굳어 있었다. 예전에 한 번 뒤지게 얻어터진 탓일까. 그 어떤 괴물을 대면할 때보다 겁이 났다.

“헤헤헤!”

공포는 웃음으로, 떨림은 흥분으로 덮었다. 지금은 몸을 움직일 수만 있으면 족하다. 온몸이 땀에 젖을 때까지 제자리 뛰기를 했다. 땀이 나면서 몸이 따뜻하게 데워졌고 체온이 오르며 근육과 관절이 부드럽게 풀렸다.

“후우!”

지금이다! 지금이 바로 전력을 발휘할 때. 운동장 가운데로 뛰어와 노건에게 소리쳤다.

“싸우죠!”

노건은 그 자리에서 바로 능력발동, 그리고 능력발현. 단숨에 상체가 비대해지며 역삼각형의 몸매로 변했다. 상의는 다 찢어져서 완전히 노출인데, 왜 하의는 안 찢어지지? 노건은 크게 한 번 뛰어 내게로 접근했다.

“받아라!”

노건의 주먹이 내 몸을 강타했다. 상체가 육중해진 만큼 주먹의 크기는 축구공만 했다.

“하앗!”

기합을 주며 노건의 주먹 움직임에 따라 몸을 뒤로 날렸다. 그렇게 해서 생긴 1초의 간격. 주먹이 닿기 전 재빨리 능력발동을 해서 H력으로 내 몸을 감쌌다.

“크으으윽!”

육체를 강화시켰음에도 주먹의 묵직함이 뱃속 깊이 들어왔다. 노건의 공격이 적중하며 내 몸은 운동장 끝까지 날아가 울타리에 부딪쳤다.

“아프잖아!”

예전에 싸울 땐 여기서 끝이었다. 그 뒤는 일방적 구타. 노건의 분이 풀릴 때까지 샌드백 신세였다. 하지만 지금은 공격을 버티며 일어설 수 있었다.

“후우.”

버틸 수 있더라도 노건의 공격은 여전히 위협적이다. 더 이상의 유효타를 허용하는 건 금물. 이제부턴 내가 반격…….

“앗!”

노건은 내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힘차게 달려오며 어깨로 날 노렸다. 일단 몸을 굴려 돌진 경로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걸어서 내 앞에 도착했다.

역시 예전 랭킹 헌터. 만만치 않다. 난 싱긋 웃었다.

“너! 똑똑하구나? 보통 막 흥분하면서 무식하게 움직여야 하지 않아?”

“쿠오오오!”

노건은 한손으로 내 머리를 움켜쥐어 날 들어 올렸다. 그의 악력으로 보아 적당히 하려는 수준이 아니었다.

“적당히 안 해도 되겠지?”

양손에 광탄을 만들어 노건의 머리에 쐈다.

“크아아악!”

노건은 눈부심을 못 이겨 날 집어던졌다. 날려진 난 이번엔 운동장 반대편 끝으로 향했다. 노건은 양손으로 눈을 비비며 고통스러워했다.

“간다!”

한 손으로 광탄 연속 발사, 다른 손에는 무광탄을 모았다. 내가 노건에게 다가가는 동안 날아간 광탄은 그가 시야를 회복하지 못하게 방해했다.

“한 방!”

노건의 몸통을 향해 약한 무광탄을 쐈다. 최대는 아니었지만 나름 강하게 쏜 폭발에 그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노건은 쓰러지지 않고 충격을 버텼다.

“하하……하.”

그걸 받아 낸 거야?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노건은 실눈을 뜨면서 날 와락 끌어안으려 했다.

“호잇!”

상체를 뒤로 젖혀 노건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후 뒤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내 발이 그의 턱을 후려쳤는데 순간 발끝에서 아주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으아아아!”

노건은 분노를 터뜨리며 마구잡이로 주먹을 날렸다. 난 팔을 교차하며 그의 공격을 막았다. 주먹 한 방, 한 방에서 전해지는 충격에 온몸이 떨렸지만 부상을 입거나 하진 않았다.

“따라와!”

노건의 공격이 잠시 느슨해진 틈을 타 그와 거리를 벌려 폐쇄된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문으로 들어간 것에 비해 그는 그냥 벽을 부수고 들어와 날 쫓았다.

“하하!”

계단을 이용해 위로 올라갔다. 노건은 육중한 상체에 비해 하체는 그대로인지라 상대적으로 계단을 오르는 것은 느렸다. 우리의 거리는 점점 벌어졌다.

“뭐하는 거야? 아까의 그 기세는 어디 갔어?”

난간으로 아래층의 노건을 도발했다. 그는 내 말을 듣고는 크게 분노했다.

“우오오오!”

“엥?”

노건은 계단을 뜯어내 통째로 무너뜨렸다. 썅, 내가 왜 그랬을까. 급하게 후회가 몰아쳤다.

“으악!”

발아래가 꺼지며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노건은 그런 날 냅다 후려쳐서 위로 날렸다.

“도와주는 거냐?”

단숨에 천장으로 날아가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는 묘한 궤적을 그리며 옥상 바닥에 굴렀다.

“젠장!”

재빨리 일어나 옥상 끝으로 도망쳤다. 내가 가장자리에 있는 철조망에 닿음과 동시에 옥상 바닥의 구멍이 박살나며 노건이 점프로 올라왔다.

“으아아아!”

노건은 순식간에 내 앞에 착지. 이를 갈면서 날 노려봤다.

“이건 어때!”

몸을 낮춰 발차기로 노건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의외로 쉽게 하체의 균형이 무너지며 넘어졌다.

“역시!”

넘어진 노건의 오른쪽 다리를 껴안은 다음 힘껏 펴면서 젖혔다. 내 몸무게가 실리자 그의 무릎은 쉽게 펴졌고 난 거기서 암바의 하체 버전인 니바를 걸었다.

“어때? 무릎뼈 나가기 싫으면 어서 항복해!”

노건은 말없이 양팔을 휙 돌리더니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리고 손으로 몸을 지탱해 물구나무를 섰다. 난 다리에 딸려서 함께 들어 올려졌다.

“와!”

힘 한번 좋네. 정말 힘에선 당할 도리가 없다. 혀를 내두르며 그냥 노건의 무릎을 꺾었다. 그러나 처음과 달리 그의 몸은 석상처럼 딱딱해져 움직이지 않았다.

“뭐, 뭐야?”

노건은 내가 멈칫하는 사이 허리를 튕겨서 날 다리째로 옥상 바닥에 찧었다. 강한 충격과 함께 아찔한 통증에 머리가 찌릿했다.

“크윽!”

독한 놈. 내 머리와 함께 노건의 오른쪽 다리가 꺾였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 않고 비대한 양팔로 몸을 가누며 똑바로 섰다.

“무슨 고릴라냐?”

난 뒷걸음질 치며 노건과 거리를 벌렸다. 지금 타이밍에서 변신을 할까? 살짝 고민이 됐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럼 이건 어때?”

양손을 흰색 막으로 덮어 광권을 만들었다. 그리고 글러브처럼 손을 감싼 광권을 마주 대며 손을 풀었다.

“간다!”

이번엔 내가 먼저 노건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양손으로 서서 가만히 내 접근을 기다렸다.

“뭐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자세를 낮춰 노건의 복부를 노렸다. 우선 오른손으로 깊게 스트레이트! 가볍게 뻗은 주먹이 노건의 배에 꽂혔다.

“응?”

분명 명중했는데 때린 감각 대신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냥 맨주먹으로 벽을 친 것 같다.

“윽!”

입술을 씹으며 왼손으로 노건의 오른쪽 옆구리! 이번엔 확실하게 타격감이 전해졌다.

“좋았…….”

어? 고개를 들어 노건을 흘깃 보려다 완전히 눈이 마주쳤다.

“엥?”

노건의 얼굴에서 조금의 고통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대뜸 내 양 주먹이 무차별 펀치로 그의 면상을 때렸다.

“아다다닷!”

주먹이 아프다. 광권으로 강화했는데도 딱딱한 촉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왜 때리는 내가 더 아픈 것 같지? 때리면 때릴수록 내 쪽이 더 불리해지는 것 같았다.

“에잇!”

양손을 노건의 머리에 가까이 조준하고 광탄을 연속 발사했다.

“으아아아!”

광탄들이 폭발하며 노건의 육체를 쉴 새 없이 두들겼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결코 신음 소리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았다. 난 더욱 위력을 높여 광탄을 쐈다. 여차하면 정말 죽일 생각으로 공격할 것 같다.

“쿠옷!”

노건은 한 발로 몸을 지탱하며 양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한 발로만 몸을 지지하면서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올 리가 없다. 오히려 어중간하게 느린 속도 때문에 내 눈에 그의 움직임이 너무 잘 보였다.

“하하!”

가볍게 제자리 뛰기를 하며 노건의 공격을 피했다. 그런 다음 뒤로 돌아가 그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때렸다. 그러자 노건은 내가 주먹을 지름과 동시에 자신의 왼쪽 다리를 중심축 삼아 몸을 회오리처럼 돌렸다.

“으악!”

노건의 주먹에 맞아 내 왼팔이 부러졌다. 그의 회전은 오래가지 않고 금방 멈췄다.

“지금이다!”

노건이 회전을 멈추고 엉거주춤하는 틈을 노려 오른손으로 왼팔의 복수를 했다. 그의 관자놀이와 뺨은 내 오른 주먹에 의해 떡이 되었다.

“한 대 더!”

크게 휘두르며 날아간 내 주먹에 드디어 노건이 쓰러졌다. 그러나 완전히 뻗은 것은 아니어서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양손으로 광탄을 쏴서 쓰러진 노건 주변 바닥에 구멍으로 점선을 만들었다. 점선은 약해진 바닥에 간 금으로 이어져 딱 노건만 한 크기의 큰 구멍으로 변했다.

“으아아악!”

나와 노건은 천장 자재와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끝장을 보자!”

흥분한 탓인지 갑자기 극단적인 생각이 머리를 덮었다. 난 떨어지면서 양손을 아래로 펴 광탄을 난사했다. 우리가 떨어지려던 층 바닥은 옥상처럼 붕괴했고, 우리는 계속해서 아래로 떨어졌다. 난사, 붕괴, 난사, 붕괴……. 우리는 그렇게 1층까지 떨어졌다.

“크으으윽!”

우리는 동시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그런 우리 위로 건물 자재가 쏟아졌다. 난 재빨리 능력발현을 해서 내 몸을 흰색 슈트로 감쌌다.

“크, 큰일이다!”

완전히 건물이 붕괴된 모양이다. 몸 위에서 느껴지는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엥?”

뭔가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서, 설마?”

설마가 사람 잡았다. 내 주변 잔해가 날아가며 휑한 공간으로 노건의 얼굴이 나타났다.

“넌 아픔도 못 느끼니?”

물론 나도 변신한 덕에 딱히 다치거나 하진 않았다. 그래도 얜 다리도 부러졌는데?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냅다 그 틈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노건에게서 떨어져 주변을 살폈다.

“세상에……!”

폐교가 무너져 있었다. 이거 뉴스에 나오는 거 아니야? 서둘러 결판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하앗!”

변신한 상태에서 노건에게 돌진. 주먹으로 그의 명치를 때렸다. 이번엔 확실하게 공격이 그의 몸 깊숙이 들어갔다.

“좋았어!”

뒤로 물러나 한 손에 무광탄을 모았다. 그리고 노건의 몸 중심에 대고 힘껏 폭발시켰다.

“으아아아!”

노건이 버티질 못하고 멀리 날아갔다.

“켁켁!”

내 입에서 뭔가 질퍽한 것이 튀어나와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슈트로 온몸이 감싸져 있기에 액체는 턱과 목을 타고 내 옷 속으로 들어갔다.

“아, 찝찝하다.”

투덜거리며 노건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설마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 깨어나는 건 아니겠지? 침을 삼키며 그를 똑바로 눕혔다.

“후후.”

이겼다. 처음엔 승리의 기쁨이, 다음엔 노건에 대한 우려가 폭발했다.

“괘, 괜찮아요?”

노건의 몸은 점점 원래대로 돌아갔다. 빵빵하게 부풀었던 몸이 왜소해지자 그제야 그의 몸에 누적된 상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 구급차!”

서둘러 119에 신고하려 했다. 그런데 치열한 싸움의 여파로 휴대전화가 고장 나 있었다.

“젠장!”

노건을 업고는 서둘러 운동장을 가로질러 폐교를 나왔다. 그 후 택시를 잡아타 조물주 의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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