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99화 (199/250)

199.

199.

강철 문에 쓰인 10이란 글자. 그것만으로도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군인의 설명에 따르면, 정문을 열고 닫을 땐 필히 외부와 이어진 감시 카메라로 사방을 확인한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10급 괴물에게 추격당하거나, 괴물이 문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상황이라면 문은 절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쳇.”

이렇게만 보면 확실히 우리 팀만 가는 게 미친 짓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 시찰 일정은 매우 간단했다.

남한 쪽으로 세워진 사냥 구역 장벽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까지 왕복하면 끝. 일종의 안전 점검 같은 것이었다.

“하긴, 10급 사냥 구역 장벽이 무너진다면 재앙일 테니까…….”

근데 북한 쪽은 점검 안 해? 거기는 무너져도 되는 건가?

그 이유는 북한이 남한과 다르게 헌터 협회에 가입하지 않아 지부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괴물이 출몰하면 그냥 그때마다 군대를 출동시켜 전투를 벌이고 있다.

문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광경은 9급 사냥 구역인 지뢰밭과는 전혀 다른 드넓은 숲이 펼쳐져 있었다.

“와!”

푸르른 하늘, 그 아래 봉긋하게 솟은 언덕, 그리고 그 언덕을 둘러싼 울창한 나무 숲, 그 사이를 가르는 반짝이는 강.

우리가 들어온 직후 문이 닫혔다.

난 감찰관과 이서현에게 가서 물었다.

“이제 어디부터 갈까요?”

“네?”

내 질문에 두 사람은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이내 깔깔 대며 웃었다.

“저희가 언제 안쪽으로 시찰한다고 했죠?”

엥?

난 황급히 고개를 돌려 변해라를 쳐다봤다. 그러자 해라는 도로시 뒤로 몸을 숨겼다.

“제대로 들을 것이지…….”

하여간 꼭 중요한 이야기할 때 잘못 듣는 사람이 하나씩 있다니까!

이서현은 웃는 입을 가리며 말했다.

“여기 들어온 건 정문의 작동 상황과 군인들의 보초 실태를 보기 위해서예요. 금방 다시 문으로 나갈 거예요. 그 다음엔 차를 타고 장벽 외부를 따라 만들어진 도로를 달릴 거고요. 설명 못 들었어요?”

이서현의 말마따나 우리는 금방 다시 정문으로 나왔다. 그리고 감찰관과 이서현 일행은 각각 세단, 우리 팀은 미니 밴과 3톤 트럭에 나눠 탔다.

출발하기 전 직원 하나가 루호에게 무전기를 건네줬다.

“이러면……이거 완전 꿀인데?”

사냥 구역 밖이라면 얼마든지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차를 타고 도주할 수도 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도로시를 이용한 공중 감시를 할 수 없다. 도로시는 3톤 트럭의 트레일러에 도로 집어넣어진 상태다.

사냥 구역 밖에서 능력을 써도 되나? 원칙적으로는 사냥 구역 밖에서는 H력 사용 금지. 혹시 이걸 노린 건가?

“그건 양아치가 아니라 거의 해충 수준인데?”

애초에 감찰관과 이서현이 데리고 온 경호원들도 분명 능력자일 것이다.

저들은 특수한 계약 상태이기에 능력을 써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난 불안한 심정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세단 바로 뒤에서 밴을 몰았다.

“전후좌우, 잘들 봐주세요.”

내 말에 우리 팀은 밴의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경로는 동쪽에서 서쪽까지. 우리는 방벽을 따라 평화로이 도로를 달렸다.

“저기……형.”

“응?”

루호가 말을 걸어왔다.

“팀장 일은……죄송해요.”

갑작스런 사과. 루호의 말에 밴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괜찮아. 장기적으로 봤을 땐 네가 팀장이 되는 게 팀을 위해서도 더 나아. 난 사고뭉치잖아.”

총알받이가 다 그렇지, 뭐…….

여기서 ‘내 꺼, 네 꺼’하면서 싸우는 것도 웃긴 노릇이다. 게다가 난 한 번도 헌한발이 내 개인의 집단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헌한발과 함께 꿈을 이루고 싶었을 뿐이다.

근데……진짜……헌터 랭킹 1위는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열정이 식었다기보다는 현실을 보게 됐다고나 할까.

지금 내 스스로 꽤 강해졌다고 자신하지만, 여전히 로얄하고 싸워서 이길 것 같단 확신은 들지 않는다.

“그런 생각할 시간이 있으면 수련이나 더 하도록 해. 우린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내가 대답을 한 직후 밴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티, 팀장님!”

호규가 날 부르며 창밖을 가리켰다. 그가 날 불렀다고 확신한 이유는 내 운전석 뒤로 손을 뻗어 내 뺨을 때렸기 때문이다.

“뭔데요?”

다들 호규를 따라 창밖을 바라봤다.

“엥?”

방벽 위. 뭔가 사람 형상 같은 게 서 있었다.

한 명? 아니, 둘이다!

두 사람이 방벽 위에 서서 도로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루호야! 무전기로 세단 쪽에 연락해.”

“네!”

루호가 세단에 무전을 하려는 찰나, 갑자기 앞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이건……!”

내가 폭발 사고를 당했을 때?

딱 그 순간이 떠올랐다.

난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앞의 세단들도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멈춰 섰다.

“차에서 내려!”

일반적으로 재난이 일어났을 땐 자동차 안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 그러나 확 트인 곳에서 테러를 당했다면, 차 안은 절대 안전한 장소가 못 된다.

우리는 우르르 내려서 나무 뒤로 숨었다.

해라는 트레일러를 열어서 도로시를 꺼냈다.

“저쪽에서 공격한 거야?”

난 고개를 내밀면서 루호에게 물었다.

“방벽 위에선 아무것도 안 했어요.”

“감찰관은……?”

고개를 돌리자, 막 세단에서 내린 감찰관과 이서현 일행이 보였다.

그들은 최대한 자세를 낮춘 후 근처 수풀로 들어갔다.

“형!”

루호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방벽을 가리켰다.

“앗!”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방벽 위에 있던 두 형체가 사라졌다.

“어디 갔어?”

내 질문에 루호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못 봤어요. 그냥 사라졌…….”

갑자기 우리 뒤로 인기척이 나타났다.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뒷골이 당기면서 소름이 돋았다.

“하하하! 안녕들 하신가?”

“앗!”

우리는 모두 비명을 질렀다.

두 명의 남녀. 둘 다 아는 얼굴이었다.

한 명은 전신 타이즈 차림의 우람한 체격을 지닌 미즈 붐!

다른 한 명은 바로 지부 하수도에서 본 소년이었다.

“하하하! 미즈 붐과 미스터 판타스틱의 콤비네이션이다!”

미즈 붐은 전신을 활짝 펴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소년이 그녀의 몸에 손을 대면서 H력을 주입했다.

“고, 공격해!”

직감적으로 소년을 막아야 한단 생각이 들었다.

내 말에 따라 팀원들이 미스터 판타스틱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 직후, 미즈 붐의 능력이 무엇이었는지가 떠올랐다.

“하하하!”

미즈 붐은 우렁찬 웃음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으아아악!”

제기랄!

난 순간적으로 능력발현을 해서 슈트를 착용했다.

루호도 사슴갑옷을 착용, 노건은 변신을 해서 최대한 자신의 몸으로 다른 사람들을 가렸다.

“하하하!”

폭발한 불꽃 사이로 미즈 붐의 얼굴‘들’이 보였다.

“뭐, 뭐지?”

내가 충격을 받아서 헛것을 보고 있나?

난 헬멧의 바이저를 닦고 한 번 더 바라봤다.

“와…….”

이게 뭐야?

미즈 붐이 여러 명. 적어도 스무 명은 되어 보였다.

“분신?”

아니면 미스터 판타스틱이란 소년의 능력인가?

그러고 보니 지부의 하수도에서도 수천 마리의 대왕쥐를 해치웠지만, 발견된 시체는 수십 마리에 불과하단 이야기를 들었다.

“실체와 비슷한 위력을 지닌 분신이란 건가?”

엄청난 능력이다!

여러 미즈 붐들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외쳤다.

“너희도, 감찰관도, 이서현도 한꺼번에 처리해 주마!”

“다들 괜찮은 것 같아요. 어떻게 할까요?”

루호가 다른 팀원들을 둘러보며, 내게 물었다.

나와 루호는 자체 방어력으로 버텼고, 호규와 변해라는 도로시로 대피, 노건은 스스로 방패가 되어 아란과 유정을 보호했다.

이씨 형제들은 이육이 날개를 만들어 자기 자신이 방패막이 된 덕에 그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은 무사했다.

“또 폭발하면 귀찮아져요. 멀리서 광탄으로 공격해요! 감찰관 일행을 다치게 해선 안 돼요.”

“넵!”

내 지시에 따라 다들 거리를 벌리며 미즈 붐과 미스터 판타스틱을 공격했다.

“하하하! 폭발이다!”

미즈 붐들은 그냥 우리 공격을 받아 내면서 무작정 돌진해 왔다.

설사 우리가 완전히 쓰러뜨려도 그 뒤에서 또 다른 개체가 나타나 계속 전진해 왔다.

“미스터 판타스틱을 노려요!”

미즈 붐은 아무리 쓰러뜨려도 수가 계속 불어났다.

그녀의 능력은 단순한 폭발. 그렇다면 핵심은 미스터 판타스틱이란 소년에게 있을 것이었다.

“젠장!”

다들 어린 소년을 공격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었다.

“으아아아!”

인간폭탄 물량 뒤에 숨은 소년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수십 개의 광탄을 날렸지만, 대부분 미즈 붐들에게 막혀 버렸다.

“젠장!”

미즈 붐들은 광탄을 맞으면서 일렬로 섰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확실하게 미스터 판타스틱을 보호했다.

“이제 그만 끝을 내주마. 어디 숨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일대를 다 날려 버리면 되겠지?”

“뭐?”

이 일대를……?

우리가 깜짝 놀라는 사이, 미즈 붐의 수는 더 불어났다. 그리고 서로 팔짱을 끼면서 우리를 향해 웃었다.

“최고의 폭발을 보여 주마! 다 같이 죽는 거야!”

미즈 붐들의 눈빛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폭발을 위한 준비 동작처럼 보였다.

“호규 씨! 다들 찾아와요!”

내 말을 이해한 호규와 변해라는 도로시를 타고 수풀로 들어갔다.

나와 루호는 빠르게 눈빛을 주고받으며 급히 주변의 땅을 팠다.

“서둘러!”

난 급히 한 팔에 H력을 모아 검기를 날렸다. 그리고 그것으로 지면에 깊고 커다란 사각형을 만들었다.

“하앗!”

루호는 건틀릿에 긴 뿔을 만들어 내가 만든 사각형 자리를 빠르게 팠다.

“여기로 들어와요!”

넉넉한 공간으로 다들 뛰어들었다. 그리고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계속해서 구덩이를 파고 들어갔다.

“흐에에엑!”

구덩이 속으로 서른은 족히 될 사람들이 우르르 떨어졌다. 그리고 도로시가 사뿐하게 내려왔다.

“찾아왔……!”

호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섬광과 압력이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았다.

“크윽!”

다들 한 덩이가 되어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숨겼다.

구덩이는 지진이 난 듯 흙이 쏟아지며 함몰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음엔 열기와 소음이 구덩이 위로 지나갔다.

어찌나 강력한지 흙이 타들어 가는 착각까지 들면서 땅속까지 그 위력이 전해졌다.

“미, 미친……!”

미스터 판타스틱. 이름 하난 끝내주게 잘 지었네. 졸작 히어로 영화 주인공 이름이라서 허접할 줄 알았더니……!

조금 뒤, 폭발이 끝나고 그 여파로 먼지구름과 잔해들이 날아다녔다.

나무 톱밥과 도로의 잔해가 구덩이로 떨어졌다. 그런데 그 중엔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도 있었다.

“이, 이건……!”

난 손으로 먼지를 날리며 콘크리트 조각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몇 번이나 이리저리 돌리며 확인했다.

“이, 이건……!”

평범한 도로 잔해가 아니다.

왜냐하면 굴러 떨어진 그 조각엔 ‘10’이란 숫자의 일부가 찍혀 있었다.

“서, 설마……!”

“형, 괜찮으세요?”

루호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난 다른 사람들을 확인할 새도 없이 구덩이 밖으로 나갔다.

“와!”

초토화. 미즈 붐이 드디어 한 건 했다.

수십 명의 미즈 붐은 도로와 나무숲, 그리고 약간 떨어져 있던 방벽까지도 날려 버렸다.

“방벽이 무너졌어?”

10급 사냥 구역에 구멍이 뚫려 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