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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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마바일뿐만 아니라 모두가 눈을 의심했다.
먼지가 걷히는 도중, 필드 전체에 이십이 있었다.
무슨 뜻이냐고?
갑자기 수십 명의 이십이 생겨나 유리 돔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이다.
다만 녀석들은 움직이진 않았다.
“눈속임?”
마바일은 왼팔을 날려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분신을 때렸다. 그러자 분신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주저앉으며 사라졌다.
“흐음…….”
마바일의 바위 주먹은 공중을 날아서 본체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동으로 합체. 마바일은 계속해서 주위를 경계했다.
그때 대각선 방향으로 광탄 하나가 날아와 마바일에게 맞았다.
광탄 자체는 지극히 평범한 위력. 그러나 문제는 방향이었다.
“뭐지?”
마바일이 고개를 돌린 사이, 이번에는 그의 정면으로 광탄이 날아왔다.
이번에도 명중. 마바일은 냉정을 유지하며 계속 주위를 살폈다.
“앗!”
이제야 깨달았군.
이십의 능력은 장석후와 흡사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각 분신이 광탄을 쏠 수 있단 점!
다만 장석후의 안개와는 달리 한 번에 한 발씩만 쏠 수 있었다.
“어줍지 않은 잔재주를 부리는군.”
허나 마바일의 경력과 저력은 결코 방심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직 서로 탐색전일 뿐. 마바일이 갈피를 잡게 되면 순식간에 질 수도 있다.
“하는 수 없지!”
마바일의 바위 몸이 잘게 나뉘어졌다. 그리고 마치 적지형의 모래처럼 사방으로 퍼져서 각 조각이 하나의 탄환으로서 이십의 분신을 공격했다.
수십 개의 분신이 10개 이하로 줄어드는 데 고작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분신의 수가 적어지자마자 또 필드 어디선가 광탄이 폭발하며 본체의 모습을 가렸다.
“젠장!”
마바일의 짜증처럼 새로이 수십 개의 분신이 나타났다.
마바일은 계속해서 분신을 없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분신에게서 광탄이 날아와 그를 맞췄다.
일반적인 위력이더라도 그것이 하나하나 쌓이면 결국에는 치명타가 된다.
경험 많은 마바일이 그 점을 모를 리 없다.
“젠장!”
마바일은 다시 몸을 분리해서 하나의 조각으로 나눴다. 그리고 그 조각들이 제각각 움직여 이십의 분신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작전! 저렇게 여러 개를 나눠서 제어하려면 그만큼 체력, 집중력, H력이 빠르게 소모된다.
“도대체 어디 숨은 거야?”
마바일이 분신을 없앨 때마다 이십은 새로이 분신을 만들어 냈다.
그야말로 진정한 소모전! 그러나 이십의 분신이 단순해서 얼마든지 양산이 가능한 데 비해 마바일의 분리 조작은 상당히 복잡한 기술이었다.
“하앗!”
시간이 흐를수록 바위 조각의 움직임과 분신 생성 속도가 느려졌다.
지금까지의 시합 중 가장 장기전이었다.
“여기다!”
마바일은 모든 바위 조각으로 분신 하나를 포위했다. 그리고 단숨에 그 분신을 바위들로 짓눌렀다.
“으아아악!”
분신이 터지며 그 안에 숨어 있던 이십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바위 사이에 끼여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흥! 제법 오래 버텼지만 그래 봤자 하찮은 재주다!”
마바일이 이십을 끝장내려는 그때, 갑자기 그는 능력을 해제하고 본래의 인간 형상으로 돌아왔다.
“헥, 헥, 헥……!”
이십은 바닥에 엎드려 숨만 헐떡였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마바일은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맨주먹을 휘둘렀다.
“이제 끝내 주마.”
이십은 마바일의 주먹에 맞으며 또 사방에 분신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미 본체의 위치가 발각된 지금, 마바일은 상관 않고 계속 그를 때렸다.
“흐흐흐.”
이십은 흐뭇하게 웃으며 기꺼이 마바일의 주먹을 맞았다.
한참 때리던 마바일은 계속해서 웃는 그의 얼굴에 잠시 공격을 멈췄다.
“왜 웃는 거지?”
“당신은 피할 수 없어.”
이십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남은 H력을 전부 방출했다. 그러자 두 사람을 감싸고 있던 분신들이 동시에 밝은 빛을 내면서 폭발했다.
한 발, 한 발 누적된 광탄의 충격과 지금 일어난 집단 폭발. 지친 상태의 마바일에게는 치명적일 것이다.
이십의 능력이 소모전에 제격이라 정말 행운이었다.
폭발로 인해 생긴 자욱한 연기와 먼지 속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체격은 이십이 아니었다.
[폭발대제 : 7 VS 헌한발 : 4]
“아깝다.”
난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제 마바일은 만산창이. 아무나 나가도 쓰러뜨릴 수 있는 상태였다.
“형! 제가 나갈게요.”
루호가 번쩍 손을 들면서 말했다.
난 루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마바일 이기는 건 간단해도 그 다음에 적지형이 나오면 어떻게 하려고?”
“괜찮아요. 여기서 더 밀리면 위험해요. 제가 나갈게요!”
태한에게 수련을 받을 때 루호는 따로 개인 교육을 받았다.
태한은 괘씸하게도 자기 기술을 전수받는 나보다 루호를 가르치는 데 더 심혈을 기울였다.
“좋아. 널 믿을게.”
적지형만 대응할 수 있다면 루호가 나서도 될 것이다.
난 기꺼이 루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의 등을 밀어 주며 필드로 나가는 것을 배웅했다.
이서현은 신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드디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열두 번째 시합! 헌한발의 비밀 병기! 이번 2위 쟁탈전의 주인공! 조, 루, 호!”
루호가 유리 돔 안에 서자 마바일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요.”
루호는 평소의 미소가 아닌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속전속결로 끝내 드리겠습니다.”
“흥!”
“시작!”
스피커에서 이서현의 목소리 울림이 끝나기도 전에 루호가 폭발적으로 H력을 뿜어내며 마바일에게 질주했다.
그야말로 질풍. 루호는 바람이 되어 마바일의 명치에 주먹을 꽂았다.
“크으으윽!”
마바일은 미처 반응하지도 못했다.
루호는 주먹을 뽑으면서 마바일의 등을 두드렸다.
“끝났습니다.”
“크아아악!”
마바일은 입에서 위액을 토해 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폭발대제 : 7 VS 헌한발 : 5]
객석에선 혼란과 환호가 뒤섞였다.
“바, 방금 움직이는 게 안 보였어! 무슨 귀신같잖아?”
“천재라고 하더니, 진짜였어! 대박! 조루, 호!”
“힘내라! 10점까지 쫙 채워 버려라!”
수려한 외모에 깔끔한 동작, 그리고 천재라는 타이틀. 루호야 말로 우리 헌한발의 상징이 되기에 제격이었다.
마바일을 제쳤으니, 남은 인물 중 한림과 적지형만 조심하면 최소 2점은 그냥 가져갈 수 있다.
문제는 마바일을 먼저 내보낸 것으로 보아 이 다음에 곧장 적지형이 나올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썅!”
말이 씨가 됐다.
“폭발대제의 문제아! 헌터 랭킹 40위! 인기 많은 나쁜 남자! 싸움을 즐기는 진정한 파이터! 적, 지, 형!”
적지형의 등장에 객석에 있던 한 무리가 환호성을 질렀다.
“사랑해요, 적지형! 멋있어요, 적지형! 우리들의 적지형! 사, 랑, 해, 요!”
무려 팬클럽. 랭킹 헌터 중엔 팬클럽을 보유한 사람이 있단 소리를 들은 적이 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후후후.”
적지형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입을 벌려 루호를 향해 혀를 쭉 내밀었다.
“또 피투성이가 되고 싶냐?”
루호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답했다.
“두고 보면 알겠죠.”
유리 돔이 닫히고, 열세 번째 시합이 시작됐다.
적지형은 곧장 전신을 모래로 바꿔서 루호를 덮쳤다. 그리고 예전 스페셜 매치 때처럼 모래 폭풍을 만들며 사방으로 모래를 날렸다.
적지형의 모래를 공략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모래를 멀리 날려 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래 자체를 대량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모래는 곧 적지형의 육체이기에 그것들이 예상치 못하게 흩뜨리면 다시 집결시키는 데 엄청난 H력과 정신력이 소모된다.
그리고 모래를 파괴시키면 손실된 부분을 다시 만든다고 해도 고통은 고스란히 느낀다.
이는 마바일의 능력과 비슷하다.
“하하하!”
모래 폭풍이 웃으며 필드 전체를 갉았다. 그러나 지난번과 달리 모래 폭풍이 아무리 불어도 피에 물들지 않았다.
“뭐야?”
적지형은 당황했는지 모래 폭풍을 멈췄다. 그리고 모래를 한데 모아 사람 형상으로 변했다.
“아니?”
모래 폭풍이 멈추고 나서야 모두들 루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루호는 거대한 사슴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다만 여태까지와 달리 사슴의 표면이 하얀 빛깔로 번쩍거렸다.
난 그것을 자세히 보고 깜짝 놀랐다. 루호는 그저 단순히 변신만 한 것이 아니었다.
무려 사슴의 형상 위에 H력을 물질화시켜 갑옷처럼 착용한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미스터 타이거의 기술과 비슷했다.
“뭐야?”
적지형은 당황한 목소리로 사슴의 표면을 훑었다. 그리고 더 큰 목소리로 절규했다.
“이런 기술을……너 따위가……왜……!”
사슴은 고고한 빛을 뿜어내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빛이 더욱 강해지면서 유리 돔을 마치 백열전구처럼 만들었다.
빛이 어찌나 강한지 유리 돔 내부를 보여 주던 TV화면에 흰색이 가득 차면서 방송 신호가 중단됐다.
“끄아아악!”
적지형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 정도 세기의 강한 빛이라면 근거리에선 눈을 감아도 소용없을 것이다.
빛이 잠잠해졌을 때 적지형은 바닥에 웅크린 채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었다.
거의 실명에 가까운 치명타. 서둘러 치료를 받아야 했다.
[폭발대제 : 7 VS 헌한발 : 6]
엄청난 빛의 폭발. 아마 저 기술은 최상의 컨디션에서 딱 한 번 쓰는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루호는 결판이 나자마자 즉시 능력을 해제하고 휴식을 취했다.
아무래도 태한에게 받은 수련으로 루호는 우리 중 그 누구보다 강해진 모양이다.
이젠 도저히 루호의 수준을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여전히 3분이란 시간제한은 유효할 것으로 추측된다.
마바일과 적지형을 연달아 상대하면서 루호는 쭉 일격 필살로 일관했다.
“와!”
폭발대제의 다음 선수를 보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녀석들, 아예 작정을 했구나!
헌터 랭킹 25위, 한림. 그에 대해선 나도 아는 것이 없다. 이서현도 간단명료하게 그를 소개했다.
“폭발대제의 3인자! 한, 림!”
객석은 또 한 번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림이면 그 녀석이지? 그 폭탄마!”
“맞아! 예전에 뉴스에서 본 적이 있어!”
“조루호, 조심해! 그놈은 진짜 위험하다고!”
간만에 나온 응원 함성. 그리고 그에 상응하듯 한림은 조용히 필드에 서서 루호와 눈을 마주쳤다.
“시작!”
루호는 평소 상태로 지긋이 한림을 주시했다. 반면에 한림은 빠르게 H력을 끌어모아 양손에 쥐었다. 그리고 두 개의 누런 광탄을 공중으로 던졌다.
광탄은 일반적인 것과 달리 곧장 터지지 않고 계속 허공에 떠 있었다.
한림은 그런 식으로 계속 누런 광탄을 만들어 내 공중에 쌓았다.
루호는 그가 무슨 짓을 하든지 계속 바라만 봤다.
“후후후.”
결국 만들어진 광탄의 수가 백쯤에 이르러서야 한림이 행동을 멈췄다. 그는 작게 웃으며 루호에게 말했다.
“네 그 오만함이 이번 시합의 패인이다!”
한림은 양손을 든 다음 동시에 루호를 향해 뻗었다. 그러자 누런 광탄들이 일제히 루호를 향해 날아갔다.
“하앗!”
루호는 단숨에 흰 사슴으로 변신. 한쪽 방향으로 달리며 광탄들을 피했다.
루호에게 향하다가 빗나간 광탄들은 폭발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엉겨 붙어 덩치를 불렸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다시 방향을 바꿔서 루호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