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202.
“대통령?”
“일주일?”
“뉴 월드!”
다들 웅성웅성 떠들었다.
―네오서울의 시민들이여!
집 밖에서 들려온 확성기 소리.
난 루호와 함께 문을 열고, 밖을 확인했다.
“헉!”
푸른색 전차. 말 그대로 탱크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크기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것이 아닌 놀이동산에서 타고 노는 범퍼카의 그것.
놀랍게도 겉면에 뉴 월드의 문장이 찍혀 있었다.
―일주일간 협조해 주길 바란다! 우리는 불필요한 살상을 원치 않는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일주일간 협조해 주길……!
우리는 집 안으로 고개를 넣고, 문을 닫았다.
다들 우리를 보며 바깥 상황을 물었다.
“탱크가 있었어요.”
루호의 말에 집 안은 더욱 어수선해졌다.
“아니, 저건 탱크가 아니야.”
난 루호의 말을 반박하며, 이서현에게 받은 서류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든 문서 중 어느 한 부분을 읽었다.
“하이브리드. 무기물의 형태와 구조를 똑같이 복제해서 변신할 수 있다. 자연 상태에선 보통 바위나 광물의 형태를 띠고 있다. 다만, 형태와 상관없이 색깔은 파란색이 된다.”
만약 이 하이브리드를 미스터 버드가 통제하는 데 성공했고, 그걸 미스터 판타스틱의 능력으로 대량 복제한다면, 전차 부대를 양성할 수 있다.
―딩동
순간 정적.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설마 뉴 월드 아니야?”
“우릴 잡으러 온 거야?”
“이대론 못 당해! 싸우자!”
다들 H력을 뿜어내며 금방이라도 집을 통째로 날려 버릴 분위기였다.
“쉿!”
난 검지를 입술에 붙이며 크게 말했다. 그리고 문에 바짝 붙어서 바깥을 향해 외쳤다.
“누구세요!”
―김상팔?
목소리를 듣자마자 문을 열었다.
“나존귀 님?”
나존귀는 자신 휘하의 KK마스터즈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왔다.
덕분에 우리 집은 더욱 좁아졌다.
“지금 네오한국은행이 털리고 있대!”
나존귀는 방방 뛰면서 소리쳤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재벌가 소식통이 있거든.”
센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네오한국은행은 완전 차단되었음에도 정보가 새고 있는 것이다.
난 뉴 월드와 플레잉보다 재벌가 카르텔이 더 두렵게 느껴졌다.
“네오한국은행을 턴다면, 수십에서 수백 조는 될 텐데요?”
루호도 깜짝 놀라며 말했다.
외화, 금괴, 현찰, 그리고 개인 금고의 개인 재산들.
아마 대한민국 부의 대부분이 은행 지하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군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걸? 지금 재벌들이 군 장성들과 접촉 중이라고 했거든.”
나존귀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러나 곧이어 조정 화면이던 TV에 뉴스 속보가 떴다.
[미군 일주일간 잠정 대기]
[대한민국 육군 장성들 왈 ‘대통령 명령 없이 군 못 움직여…….’]
[부통령도 행방불명]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 대행]
[국무총리 왈 ‘일주일, 기다리자’]
“기다리자고?”
일 처리 속도 봐라?
역시 발 뺄 땐 다들 선수다.
하긴, 군대가 전투를 시작한다고 해도 문제인 게 자칫 대량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네오서울 전체가 불바다가 될 수 있다.
한나라의 수도가 이렇게 기습적으로 점거당한 건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일 것이다.
이 와중에 마지막 속보는 충격적이었다.
[네오서울 도심 곳곳에 정체불명의 탱크 부대 출현]
“젠장.”
안 좋은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난 망연자실해서 조정 화면으로 변한 TV를 쭉 쳐다봤다.
―딩동
또 한 번의 초인종.
이번엔 나 대신 루호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방문객을 나에게로 안내했다.
“오랜만이에요, 상팔 씨.”
요망한 티라노 대가리.
“대팔 씨?”
인형 옷을 입은 김대팔이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러시죠.”
난 김대팔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쩐 일이세요?”
내 질문에 김대팔은 인형의 입에서 팔을 쭉 빼냈다.
마치 에일리언 같다.
김대팔의 손에는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읽어 보시죠.”
난 서류 봉투를 받아서 속에 든 문서를 읽었다.
“이, 이건……!”
그건 어느 한 사람의 행적을 추적한 기록이었다.
러시아, 중국, 인도, 페르시아?
“페르시아?”
현재의 이란이 쓰던 옛 국호다.
“1935년에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바뀌었죠.”
김대팔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서류를 끝까지 읽은 후 다시 봉투에 넣어 김대팔에게 돌려줬다.
“이게 정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가져왔겠죠?”
난 참담한 심정으로 이마에 손을 갖다 댔다. 그리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럼 도움이 필요하겠네요.”
“네, 그것도 아주 많이 필요하겠죠.”
“형!”
루호가 허겁지겁 2층으로 올라왔다.
“무슨 일이야?”
“손님이 오셨어요. 내려와서 만나셔야 할 것 같아요.”
“또?”
더 올 사람이 있나?
난 루호를 따라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마지막 방문자를 보며 깜짝 놀랐다.
***
난 침을 삼키며 캠코더 앞에 섰다. 그리고 천천히, 무겁게 말했다.
“전국의 헌터 여러분…….”
난 지금껏 헌터란 직업에 대한 내 꿈과 같은 선망, 사냥업계에 대한 믿음, 지부를 향한 의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틀어 여전히 이 직종에 갖고 있는 애정을 이야기했다.
“함께 싸워 주세요!”
난 촬영한 영상을 트튜리팟에 올렸다.
트튜리팟은 외국 기업, 한국 기업과 달리 부패한 뉴 월드의 라인에 의해 제재당할 가능성이 낮았다.
다음 날.
내가 올린 영상은 대한민국을 뛰어넘어 전 세계적인 관심을 이끌어 냈다.
조회수가 무려 천만. 단 하루 만에 이뤄낸 결과였다.
“이제 하루 남았어.”
나존귀의 말에 따르면 네오한국은행 지하 금고가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은 사흘. 그것도 무식할 정도로 두꺼운 두께 때문이라고 한다.
뉴 월드와 플레잉이 네오한국은행을 장악한 이유는 뻔했다. 그렇기에 난 녀석들이 금고를 털기 전에 행동할 생각이었다.
“후우.”
내가 살고 있는 개집 앞 정원에는 많은 수의 텐트가 쳐져 있었다. 다들 어제, 오늘, 내 요청을 받아들여 모인 사람들이었다.
“집주인이 알면, 쫓겨나겠지?”
정원에는 텐트 말고도 이동식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나존귀가 후원해 준 덕이었다.
“정말로 한판 할 거야?”
나존귀는 팔짱을 낀 채 잔뜩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집이 바로 옆이었음에도 굳이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낸 상태였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죠. 센은 분명히 이렇게 말했어요. ‘군대와 경찰이 함부로 움직인다면…….’이라고요.”
내가 아는 그의 성격상, 자신이 한 말은 지킬 것이다. 그러니 군대도, 경찰도 아닌 우리 헌터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
하루 동안 수십 명의 헌터들이 저택을 찾았다. 그들은 내가 찍은 영상을 보고 네오서울까지 온 것이었다.
“함께 싸우겠습니다!”
“전부터 팬이었습니다!”
“지부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정원의 텐트는 늘어 갔다.
전국 각지에서 온 헌터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여들었다.
센의 선포로부터 사흘째.
정원에는 수백 명의 헌터가 모여 있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능력자가 아니거나, 정식 자격 없는 보조 헌터. 그러나 나에게 있어 최고의 전력이었다.
“무기 없이 이길 수 있을까요?”
루호가 인원 점검을 한 후에 조심스레 물었다.
원칙적으로 개인의 무기 소지 및 사용은 불법.
“괜찮을 거야. 신진부가 약속했거든.”
센이 네오서울 점거를 선포한 날, 마지막 방문자는 바로 슈퍼타이거의 팀장인 신진부였다.
그는 놀랍게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늘 밤에 시작하자.”
우리는 근처 배달 전문점에서 닥치는 대로 음식을 주문했다.
뉴 월드와 플레잉이 네오서울을 점거한 상태지만, 배달 오토바이는 잘만 돌아다녔다.
“배달 왔습니다!”
중국집, 치킨, 피자, 햄버거, 족발, 분식 등등. 계엄령 상태임에도 배달 오토바이를 멈출 수 없었다.
정원 한가득 음식 냄새가 솔솔 풍겼다.
“다 먹고 힘내서 싸워요!”
헌터들은 먹고 마시며 싸움을 위한 체력을 대비했다.
그동안 난 각 팀장들을 불러 작전을 짰다.
그날 밤.
우리는 네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목적지는 당연히 각각 청와대, 국회의사당, 네오한국은행, 그리고 한국지부!
청와대 팀 리더는 로얄가드맨 팀장인 이준.
국회의사당 팀 리더는 검은 과부들 팀장인 최향자.
네오한국은행 팀 리더는 슈퍼타이거 팀장인 신진부.
한국지부 팀 리더는 공포특급 팀장인 남주나.
난 능력을 사용해 우리 팀 팀원들과 각 리더들, 그리고 주요 랭킹 헌터의 감각을 모두 나에게로 연결했다.
‘이런 정신계통 능력은 희귀한데?’
‘흥미롭군. 이게 고속 출세의 비밀인가?’
‘헤드헌터라 불러도 되겠는데?’
다들 한 마디씩 던지며 감탄했다. 그 덕에 내 머리는 터질 듯이 울렸다.
각 팀들로 나뉘어 저택을 나오자, 저택 앞에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각각의 버스에 올라 흩어졌다.
‘그럼 잘 부탁드려요!’
난 연결된 감각을 따라 각 팀들을 살폈다. 다들 하나같이 표정이 어두웠다.
버스 창문으로 보이는 시내의 야간 풍경. 자동차와 행인의 수가 평소보다 훨씬 줄어 있었다.
난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른 팀의 시선에 감각을 집중했다.
***
가장 먼저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네오강남구에 위치한 네오한국은행으로 간 팀이었다.
네오은행 주변은 빽빽하게 파란색 탱크로 둘러싸여 있었다.
탱크들은 자동적으로 은행에 다가오는 자동차나 행인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버스는 은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정지. 다들 버스에서 내려 짐칸에 실린 장비를 내렸다.
장비는 모두 슈퍼타이거와 로얄가드맨이 제공해 줬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신진부는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그때, 저 멀리서 트레일러를 단 트럭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 트레일러에는 놀랍게도 여러 가지 무기가 실려 있었다.
“탱크를 상대하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지!”
사람들은 신나게 무기를 집었다. 거기엔 법 때문에 쓸 수 없는 폭발물이나, 자동화기도 있었다.
“탱크는 무인기라는 게 판명됐어. 어차피 괴물이 변신한 거니까, 상관하지 말고 해치워.”
신진부는 안경을 고쳐 쓰면서 말했다. 그의 말에 아란이 물었다.
“그래도 명색이 10급 괴물인데, 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신진부를 대신해 이번엔 강자기가 말했다.
“하이브리드에 대해 조사해 봤는데, 흥미로운 점을 알게 됐어. 김상팔도 알려준 정보지만, 녀석은 무기물을 ‘그대로’ 복제하지.”
강자기는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냈다.
“만약 녀석이 이 동전을 복제했다고 쳐 보지, 그럼 어떻게 될까? 세계 최강의 동전이 되는 걸까?”
강자기는 다시 주머니에 동전을 넣었다. 그리고 웃옷으로 입은 코트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었다.
“물건을 복제하면, 그 성질까지 그대로 복제하는 거야. 즉, 그냥 동전이 되어 버리지. 그리고 하이브리드의 약점은 한번 복제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거야.”
“그럼 지금은 10급 괴물이 아니라 그냥 무인 탱크란 거네요?”
아란의 맞장구에 헌터들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그런 셈이지. 참고로, 녀석들이 복제한 탱크에 대해서도 조사가 끝났어. 아직 시제품인 녀석이라 성능이 불안전하더군.”
“그래요?”
“탱크보단 장갑차에 가까워. 그리고 테러 진압이나 시위 해산용으로 만들어진 녀석이라 장갑이 약해. 그러니 마음껏 갈겨.”
아란은 조심스레 총기에 손을 댔다. 그러나 이내 다시 내려놨다.
“억지로 쓸 필요는 없어.”
강자기는 아란을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아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준비됐나?”
신진부는 모두를 향해 물었다.
아란, 초조선, 이씨 형제들, 최마군, 슈퍼타이거 등등 다해서 60여 명.
헌터들은 신진부를 따라 천천히 네오한국은행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도로를 따라 걸으며 근처 상가와 건물의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대부분은 헌터들의 말에 따라 즉시 자리를 떠났지만, 몇몇 완고하게 버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땐 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