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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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보여 주거나, 한 발 쏘면 됐다.
―멈춰라. 가까이 오면 발포한다!
탱크 한 대가 헌터들에게 다가왔다. 탱크 위에 달린 확성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탱크엔 진압용 고무탄이 장전되어 있다. 만약 지시에 따르지 않을 경우, 실탄이 발사될 것이다.
엥? 뭔가 화법이 이상한데?
다른 사람들도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신진부와 강자기는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안 맞으면 그만이야.”
두 사람은 동시에 뛰어올라 탱크 위에 착지했다. 그리고 동시에 H력으로 능력발동을 하며 각각 확성기와 포대를 움켜잡았다.
“하압!”
―삐삐삐, 경고, 경고, 겨……!
확성기가 뜯겨 나가고, 그 직후 포대가 위로 꺾였다.
신진부와 강자기는 탱크에서 뛰어내렸고, 탱크는 포대가 움찔하더니 폭발했다.
“와아아아!”
헌터들은 그것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단 한 번의 예시. 그것으로 모두의 사기가 올랐다.
“가즈아!”
조기홍이 펄쩍 뛰어올라 단숨에 말뚝을 만들어 냈다. 그는 그것들을 사방에 던져 탱크들의 무한궤도를 망가뜨렸다.
“받아라!”
이경신은 RPG를 쏴서 단번에 탱크 한 대를 터뜨렸다.
그녀의 뒤로 고릴라로 변한 남궁만이 앞으로 나아가 다른 탱크 한 대를 힘으로 뒤집어엎었다.
―발포! 발포! 발포……!
흩어져 있던 탱크들은 빠르게 몰려들며 헌터들을 향해 포를 쐈다.
“피해!”
표범으로 변한 추보영이 아란의 뒷덜미를 물어서 끌었다.
아란은 뒤로 쓰러진 채 질질 끌려갔다.
“제길!”
김목록은 머리에 긴 뿔을 만들어 탱크를 꿰뚫었다. 그를 따라 헌터들은 총기를 쏴 댔다.
“죽어라!”
은행 앞 좁은 차도는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사방에서 포탄과 총알이 날아다녔다.
“으아아악!”
헌터들이 뭉친 곳으로 포탄이 제대로 떨어졌다. 폭발의 충격으로 헌터들은 사방으로 날아갔다.
“으윽, 커피 냄새!”
카페에 포탄이 꽂히며 솔솔 원두 타는 냄새가 풍겼다.
“무겁게!”
아란은 높이 뛰어올랐다가 수직으로 뚝 떨어졌다. 그리고 두 다리로 탱크의 천장을 밟았다.
아란에게 밟힌 탱크의 장갑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으악!”
헌터 하나가 포탄에 정통으로 맞아서 날아갔다. 일반인이라면 최소 사망인 위력이었다.
“괜찮나?”
최마군은 서둘러 날아간 헌터를 붙잡았다. 그리고 잡자마자 그를 치료했다.
“오오!”
최마군의 치료술에 전신이 망가졌던 헌터의 육체가 빠르게 회복됐다.
“감사합니다!”
헌터는 기쁨에 겨워 외쳤다.
“옷은 알아서 입도록!”
최마군은 말을 마치고는 다른 헌터를 치료하기 위해 뛰었다.
그의 말처럼 치료를 받는 헌터의 대부분은 옷이 폭발에 날아가 알몸이었다.
“이육!”
이사의 외침에 이육이 그를 끌어안은 채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이사는 공중에서 자동소총을 갈겨 댔다.
“하하하!”
이사의 공중 지원으로 탱크들의 포구는 위아래로 바삐 움직이며 어딜 먼저 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다하다 무인기가 허둥지둥하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이십은 분신으로 유인.
이팔, 이구, 이칠은 광탄을 쏴 대며 탱크들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삼은 양손과 꼬리에 세 자루의 총을 들고 세 방향으로 총을 쐈다.
“으악!”
이오는 돌로 된 주먹으로 포탄을 직접 막다가 다른 헌터들처럼 폭발의 위력에 의해 멀리 날아갔다.
“젠장.”
이오는 편의점에 처박혔다가 그곳의 진열장에서 우유 하나를 집어서 마셨다.
“괜찮아?”
봉을 든 이이가 이오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 괜찮아. 형도 마실래?”
이이는 봉으로 편의점의 CCTV를 가리키며 말했다.
“계산하고 나와라.”
“지금 상황에 그런 게 중요해?”
이삼은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진열장에 올려놨다. 그리고 이이와 함께 다시 탱크들에게 돌격했다.
“순조롭군.”
신진부는 가벼운 걸음으로 포탄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문제는…….”
신진부의 시선은 지면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면조차 떨어진 포탄에 아스팔트가 산산이 쪼개졌다.
“위험해요!”
아란은 신진부에게 달려가 그를 밀쳤다. 그러나 옆에서 보기에 아슬아슬해 보여도 신진부는 완벽하게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려는 것이었다.
아린의 도움 아닌 도움으로 신진부는 도로에 널브러지며, 포탄의 폭발로 날아온 아스팔트 조각에 깔렸다.
“으윽!”
신진부는 복부를 누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의식에서 느껴지는 바로 볼 때, 생각지 못하게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죄, 죄송해요.”
아란은 어쩔 줄 몰라 당황했다.
“괜찮아. 일단 싸우는데 집중해.”
신진부는 슬쩍 최마군을 쳐다봤다. 그러나 그는 다른 헌터들을 치료하느라 바빴다.
“쳇!”
신진부는 상처를 입은 채로 총을 들었다.
“으아아아!”
발톱으로 긁듯 장갑을 찢으며 한 줄로 발사된 총알. 탱크는 큰 스파크를 일으키며 멈춰 섰다.
“뜨겁게!”
아란은 펄쩍 뛰어올라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돌렸다. 그리고 낙하하면서 발뒤꿈치로 다른 탱크의 위쪽 장갑을 찍었다.
탱크의 장갑은 뜨거운 열기에 녹기 직전까지 부드러워지면서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탱크들은 계속해서 몰려왔다.
아무래도 이 근방에 있는 모든 기체가 모인 것 같았다.
“으아아악!”
폭발에 의한 화제. 헌터 한 명이 전신에 불이 붙었다. 그러자 고릴라가 카페에 놓인 정수기 물통을 들고 와서 그의 위에 물을 부었다.
“죽어라!”
전투력이 약한 헌터들은 근처 사람 없는 상가로 들어가 벽 뒤에 숨은 채 창문으로 사격을 이어 갔다.
싸움은 시가전의 양상을 띠면서 점점 늘어져 갔다.
“젠장.”
신진부는 복부를 매만지며 입술을 씹었다. 그러나 아직도 최마군은 다른 헌터들을 치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는 수 없지.”
신진부는 총알이 다 떨어진 총을 내려놨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면서 전봇대 위로 올라갔다.
―발포, 발포, 발포……!
탱크들은 쉴 새 없이 포구를 움직이며 헌터들을 노리고 있었다.
‘뭐하시는 거예요?’
난 보다 못해 신진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하압.”
신진부는 그 광경을 내려다보다가 H력을 가득 뿜어내면서 몸을 낮춰 전깃줄을 잡았다.
“크윽!”
전깃줄의 고무 코팅 위로 흐르는 약한 전기가 신진부의 피부를 타고 흘렀다. 그러자 그의 심장이 전기 자극에 반응하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 이건……?’
신진부의 정신을 통해 그의 몸에서 일어난 변화가 생생히 나에게로 전해졌다.
몸 안으로 흘러들어 오는 전기는 점점 강해졌다. 그리고 나중엔 최소 몇 천에서 몇 만 볼트의 전류가 되었다.
“으아아앗!”
신진부는 점점 몸 안을 전기로 가득 채웠다. 그의 몸은 마치 거대한 충전지처럼 전기를 빨아들였다.
―발포, 발포, 발포……!
탱크들이 전봇대 위의 신진부를 발견. 수십 개의 포구가 위를 향했다.
‘피해요!’
내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포구들이 불을 뿜으며 포탄을 날렸다. 그러나 포탄들이 도착하기 직전, 신진부는 몸에서 전기를 방출했다.
‘와!’
사방으로 뿜어진 전기는 마치 방어막처럼 구 형태로 퍼지며 포탄이 신진부의 몸에 닿기 전에 미리 폭파시켰다.
기계적인 연속 사격에 신진부의 주변에선 연신 폭발이 일어나며 검은 연기와 먼지가 그의 모습을 가렸다.
신진부의 모습이 가려지자, 탱크들은 사격을 중지.
헌터들은 그 틈을 노려 탱크들을 공격했다.
“후후후.”
신진부는 양쪽 허리에 손을 짚은 채 전봇대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리고 탱크들 바로 앞에 서서 전기를 더 강하게 내뿜었다.
“하아아앗!”
신진부의 전기는 살아 움직이듯 탱크에서 탱크로 움직였다.
좁은 범위에 모인 탱크들은 차례차례 감전되면서 까맣게 타 버렸다.
‘세상에……!’
난 의식을 공유해서 보고 있었지만, 생생하게 현장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수십 대의 탱크는 단 한 번의 전격에 전멸했다.
“왜 이런 좋은 기술을 이제 쓴 거예요?”
아란이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
“후우.”
신진부는 대답 대신 옆구리에 대고 있던 손을 뗐다. 그러자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크윽.”
신진부는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호흡을 조절하며 출혈을 최대한 줄였다.
“이런…….”
그제야 최마군이 다가와서 신진부의 치료를 시작했다.
“능력을 사용하면서 상처가 더 벌어졌군. 이건 병원에 가야겠어.”
전력을 방출하면서 상처가 타들어 간 것이었다.
최마군은 일단 붕대로 신진부의 허리를 감았다.
“내 치료술은 재생 능력을 증폭시키는 거라 고압 전기로 인한 세포조직 파괴는 완치하기 힘들어.”
“그냥 응급조치만 하면 안 되나?”
신진부의 질문에 최마군은 단호히 답했다.
“이건 단순히 출혈이나 상처의 문제가 아니야. 자칫 H력 장기들에 문제가 생겼을지 몰라. 헌터 생활 계속하고 싶으면 어서 병원에 가야 해.”
신진부는 최마군의 말을 들으며, 다른 헌터들을 살폈다.
대부분이 크고 작은 부상으로 인해 전투 지속이 불가능했다.
“당장 병원에 가!”
최마군은 험상궂은 가면으로 신진부에게 호소했다.
“강자기!”
신진부의 호령에 강자기는 당장 휴대전화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엥?’
놀랍게도 몇 분 되지 않아 수십 대의 콜택시가 은행 앞으로 몰려들었다.
“내가 부상자를 데리고 가지. 네가 남은 사람을 지휘해.”
신진부는 아직 멀쩡한 헌터들을 보며 말했다.
“다른 의견 있나?”
다들 입을 다물며 고개를 저었다.
신진부는 중환자들과 함께 택시에 올라타 떠났다.
“무리하셨군.”
강자기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가 볼까?”
강자기는 팀장인 신진부의 이탈에도 딱히 동요하지 않았다.
남은 사람은 강자기, 조기홍, 남궁만, 추보영, 최마군, 주아란, 이육, 이팔, 이십, 이칠.
이렇게 열 명.
헌터들은 활짝 열린 은행 정문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번엔 쇠파이프와 칼을 든 뉴 월드 신도와 플레잉 단원들이 덤벼들었다.
“죽여라!”
강자기에 손에 든 자동소총으로 천장을 갈기자, 맨 앞에 선 적들이 차례로 쓰러졌다.
“고무탄으로 바꿔!”
헌터들은 탄창을 교체한 후 거리낌 없이 총을 쐈다. 뉴 월드와 플레잉은 쏟아지는 고무탄에 맞아 순식간에 전멸했다.
“다들 고무탄 얼마나 남았지?”
강자기의 말에 다들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난 지금 장전된 것밖에 없어.”
“나도.”
“나도!”
다들 마지막 탄창만 남은 상태.
헌터들은 ‘직원용’이라 쓰인 철문 앞에 섰다.
그 문은 일반적인 것과 다르게 금고의 해치와 같은 형태였다.
강자기는 철문을 잡더니, 아주 쉽게 열었다.
“역시 열려 있군.”
그 안에는 지하까지 이어진 계단이 있었다.
헌터들은 강자기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 몇 층까지 있는 거예요?”
아란은 호기심에 계단 이곳저곳을 쳐다봤다.
지하로 이어진 계단은 거대한 돌을 깎아서 만든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돌 표면에는 LED를 박아서 지시등처럼 쓰고 있었다.
“층수는 하나야. 거기까지 내려가는데 좀 걸리겠지만…….”
체감 상 지하 5층? 헌터들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 문 앞에 섰다.
지하 금고로 통하는 문도 1층의 철문과 같은 것이었다.
“역시 열려 있군.”
헌터들은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앞에 뻥 뚫린 통로를 걸었다.
또박또박 울리는 발자국 소리는 아무리 조심하려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통로 끝에 다다른 헌터들의 눈에 거대한 지하 금고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