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184.
기가트라우는 갑작스럽게 본 빛에 놀라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역시 예상대로야!”
왜 처음부터 이 생각을 못했지?
“아……!”
기가트라우는 쓰러진 상태에서 다리로 바닥을 찼다. 그러자 수정들이 와장창 깨지면서 사방으로 튀었다.
“으아아악!”
수정 조각이 날 덮쳤다.
난 다른 커다란 수정 뒤로 몸을 숨겼다.
“이래서 수정지옥이구나!”
누군지 몰라도 이름 하나 잘 지었네.
수정 조각 세례는 계속됐다.
얼마나 많이 날아오는지 내가 숨어 있던 수정이 수정 조각에 깎여서 너덜너덜해졌다.
“설마 수정 조각들이 내 쪽으로만 날아오는 건 아니겠지?”
슬쩍 몸을 내밀어 손전등으로 주변을 비추니 사방이 온통 깨진 수정투성이였다.
“이 수정이 보석이라면 참 좋을 텐데…….”
언제나 현실은 냉혹한 법.
이 수정엔 아무런 가치가 없다.
기가트라우는 한바탕 난리를 치더니, 조용히 누워 있었다.
“죽었나?”
드디어?
―김상팔 어디야?
우태훈의 목소리.
난 황급히 무전기를 꺼내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때요?”
―사상자가 좀 있지만, 다시 싸울 수 있어! 너 어디야?
“모르겠어요!”
―우리가 알 수 있게 광탄이라도 쏴 봐! 아까까진 뭔가 진동이 느껴졌잖아?
H력이 떨어져서 안 돼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알았어요!”
무전기를 집어넣고 리볼버를 꺼냈다. 그리고 실린더를 조명탄, 유탄, 화염탄으로 채웠다.
“받아라!”
기가트라우 위로 전탄 발사!
폭발과 불꽃이 어우러지며 주변 공기로 파동이 울렸다.
―오케이! 위치 확인!
무전기에서 답이 오자마자 기가트라우가 벌떡 일어섰다.
“안 죽었어?”
난 얼른 수정 뒤로 몸을 감췄다. 그러나 기가트라우는 아주 확실하게 내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젠장!”
여기서 또 달렸다간 원정대와 다시 거리가 벌어진다!
그렇다면 죽든 살든 여기서 버티는 수밖에 없다.
“싸우자, 괴물아!”
리볼버를 재장전 후 기가트라우의 얼굴을 향해 발사했다.
기가트라우는 양손을 움직여 얼굴을 가렸다.
내가 쏜 총알은 녀석의 손에 박히며 작은 상처를 만들었다.
“아오!”
리볼버의 실린더에 다시 총알을 장전. 그러나 다시 쏠 틈도 없이 기가트라우의 발이 날 향해 내려왔다.
“으아아악!”
발바닥.
머리 위에 아주 거대한 발바닥이 있었다.
무슨 천장이 내려앉듯이 내려오는 발바닥의 속도는 더 이상 내가 도망치기에 버거웠다.
“안 돼!”
나도 모르게 총알이 떨어진 리볼버의 방아쇠를 계속해서 당겼다. 그리고 이젠 정말 끝이란 생각에 다리가 뻣뻣이 굳었다.
“으악!”
팔을 교차해 위로 들었다. 그리고 내 팔과 기가트라우의 발바닥이 만난 순간!
기적 따윈 없이 그냥 몸이 찌그러졌다.
바닥에 깔린 수정이 깨지고, 조각과 가루가 휘날리면서 내 몸이 아래로 푹 꺼졌다.
“쿨럭!”
피를 토하면서 전신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아무래도 내 몸의 강도가 바닥의 강도보단 강해서 주먹에 밀린 내 몸이 바닥을 파고든 모양이다.
운 좋게도 수정의 강도가 약한 곳 위에 서 있기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정말 죽었을 것이다.
“근데…….”
난 머리만 살짝 위로 올라온 채 전신이 묻히고 말았다.
“젠장…….”
기가트라우는 날 내려다보며 크게 울부짖었다.
녀석의 울음소리가 호규의 초음파처럼 강하게 내 머리를 짓눌렀다.
“으으으윽!”
반드시 살아남겠어!
어금니를 씹으며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러자 갑자기 전신에서 힘이 솟아났다!
“응?”
서, 설마……!
내 눈앞에 아지랑이가 보였다.
“기가트라우한테도 H력이 있어?”
괴물한테 H력이 있다고?
나이트윙 말고도? 혹시 원래 가지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내가 성장한 건가?
“오오, 어쨌든 덕분에 살았다!”
난 전력으로 기가트라우의 H력을 내뿜었다. 그리고 능력발동을 하면서 단숨에 땅속에서 튀어나왔다.
“강한 괴물일수록 H력이 풍부하게 있나 보네?”
몸에서 힘이 넘쳐났다.
능력발현으로 슈트 생성. 그리고 빠르게 기가트라우의 어깨로 올라갔다. 녀석은 내 속도에 조금도 반응하지 못했다.
“하앗!”
기가트라우의 어깨 위에서 자세를 취하고 무겁게 주먹을 뻗었다.
내 주먹에 맞은 기가트라우는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며 몸을 뒤뚱거렸다.
“한 번 더!”
이번엔 발로 기가트라우의 목을 가격!
녀석은 침을 흘리며 옆으로 쓰러졌다.
“후우…….”
좀 전에 밟혔을 땐 정말 위험했다.
“맷집이 정말 어지간하네.”
솔직히 H력만 빵빵하면 이길 것 같은데…….
얠 때리다가 내가 지칠 것 같다.
“앗!”
저 멀리서 수십 개의 불빛이 보였다. 바로 원정대의 조명이었다.
“저기 있다!”
난 기가트라우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여기요! 여기예요!”
원정대는 우르르 몰려와 기가트라우를 포위했다.
“모두! 광탄 준비!”
최향자의 구령에 전원이 광탄을 만들어 기가트라우에게 조준했다.
난 허겁지겁 그 위에서 내려왔다.
“발사!”
수십 개의 광탄이 기가트라우 위로 쏟아졌다. 폭발과 폭발이 이어지며 기가트라우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한 번 더 발사!”
모두 다 함께 두 번째 광탄 발사!
기가트라우의 입에서 비명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제 녀석에겐 그럴 기운조차 없었다.
“마무리는 내가 해 주마!”
능력을 해제.
전신의 H력을 오른팔에 모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H력을 형상화시키며 날카롭게 벼렸다.
“하아아압!”
압축된 H력의 검기는 내 팔을 최고의 명검으로 탈바꿈시켰다.
난 가볍게 뛰어올라 오른팔을 휘둘렀다.
“저, 저것은……!”
우리 팀을 제외한 전원이 내 팔에서 날아간 검기를 보며 경악했다.
검기는 빠르게 날아가 마치 두부 속을 파고들 듯 기가트라우의 목을 벴다.
두꺼운 기가트라우의 목이 잘리면서 머리가 툭 떨어졌다.
“대단하다!”
다들 감탄을 하면서 날 쳐다봤다.
모든 H력을 단 한 방에 소모한 난 털썩 주저앉으며 혀를 내둘렀다.
“이건 역시 위력 조절이 너무 안 돼.”
원정대는 기가트라우의 부산물 채집을 시작했다.
그동안 난 우리 팀원들과 접촉해 H력을 회복했다.
기가트라우는 거대한 덩치에 비해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은 몸통 안에 있는 극히 일부였다.
“찾았다!”
피범벅이 된 노구가 기가트라우의 몸속을 뚫고 밖으로 나왔다. 그의 손에는 녹색 빛이 뿜어져 나오는 구슬이 있었다.
크기는 대략 수박 정도.
저 거대한 몸집에서 딱 하나 나오는 물건이다.
“이거 하나를 벌려고 사람이 몇이나 죽은 거야?”
변해라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호규가 그녀의 옆구리를 찔렀다.
최향자는 침을 뱉으며 팔을 돌렸다.
“젠장, 뻐근해.”
임무 완수.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응?”
저 멀리 또 다른 불빛들이 보였다.
“뭐지?”
난 기가트라우 위로 올라가서 불빛들을 유심히 살폈다.
“엥?”
불빛의 위치와 움직임. 조명이 아니다.
두 개씩 한 쌍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아 괴물의 눈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여기에 서식하는 괴물은 기가트라우 외 단 한 종.
난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수정늑대다!”
“뭐?”
원정대는 충격에 빠졌고, 딱 타이밍에 맞춰 불빛들이 있는 방향에서 하울링이 들렸다.
“전투 준비!”
최향자의 외침에 원정대는 오와 열을 맞춰서 대형을 짰다.
빙신연맹은 기가트라우의 시체를 얼려서 그것 자체를 하나의 방벽으로 만들었고, 최고의 최고와 변해라는 부상자를 그 뒤로 옮겼다.
“디펜스!”
하이퍼맨과 대한기사단은 방벽 양쪽에 서서 방패 벽을 형성. 다른 팀들은 그 뒤에 서서 원거리 공격을 준비했다.
“온다!”
누군가의 외침처럼 불빛들은 빠르게 원정대로 다가왔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원정대의 불빛으로 인해 그것들의 형체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와!”
수정늑대. 그 이름처럼 몸이 수정으로 이뤄진 괴물이었다.
마치 판타지 소설에서 나오는 골렘이나 로봇과 같은 외관이었다.
수정늑대 무리는 두 갈래로 갈라져 원정대 양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빠르게 방벽과 그 주변을 포위했다.
“젠장! 이렇게 연달아 싸우면 힘들단 말이야!”
한유화는 툴툴거리며 능력발현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었다.
나도 그녀를 따라 슈트를 만들었다.
“온다!”
수정늑대들은 눈치를 보다가 일제히 덤벼들었다.
방패 벽 헌터들은 힘으로 녀석들에 맞서서 버텼다.
“헤헤헤! 아까 녀석에 비하면 훨씬 나은데?”
다들 안심하는 눈치지만, 녀석들도 엄연한 7급!
결코 방심해선 안 된다.
“헤헷!”
하이퍼맨의 산탄에 수정늑대의 머리가 부서졌다. 그러나 녀석은 머리가 없음에도 계속 움직였다.
“뭐, 뭐야?”
정말로 무생물인 건가?
다들 머리 없이 움직이는 수정늑대의 모습에 경악했다.
“그, 그냥 전신을 다 파괴해!”
다들 광탄과 총을 쏘며 수정늑대를 노렸다.
“앗!”
1차적으로 방패 벽과 방벽에 막힌 수정늑대들은 그냥 높이 뛰어올라 우리 머리 위로 방어 라인을 넘었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근접전!
수정늑대들은 다리를 부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움직이며 원정대를 공격했다.
“섹, 시!”
우태훈은 위에 있고 있던 천을 벗어던지고 팬티 차림이 되어 근육을 뽐냈다. 그리고 맨주먹에 H력을 실어 수정늑대를 박살 냈다.
“하앗!”
나도 수정늑대 하나와 일대일로 싸웠다. 녀석은 내 왼팔을 물고 늘어졌다.
“놔!”
난 오른 주먹으로 수정늑대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러자 녀석의 몸을 이루고 있는 수정에 쩍 하고 금이 갔다.
“크으으윽!”
수정늑대는 그냥 몸집으로 밀어붙여 날 넘어뜨렸다. 그리고 내 팔을 물고 있던 입을 벌려서 내 머리를 노렸다.
“안 돼!”
난 양손으로 얼른 수정늑대의 입 위아래를 잡았다. 그리고 녀석과 필사적으로 힘을 겨뤘다.
“으으으으…….”
물론 힘에서 내가 밀렸다. 하는 수 없이 필사적으로 버티며 양손에 광권을 만들었다.
“빨리, 빨리……!”
빠르게 광권 완성.
단숨에 터뜨려 수정늑대의 머리를 날렸다. 그리고 다리로 차서 녀석의 몸을 옆으로 밀쳤다.
“하앗!”
난 얼른 몸을 일으켰다.
수정늑대는 머리가 없음에도 정확히 날 향해 달려들었다.
난 한 손엔 광권, 다른 손에 무광권을 만들면서 녀석의 몸통을 움켜잡았다.
“크으으윽!”
수정늑대는 완력만으로 날 밀어붙였다. 그리고 이빨 대신 날카로운 발톱으로 날 할퀴려 했다.
“받아라!”
우선 광권 먼저 폭발!
충격과 함께 수정늑대의 앞발 하나가 박살났다. 그러나 직후, 남은 앞발 하나가 내 배를 할퀴었다.
“으악!”
슈트 덕에 살이 직접 썰리진 않았지만, 할퀴는 압력에 의해 고통이 느껴졌다.
“아직……!”
무광권이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가만히 있어. 가만히!”
난 광탄을 연속으로 쏴서 수정늑대의 움직임을 막았다.
녀석은 몸통을 흔들면서 광탄의 충격에 저항했다.
“으아아악!”
무광권 완성!
난 광탄 연사를 중단함과 동시에 무광권을 질렀다. 그러자 경쾌한 폭발음과 함께 주변에까지 그 위력이 뻗쳤다.
당연히 나와 싸우던 수정늑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좋았어!”
“혀, 형님! 도와주십시오!”
방벽 뒤에 숨은 오박이 날 보며 외쳤다.
고개를 돌려서 방벽을 보니, 불타는 고구마와 몇몇 부상자들이 수정늑대들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방어 라인이 완전히 뚫렸군.”
난 펄쩍 뛰어서 단숨에 방벽 뒤로 착지했다. 그리고 수정늑대들에게 광탄을 쏘면서 내게로 주의를 돌렸다.
“이쪽이다! 나에게 덤벼!”
수정늑대들은 우르르 방향을 돌려 나에게로 달려왔다. 그리고 내가 힘으로 어찌 해 보기도 전에 각각 내 팔다리를 물어서 날 끌고 갔다.
“아니, 이런……!”
꼼짝을 못하잖아?
수정늑대들은 날 물고 빠르게 원정대에서 멀어졌다.
조명이 멀어짐에 따라 점점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사, 사람 살려!”
난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그러자 머리가 활활 타고 있는 장마리가 빠르게 달려와 수정늑대 하나를 공격했다.
“마리 씨!”
수정늑대들은 날 놓고 장마리에게 덤볐다. 그러나 여러 마리가 한 명을 공격하는 것도 잠시뿐이었다.
이번에는 하늘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이육이 내려왔다.
“하아아앗!”
이육은 날개를 팔처럼 휘둘러 수정늑대들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날 끌어안은 채 다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