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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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자식!”
하상구는 다시 용암으로 변해 아저씨를 덮쳤다. 그러나 아무리 녹이고, 녹여도 아저씨는 뼈만 남아서 용암 위를 헤엄쳤다.
“끌끌끌! 따끈따끈하구먼. 애비야, 국이 짜다?”
“미, 미친……!”
하상구가 먼저 능력을 해제했다. 그는 아저씨를 노려보더니 숨을 헐떡였다.
“엥? 이제 보니 너도 조루였구나? 하긴, 그런 능력이면 적수가 거의 없었겠지? 그래도 3분 아닌 것만도 어디야?”
내 옆에 있는 루호가 부들부들 떠는 게 보였다.
역시 루호와 아저씨는 상극!
아저씨는 다시 알몸으로 재생했다.
“하아아아!”
하상구는 H력을 끌어올리며 내 광권처럼 오른쪽 주먹에 응축했다. 그러자 오른손만 용암으로 변하더니 단단하게 굳었다. 용암 주먹이 암석으로 변하고, 하상구는 아저씨를 향해 돌진했다.
“뒈져라, 괴물아!”
하상구는 냅다 아저씨의 안면에 돌 주먹을 갈겼다. 그리고 녀석의 돌 손이 아저씨의 얼굴에 닿는 순간, 주먹이 갈라지면서 용암이 화산 폭발하듯 쏟아졌다.
주먹에 맞은 아저씨는 압축돼 있던 용암 분출까지 더해져 빠르게 날아갔다. 그리고 온몸이 걸레처럼 으스러지며 유리 벽에 박혔다.
“아저씨!”
그 튼튼한 유리 돔에 금이 가면서 아저씨가 아주 깊게 파고들었다. 난 그제야 하상구의 작전을 알아챘다.
“장외?”
규칙상 장외는 없다. 그러나 저 튼튼한 유리 돔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심판석에서 장외 판정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지부측이 우리를 실격시키고 싶어 안달 난 상태란 점을 감안하면…….
“한 번 더 받아라!”
하상구는 양 주먹을 돌로 굳힌 후 높게 뛰어서 아저씨에게 돌격했다. 그리고 두 주먹을 앞으로 뻗으며 또 화산 폭발을 준비했다.
“밤하늘의 별로 만들어 주마!”
유리 벽에 박힌 아저씨는 거의 사람의 형태가 남지 않은 채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사람이라기보다는 그저 살덩이에 불과했다.
“끌……끌……끌……!”
하상구의 주먹이 닿기 전 아저씨의 덩어리에서 손 같은 것이 뻗어 나왔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기습. 하상구도 거의 무방비로 당하고 말았다.
아저씨가 내민 손은 채찍처럼 하상구의 목을 감았다. 그리고 이어진 하상구의 화산 폭발. 그의 양 주먹이 용암을 뿜으며 아저씨를 기어이 유리 밖으로 날려 버렸다.
아저씨가 빠지며 금이 가 있던 유리 돔에는 큰 구멍이 뚫렸다.
“으아아악!”
아저씨가 투기장 바깥까지 날아가고, 아저씨에게 잡힌 하상구도 함께 딸려서 날아갔다.
두 사람은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치 4번 타자가 친 홈런 볼 같았다.
“아저씨…….”
짱이시군!
우리는 다 함께 엄지를 세웠다. 그리고 진심으로 아저씨의 활약에 감사드렸다.
“야! 이거 승부가 어떻게 된 거야?”
관중과 심판석은 패닉 그 자체. 다들 승부의 행방을 몰라 당혹스러워했다.
약 20여 분간의 심판 회의가 진행되었고, 이서현은 결과를 발표했다.
“이, 이번 승부는 먼저 투기장을 떠난 한손 선수의 패배입니다! 다만……하상구 선수가 함께 날아갔기에 저희 심판들의 판단 하에 하상구 선수도 아웃 처리하겠습니다.”
즉, 판정으로 우리의 패배. 그러나 하상구는 더 이상 시합 불가. 나쁘지 않은 결과다.
우리로선 가장 껄끄러운 대상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폭발대제 : 1 VS 헌한발 : 0]
“헌한발 여러분. 약 1시간 동안 유리 돔을 교체할 예정입니다. 그 사이에 두 번째 선수를 정해 주십시오.”
도시락을 가져온 직원이 빠르게 말을 마치고 대기실을 나갔다.
우리는 1시간 동안 도시락을 먹으며 의견을 나눴다.
“다음은 제가 나갈게요.”
루호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자 이이가 손을 들었다.
“아니! 다음은 내가 가겠어!”
이이를 시작으로 다른 이씨 형제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형은 좀 쉬어! 내가 나가겠어!”
“너나 쉬어! 이 형님이 나가 주마!”
“형님은 좀 쉬십시오! 이 동생이 활약하겠습니다!”
아홉이 동시에 아우성치자 완전 시장 바닥이 따로 없었다. 난 이이의 귀를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형제들 중에 누가 가장 강하죠?”
이이는 우물쭈물하며 답했다.
“예전에야 큰형이 가장 강했지만……지금은…….”
“지금은요?”
이이는 손가락으로 한 명을 가리켰다.
“이육이 가장 강해.”
“이육.”
내 호명에 이육이 내 앞으로 걸어왔다.
“접니다!”
살짝 작은 체구였지만 매서운 눈매가 믿음직스러웠다. 난 이육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권했다.
“두 번째 선수를 맡아 주시겠어요?”
“맡겨 주십시오!”
두 번째 선수가 된 이육은 직원과 함께 필드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때마침 이서현이 스피커를 통해 폭발대제의 선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두 번째 시합! 폭발대제의 두 번째 선수는 바로 ‘죽음의 안개’ 장, 석, 후!”
랭킹 85위 장석후. 폭발대제에서 가장 랭킹이 낮은 헌터였다.
“그에 맞서는 헌한발의 선수! 과거 랭킹 헌터였던 이일의 동생! 실력은 맏형보다 낫다! 이, 육!”
졸지에 이일은 또 까였다. 관객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뱉어 냈다.
“이일 동생? 아! 그 카리 강간범? 무쇠 주먹이라면서 쌍두하피한테 발렸다며?”
“헌팅 페스티벌에서 싸우는 걸 보니까 맏이 빼곤 대체로 잘 싸우던데?”
“아무나 이겨라! 난 그냥 헌터들이 슈퍼 히어로처럼 싸우는 거 보려고 왔어. ‘슈트맨과 배퍼맨’영화가 망했거든!”
유리 돔이 닫히고 이서현이 시합 시작을 선언했다.
이육과 장석후는 서로를 응시한 채 빠르게 능력을 발현했다.
“하아아앗!”
장석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H력은 뿌연 안개로 변하며 단숨에 필드로 퍼졌다.
뭉게구름처럼 퍼진 습기는 바닥으로부터 약 2미터 정도를 유지하며 유리 돔 내부를 채웠다.
“하하하! 질식해라!”
장석후의 외침. 왠지 데자뷔처럼 느껴지는데?
안개에 닿은 유리 돔 표면에 물기가 맺히며 흘러내렸다.
짙은 색과 무거운 움직임만 보면 그야말로 죽음의 안개였다.
더구나 유리 돔이 내부를 밀폐시킨 덕에 습기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지 않아서 안개가 더욱 짙게 유지될 수 있었다.
“하앗!”
잠잠하던 이육이 안개를 뚫으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를 본 모두는 감탄을 지르며 그의 등을 주시했다.
엥?
이육의 등에는 날개가 돋아 있었다. 그는 날개를 퍼덕이며 유유히 안개 위에 떠 있었다.
저러면 안개가 완전 무용지물이잖아?
객석에서 박수와 함께 응원의 함성이 쏟아졌다. 그러자 안개 속에서 장석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받아라!”
안개 속에서 광탄이 튀어나와 공중의 이육을 향해 날아갔다.
이육은 날개를 한 번 퍼덕여서 여유롭게 공격을 피했다.
“이것도 피해 봐!”
안개 이곳저곳에서 광탄이 튀어나왔다. 장석후가 안개 속을 이동한다고 보기엔 너무나 다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다.
아마 저 안개 자체에서 광탄을 생성해 내는 모양이었다.
“이크!”
이육은 광탄들을 피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그는 두 날개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마음껏 하늘을 날았다.
정말 부러운 능력인데?
나뿐만 아니라 팀원들 모두 이육의 비행 실력에 감탄했다.
카메라의 촬영 솜씨가 다각도로 그의 움직임을 다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크윽!”
광탄 한 발이 이육의 날개를 스쳤다. 그 충격으로 이육은 균형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다.
“하하하!”
이육까지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자 시합은 그냥 소리만 들리는 오디오 드라마가 되었다.
“하하하! 포기하시지! 날지 못하는 닭둘기 주제에……!”
“혓바닥 참 기네. 너나 각오해라!”
안개 속에서 몇 번의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추측컨대 서로 광탄을 쏘는 것 같았다.
“크윽!”
“으윽!”
두 개의 신음 소리가 들리면서 유리 돔이 둔탁한 충격으로 울렸다. 그리고 한순간 안개가 천장으로 솟구치며 증발되었다.
뭐지?
난 눈을 동그랗게 뜨며 TV화면을 통해 필드에 선 두 사람을 살폈다. 그리고 왜 안개가 사라졌는지 이해했다.
안개란 물방울과 수증기 사이의 대기 현상. 쉽게 말하면 구름이 지표면 바로 위에 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바람이 부는 것에 매우 취약하다. 설사 그것이 H력으로 만든 능력이더라도 말이다.
이육의 날개는 마치 모터처럼 반복적으로 퍼덕이며 쉴 새 없이 바람을 일으켰다.
그 질풍과 같은 위력에 장석후는 바닥에 엎드려 겨우 버티고 있었다.
“빌어먹을……!”
장석후의 입에서 힘겹게 말 한 마디가 새어 나왔다. 그는 양손을 복부 쪽으로 숨긴 채 몸을 웅크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후후후.”
이육은 부채질을 중단하고 느긋하게 장석후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양팔과 날개를 양옆으로 활짝 벌렸다.
“어때? 이래도 내가 닭둘기냐?”
장석후는 이를 갈면서 이육을 올려다봤다. 그러다가 이육이 충분히 가까이 오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거나 먹어라!”
장석후는 양손에 쥐고 있던 두 개의 광탄을 던졌다. 그리고 이육이 피할 새도 없이 두 개의 폭발이 일어났다.
“하하하!”
장석후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정통으로 광탄을 맞은 이육의 반응을 살폈다.
이육은 가만히 서서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또 받아라!”
장석후는 계속해서 광탄을 쐈다. 그가 쏜 광탄이 터지면서 먼지가 일었고 그 때문에 이육의 모습이 가려졌다.
“헥, 헥, 헥…….”
무차별 광탄 사격 후 장석후는 지쳤는지 어깨를 늘어뜨렸다.
“이, 이겼다!”
아이고!
난 장석후의 말을 듣고 나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말을 하자마자 먼지가 걷히며 이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장석후는 울상을 지었다.
이육은 날개로 전신을 감싼 채 멀쩡하게 서 있었다.
“이 자식!”
장석후는 억지로 H력을 짜내며 또다시 광탄을 쐈다. 그러나 이미 안개가 걷힌 시점에서 그의 패배는 결정돼 있었다.
“그만! 이젠 그만 끝내 주마.”
이육은 날개로 광탄을 막으면서 그냥 장석후에게 돌진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날려 그와 부딪쳤다.
“크악!”
장석후는 이육의 날개에 치여서 멀리 날아갔다.
[폭발대제 : 1 VS 헌한발 : 1]
“좋았어!”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첫 승리, 그것도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하단 희망을 주는 시합이었다.
화면 속 이육은 능력을 해제하고 나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폭발대제에서 다음 선수를 뽑을 동안 필드를 정리하겠습니다.”
이서현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유리 돔이 열리며 직원들이 필드로 들어왔다.
그들은 기절한 장석후를 옮기고, 지친 이육에게 물과 수건을 건넸다.
막간의 휴식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서현의 목소리와 함께 폭발대제 쪽 대기실 문이 열리며 다음 선수가 나왔다.
“폭발대제의 한 방! 최강의 완력을 지닌 파이터! 장, 중, 우!”
장중우는 이서현의 소개가 무색하게 마른 체형이었다.
딱 노건과 비슷한 부류. 아마 능력을 발현하면 체형이 변하거나 괴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하앗!”
시작됨과 동시에 이육은 능력발동만 하면서 호탕하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장중우 역시 능력발동을 하며 자세를 잡았다.
“으랏차차!”
두 사람은 H력을 뿜어내며 양손을 마주 잡았다. 두 사람의 손은 서로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