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90화 (190/250)

190.

190.

“어때? 이래도 형편없어?”

루호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필드 끝에 있는 벽에 몸을 기댔다.

아직 루호의 눈에는 투지가 살아 있었다.

“수비는……형편없어요.”

“으아아아! 이 새끼!”

김광녀는 화를 내면서 또 루호에게 덤벼들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외쳤다.

“플래시!”

또?

난 김광녀의 외침을 듣자마자 눈을 감아서 소중한 내 시력을 보호했다.

“크으으윽!”

눈꺼풀이 닫혀 있음에도 강력한 빛 때문에 눈이 따가웠다.

“젠장!”

빛이 가시고, 나만 혼자 또 능력발동으로 눈을 떴다.

“엥?”

[승자 조루호]

난 눈을 비비며 전광판을 확인했다. 분명 루호의 승리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다면……?”

필드를 보자, 김광녀가 쓰러져 있었다. 그녀가 떨어뜨린 단검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다시 정정하죠. 당신은 공격도 형편없어요.”

루호는 그렇게 말하고, 치료를 받기 위해 먼저 필드를 떠났다.

“어떻게 된 거예요?”

기기래가 날 흔들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제야 첫 번째 발광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눈을 뜨고 있었다.

“아마 처음 기술에 당했을 때 루호는 ‘몸’으로 김광녀의 공격 패턴을 익힌 거예요. 그래서 두 번째 공격 때 그것을 이용해 역공한 거겠죠.”

천재에게 같은 수는 두 번이나 통하지 않는다.

열네 번째 시합.

[조루호 10 VS 김구남 10]

배팅하는 사람 중 남은 건 20명. 배팅은 절반씩 나뉘었다. 아무래도 루호가 입은 부상 때문인 것 같았다.

“김구남…….”

왠지 김광녀처럼 의외로 강력한 모습을 보여 줄 것 같다.

김구남은 김광녀처럼 뉴 월드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하하하!”

김구남은 쾌활하게 웃으며 루호의 입장을 기다렸다.

“상처가 너무 심하면 기권해도 돼!”

김구남은 출입구를 보면서 외쳤다. 그러자 그의 말에 반발하듯 루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루호의 복부엔 누가 봐도 알 수 있듯이 붕대가 감겨 있었다.

“감당할 수 있겠어? 중간에 죽어 버리면 내가 실격된단 말이야!”

김구남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걱정 마세요. 그럴 틈은 주지 않겠습니다.”

시작!

“하아아압!”

루호는 H력을 끌어 모아 전신을 감쌌다. 그리고 H력의 물질화를 이용해 온몸을 보호해 주는 H력 갑옷을 만들었다.

“오호?”

김구남은 히죽 웃으며 능력발현을 했다. 그러자 그의 몸이 펑 하고 부풀더니, 거대한 구체로 변했다.

그래서 ‘구’남이야?

구체는 급발진하며 제자리에서 바닥을 마찰하며 굴렀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속도가 붙자,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 나가 루호에게 돌진했다.

루호는 양손에 사슴뿔을 만들어서 정면으로 구체를 막았다. 구체의 회전과 사슴뿔이 마찰하면서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크윽!”

루호는 조금씩 뒤로 밀리며 버텼다. 그러나 반투명한 갑옷 속 붕대가 점점 붉게 물들어 가는 게 보였다.

“하하하! 이제 그만 2위 자리를 내놔!”

구체는 낄낄거리며 루호를 계속 압박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루호는 조금도 뒤로 밀리지 않았다.

“뭐, 뭐야?”

“후웁!”

루호는 숨을 들이마시더니, 구체를 양손의 사슴뿔로 집게처럼 잡았다.

그리고 회전 중인 구체를 마치 틀에 끼듯이 사슴뿔 사이에 끼워서 들어 올렸다.

“이, 이럴 수가!”

구체는 회전 방향을 여기저기로 바꾸며 사슴뿔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조직의 영광을 위해, 네 녀석을 제물로 삼아 주마!”

응?

구체는 이상한 소리를 하더니 점점 더 크기를 부풀려 갔다.

구체의 표면은 사슴뿔 사이 공간을 점점 파고들면서 마치 고무처럼 계속 커졌다.

“이런!”

뭔가 위험을 직감한 것인지, 루호는 황급히 구체를 놓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사슴뿔에 파고들 대로 파고든 구체 때문에 양팔이 고정되어 버렸다.

“하하하! 감이 좋군. 하지만 이제는 끝이야!”

“그럴 리가요?”

루호는 그냥 H력 갑옷을 해제. 사슴뿔과 함께 갑옷이 연기처럼 사라지면서 구체가 쏙 빠져나왔다.

“하하하! 이제 끝이다!”

구체는 거대해진 상태. 게다가 루호의 바로 앞이었다.

구체는 한 번 더 회전하면서 루호를 깔아뭉개려 했다. 그러나 루호는 순간적으로 다시 갑옷을 생성해서 구체를 위로 쳐서 올렸다.

높이 떠오른 구체는 천장까지 닿았다.

“제가 사슴으로 변신하면 그대로 자폭하고, 피하려고 하면 깔아뭉갤 작정이었죠?”

루호는 여유롭게 말하며 유성추를 세게 돌려서 공중의 구체를 향해 철구를 날렸다.

공중에 떠오른 이상 구체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젠자아아앙!”

김구남은 절규하면서 자폭했다.

폭발의 위력 자체는 루호에게 닿지 않았지만, 폭발의 풍압이 강하게 바닥을 짓눌렀다.

“으아아악!”

강한 압력에 VIP룸의 유리에도 금이 갔다. 그러나 루호가 입고 있는 갑옷에는 그 어떤 금도 가지 않았다.

[승자 조루호]

“이제 마지막!”

기기래는 주먹을 쥐면서 말했다.

나도 그녀와 함께 전광판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문제는 상대가…….”

[조루호 4 VS 손평화 6]

처음으로 루호가 열세. 그 이유는 손평화의 ‘무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난 로봇이 무기로 인정받을 줄 몰랐다.

“우와!”

로봇 하나가 필드로 걸어 들어왔다.

로봇의 크기는 대략 2.5미터 정도. 쉽게 비유하자면 몸통이 최신형 냉장고만 했다.

“루호 씨! 파이팅!”

기기래가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그러자 룸 안 여기저기서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팔 씨!”

로봇이 VIP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순간, 전광판에 비친 루호의 표정과 내 옆에 선 기기래의 표정이 날 복잡하게 만들었다.

박장은 스피커가 터지듯 큰소리로 외쳤다.

“마지막 시합, 시작!”

루호는 완전히 만신창이가 된 상태. 그에 반해 손평화가 탑승한 로봇은 번쩍번쩍 광택까지 났다.

“하앗!”

이번엔 루호가 먼저 달려들었다.

루호는 빠르게 로봇의 뒤로 돌아가 유성추를 휘둘렀다. 그러나 철구 몇 번 맞는 걸로는 로봇에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젠장.”

루호는 짧게 탄식하면서 유성추를 거두고, 로봇과 거리를 벌렸다.

“하앗!”

루호는 두 손으로 광탄을 만들어 발사했다. 그러자 로봇도 루호를 향해 몸을 튼 후 팔을 들었다. 그리고 손에서 광탄과 같은 색의 빛줄기를 쏟아 냈다.

“로봇이 광선을 쏜다!”

VIP룸 안의 남성들이 환호했다.

루호가 쏜 광탄은 로봇의 광선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더욱이 광선은 끝까지 나아가 루호에게까지 닿았다.

“크윽!”

루호는 옆으로 몸을 던져 광선을 피했다.

루호가 서 있던 자리는 광선에 의해 까맣게 타 버렸다.

“발진!”

손평화의 목소리. 로봇은 발바닥에서 불꽃을 뿜어내며 바닥에서 살짝 떠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등에 달린 부스터에서도 불꽃을 뿜어내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로봇이 비행을 한다!”

룸 안의 남자들은 한 번 더 환호했다.

루호는 로봇이 떠오르자마자 갑옷사슴으로 변신했다.

로봇은 양팔을 앞으로 뻗은 채 돌진. 갑옷사슴은 거기에 뿔로 응수했다.

육중한 둘의 충돌. 묵직한 소리와 함께 그 충돌 여파로 금이 갔던 VIP룸 유리가 너덜거렸다.

“유리가 깨져요! 모두 물러서요!”

내 말에 앞에서 시합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유리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산산이 박살 났다.

“와아아아!”

사람들은 마치 4D영화를 본 듯 손뼉을 치면서 환호했다.

로봇과 갑옷사슴은 한창 힘겨루기 중. 둘이 딛고 있는 바닥에 금이 갔다.

“저거 또 무너지는 거 아니야?”

“뭔 놈의 바닥이 만날 금이 가?”

“너무 부실 공사 아니야?”

말은 이렇게 하지만 구경꾼들의 말투는 농담조에 가까웠다.

다들 흥미진진한 시합에 완전히 몰두해 있었다.

로봇은 부스터를 정지. 땅에 착지하면서 갑옷사슴의 머리를 옆으로 비틀었다.

갑옷사슴은 머리가 뒤틀리는 와중에 앞으로 박차고 나갔다.

로봇은 뒤로 밀리고, 갑옷사슴은 머리가 돌아가는 상태. 서로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대치했다.

“왜 저런 로봇을 양산화시키지 않는 거지?”

누군가의 질문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동력원 때문이죠. 전기 계열 능력자는 희귀할 뿐더러 로봇을 움직일 만큼 많은 양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국내에서 손평화 씨뿐입니다.”

대답한 사람은 바로 신진부! 슈퍼타이거의 팀장이자 헌터 랭킹 3위였다.

“국방부에서 세계 최초로 헌터 로봇을 양산하려고 했지만, 그것 때문에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신진부의 말에 다들 시합에서 눈을 떼고 그를 쳐다봤다.

“참고로 지금 저기서 싸우고 있는 로봇은 강자기의 최신작입니다. 우리 팀 최고의 천재와 영재들이 달려들어 개발한 물건이죠.”

“그럼 그 성능은요?”

기기래가 기자의 직감으로 물었다.

신진부는 쓰고 있는 안경을 한 번 고쳐 쓰며 기기래의 질문에 답했다.

“저 최신형의 로봇은 충분히 로얄급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로얄급!

그 말에 룸 안이 술렁였다.

“대단하군! 역시 강자기는 천재야!”

다시 모두의 관심이 시합으로 돌아갔다.

한편, 로봇과 갑옷사슴은 육탄전을 벌이고 있었다.

로봇은 주먹으로 권투를 하듯 갑옷사슴의 뿔을 피해 주먹을 날렸다.

반면에 갑옷사슴은 뿔로 로봇의 팔을 엮으려 했다.

“로봇, 로봇, 로봇……!”

남자들은 한 목소리로 로봇을 응원했다. 그 중엔 이런 말도 있었다.

“변신, 합체는 안 하냐?”

로봇은 육중한 무게를 실어서 갑옷사슴의 머리를 때렸다.

계속된 충격에 사슴의 투구가 조금씩 깎이듯 부서졌다.

계속 맞고 있던 갑옷사슴은 필드 끝까지 로봇을 밀어붙였다.

그런 뒤 머리를 비틀어 뿔로 로봇의 몸통을 찍었다.

“안 돼! 로봇, 지지 마!”

로봇의 몸통은 살짝 찌그러졌을 뿐 아직 멀쩡한 수준. 갑옷사슴은 계속해서 로봇을 압박했다.

“하아아앗!”

갑자기 로봇 안에서 손평화의 기합 소리가 들렸다.

“220볼트!”

로봇의 전신에서 번쩍하는 빛과 함께 강력한 스파크가 튀었다. 그리고 그렇게 뿜어진 전기는 눈 깜짝할 새에 갑옷사슴을 감전시켰다.

“루호 씨!”

기기래는 깜짝 놀라며 VIP룸 유리에 달려들었다. 그러나 방금 전 유리가 무너졌기에 그녀는 사실상 투신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기래 씨!”

난 기기래의 팔을 잡아 그녀를 말렸다.

“루호 씨가 감전됐다고요!”

“220볼트로는 안 죽어요!”

괴물 수준이 된 루호의 내구력은 인간을 초월한, 그야말로 초인적이었다.

갑옷사슴은 감전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로봇을 밀었다. 사슴이 밀면 밀수록 로봇의 몸통은 점점 깊게 찌그러졌다.

“대단해.”

신진부는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이번 시합으로 좋은 실전 정보를 얻겠군. 후후후.”

전기를 내뿜기 시작하면서 로봇의 힘은 점점 떨어졌다. 아무래도 에너지원인 전기를 발산하면서 출력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앗!”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계속해서 감전되자 갑옷사슴의 갑옷이 완전히 깨졌다. 그러나 아직 사슴으로의 변신은 유효했다.

“제발……!”

사슴도 감전이 계속되면서 체력이 떨어졌는지 점점 움직임이 둔해졌다.

둘은 바짝 붙은 채로 힘 싸움을 벌였다.

사슴은 고개를 틀어서 통조림따개처럼 로봇의 몸통 장갑을 뜯어냈다. 그러나 로봇이 뿜어내는 전기로 인해 사슴의 가죽도 점점 검게 타들어 갔다.

“앗!”

사슴의 뿔이 로봇의 장갑을 기어이 뜯어냈다. 그리고 로봇 내부가 드러나면서 안에 타고 있는 손평화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앗!”

손평화는 로봇에서 뛰어나와 직접 사슴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5만 볼트!”

섬광과 함께 커다란 폭발음이 들리면서 필드 전체가 또 한 번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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