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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또 도박하는 거야?”
아니나 다를까, 전광판에는 각 팀의 이름과 함께 판돈의 비율이 써져 있었다.
“정말 뼛속까지 우려먹는구나.”
우리가 헌터야, 종마야?
[01팀. 이신지(14) 외 2인]
[02팀. 최강지(16), 토마스 박(44), 김대팔(80)]
[03팀. 김경진(30) 외 2인]
[04팀. 호맹우(31) 외 2인]
[05팀. 조기홍(11), 남궁만(21), 김목록(22)]
[06팀. 이경신(20) 외 2인]
[07팀. 추보영(23) 외 2인]
[08팀. 제갈신(24), 이장군(51), 장만사(61)]
[09팀. 하상구(7)]
[10팀. 마바일(18), 이용도(35), 적지형(40)]
[11팀. 조루호(75), 김상팔(100) 외 1인]
[12팀. 김두(13)]
총 열두 팀, 32명.
랭킹의 경우 가로로 표시되고, 랭킹이 없는 사람은 그냥 명수만 표시되었다.
가장 요주의 인물은 홀로 팀을 짠 하상구와 김두. 두 사람 다 무시무시한 인물이었다.
특히 김두는 일명 ‘미라’라고 불리는데, 상대방을 너무 심하게 패서 전신 붕대 상태로 입원시키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참가한 건 어금니네.”
어금니의 경우 네 팀, 12명.
슈퍼타이거는 세 팀, 9명.
로얄가드맨은 한 팀, 3명.
폭발대제는 두 팀, 4명.
헌한발은 한 팀, 3명.
유일하게 김두는 팀 없이 혼자였다.
“그럼 지금부터 규칙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박장은 스크린을 가리켰다. 그러자 거기에 판돈 내용 대신 다른 글자가 올라왔다.
[배틀로얄]
[제한 시간 1시간]
“뭐?”
다들 글자를 보면서 어리둥절했다.
박장은 안경을 고쳐 쓰며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12개 팀은 이 필드에서 한꺼번에 싸웁니다. 그리고 우승하는 팀의 대표가 새로운 2위로 결정됩니다.”
전광판에 규칙들이 하나씩 공개됐다.
[살인 금지. 살인할 시 팀 전원 탈락.]
“쳇!”
하상구와 김두가 혀를 찼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도구 금지. 단 능력으로 생성한 것은 인정.]
“아자!”
적지형이 환호를 했다. 그러나 난 녀석보다도 이신지와 조기홍이 더 우려가 되었다.
[대표는 3점. 조력자는 1점. 상대 팀원을 쓰러뜨릴 때마다 각 팀에게 점수가 부여된다. 가장 높은 점수를 얻는 팀이 승리한다. 단, 점수가 얼마든 도중 팀이 전멸하면 탈락으로 처리된다.]
이게 핵심이다.
즉 이 경기장엔 3점짜리가 12명.
1점짜리가 22명.
모두 58점이 있다.
점수가 높으면 되니까, 굳이 하상구처럼 위험한 상대와 싸울 필요는 없다.
물론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노건을 데려올 걸 그랬나?”
살짝 후회가 됐지만 아란의 능력도 충분히 향상됐으니 괜찮을 것이다.
게다가 광전사인 그는 냉정함이 없기에 오히려 같은 팀원을 다치게 할 우려가 있었다.
“도중 기권도 가능합니다. 그러니 무리는 하지 마십시오.”
박장은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 모습이 마치 우리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는 직원들을 시켜 수십 벌의 운동복을 가져왔다.
“여기서 자신에게 맞는 치수로 골라서 갈아입으시죠.”
다들 순순히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필드에는 참가자만 남겨진 채 직원들은 전망대로 철수했다.
이 다음부턴 스피커를 통해 이서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부턴 스피커를 통해 진행하겠습니다. 그럼 일단 필드에서 나와 가장자리에 서 주십시오.”
우리가 가장자리에 서자, 필드는 기계음과 함께 거대한 원형으로 변했다.
“지금부터 각 팀은 서로를 볼 수 있도록 필드에 둘러서 주십시오.”
다들 팀 숫자 순서로 원 가장자리에 섰다. 그 뒤 위에서 유리 막이 내려와 우리가 선 필드를 덮었다.
“그럼 지금부터 배팅에 들어가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나에겐 이젠 땡전 한 푼 없다. 그러니 이번엔 배팅 제로. 루호나 아란도 마찬가지였다.
“우승자를 맞추신 분께는 배팅액의 5배를 드립니다!”
하고 싶다. 하지만 돈이 없다!
저번 스페셜 매치 때문에 지부에서 대출을 해 줄 리 없고, 은행에서도 이미 8억이나 빌린 상태다.
“그럼 이상으로 배팅을 마치고, 2위 쟁탈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참고로 지금 상황은 카메라를 통해 인터넷에 생중계되니까 이 점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뭐예요? 그런 말은 없었잖아요?”
아란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했는데요? 참가서 양식에 주의 사항으로 쓰여 있었습니다.”
이런 망할! 작은 글씨는 신경 안 쓰고 무시했는데! 이젠 하다하다 짝퉁 보험 사기 같은 짓까지 하냐?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생중계되기에 하상구가 위험한 짓을 하는 걸 어느 정도…….
“하하하! 다 죽여주마!”
하상구는 흥분해서 거친 숨을 내쉬었다. 이런 미친……!
“그럼 준비!”
다들 눈치를 보면서 어디를 공격할지 두리번거렸다.
“시작!”
이서현의 목소리와 함께 벨이 울리며 돔 안이 아지랑이로 가득 찼다.
다들 저마다의 H력을 뽐내면서 기합을 질렀다.
“흐아아아!”
우리도 H력을 끌어올리며 준비를 했다. 그때 몇몇 팀들이 광탄을 쏴 대면서 싸우기 시작했다.
“자, 잠깐!”
한번 흥분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난 서둘러 우리 양옆에 선 팀들을 불렀다.
“뭐야?”
참 재수가 없게도 우리 양옆은 10팀과 12팀.
10팀의 대표 마바일은 폭발대제의 2인자인데다 조력자 중 적지형이 있다!
거기에 12팀이자 홀로 출전한 김두는 극악무도하기론 하상구와 쌍벽을 이루는 헌터였다.
“싸우자고? 좋아!”
김두가 혀를 내밀며 웃었다.
난 루호와 아란에게 찡긋 눈빛을 보냈다.
“튀어!”
이 자식들이랑 무슨 대화를 하냐.
우린 전력을 다해 필드 중앙으로 뛰었다. 그리고 싸움을 시작한 다른 팀 사이에 섞였다.
“떨어지지 마요!”
광탄과 먼지가 날리며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벌써부터 육탄전까지 벌이며 싸우는 사람도 있었다.
“하하하! 다 죽여주마!”
한 번 울려 퍼진 하상구의 선고. 그 목소리에 다들 흠칫거리며 싸움을 멈췄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분위기다.
처음부터 연합하려고 했는데, 하필 양옆에 그런 팀들이 있어서…….
다른 팀들은 빠르게 깨달았다.
하상구를 조기에 제압하는 게 최우선! 그러기 위해 잠시 연합할 필요가 있었다.
슈퍼급으로 정신 나간 놈들이야 ‘그냥 다 덤벼!’하면서 무슨 도장 깨기 하듯 일일이 싸우겠지만…….
다들 빠르게 연합 의식을 형성했고, 어느새 하상구와 10팀을 중심으로 한 채 그 주위를 빙 둘러쌌다.
사실 여기에 김두까지 추가로 견제하면 완벽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한다.
“후후후!”
하상구는 삐딱하게 웃으며 마바일에게 말했다.
“너희는 빠져. 나 혼자 즐기겠어.”
“하, 하지만……!”
마바일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하상구는 상당히 대범한 발언을 했다.
“살인하면 실격이지? 하지만 내가 여기서 너희한테 위험이 될 만한 것들을 싹 다 죽이고 탈락하면 어떨까?”
처, 천재다! 그건 예상 못했는데?
하상구는 분노를 담아서 전신을 붉게 물들였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열기에 입고 있던 운동복에 불이 붙었다.
“다 태워 죽여주마!”
하상구의 호언장담에 다들 한 발자국씩 물러섰다. 로얄의 살인 예고. 그것만큼 두려운 것은 없었다.
“하하하!”
하상구는 전신에 불꽃을 두른 것을 넘어서서 점점 신체가 걸쭉해지며 형태가 모호해졌다. 그리고 살아 있는 마그마가 되어 덩치를 불렸다.
“어디 한번 막아 봐! 날 멈춰 보라고!”
“히익!”
아란이 후다닥 내 뒤로 숨었다.
솔직히 나도 이건 도저히 답이 없다!
거대해진 하상구는 돔 천장까지 머리가 닿을 정도로 부풀었다.
“크윽!”
뜨거운 열기와 코를 찌르는 유독한 악취에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죽어라!”
그때 돔 천장에서 대량의 물이 쏟아졌다. 물을 만난 마그마는 단번에 수증기와 가스를 뿜어냈다.
“으아아아!”
순식간에 돔 안이 뿌연 연기로 가득 찼다.
다들 질식하기 않기 위해 상의로 코와 입을 막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서현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왔다. 그리고 직후 돔 위에 구멍이 열리며 빠르게 연기를 배출시켰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어느새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하상구가 돔의 구멍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참고로 그는 나체였다.
“와, 크다! 쟤 커! 쩔어!”
“역시 7위야. 어마어마해!”
“7위라서 저런 모양인가?”
다들 하상구의 몸을 보며 감상을 뱉었다. 그러자 아란이 슬며시 나에게 물었다.
“저런 말, 성희롱 아니에요?”
“아란 양이 하고자 하는 말뜻은 아는데, 지금은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에요.”
사실 나도 한마디 하면서 약 올리고 싶은데, 그러다가 괜히 마바일 팀의 표적이 될 수 있다.
“하상구 씨. 당신은 고의적으로 다른 참가자를 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진행자의 권한으로 당신을 탈락시키겠습니다.”
최대 위험인물의 실격.
마바일 팀을 제외한 모두가 그 말에 환호했다.
“웃기지 마! 내가 이 따위 결정을 받아…….”
하상구가 다시 H력을 끌어올리려고 하자 위에서 뭔가가 날아와 그의 몸에 꽂혔다.
“윽!”
그것은 바로 주사기 형태의 마취탄. 하상구는 더 크게 분노했지만 무려 열 개의 마취탄이 더 날아와 그의 몸에 꽂혔다. 그리고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잠시 시합을 중지하겠습니다.”
직원들이 돔을 열고 들어와 하상구를 들고 나갔다. 우리는 그것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사실 지부가 이렇게까지 그를 탈락시킬 수 있는 이유는 로얄인 그의 참가비가 ‘무료’이기 때문이다. 무서운 자본주의 논리다.
“이러면 김두도 함부로 날뛰지 못하려나?”
살짝 기대가 됐다. 시합이 재개되고 임시 연합의 다음 목표는 김두였다.
“각오해라!”
다들 으름장을 놓았지만 김두도 하상구 못지않게 무시무시한 자였다. 그는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따분해. 내가 원한 건 피가 끓어오르는 싸움이라고!”
김두의 몸에서 뿜어진 아지랑이가 순식간에 돔 전체를 채웠다. 그는 여유롭게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신체로는 전투 준비가 모두 끝난 상태였다.
“안 오면 내가 간다!”
김두가 1팀을 향해 달려들었다. 1팀의 대표는 이신지. 그는 쇠사슬을 만들어 내 김두를 포박했다.
“잡았다!”
“맞아!”
김두는 의기양양하게 쇠사슬에 묶인 채 그대로 날뛰었다. 그러자 쇠사슬을 붙잡고 있던 이신지가 오히려 그에게 끌려갔다.
“하하하!”
김두는 쾌활하게 웃으며 달렸다. 그리고 쇠사슬을 붙든 이신지를 추처럼 휘둘러 다른 사람들을 공격했다.
“다 죽어라!”
심판! 저 자식도 실격시켜 주세요!
김두의 돌진에 다들 한동안 손 놓고 당했다.
“앗!”
전광판에 띄워진 표시에서 김두의 점수가 올라갔다.
[12팀. 김두(13)] 1점
벌써 한 사람 탈락했어?
아! 아니다. 두 번째지.
김두는 우리 쪽으로도 다가왔다.
우리는 높이 뛰어올라 녀석과 이신지를 피했다.
“으하하하!”
몇 팀에게 더 돌진한 후 김두는 달리기를 멈췄다. 그리고 능력발동으로 완력을 강화해 쇠사슬을 끊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