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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48화 (148/250)

148화

148화

우리와 무리 사이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불안은 점점 현실로 변했다. 그리고 바로 코앞까지 와서야 우리는 깨달았다.

“수풀로!”

한쪽은 절벽이었기에 무조건 정글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우리 조는 아까처럼 양쪽으로 찢어지고 말았다.

“앗!”

수풀로 몸을 던지고 나서야 남은 인원이 눈에 들어왔다.

날 따른 건 초조선을 포함해 10여 명. 나머지는 절벽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마저도 몇 명이 떨어져 가스고라니 무리에 짓밟혔다.

―괜찮나?

김경진에게서 무전이 왔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평온했다. 초조선은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괜찮을 리 없잖습니까! 어떻게 된 거죠?”

―까불지 마라.

김경진의 일침에 초조선은 기죽지 않았다.

“이쪽은 하마터면 전멸할 뻔했다고!”

―그래서?

“뭐?”

―헌터는 그런 직업이다. 어리광 부리지 마. 보아하니 너희는 탄알이 다 떨어진 모양인데?

초조선은 얼굴을 찡그리며 천천히 말했다. 그것이 그녀가 가장 냉정하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더 이상 이 작전은 쓸모가 없다. 작전 변경이다. 1조가 부산물을 회수하는 동안 2조는 전력을 다해 미끼가 되도록.

“죽으란 겁니까?”

―후후후.

김경진의 말은 한결같이 싸늘했다.

―난 죽으라고 한 적 없어. 살고 싶으면 알아서 발버둥 치면 돼. 죽는다면, 그건 자신이 무능해서야.

그것으로 무전은 끊겼다. 가스고라니 무리는 우리를 지나간 후 점차 속도를 늦췄다.

“어떻게 하지?”

초조선과 다른 조원들이 날 바라봤다. 그러나 곤란하기는 나도 마찬가지. 물론 마음 같아선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다. 하지만 난 여기 팀원도 아니고 엄연히 깍두기로 끼어든 신분이다. 내가 주도적으로 팀의 간부인 김경진을 엿 먹이는 것은 우리 팀뿐만 아니라 김대팔에게까지 해가 될 수 있다.

“다들 제 말 잘 들으세요.”

긴박한 상황이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헛소리가 튀어나왔다.

“이이 씨를 데리고 여기서 조금 더 뒤로 물러나 몸을 숨기세요. 미끼 역할은 제가 혼자서 어떻게든 해 볼게요.”

“혼자서?”

다른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날 말렸다.

“괜찮아요. 이래 봬도 꽤 강하거든요.”

산탄총과 리볼버는 쓸 수 없다. 남은 것은 몸뚱이뿐. 그러나 계속된 수련으로 꽤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무전기를 주세요.”

초조선은 순순히 무전기를 내게 줬다. 난 그것을 받아서 홀로 길 한가운데 섰다. 그리고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준비됐습니다.”

―왜 너 혼자지?

“다른 사람들은 안전한 곳에 숨어 있습니다.”

―명령을 불복한 건가?

“아니요. 생존을 위한 선택입니다.”

―후후후. 그래? 그럼 알았다. 혼자서 잘 해 봐. 우린 임무만 완수하면 그만이다.

망할 자식. 속으로 욕을 하며 무전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능력발동. 양손에 광탄을 모아 가스고라니 무리에 던졌다.

“여기야! 이쪽으로 와!”

가스고라니 무리가 또 달리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성난 황소처럼 그저 무작정 나에게 돌진했다.

“하앗!”

내게 접근할 때까지 기다린 후 아슬아슬한 순간에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공중에서 공중제비를 돈 후 한 가스고라니 위에 착지했다.

“좋았어!”

착지하고 나서 바로 가스고라니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녀석의 목을 감쌌다. 그러자 목표를 잃은 무리는 또 주춤거렸다. 하지만 내가 탄 녀석은 미친 듯이 날뛰며 무리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내가 탄 가스고라니가 무리 앞으로 빠져나오자 무리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였다.

“좋았어.”

무리는 또 돌진. 내가 탄 녀석은 영문 모를 무리의 돌격에 놀라 도망쳤다. 같은 가스고라니끼리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그리고 저 멀리 1조에서도 다시 총성이 울렸다.

“이크!”

총알들이 가스고라니 무리를 지난 후 내가 탄 녀석까지 노렸다. 난 손으로 가스고라니의 머리를 돌려 달리는 방향을 조종했다.

“이랴!”

난 가스고라니를 자극해 계속 달리게 했다. 쭉 일직선으로 달리다 보니 어느덧 가스고라니 서식지 경계에까지 다다랐다.

“가자!”

가스고라니의 목을 뒤로 젖혀 머리가 하늘을 보게 했다. 그러자 녀석은 엄니에서 폭발적으로 연기를 뿜어냈다. 뒤를 돌아보니 그 연기가 뭉게뭉게 퍼져 무리 사이로 퍼졌고, 그것을 본 무리도 엄니에서 연기를 뿜었다.

가스고라니 무리는 거대한 연기 덩어리가 되어 달렸다.

“쳇!”

1조도 총알이 다 떨어진 것인지 어느 순간 총성이 멎었다. 일단 무전기를 꺼내서 다급하게 김경진을 불렀다.

“공격 안 해요?”

―총알이 떨어졌다. 처음에 말했던 대로 부산물을 회수하겠다. 계속 주의를 끌어라.

“그럼 2조도 함께 회수하라고 하세요! 이제 조를 나누는 건 의미가 없잖아요.”

―닥쳐. 명령은 내가 내린다. 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알겠나?

짜증이 나서 그냥 무전기를 껐다.

“그럼 이제부턴 내 마음대로 하겠어!”

가스고라니 등 위에서 거꾸로 돌아앉았다. 그리고 양손에 무광탄을 모아 가스고라니 무리를 향해 쐈다.

“받아라!”

두 방의 무광탄이 소리 없이 날아가 무리 선두를 강타했다. 거대한 폭발이 일며 가스고라니들이 넘어졌다.

“좋았어!”

가스고라니들은 쓰러진 선두를 그냥 밟으며 계속 쫓아왔다. 나도 계속해서 무광탄을 쏘며 차례차례 무리의 수를 줄여 갔다.

“앗!”

내가 타고 있던 가스고라니가 갑자기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녀석은 고개를 숙이며 그대로 널브러졌다. 입에 거품을 문 것으로 보아 체력이 방전된 것 같았다.

“약골이네.”

재빨리 가스고라니 위에서 내려와 몸을 낮췄다. 그리고 다가오는 무리에 맞서서 나도 녀석들에게 달려들었다.

우선 가볍게 점프. 맨 앞에 선 녀석을 시작으로 가스고라니들을 차례차례 징검다리처럼 밟았다.

녀석들은 나만 쳐다보는 통에 자기들끼리 얽혀서 그대로 넘어졌다.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된 무리는 흰 연기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멈춰 섰다.

“해결?”

하하하, 아닐 거야. 가스고라니 무리에서 형체 하나가 일어섰다. 다른 녀석들과 달리 그 개체는 꽤 덩치가 있는 녀석이었다.

“우두머리!”

우두머리는 콧김을 훅훅 뿜어내며 연기와 먼지를 뚫고 나에게 돌진했다. 난 또 점프로 녀석을 넘어가려 했지만, 내가 뛰어오른 타이밍에 맞춰 녀석도 뛰어올랐다!

“으악!”

녀석의 머리가 내 복부를 들이받아 내 몸이 땅에 내동댕이쳤다.

난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젠장.”

몸을 앞으로 굴러 얼른 일으켰다. 그러나 그때 우두머리의 앞발이 앞에서 날아왔다.

묵직한 발굽이 내 얼굴을 찼고, 자칫 목이 뒤로 꺾일 뻔했다.

“이야야야!”

양손으로 우두머리를 밀치며 몸을 뒤로 뺐다. 녀석의 육중한 체중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면서 살짝 겁이 났다. 그러나 몸을 일으킨 후에는 달랐다.

“후웁!”

숨을 들이쉰 후 능력발동으로 다리를 강화했다. 녀석이 날 따라 점프한다면, 난 더 높게 점프하면 되는 일이다. H력이 빵빵한 덕에 아직까진 여유로웠다.

“와라!”

우두머리와 한 번 더 점프, 그러나 녀석은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난 아주 높게 뛰어서 위에서 녀석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슬슬 내 몸에 중력가속도가 붙으려는 순간, 발차기 자세를 취해 우두머리에게 떨어졌다.

“중력킥!”

우두머리도 뛰어올라 나와 격돌. 사실 그냥 추락이지만 H력으로 강화된 육체는 충분히 그 충격을 버틸 수 있었다.

내 발차기에 맞은 녀석의 고개가 돌아가며 뒤로 꺾였다. 우리는 함께 착지했지만 살아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멍청한 녀석!”

그때 뒤에서 호통이 들려왔다. 무전기에서 숱하게 들은 김경진이었다. 난 고개를 돌려 그를 돌아봤다.

“무슨 일이시죠?”

김경진은 한걸음에 다가와 내 멱살을 잡았다. 물론 그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H력이 나오고 있음은 당연했다.

“누가 지시에도 없는 일을 하라고 했지?”

“지시는 완수했는데요?”

“말대꾸하지 마!”

김경진은 내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난 피할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이 따위 주먹은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았다.

도대체 이 망할 자식은 어디가 문제인 걸까?

내 관심사는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잘 들어라!”

김경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모두에게 말했다. 어느새 우리 곁에는 다른 헌터들이 서 있었다.

“명령에 불복하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너희는 도구지, 동료가 아니다! 도구가 주인에게 거스른다는 것은 곧 폐기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김경진은 날 밀쳐낸 후 폭발적으로 H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몸에서 찬란한 수증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너처럼 나대기 좋아하는 족속들은 꼭 손을 봐줘야 하지!”

“그렇게 H력이 많이 있으면서 왜 아까는 힘을 쓰지 않은 거죠? 그랬다면…….”

희생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경진은 툭 한마디 내던졌다.

“왜 내가 아랫것들을 위해 힘을 써야 하지?”

그 말을 듣고 피가 끓어올랐다. 물론 저 새끼는 어금니의 팀원. 뭐라고 지껄이든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내 코앞에서 저 따위로 떠드는 것까지 참을 수 없었다.

난 김경진이 능력발현을 하기 전에 먼저 주먹을 그의 얼굴에 꽂았다.

“크아아악!”

내 주먹에 맞고 김경진은 멀리 날아갔다. 물론 헌터 랭킹 19위이니 이 정도로 뻗을 거라곤 생각 안 한다.

“이 망할 자식!”

저 멀리. 김경진이 날아간 정글에서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주변 나무에 있던 새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갔다.

김경진은 순식간에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가 뛰면서 일으킨 돌풍에 모두들 뒤로 물러섰다.

“미쳤냐?”

“당신들 시선으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

이제 더 이상 존대해 줄 예의가 바닥났다. 김경진은 허탈하게 웃었다.

“미친 새끼.”

김경진의 몸은 빠르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거대화한 것이다. 대략 5m까지 커지고 나자 팽창은 멈췄다.

“납작하게 밟아 주마!”

거대한 발이 위에서 내려왔다.

덩치와 다르게 빠르다! 젠장, 왜 거대한 것들은 꼭 빠르기까지 한 거야? 그냥 체구에 맞게 천천히 움직이면 안 되나?

혀를 차면서 김경진의 발을 피했다. 거대한 신발을 보고 있자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근데 옷은 안 찢어졌네?”

“뭐?”

나도 모르게 나온 질문에 김경진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어이. 잘 생각해 봐. 내가 비록 너한테 깨져도 네 옷을 다 태워 버릴 자신은 있거든? 여기 숙녀 분들도 계신데 덜렁이를 덜렁거려도 되겠어?”

“그럼 다 죽이면 돼!”

와, 이게 대장이란 놈이 할 소린가?

대한민국 최강 헌터팀의 바닥을 본 기분이다. 김경진은 날 차려고 다리를 뒤로 뺐다. 그러나 그것은 발차기로 이어지지 않았다.

“지금 뭐하는 거죠?”

김경진의 머리 위에 누군가 서 있었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 없던 인물이었다.

“사, 사장님!”

김경진은 화들짝 놀라 굳어 버렸다. 그는 바로 장벽 밖에 있어야 할 김용이었다.

“김경진 씨. 당신의 임무는 우리 사원들을 데리고 사냥을 하는 것이지, 김상팔 씨를 공격하는 게 아닙니다.”

사원?

“예!”

김경진은 즉시 능력을 해제했다. 그가 원래 모습으로 줄어듦에 따라 김용도 그의 머리에서 내려와 땅 위에 섰다.

“김상팔 씨.”

김용은 순식간에 내 앞까지 왔다. 그의 움직임은 강해진 내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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