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200화 (200/250)

200.

200.

“젠장!”

난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미즈 붐과 미스터 판타스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당했어.”

황급히 구덩이로 돌아가 사람들을 꺼냈다.

대부분 정신을 잃고 기절했으나, 생명에 지장은 없어 보였다.

“이건……!”

구덩이에서 나온 루호도 무너진 방벽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어때? 너보다 위라고 생각해?”

내 질문에 루호는 복잡한 얼굴로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볼 때 미즈 붐들의 위력은 적어도 로얄 이상의 위력이었다.

“이 정도면 인간 병기인데…….”

어마어마한 뉴 페이스군.

우리는 감찰관과 이서현 일행을 흔들어 깨웠다. 다행히 그들은 금방 눈을 떴다.

“세상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하긴, 그럴 것이다.

10급 사냥 구역 안전 점검하러 왔는데, 눈앞에서 방벽이 박살 났으니…….

“서둘러 지부에 연락하고 이곳을 봉쇄해야 합니다. 군에도 지원 요청을 하고요!”

이서현은 서둘러 휴대전화로 이곳저곳에 전화를 했다.

곧 군부대가 몰려와 무너진 방벽 주변을 둘러쌌고, 지부에서도 직원들이 몰려와 진상 조사에 나섰다.

“서둘러! 10급 괴물 개체 수 파악하고, 근처 수색해!”

당연히 우리 의뢰는 실패로 처리.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사실 우리의 임무는 감찰관과 이서현의 안전이었기에 성공으로 쳐줘야 했다.

그러나 치졸한 지부는 방벽의 붕괴까지 우리 탓으로 몰면서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어.”

***

며칠 후, 나와 루호는 이서현과 카페에서 만났다. 그녀는 주변을 살치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했다.

“일단, 표면적으로 무장 지대에서 사라진 10급 괴물은 없는 걸로 발표했어요.”

‘일단’과 ‘표면적으로’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근데요?”

내 질문에 이서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한 마리가 사라졌어요. 10급 괴물은 개체 수가 적어도 지부에서 확실하게 숫자를 파악하고 있거든요.”

“그게 뭐죠?”

이서현은 더욱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하이브리드요.”

“자동차요?”

“하이브리드라니까요?”

“그러니까 자동차요?”

“하, 이, 브, 리, 드!”

이서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너무 목소리를 높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 괴물이 있어요?”

10급 괴물에 대한 정보는 기밀 중의 기밀. 랭킹 헌터라도 함부로 열람할 수 없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10급 괴물은 ‘민머리용’이 유일하다.

“요즘 지부 내에서 박장과 지부장님의 행보가 좀 이상해요.”

이서현은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요?”

“네, 그렇죠. 하지만 이번엔 정말 이상해요. 지부장님은 무슨 무기력증에 걸린 것처럼 출퇴근만 하시고, 일을 전혀 안 하세요. 대신 박장이 모든 직무를 대신하고 있고요.”

“박장이요?”

“네. 게다가 지부 내 수상한 사람들이 지부장님 명령으로 드나들고 있고, 본부에서 온 감찰관은 황급히 그냥 돌아가고 말았어요.”

그냥 돌아가?

난 미간을 찌푸렸다.

본부에서 온 감찰관이 아무 말 없이 그냥 돌아갔단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부 입장에선 더 무거운 감찰을 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요새 들어 미디어에서 계속 암행 취재를 시도하는 것 같아요.”

이서현의 말을 들으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왜 플레잉은 뉴 월드를 이용할까?

왜 감찰관이 왔을 때 방벽을 무너뜨렸을까?

지부를 음해해서 누가 득을 보지?

이서현은 한숨을 쉬면서 정보 전달에서 신세 한탄으로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이러다가 지부가 망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재정도 거덜 나고 있고, 외부에서 계속 조사나 감찰이 들어오고……. 최근엔 정치권에서 저희와의 관계를 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일단 하이브리드를 찾는 데 집중하기로 해요. 저희도 최대한 협조해 드릴게요.”

내 말에 루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현은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그럼 하이브리드에 대한 정보를 좀 드릴게요. 아시겠지만, 이 정보가 유출될 경우…….”

“알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난 서류 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하나 더! 미스터 버드가 탈출했어요.”

“그래요?”

별로 놀랍진 않다.

난 어깨를 으쓱이며 루호와 함께 카페를 나왔다.

“요새 만날 시위하더니, 오늘은 조용하네?”

항상 보이던 뉴 월드 시위대가 보이지 않았다.

난 그것이 오히려 불길한 전조로 느껴졌다.

“이젠 할 필요가 없단 건가?”

난 무심코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가 헌터 잡지 하나를 집어서 계산하고 나왔다.

“뭐예요?”

루호가 묻자, 난 잡지의 포장 비닐을 뜯어서 중요 항목이 적힌 첫 페이지를 펼쳤다.

“이거 봐 봐.”

“이건…….”

루호는 한 항목을 손가락으로 집었다.

“‘남녀 투표 1위, 남주나의 ‘은밀한 사생활’이요?”

아니, 그런 것도 있어?

난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 그거 말고……!”

남주나가 진짜로 인기가 많구나!

새삼 놀라웠다.

내가 본 항목은 바로 ‘뉴 월드의 은총’이었다.

“뉴 월드의 영향이 사냥업계 전체로 퍼진 모양이야.”

난 루호에게 잡지를 건넸다.

루호는 페이지를 넘겨서 해당 항목을 읽어 내렸다.

“요즘 사냥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야만스럽고, 이기적이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안정적이고 상호 발전적인 체제로 사냥을 주도하고 있는 단체가 생겼다.

상당히 편파적인 냄새가 난다.

“빅4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약자가 최우선이 되는 선진 사냥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그들의 이름은 ‘뉴 월드’라고 한다. 그들은 실제 존재하는 종교 ‘뉴 월드’에서 출발해 현재까지 40여 명 이상의 랭킹 헌터를 보유하고 있다.”

뉴 월드라는 팀이 생겼어? 근데 그거 무슨 신성모독 같은 거 아닌가? 개신교신자들이 팀을 만들었는데, 팀 이름이 ‘크리스천’인 거잖아?

“그들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나누며, 모든 것이 완벽하고, 불만은 전혀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헌터의 미래라 할 만하다.”

“끄응.”

난 고개를 저었다.

“말세다.”

“그러게요.”

난 루호와 함께 탄식하며 휴대전화를 꺼내 트튜리팟에 접속했다.

“후후후.”

트튜리팟 조회수를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지막 동영상인 대왕지렁이 사냥 영상까지 합해서 총 누적 조회수가 무려 5억!

적어도 한국 랭킹 헌터 중 조회수만 놓고 보면 1위에 가까웠다.

왜 1위에 ‘가깝다’는 표현을 썼느냐?

그것은 바로 진짜 1위가 바로 어금니에서 운영하는 채널이기 때문이다.

“여기는 뭘 하든 1위네.”

난 자조 섞인 얼굴로 피식 웃었다.

그때 갑자기 뉴스 속보가 시내 전광판과 각 TV, 인터넷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다.

양복 차림의 박장. 그는 책상에 앉은 채 엄숙한 자세로 무언가를 읽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지부는 헌터협회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 단체로 거듭난다. 이 결정에 소속 헌터들은 거부할 수 없으며, 반발할 시 전원 약관에 따라 불이익 및 관련 소송과 처벌을 불사하는 것으로 인지한다.]

약관?

그 말을 끝으로 영상이 끊겼다.

“어이가 없네.”

물론 지부에 가입할 때 쓴 계약서에 따르면 몇 가지 걸리는 조항이 있다.

[소속 헌터는 지부의 영리 활동을 방해하지 않는다.]

[소속 헌터는 지부의 요청에 성실하게 응답한다.]

[소속 헌터는 지부와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

대략 이런 것들.

난 당장 휴대전화를 꺼내 오이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의 전화는 통화 중이었다.

“엥?”

발신을 중단함과 동시에 휴대전화로 동시에 수십 개의 문자가 도착했다.

우리 팀원들은 물론이고, 평소 알고 지내던 팀과 헌터들에게서 온 것이었다.

“다들 대혼란인가 봐.”

“지부가 그런 발표를 할 줄 몰랐을 테니까요.”

“과연 김익조의 결정일까?”

“아니겠죠?”

그때 저 멀리서 뭔가 시위대 같은 행렬이 보였다.

“저거 설마……!”

우리는 뭔가 직감적으로 다시 카페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이서현의 맞은편에 다시 앉았다.

“뭐죠?”

이서현은 커피를 마시다가 돌아온 우리를 보며 깜짝 놀랐다. 그녀는 아직 우리가 본 발표를 모르는 눈치였다.

“창밖을 보세요.”

“앗!”

[뉴 월드 + 한국지부]

이런 글씨가 쓰인 팻말을 든 수백 명의 인파가 도로 한가운데 그냥 대놓고 지나갔다.

“뉴 월드의 지상낙원을 건설하자!”

“지금이야말로 일어설 때……!”

“네오서울을 지배하자!”

갖가지 구호를 외치며 시위대는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들 앞으로 도로를 걸었다.

“하, 한국지부?”

이서현은 황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누군가와 심한 말다툼을 한 뒤,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에요?”

난 조심스레 이서현에게 물었다.

“지부에서……절 해고했어요.”

“예?”

갑자기?

우리 셋은 함께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한가로이 계속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뉴 월드를 믿어라!”

도로를 걷던 시위대는 삼삼오오 나뉘어 근처 상가로 들어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벌건 대낮에 가게 주인을 제압한 후 금품을 갈취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성전이다! 신은 우리 편이다!”

우리가 있던 카페에도 뉴 월드 신도들이 들어왔다. 다들 몸에서 H력을 뿜어내는 것을 보니, 일반인은 아니었다.

“이교도를 척살하라!”

뉴 월드 신도들은 다짜고짜 손님들과 가게 주인을 위협했다.

“기부금을 내면 신도로 인정해 주지! 내지 않겠다면……!”

신도 중 하나가 주먹으로 냅다 바로 앞의 테이블을 내려쳤다. 그러자 나무로 된 테이블이 쩍 갈라지며 반으로 쪼개졌다.

“형제자매님들, 빨리빨리 좀 냅시다! 엉?”

“카드도 받습니다!”

다른 신도 하나가 무려 휴대용 카드 결제기를 꺼냈다.

이게 기부야, 갈취야?

사람들은 겁에 질려서 지갑을 내밀었다.

“이교도를 약탈하라! 오늘부터 네오서울은 우리 뉴 월드의 성지다!”

사방에서 비명 소리와 물건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겨, 경찰에 신고하겠어!”

손님 하나가 용기를 내어 소리쳤다. 그러자 뉴 월드 신도들은 낄낄거리며 답했다.

“그러시든지……?”

놀랍게도 카페에 들어온 신도들은 가만히 문을 막고 서서 정말 경찰을 기다렸다.

조금 시간이 지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다. 그러나 출동한 경찰들은 총만 겨누다가 이내 신도들에게 제압당했다.

“뭐, 뭐야?”

경찰이 당하자, 시민들은 경악했다.

“형, 우리가 나서요!”

루호가 주먹을 쥐면서 말했다.

“수가 너무 많아. 잠깐만…….”

난 휴대전화로 몰래 수십 개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됐어! 가자, 루호야!”

난 휴대전화를 집어넣고, 벌떡 일어섰다.

“네!”

우리는 능력발동하면서 동시에 신도들에게 덤벼들었다. 그리고 간단히 그들을 쓰러뜨렸다.

카페 안은 환호로 가득 찼다. 몇몇 손님들은 우리를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여기서 나오지 마세요.”

우리는 카페를 나와 시내를 둘러봤다.

“와…….”

무슨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도시가 박살 나고 있었다.

유리창은 깨지고, 보도블록은 파헤쳐졌으며, 자동차는 뒤집어져 있었다.

“사, 사람 살려!”

여기저기서 끔찍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시민들은 무방비로 폭행, 강탈, 능욕 당했다.

“이런 미친……!”

나와 루호는 서로 말할 것도 없이 찢어졌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대로 뉴 월드 신도들과 싸웠다.

“이 녀석, 김상팔이다! TV에서 봤어!”

신도들은 날 알아보고는 수십 명이서 단체로 덤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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