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54화 (154/250)

154.

154.

“꼭 참석해 주세요. 아셨죠?”

그것은 진짜 카드가 아니라 타로카드처럼 생긴 청첩장이었다. 처음 태한과 만났을 때도 그가 나에게 타로카드 점을 봐준 게 생각났다.

“네. 물론이죠.”

이하란은 오이해, 김용, 김익조에게도 가서 각각 카드를 뽑아 줬다.

그러는 사이 난 청첩장 앞면에 쓰인 문구와 함께 배경으로 그려진 그림을 확인했다.

“응?”

그림에 빨간 색으로 ‘역’이라 쓰여 있었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쓱 문질러 보니까 잉크가 번져서 글자가 흐려졌다.

방금 쓴 것이다.

“그렇다면……!”

바퀴 모양의 그림. 정확하진 않지만 ‘휠 오브 포춘’이란 이름일 것이다.

황급히 휴대전화로 그 의미를 검색했다.

“앗!”

다른 세 사람도 서로 다른 카드를 받은 것인지 나처럼 휴대전화로 검색하고 있었다.

졸지에 좀 웃긴 상황이 펼쳐졌다.

“역위치. 악화, 엇갈림, 격하!”

함정이란 뜻인가? 태한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 100억만 걸기로 한 사람은 김용, 오이해, 그리고 10억만 걸어 온 태한, 세 사람 모두 랭킹 헌터다!

아까도 그랬지만 만약 짠 거라면? 건다고 한 금액보다 더 큰 금액을 건다면?

손이 떨리면서 가슴이 요동쳤다. 그러자 기기래가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난 천천히 팔찌를 들어서 속삭였다.

“이준에게 10억.”

[조기홍 VS 이준 7]

배팅이 완료되고 자동적으로 일곱 중 나와 다른 둘을 합친 하위 배팅 셋이 조기홍에게 옮겨 갔다. 그리고 진행된 경기는 예상대로 이준의 압승으로 끝났다.

[승자 이준]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파산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야!”

한현두가 방방 뛰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회종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말도 안 돼! 내가 파산이라니! 이놈들,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사기야!”

한현두가 흥분해서 바로 옆에 있는 김용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가 김용의 멱살을 잡자마자 김용은 손가락을 튕겨 그를 멀리 날려 보냈다.

“거친 행동은 자제해 주십시오. 여기 모이신 분들은 모두 교양인 아닙니까?”

역시 두 사람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결국 한현두와 이회종은 직원들에게 이끌려 방 안에서 퇴장했다.

그렇게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나서 스크린에 자금 상태가 띄워졌다.

[1. 김용, 소지금 : 1860억 / 대출한도 : 2000억]

[2. 김익조, 소지금 : 724억 / 대출한도 : 2000억]

[3. 오이해, 소지금 : 2362억 / 대출한도 : 1000억(전액 대출 중)]

[4. 이태한, 소지금 : 554억 / 대출한도 : 1000억]

[5. 김상팔, 소지금 : 741억 / 대출한도 : 200억(전액 대출 중)]

역시, 마지막 거짓말은 하위권의 돈을 털어먹기 위한 수작이었다.

한현두와 이회종은 조금이라도 손해를 매우기 위해 제정신이 아니었을 테니, 손쉬운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그럼 다들 퇴장하시죠.”

김익조가 심드렁한 어투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들 어깨를 으쓱이며 방을 나서기 위해 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문이 열리자마자 누군가 방 안으로 난입했다.

“김상팔!”

적지형이 쳐들어와 사람들을 밀치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대뜸 내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난 뒤로 고꾸라지며 쓰러졌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김용이 적지형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적지형은 H력을 뿜어내며 전력으로 싸우려 했다.

“난 저 녀석과 담판 지을 일이 있어! 당신이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주제가 되나?”

“뭐?”

김용이 H력을 뿜어내자 방 안이 순식간에 아지랑이로 가득 찼다.

기세 좋게 덤비려던 적지형도 한 걸음 물러섰다.

그것을 보던 김익조가 박수를 치며 두 사람 사이로 걸어왔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일은 두 사람이서…….”

김익조는 말을 흐리더니 두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쓰러진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김상팔 씨. 당신은 예전부터 적지형 씨와 꽤 악연인 모양이군요. 이러면 어떻습니까? 지금 여기서 열 번째 랭킹전을 벌이는 겁니다.”

지부장의 돌발 발언. 김용, 오이해, 태한은 서로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다들 하나같이 심각한 얼굴이었다.

“지금 모인 인원으로는 흥이 식을 것 같은데요?”

김용은 슬쩍 출입구로 움직였다. 그러자 김익조가 성큼성큼 걸어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사람이야 또 부르면 그만 아닙니까? 적지형 씨도 꽤 지쳤으니 그동안 쉬게 하면 되겠죠? 안 그렇습니까?”

김익조의 말에 적지형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리고 내 얼굴에다 대고 침을 뱉었다.

“도망치지 말고 싸워. 알았지?”

난 입술을 깨물며 적지형을 노려봤다. 기기래가 서둘러 물티슈를 꺼내 내 얼굴을 닦아 주었다.

“그럼 결정된 것 같군요. 열 번째 경기는 6시간 뒤에 시작하겠습니다. 그동안 필드도 재정비하고, 다들 휴식을 취하시죠. 김상팔 씨도 몸 좀 푸십시오.”

김익조가 앞장을 서고, 우리는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넓은 레스토랑처럼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여러 개의 원형 탁자가 있었다.

직원들이 어디선가 사람 수대로 의자를 가져왔다.

다들 일행끼리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직원들이 요리를 갖고 와 각 탁자에 서빙을 했다.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상대는 적지형이라고요!”

“괜찮아요. 어떻게든 될 거예요.”

가장 위험한 고비가 바로 녀석과의 시합 성사였다. 그런데 설마 김익조가 먼저 랭킹전을 제의할 줄이야!

물론 그는 당연히 내가 질 거란 생각으로 그랬을 것이다.

“이 육회 맛있는데요?”

불그스름한 생고기와 윤기가 흐르는 계란 노른자의 조합. 간은 소금, 후추와 마요네즈로 되어 있었다.

고기 특유의 진한 풍미가 마요네즈와 섞이며 고소한 맛이 더해져 일품이다. 난 포크로 연신 고기를 떠먹었다.

“이건 육회보단 타르타르 스테이크에 가까운 것 같아요.”

기기래가 꽤 신중하게 맛을 보면서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일반적인 육회하고는 조금 스타일이 달랐다.

타르타르 스테이크 다음에는 바닷가재. 무려 반은 회로, 반은 버터구이로 나왔다.

“와!”

호화스럽다.

포장마차에서 우동과 맥주로 허기를 달랬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러고 보니까 안 가 본 지 꽤 됐네? 나중에 한 번 가 봐야겠다.

부드럽고 달콤한 회와 고소하고 짭짤한 버터구이. 바닷가재란 게 왜 고급 식재료가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다들 바닷가재는 한 접시씩 더 주문해서 먹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음식은 안심 스테이크와 바게트. 큼지막하게 썰어서 입에 넣으니 고기가 육회 이상으로 부드럽게 뭉개지며 꿀떡 넘어갔다.

“연하다!”

이번엔 더 크게 썰어서 입에 넣었다. 세상에! 무슨 고기로 된 반죽을 씹는 것처럼 침과 섞이며 혀를 타고 넘어갔다. 씹는 게 아니라 빨아먹는 느낌이다.

“어떻게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기기래도 깜짝 놀라며 계속해서 나이프로 고기를 썰었다.

우리는 정신없이 스테이크를 먹어 치웠고, 식사를 마쳤을 때 식탁엔 빈 고기 접시가 무려 6개나 쌓여 있었다.

“상팔 씨! 이렇게 많이 드시면 어떻게 해요?”

기기래가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날 나무랐다. 분명 접시는 3개씩 쌓였는데?

기기래는 슬쩍 자신의 접시들을 내 쪽으로 밀었다.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신 후 난 지부에서 준비해 준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대기실로 보이는 방에 혼자 들어가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백만 스물 하나! 백만 스물 둘! 백만 스물 셋!”

앞에 백만을 빼야 실제 운동 횟수가 된다.

팔굽혀펴기, 제자리 뛰기, 윗몸일으키기! 기초적인 운동이지만 몸을 덥히는 데 이것보다 좋은 건 없다.

깊은 지하였음에도 환풍기 덕에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굳이 하나 뽑자면 시간 감각이 무뎌졌다는 것 정도? 휴대전화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오후 9시.”

대기실에 알람이 울리며 벽에 달린 스피커로 이서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쪽의 빨간 문을 여시면 필드로 나오실 수 있습니다. 현재 경기 시작 1시간 전입니다.”

난 필드와 연결된 빨간 문이 아닌 내부 통로와 연결된 파란 문을 열었다.

내부 구조는 아까 직원에게 설명을 들어서 대충 알고 있었다.

“여기인가?”

위로 한 층 올라간 다음에 어떤 문을 열자 긴 통로가 나왔다. 아까 우리가 있던 배팅룸으로 가는 길이었다.

“좋았어!”

통로를 지나 배팅룸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김익조가 부른 사람들로 가득했다.

“김상팔이다!”

남주나의 외침. 그녀 옆에 마다랑과 갈리도 보였다.

그밖에 아까 필드에서 싸웠던 이준, 조기홍, 이신지, 마바일이 있었으며 심지어 폭발대제는 중요 멤버가 모두 모여 있었다.

“네가 김상팔이냐?”

폭발대제의 팀장, 하상구. 로얄 중에서도 극도로 위험하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살인을 하고도 지부의 공작 덕에 그냥 넘어갔단 소문이 있지만 직접 만나고 보니 왜 그런 말이 퍼졌는지 알 것 같다.

“뭘 야려? 뒈지고 싶어?”

하상구는 대뜸 H력을 끌어올려 능력발현을 했다. 그러자 그의 손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그는 그 손으로 주먹을 쥐어 날 때리려고 했다.

“팀장!”

마바일이 자신의 양손을 암석으로 바꿔 하상구의 주먹을 잡았다.

둘의 손이 맞닿으면서 마바일의 손도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마바일은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퉷!”

하상구는 마바일을 뿌리치며 내 앞에 침을 뱉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침이 바닥에 떨어져 펄펄 끓었고, 거기서 나온 증기에서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 번만 더 야려 봐! 죽여줄 테다!”

“험험!”

김익조가 크게 헛기침을 하자 하상구는 이를 갈면서 뒤로 돌아섰다.

김익조는 나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멋진 승부를 기대하겠습니다. 물론 김상팔 씨는 본인한테 거시겠죠?”

난 김익조의 손을 잡으며 맞장구쳤다.

“서로 올인으로 해 보시겠습니까?”

올인. 소지금에 대출까지 해서 내가 가진 총액은 741억, 김익조는 2724억.

누가 봐도 불공평한 승부였다. 김익조는 나에게서 고개를 돌려 사람들에게 외쳤다.

“모두 잘 들으십시오. 이번 배팅은 순수한 랭킹전의 성격이 더 큽니다. 그러니 다른 분들께서는 그냥 자유롭게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단……!”

김익조는 다시 날 보면서 답했다.

“기존에 배팅하시던 분들은 가능한 한 배팅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전 올인 하겠습니다.”

그때 오이해가 손을 들었다.

“자금을 보충해도 되겠습니까?”

현재 배팅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김용, 김익조, 오이해, 태한,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김익조는 쓱 태한을 보더니 오이해에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단, 기존의 빚은 변제하신 후에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배팅에 한해선 빚은 금지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와 견주실 수 있는 분은 김용 씨뿐이겠군요.”

설마 오늘 참여한 사람들의 자산까지 뒷조사를 한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흔쾌히 허락할 리가 없다.

허락을 받긴 했지만 대답을 들은 오이해의 표정은 마냥 밝지 않았다. 반면에 김용은 김익조를 보며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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