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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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도망칠 수 없어.”
한림은 열 손가락을 제각각으로 꿈틀거리며 마치 모든 광탄을 조종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비록 그 움직임이 정교하진 않았지만 광탄들은 하나의 거대한 물결처럼 휘몰아쳤다.
흰 사슴은 광탄을 피해 달리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한림에게 돌진했다. 그러자 한림은 크게 웃으면서 또 양손에 광탄을 만들었다.
“그런 작전은 이제 삼류 작품에서도 안 쓴다고!”
한림은 흰 사슴이 바로 앞에 왔을 때 광탄을 바닥에 던졌다.
이번 것은 평범한 광탄이기에 곧장 폭발. 둘의 시야가 빛과 연기로 완전히 차단됐다.
흰 사슴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돌파했다. 물론 더 이상 그 앞에 한림은 없었다. 그는 멀찍이 떨어진 귀퉁이에 있었다.
“내 광탄에 맞아라!”
누런 광탄들은 끈덕지게 흰 사슴을 쫓았다. 사슴이 유리 돔을 밟고 공중을 날아도, 맨 앞의 광탄과 맨 뒤의 광탄이 충동하도록 급격하게 각도를 꺾어도, 절대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광탄들은 계속된 충돌에 자기들끼리 합쳐져서 상당히 거대해졌다.
만약 저게 적중한다면……!
흰 사슴은 광탄들을 피하다가 다시 한림을 향해 돌진했다.
설마 똑같은 수법? 심지어 실패한 건데?
“한심한 놈.”
한림은 루호를 비웃었다. 이번 움직임으로 광탄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거대 광탄의 크기는 사슴보다 더 컸다.
“거대 광탄이 터지기만 하면 네놈은 죽은 목숨이다!”
한림은 또 양손에 광탄을 만들었다. 그리고 타이밍을 쟀다.
“지금이……!”
한림이 광탄을 던지기에 앞서 흰 사슴이 먼저 행동했다.
사슴은 전신을 H력의 갑옷으로 감싼 다음 제자리에서 뒤돌아섰다. 그리고 거대 광탄을 뿔로 받아 버렸다.
“뭐야?”
한림이 어이 반, 분노 반이 섞인 고함을 질렀다. 거대 광탄은 흰 사슴의 뿔에 걸려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왜 터지지 않는 거야?”
한림은 몇 번이나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 달리 광탄은 터지지 않았다. 반면에 광탄을 막아 낸 흰 사슴은 다시 뒤돌아서서 얼빠진 한림에게 돌진했다.
“하앗!”
한림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새로 만든 광탄을 바닥에 쐈다.
“으악!”
폭발과 함께 어느새 인간으로 돌아온 루호가 한림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한림은 완전히 질린 얼굴로 말했다.
“너,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루호는 대답 대신 한림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H력이 잔뜩 담긴 주먹은 한림의 정신을 완전히 박살을 냈다.
[폭발대제 : 7 VS 헌한발 : 7]
열다섯 번째 시합, 그리고 동시에 폭발대제의 마지막 랭킹 헌터의 시합. 이번엔 넘기면 우리가 승리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폭발대제 선수는 랭킹 55위 장도람. 그는 마바일 못지않은 우람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각오해라, 조루! 이미 네 녀석의 3분은 지났다!”
루호는 한숨을 쉬면서 장도람의 말을 받아쳤다.
“10초 정도 남았는데요?”
장도람은 H력을 뿜어내며 소리쳤다.
“잘됐군! 그럼 그 몇 초 동안만 버티면 나의 승리란 거냐? 어디 그 잘난 고라니로 다시 변신해 보시지!”
고, 라, 니?
너무 눈에 보이는 도발이었다. 장도람은 양 주먹을 부딪치며 자세를 취했다.
“정면으로 와라! 내가 온 힘을 다해 막아 주마!”
순수한 완력 대결 신청. 루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소원대로 해 드리죠.”
루호는 곧장 흰 사슴으로 변신. 장도람에게 돌진했다.
태한이 시킨 수련의 핵심은 H력의 폭발적 운용. 우리 모두는 그 수련으로 인해 전체적인 H력의 양이 증가하는 것 대신 한 번에 쓸 수 있는 출력량이 크게 증폭됐다.
쉽게 설명하자면 루호가 가진 H력의 총량이 100이라 했을 때 여태까지는 3분 동안 고작 10밖에 쓰질 못한 것이다. 그러나 태한에게 수련을 받은 지금은 3분 안에 그 100을 다 소진할 수 있게 되었다.
전직 랭킹 2위덕에 루호의 천재성은 제대로 꽃필 수 있었다.
“크으으윽!”
장도람의 팔과 흰 사슴의 뿔이 충돌하고 둘 주위의 바닥이 깊게 파였다.
버티려는 자와 돌파하는 자의 싸움. 조금씩이지만 장도람이 밀리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었다.
장도람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내 승리다!”
10초 경과. 장도람은 기합을 지르며 허리를 뒤로 숙였다. 그리고 팔을 들어 흰 사슴을 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안색이 바뀌며 당혹스러워했다.
“아, 아니?”
장도람은 뒤로 쓰러지며 반대로 흰 사슴의 뿔에 치이고 말았다.
사슴은 그를 뿔에 끼운 채 그대로 유리 돔에 돌진했다. 그리고 무려 유리 돔을 박살을 내면서 외부 필드로 나갔다.
10초는 거짓말. 사실은 13초였다. 난 쭉 루호의 H력 발동 시간을 시계로 재고 있었다.
[폭발대제 : 7 VS 헌한발 : 8]
드디어 역전! 하상구와 아저씨의 시합처럼 두 사람 다 아웃됐다. 그러나 난 이것으로 확신하게 됐다.
3분. 그 시간 안에서 루호는 명실상부 로얄급의 실력자였다.
대기실은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좋았어!”
폭발대제의 랭킹 헌터는 전멸! 정말로 2위가 되는 건가?
가슴이 터질 듯 빠르게 두근거렸다.
“팀장님! 다음엔 절 내보내 주세요.”
아란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이씨 형제들도 너도나도 손을 들면서 소리를 질렀다.
“절 보내 주십시오!”
스테레오 함성. 난 손가락으로 귀를 막으며 아란에게 말했다.
“아란 양이 나가세요!”
“넵!”
아란은 기쁘게 대답하며 대기실을 나갔다. 마침 폭발대제 쪽에서도 다음 선수가 나왔다. 이서현은 두 사람을 동시에 소개했다.
“양 팀의 막내 대결! 아직 시합은 끝나지 않았다! 폭발대제의 김맹호! 헌한발의 주아란!”
두 사람이 필드에 서자 관객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지금부터는 신인의 데뷔전. 그러나 거기에 걸린 운명은 굉장히 무거웠다.
“우리팀의 승리를 위해서 난 반드시 이긴다!”
김맹호는 대뜸 아란을 향해 소리쳤다.
“시작!”
아란은 항상 그랬듯 다리에 H력을 모았다. 그러자 거기에 맞서듯 김맹호는 양팔에 H력을 집중시켰다.
두 사람의 H력이 불꽃처럼 이글거리며 주변에 아지랑이를 만들었다.
“하압!”
선공은 아란. 그녀는 다리로 바닥을 차면서 소리쳤다.
“가볍게!”
아란은 말 그대로 가볍게 뛰어올라 유리 돔의 천장에 닿았다. 그리고 거기서 다리를 교차해 4자로 만들었다.
“빠르게!”
아란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녀의 몸 자체가 하나의 부메랑이 되면서 회전했다.
아란은 그 상태로 김맹호에게 날아갔다.
“쳇!”
김맹호는 오른손에 주먹을 쥔 채 팔을 아래에서 위로 힘차게 돌렸다.
“스매시!”
김맹호의 팔이 더 빠르게 회전하면서 하나의 돌풍을 일으켰다. 그 바람은 아란의 전진을 막으며 그의 바로 앞에서 멈추게 했다.
“받아라!”
김맹호는 아란에게 돌진해서 회전하는 주먹으로 그녀를 때렸다.
수평 회전과 수직 회전의 충돌. 일순간 양쪽 다 회전이 멈추며,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충격으로 인해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크윽!”
먼저 움직인 것은 아란. 그녀는 이를 물면서 안전하게 착지한 다음 빠르게 연속 옆차기를 날렸다.
“핫핫핫핫!”
김맹호는 아란의 발차기를 속수무책으로 맞았다. 그러나 그 타격 덕인지 그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딜!”
김맹호는 그냥 아란의 발차기를 맞으면서 왼손에 주먹을 쥐었다.
“잽!”
김맹호의 주먹이 빛과 같은 속도로 아란의 몸을 때렸다.
아란은 균형을 잃으며 뒤로 물러났다.
“하앗!”
김맹호는 아란에게 달라붙어 계속 주먹을 날렸다. 그가 날리는 주먹이 아란의 복부를 집요하게 노리면서 차곡차곡 충격을 누적시켰다.
“무겁게!”
아란은 발을 들어서 바닥을 내려찍었다. 큰 충격과 함께 파편이 튀었고, 김맹호는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크윽!”
아란은 배를 쓰다듬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집중 공격을 당하다 보니 충격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왜 난 항상 이런 놈들하고만 붙는 거지?”
아란의 혼잣말. 그녀는 다시 다리에 힘을 주며 소리쳤다.
“뜨겁게!”
두 다리가 빨갛게 달아오르며 이글이글 열기가 뿜어졌다.
아란은 힘차게 박차면서 김맹호에게 돌격했다. 그리고 연속으로 화려하게 발차기를 하면서 공격을 재개했다.
“젠장!”
이번엔 김맹호도 피하기 바빴다. 그는 마치 비보잉을 하듯 등을 바닥에 대고 거꾸로 한 상태에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교묘하게 각도를 틀면서 아란의 발차기를 피했다.
“빠르게!”
아란은 즉시 다리의 속성을 바꿨다. 그리고 말처럼 빠르게 김맹호를 짓밟았다.
“으아아앗!”
아란은 마치 벌레를 밟아 죽이듯 한 번, 한 번 체중을 실어서 찍었다.
김맹호는 그녀의 발뒤꿈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갑자기 발로 그녀의 발을 막았다.
“하앗!”
김맹호는 누운 상태에서 아란에게 다리를 걸어서 자빠뜨렸다. 그리고 여전히 누운 채로 아란을 노렸다.
“크윽!”
아란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김맹호의 발등에 얼굴을 걷어차였다.
김맹호는 그녀가 또 쓰러진 틈을 타 즉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가 했던 것처럼 발로 그녀를 밟았다.
“차갑게!”
아란은 재빨리 다리를 올려 김맹호의 찍기를 방어했다. 아란의 다리와 김맹호의 발이 닿자 그의 발바닥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젠장!”
김맹호는 뒤로 펄쩍 뛰었다. 그리고 공중에서 신발을 벗어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신발은 유리처럼 깨졌다.
“후우.”
김맹호는 나머지 신발도 벗었다. 그리고 맨발이 된 상태로 격투 자세를 취했다.
“간다!”
김맹호는 높이 뛰어서 아란의 머리 바로 위까지 떴다. 그리고 공중에 뜬 채로 아란의 어깨를 밟았다.
“네 번 차기!”
참 정직한 기술. 김맹호는 짧게 끊어 차는 동작으로 아란의 머리를 네 번 걷어찼다. 그리고 뒤로 공중제비를 돌아서 착지했다.
“어……?”
아란은 가만히 선 채로 그냥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양손으로 머리를 쥐면서 몸을 비틀었다.
갑작스런 현기증과 균형 감각의 이상. 아무래도 뇌진탕 증세 같았다.
“이제 끝이다!”
김맹호는 양손에 주먹을 쥔 채로 아란에게 돌진했다. 그리고 잔뜩 무게를 실어서 그녀에게 양 주먹을 날렸다.
“뜨겁게!”
아란은 괴성을 지르며 빠르게 다리를 위로 올려 찼다. 그 발차기에 김맹호의 오른 주먹이 쓸리면서 불이 붙었다.
“으아아악!”
김맹호는 오른팔을 뒤로 빼면서 왼팔은 계속 뻗었다. 그 결과 그의 주먹이 아란의 명치에 적중했다.
“읍, 우웩!”
처음엔 숨이 막히는 듯하고, 다음엔 위액을 구토.
아란은 질식 직전의 물고기처럼 입을 벌리며 열렬히 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발을 계속 뒤로 움직여 김맹호와 거리를 벌리려 했다.
“어딜!”
김맹호는 끈덕지게 달라붙어 왼손을 휘둘렀다.
“스매시!”
김맹호의 주먹이 아란의 아래턱을 후려치면서 기어코 아란을 쓰러뜨렸다.
김맹호는 살짝 뛴 다음, 쓰러진 그녀의 복부 위에 착지했다.
“으아아악!”
높고 날카로운 비명. 아란의 온몸은 고통으로 흘린 식은땀으로 젖었다.
“포기해라.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전력을 다한다!”
김맹호는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러자 아란은 힘겹게 무어라 내뱉었다.
“……지 않아.”
“뭐라고?”
김맹호는 여전히 아란의 위에 선 채 고개를 아란의 입 쪽으로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