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206화 (206/250)

206.

206.

“더, 더, 더……더! 차갑게!”

쇳물이 순식간에 얼어 버리면서 파인 곳이 메워졌다.

눈 깜짝할 새에 지형이 바뀐 것이었다.

“헤헤헤!”

아란은 유래 없는 힘에 취한 듯 웃었다.

그녀의 눈은 먹이를 노리는 매의 그것처럼 미즈 드래곤을 노렸다.

“하압!”

미즈 드래곤은 양손을 모아 아란을 가리켰다. 그러나 아란은 더 강력해진 중력을 거스르며 폴짝 뛰어 올랐다.

“더, 더, 더……!”

아란의 다리에 내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H력이 실렸다.

그녀의 다리 주변은 아지랑이를 뛰어넘어 공간이 일그러지듯이 뒤틀렸다.

“더! 빠르게!”

공중에 떠 있던 아란의 모습이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환영처럼 스르르 사라졌고, 그 다음 곧바로 미즈 드래곤에게서 충격파가 울렸다.

더 빠를수록, 더 무거워진다.

음속을 초월한 발차기에 자비는 없었다.

“으아아악!”

미즈 드래곤의 몸은 채인 힘을 버티지 못하고, 공중에서 뒤틀리며 관절이 꺾였다. 그리고 무력하게 금괴더미에 부딪치며 파묻혔다.

그 한 방으로 모든 게 끝났다.

***

네오한국은행은 탈환.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에서도 헌터들과 탱크들 사이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청와대로 간 루호와 로얄가드맨은 상당한 희생을 치루고 있었다.

일단 로얄가드맨 자체가 냉병기 위주로 싸우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물러서지 마!”

로얄가드맨의 팀장이자, 로얄인 이준은 맨 앞에 서서 철퇴로 탱크를 내려쳤다.

탱크는 불꽃을 튀기며 폭발을 일으켰다.

“대형을 유지해!”

이준이 뒤를 돌아보며 팀원들에게 소리치는 틈을 타 탱크들이 일제히 그에게 사격을 가했다.

포탄들의 집중포화.

이준이 서 있던 자리는 연이은 폭발과 충격에 산산조각이 났다.

“팀장님!”

헌터들은 당황해서 이준을 불렀다.

“왜, 인마?”

이준은 연기를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포탄에 의해 그가 입고 있던 갑옷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의 육체엔 흠집조차 없었다.

광채가 나는 알몸. 그야말로 위풍당당한 로얄의 모습이었다.

“가즈아!”

로얄가드맨은 방패와 갑옷으로 몸을 지키며 열을 맞춰 섰다.

탱크의 포탄이 그들을 때렸지만, 단단히 엮인 쇠사슬처럼 서로를 지탱해 줌으로써 계속해서 전진할 수 있었다.

“조루호! 지금이다!”

이준의 외침에 루호는 홀로 탱크들 사이에 뛰어들어 갑옷사슴으로 변했다. 그리고 마음껏 날뛰며 탱크들을 유린했다.

“돌격!”

갑옷사슴이 탱크들 가운데서 날뛰는 틈을 타, 로얄가드맨은 탱크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탱크들은 그들의 강력한 완력에 점차 뒤로 밀리며 자기들끼리 충돌하고, 엎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마치 불도저로 밀어 버리는 것 같았다.

“으아아악!”

피와 강철의 싸움.

기합과 폭발이 연달아 터지면서 좁은 도로를 가득 채웠다.

로얄가드맨 백여 명은 기어코 탱크들을 구석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무려 완력만으로 그것들을 밀어서 찌그러뜨렸다.

“폭발한다!”

탱크들이 연달아 폭발하고 청와대 영역을 둘러싼 담장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겼다!”

로얄가드맨은 탱크들이 무력화된 것을 확인한 직후, 죄다 바닥에 드러누웠다.

다들 땀으로 범벅이 돼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몇몇 치료술사들은 서둘러 부상자를 치료했다.

그때 청와대 정문이 열리면서 거기서 플레잉 단원과 뉴 월드 신도가 쏟아져 나왔다.

“돌격!”

다들 손에 쇠파이프, 식칼, 야구방망이 등을 들고 있었다.

“하아. 끝이 없네.”

이준과 로얄가드맨은 지친 몸을 일으키며 숨을 헐떡였다.

“지금 청와대에 있는 폭탄을 작동시켰다! 너희의 어리석음 때문에 이교도 대통령이 죽는 것이다!”

뉴 월드 쪽의 충격 발언.

“조루호!”

이준은 서둘러 루호를 불러서 귓속말로 속삭였다.

“우리가 싸우는 동안 혼자 안으로 들어가! 지금 나온 인원수로 보면 본관엔 몇 명 없을 거야.”

“알겠습니다.”

“어이, 제갈신!”

“넵!”

이준은 제갈신을 불러 신신당부했다.

“조루호를 도와줘. 둘이서 어떻게든 해내라고!”

“폭발까지 얼마나 남았죠?”

루호의 질문에 제갈신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건 몰라. 하지만 적어도 놈들이 청와대에서 철수할 시간에 맞게 설정해 놨을 거야.”

“서두르죠.”

두 사람은 로얄가드맨이 싸우는 사이, 무너진 담장을 통해 청와대 본관으로 들어갔다.

“후우.”

두 사람은 최대한 몸을 낮추고, 내부를 살폈다.

이준의 말마따나 거의 모든 인원이 나갔는지 건물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어디에 있을까요?”

루호의 물음에 제갈신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2층에 있는 통신실이 아닐까? 폭탄을 원격으로 제어하려면 거기가 딱이지.”

“그렇군요.”

두 사람은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 통신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통신실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안에 역시 폭탄이 있었다. 다만, 불길할 정도로 방 안이 텅 비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루호는 속으로 내게 물었다.

‘대통령은 관저에 있지 않을까?’

“일단 내가 폭탄을 해체하고 있을게. 넌 먼저 가 봐.”

제갈신은 주머니에서 작은 공구 가방을 꺼냈다.

“그럼 부탁드려요.”

루호는 홀로 본관을 빠져나와 관저로 향했다.

우리의 예상대로 한옥 형태의 관저 앞에는 소수의 인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하암, 요란하게 싸우네.”

지키고 있던 조직원들은 바로 앞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러게 말이야. 어차피 우리가 이길 텐데…….”

“이번 작전만 성공하면, 은퇴해서 원정 도박 갈래?”

“하하하.”

루호는 조직원들 뒤로 지나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누, 누구냐?”

조직원들은 무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루호가 휘두른 유성추에 턱과 관자놀이를 얻어맞고 픽 쓰러졌다.

“윽!”

“윽!”

“윽!”

루호는 관저 안을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조직원들을 제압했다. 그러다가 침실에서 그토록 찾고 있던 대통령을 발견했다.

“오랜만이군, 조루호였나?”

미스터 블루.

그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루호를 바라봤다. 조금도 경계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순순히 대통령을 풀어 주시면,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루호는 유성추를 돌리며 위협했다.

미스터 블루는 벌떡 일어서며 손을 풀었다. 그리고 루호의 말을 맞받아쳤다.

“유혈 사태 없이 해결되지 않을 것 같군요. 조루호 씨.”

두 사람은 H력을 뿜어내며 기싸움을 벌였다.

무시무시하게 뿜어지는 아지랑이에 포로로 잡힌 대통령이 겁에 질리다 못해 기절하고 말았다.

“하앗!”

두 사람은 H력을 폭발적으로 뿜어내며 서로에게 덤벼들었다.

쉴 새 없이 오가는 공격에 한옥으로 지어진 관저는 산산이 박살 났다.

나무와 벽돌, 기와가 사방으로 휘날리며 건물이 무너졌다.

루호는 유성추로 대통령을 휘감아 무너지는 관저에서 빠져나왔다.

“대통령을 지키면서 싸울 생각입니까?”

미스터 블루는 무너지는 관저의 기와지붕을 뚫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세 사람이 밖으로 나오자, 관저는 완전히 풀썩 주저앉았다.

“유서 깊은 건물을 끝내다니……. 이거야말로 테러 아닙니까?”

루호는 대통령을 유성추와 함께 잔디밭에 내려놓고는 제자리 뛰기를 했다.

“테러리스트한테 테러 소리를 들이니, 웃긴데요?”

두 사람은 웃는 얼굴과 존댓말로 서로를 마주했다. 그야말로 웃는 얼굴에 웃는 얼굴로 침 뱉기가 따로 없었다.

“갑니다!”

탁 트인 공간.

루호는 냅다 갑옷사슴으로 변해 미스터 블루에게 돌진했다.

“마음껏 날뛰는 겁니까?”

미스터 블루는 사슴의 뿔에 채였다. 그러나 그는 전신이 뿔에 걸린 와중에도 여유를 유지했다.

“하압!”

미스터 블루가 조금 힘을 주자, 사슴의 뿔이 빠드득 소리와 함께 구부러졌다.

“상당히 강해졌군요. 몇 달 전, 같은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습니다.”

미스터 블루는 뿔을 완전히 꺾어 버리고 펄쩍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갑옷사슴의 앞다리를 잡고 힘껏 들어 올렸다.

“하앗!”

거대한 사슴의 몸체가 수직으로 들어지더니, 그대로 뒤집어졌다.

육중한 충격이 지면을 강타했고, 먼지가 풀풀 나면서 나무와 풀들이 휘날렸다.

“크윽!”

루호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이번엔 H력으로 만든 갑옷만 착용했다. 그리고 건틀릿에 달린 뿔로 미스터 블루를 찔렀다.

“윽!”

미스터 블루는 복부를 찔려서 한 번 더 들렸다.

“하아아앗!”

루호는 미스터 블루를 지면에 댄 채로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미스터 블루의 신체가 지면을 쓸면서 아래로 깊게 파고들었다.

“크으으윽!”

미스터 블루의 입에서도 신음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이내 그는 양팔과 다리를 쫙 펴면서 루호의 전진 속도를 떨어뜨렸다.

루호의 질주가 멈추고, 미스터 블루는 몸통을 용수철처럼 배배 꼬았다. 그리고 다시 몸통을 펴면서 그 탄력으로 루호를 번쩍 집어던졌다.

“하아아앗!”

미스터 블루는 루호를 공중으로 띄운 후 이번에는 다리를 배배 꼰 다음 쫙 풀면서 뛰어올랐다.

솟구치듯 뜬 두 사람은 공중에서도 자세를 고쳐서더니, 난타전을 벌였다.

“크윽!”

미스터 블루의 주먹에 루호의 건틀릿이 부서졌다.

루호는 맨손이 되었음에도 굴하지 않고 주먹을 뻗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주먹이 충돌하면서 굉음이 하늘을 가득 울렸다.

“크윽!”

루호의 주먹은 미스터 블루의 주먹에 맞아 피부가 갈라지며 피가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의 난타전은 계속됐다.

루호는 이를 악물면서 양손에 깍지를 껴서 미스터 블루의 머리를 내려쳤다.

미스터 블루가 추락하고, 루호도 지면에 착지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루호는 쉴 새 없이 공격을 이어 갔다.

미스터 블루가 일어서기 전, 루호의 발이 그의 신체를 짓밟았다.

“으아아아!”

미스터 블루는 지면 아래로 파고들면서 땅속으로 도망쳤다가 빙 돌아서 다시 튀어나왔다.

“후우.”

미스터 블루는 깊게 숨을 들이쉬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웁!”

그가 전신에 힘을 주자, 신체가 빵빵하게 부풀면서 체형이 거대해졌다.

“하아아앗!”

미스터 블루는 한 걸음에 루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엄청 빠른데?’

덩치가 커지면, 느려져야 하지 않나?

루호가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미스터 블루의 거대한 손아귀가 루호를 통째로 움켜쥐었다.

“으아아악!”

루호의 갑옷은 산산이 깨지며 연기처럼 사라졌다.

미스터 블루는 루호를 힘껏 지면에 휘둘렀다.

분명 루호를 쥔 자신의 손에도 피해가 있을 것인데도 그는 사정없이 루호를 내리쳤다.

“크윽!”

루호는 지면에 처박히면서 계속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때에 비해 루호의 정신은 유달리 맑았다.

‘괜찮아? 기절하면 안 돼! 일단 버티는 거야. 버티다 보면 기회가 올 거야!’

난 걱정스런 마음에 계속 루호에게 말을 걸었다.

‘알고 있어요.’

루호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전신에 힘을 주는 데 집중했다.

하나의 막대기처럼 몸을 딱딱하게 굳힌 루호는 계속된 충격에도 충분히 잘 버텼다.

“헉, 헉, 헉…….”

미스터 블루는 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계속 공격을 한 그는 지친 상태가 됐고, 공격을 당한 루호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이젠 제 차례군요.”

“뭐?”

루호는 능력발현을 해제하고, 대신 능력발동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하앗!”

루호가 내지른 주먹이 미스터 블루의 얼굴에 꽂혔다.

미스터 블루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한 번 더 땅에 처박혔다. 이번엔 아까보다 훨씬 더 깊게 파고 들어가 꿈틀거리기까지 했다.

“멀쩡한 거 다 알아요! 엄살 그만 피우시죠?”

루호의 말에 미스터 블루는 땅을 파고 나와 벌떡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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