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97화 (197/250)

197.

197.

“모퉁이로 유인해요!”

루호의 지시에 팀원들은 다 함께 뒤돌아서서 달렸다. 그리고 90도로 꺾이는 모퉁이를 돌아선 다음 그 뒤에 일렬로 섰다.

“모퉁이를 돌아오면 족족 쏴서 맞춰 주세요.”

루호는 그 다음 호규, 변해라, 주아란, 노건을 불렀다.

“네 사람은 지금부터 하수도를 돌아다니면서 녀석들을 조종하고 있는 배후를 찾아 주세요.”

변해라는 H력을 분별할 수 있고, 호규는 초음파로 주변을 탐색할 수 있으며, 주아란과 노건은 근접전에 특화된 능력자들이다.

“빠르게 설명할게요.”

루호는 지도를 축소시켜서 몇 군데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이 부분은 이미 돌아다녔어요. 해라 씨, 그쪽은요?”

변해라도 빠르게 지도를 짚었다.

“저희는 여기, 여기, 여기요.”

“그럼 그 외의 부분을 돌아다녀 주세요. 그동안은 저희가 최대한 막아 볼게요.”

“넵!”

네 사람은 팀원들을 뒤로 하고 힘차게 달렸다. 지치고 피로한 것도 동료가 있단 믿음에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오빠, 레이더!”

변해라의 말에 호규는 즉각 낮고 굵게 소리를 냈다.

“아아아아…….”

호규의 음파는 파도가 일렁이듯 움직이며 하수도의 구조를 따라 퍼져 나갔다.

“아아아아…….”

호규의 초음파에 뭔가가 잡혔다. 그것은 하수도 깊은 곳에 있었다.

“두 명?”

호규는 초음파를 멈추고는 함께 달리는 세 사람에게 지도를 보여 줬다.

“이 부근에 뭔가 있어요. 이동하진 않고 있으니까, 서둘러요!”

네 사람은 빠르게 달려서 호규가 가리킨 장소에 도착했다.

“당신은……!”

호규는 벌벌 떨면서 마주한 상대를 쳐다봤다.

미스터 버드. 그는 폐수 속에 앉아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헌한발.”

미스터 버드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붕대는 이미 폐수로 오염돼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그런 곳에 있으면 똥독 같은 거 오르지 않아요?”

아란의 질문. 미스터 버드는 담담하게 답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미스터 버드는 물속에서 양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H력이 뿜어져 나왔다.

“중요한 건 너희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거지.”

미스터 버드의 뒤로 또 다른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작은 체구의 소년.

네 사람은 소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보다 어린데?”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아란이었다.

소년은 H력을 뿜어내더니, 그것을 미스터 버드에게 주입했다.

“크으으윽!”

미스터 버드는 짧게 신음을 하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폐수의 표면이 들썩이더니, 물속에서 대왕쥐가 튀어나왔다.

“이거다!”

아란은 펄쩍 뛰어서 미스터 버드가 있는 주변 폐수를 발로 찼다.

“차갑게!”

아란의 발차기가 폐수째로 미스터 버드를 얼렸다.

미스터 버드는 고개만 남은 채 꼼짝도 못하는 상태에서 물에 둥둥 떴다.

막 튀어나온 대왕쥐들은 나머지 두 사람에게 순식간에 제거됐다.

“좋았어!”

변해라는 능력발현으로 자신의 H력을 미스터 버드에게 주입하려 했다.

“널 지배해서 네 괴물들까지 내가 차지해 주마! 하하하!”

악당 같은 말과 함께 변해라와 미스터 버드의 H력이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나에게 복종해!”

변해라는 미스터 빅을 조련시켰던 과거를 떠올리며 차근차근 미스터 버드의 H력을 밀어붙였다.

“형이랑 같이 가자.”

노건은 소년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아이는 폴짝폴짝 뛰어서 노건에게서 도망쳤다.

“형 아니야. 아저씨야!”

소년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무려 물 위를 달렸다. 네 사람은 그 모습에 얼이 빠져 소년을 놓치고 말았다.

“괜찮아요. 미스터 버드만 잡으면……!”

변해라는 시선 고정, 나머지 세 사람은 미스터 버드를 얼음째로 들어 올렸다.

“어서 능력을 해제하세요!”

노건은 놓친 소년 대신 미스터 버드의 머리를 잡았다.

“해제해 주세요! 제발!”

명령은 금세 부탁으로 변했다.

“너희가 다 죽기 전엔 어림도 없어.”

미스터 버드는 단호했다. 그러자 변해라는 그를 장악하는 것을 중단. 대신 노건에게 다가가서 무어라 속삭였다.

‘역시, 해라는 악마야.’

조련사란 직함 때문인지 주변 인물의 장단점을 참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변해라는 모두에게 몇 걸음 물러서도록 지시한 후 노건과 미스터 버드, 단 둘만 있게 했다.

당연히 노건은 능력발현을 사용했다.

곧이어 들려오는 미스터 버드의 비명 소리. 침착하던 그의 목소리는 참으로 애절했다.

잠시 흉포해진 노건의 시선으로 설명하자면, 대략 미스터 버드의 머리를 손잡이처럼 부여잡은 다음 이리저리 포대자루처럼 휘둘러 댔다.

미스터 버드는 전신을 얼렸던 얼음이 산산이 깨지고 박살 나면서 너덜너덜해졌다.

“그, 그만……!”

노건은 미스터 버드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를 공격했다.

“으랏차차!”

최후에는 미스터 버드의 머리와 발을 양손으로 잡고 힘껏 찢으려 했다.

“마, 말리자!”

세 사람은 그것을 보고 허겁지겁 노건에게 달려들었다.

“노건 오빠!”

“노건 씨!”

“노건 아저씨?”

아란의 ‘아저씨’란 발언에 노건은 게거품을 물면서 세 사람에게로 덤벼들었다. 그리고 미스터 버드를 무기처럼 휘둘렀다.

“피해!”

세 사람은 몸을 던져서 공격을 피했다.

“이럴 줄 알았어!”

호규는 소리산탄을 만들어 내며 노건과 거리를 유지했다.

“노건 아저씨, 진정하세요!”

“우오오오!”

아란의 발언에 노건은 더 크게 분노했다.

“아란아, 제발 닥쳐 줄래?”

변해라는 날카롭게 말하며 노건에게 H력을 보냈다. 그러자 노건은 본능적으로 미스터 버드를 휘둘러서 H력의 접근을 방해했다.

“미스터 버드가 죽겠어!”

호규는 소리산탄 하나를 노건의 뒤로 보낸 다음 폭발시켜 그의 움직임을 막았다.

“지금이야!”

변해라의 H력이 노건에게 접촉해 그를 강제로 진정시키려 했다. 거기에 아란도 그의 사타구니에 발차기를 날렸다.

“차갑게!”

아란의 다리가 노건의 사타구니에 닿는 순간 노건의 몸이 와락 오그라들었다.

“좋았어!”

아란은 계속해서 노건의 사타구니를 발로 찼다.

“그, 그만! 진정됐어요! 제발!”

정상이 된 노건은 미스터 버드를 놓고, 자신의 사타구니를 움켜쥐었다.

미스터 버드는 완전히 기절한 상태. 그 증거로 그가 조종하는 것으로 추정되던 대왕쥐떼가 완전히 무력화됐다.

덕분에 녀석들과 싸우며 시간을 벌던 다른 팀원들은 겨우겨우 무사할 수 있었다.

팀원들은 미스터 버드를 데리고 해치로 나와 이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안에서 겪었던 일을 그녀에게 상세히 이야기했다.

“미스터 버드? 플레잉? 소년? 대왕쥐떼?”

물론 누가 들어도 황당한 소리. 지부 지하에서 플레잉이 다수의 괴물을 조종하고 있었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더구나 대왕쥐의 출몰은 지부에서 벌인 삽질의 대가. 소문나서 좋을 게 없었다.

이서현은 루호에게 비밀을 지켜 줄 것을 신신당부하며 오늘의 사냥을 마무리했다.

“그럼, 승부는 어떻게 되는 거야?”

“미스터 버드를 잡은 건, 전데요?”

아란이 손을 들자, 해라가 노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미스터 버드를 제압한 건 노건 오빠거든!”

그 말을 시작으로 헌한발은 다시 반으로 나뉘어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답이 없군.’

결국 한참의 논의 끝에 찬성파의 의견대로 루호가 임시 팀장이 되기로 했다.

‘그나저나 지부도 막장이네.’

왜 갑자기 팀장을 교체하게 됐는가?

그 이유는 지부가 갑작스럽게 우리 팀에게 강제로 어떤 의뢰를 했기 때문이다.

그 의뢰란 것은 강제적 성격을 띤 일이라 해당 팀에게 거부권은 없고, 협회 규율상 반드시 팀장이 있는 상태에서 의뢰를 수용해야 했다.

게다가 무려 ‘본부’ 의뢰. 영국에 있는 헌터 협회 본부에서 한국 지부에 의뢰한 일이었다.

‘근데 왜 그런 엄청난 일을 우리한테 시키는 거지?’

당장 한국을 대표하는 헌터 팀이라면 빅4가 있다.

양으로 보든, 질로 보든 우린 아직 빅4에 미치진 못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 의뢰는 과거 휴전선, 현재 10급 사냥 구역으로 불리는 ‘무장지대’였다.

‘예전엔 비무장지대였지만, 이젠 무장지대라니…….’

그나저나 난 이대로 쭉 깨어나지 않은 채 있어야 하나?

그때 내 눈이 번쩍 뜨였다.

“엥?”

내 눈, 내 시야, 나 혼자만의 감각.

오랫동안 깊은 잠을 잔 탓인지 온몸이 뻐근했다.

“좋았어!”

난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퇴원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아이고!”

부지런한 루호!

이미 팀장은 변경되어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한다?”

의뢰 받은 사냥 날짜는 일주일 뒤.

난 홀로 수련을 하기로 했다.

“저번에 5급을 해치웠으니까, 이번엔 조금 수준을 올려 볼까?”

처음 만났던 강적.

난 인터넷 창에 ‘드래건’에 대한 정보를 띄웠다.

“할 수 있겠지?”

이상하게도 마비 상태에서 깨어난 직후부터 몸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넘쳤다.

지금이라면 드래건과 싸워서 질 것 같지 않다.

“당장 짐을 꾸려서 가자!”

난 배낭을 꾸려서 홀로 6급 사냥 구역으로 향했다.

즉석으로 떠나서 그런지 배낭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예전엔 6급에서 개고생했었는데…….”

이젠 어떨까?

사냥 구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가슴이 설렜다.

“후후후.”

동굴산.

그곳에 난 구멍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갔다.

“엥?”

구멍이 좀 이상하다? 분명 드래건이 살고 있는 땅굴은 점점 갈수록 땅굴의 크기가 커질 텐데?

기분 나쁠 정도로 일관된 굴의 크기. 마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굴을 잘못 들어왔나?”

나가서 다시 찾을까? 살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결심을 굳혔다.

“이건 수련이야. 뭐가 나오든 싸워야지!”

난 가볍게 조깅을 하면서 굴속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휴대용 캠코더를 어깨에 장착! 손에는 산탄총을 들었다.

“자, 뭐든 나와 봐!”

다리는 빠르게, 눈은 침착하게.

계속 들어가니까, 사방에 뭔가 이빨 자국 같은 게 보였다.

“이건……!”

촘촘한 이빨 간격과 날카롭게 파인 땅굴 내면. 거기에 비늘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비늘?”

그것을 떼어서 자세히 살폈다.

“이건 드래건의 것이 아닌데?”

타원형의 겉면에 촘촘히 난 톱니. 그리고 묘하게 반들반들한 광택.

“군청색?”

처음 보는 괴물인데?

그때 땅굴 전체, 사방에서 내가 주은 비늘 같은 것들이 촘촘하게 돋아났다.

“서, 설마……!”

미세한 진동. 그리고 갑자기 굴 안쪽에서 피어오르는 역겨운 냄새.

“입안으로 들어온 거야?”

땅굴 전체가 꿀렁이면서 갑자기 부드럽게 출렁였다.

“젠장!”

들어온 입구를 향해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다.

이런 타입의 괴물이라면, 당연히 정보가 적은 법. 왜냐하면 열에 아홉은 이 상태로 잡아먹힐 것이기 때문이다.

“앗!”

입구가 점점 닫히면서 거대한 톱니들이 자라났다. 정확히는 숨겨져 있던 것들이 드러나고 있었다.

“으랏차차!”

움직여라, 내 다리!

난 능력발현으로 슈트를 생성하며, 거대한 톱니에 산탄을 쐈다. 총알에 맞은 톱니는 불꽃을 튀기며 박살 났다.

“으악!”

바닥이 크게 출렁이면서 내 몸이 위로 붕 떴다.

“에잇!”

난 산탄총을 어깨에 멘 후 양손에 광권을 만들어서 천장에 한 발, 그리고 아래로 떨어지면서 바닥에 한 발을 터트렸다.

“어서 날 토해 내!”

다음은 무광권. 양손에 압축된 H력이 큰 폭발을 일으키면서 그 충격으로 입구가 다시 벌어졌다.

“좋았어!”

바닥이 물컹거렸지만,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괴물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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