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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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라!”
김용이 주먹을 뻗는 순간, 나도 움직였다.
난 그의 주먹을 스치듯 피하면서 내 팔에 만들어진 칼날로 그의 복부를 벴다.
“커어어억!”
칼날이 김용의 비늘을 베고, 그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눈알을 부라렸다.
“김……상……팔……!”
김용은 입에서 침까지 질질 흘리며 원통하게 날 쳐다봤다.
“감히……!”
난 김용에게 속삭였다.
“감히, 저 따위가 당신을 이겼네요. 참 죄송하게 됐습니다. 양해 부탁드려요.”
김용의 두 눈에 붉게 핏줄이 솟았다.
“크아아아!”
김용은 입을 쩍 벌려서 내 머리를 깨물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점점 인간의 형태로 돌아오고 있었다.
“크으으으…….”
난 내 손을 김용에게 물리며 그를 바닥에 눕혔다. 내 손을 깨문 그의 악력은 별 볼일 없을 정도로 약했다.
“하아.”
난 김용 옆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내쉬었다.
―김상팔.
지부 외벽에 달린 스피커에서 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당장 옥상으로 올라와라. 폭탄을 해제하고 싶겠지?
젠장, 쉬지도 못하냐?
난 한숨을 푹 쉬면서 몸을 일으켰다.
“팀장님…….”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노건이 부상자들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노건 씨, 사람들 좀 부탁해요.”
“네.”
난 비틀거리며 반쯤 무너진 1층 로비로 들어갔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무사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후우.”
난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으로 가는 동안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위에 달린 화면을 보며 층수가 점점 올라가는 것을 셌다.
숫자가 올라갈수록 내 몸이 그만큼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마지막 층에 도착하고, 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고요한 층을 걸어 옥상으로 이어진 계단을 찾았다.
“와!”
계단 바로 옆.
설치된 폭탄이 놓여 있었다.
난 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옥상으로 올라갔다.
“왔나?”
탁 트인 옥상에는 날 기다리고 있는 센이 있었다. 그는 TV화면에서 봤던 흰색 로브 차림에 가면을 쓰고 있었다.
“드디어 다시 만났네요.”
난 센을 노려봤다.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 세상 돌아가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요?”
내 질문에 센은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그의 얼굴은 내가 알고 있던 못난이 중년이 아니라 깔끔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어딘가 묘하게 루호를 닮았다.
“별일 아니잖아? 지금처럼 말이야.”
센은 로브 속에서 권총 두 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를 나에게 던졌다.
“이건……?”
권총이라기엔 투박할 정도로 단순한 형태. 총구가 짧은 게 인상적이었다.
“VP70이라 불리는 물건이지.”
센은 이번엔 로브 속에서 리모컨을 꺼냈다. 그리고 거기에 달린 빨간 버튼을 눌렀다.
난 반사적으로 센에게 총을 겨눴다.
“지금 뭐한 거죠?”
“이 건물에 설치되어 있던 폭탄들의 기폭 스위치를 눌렀어. 앞으로 30분 뒤면 다 폭발할 거야.”
뭐라고?
센은 리모컨을 옥상 가장자리로 던졌다. 그리고 총을 들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날 쐈다.
“으악!”
총알이 내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난 왼쪽으로 몸을 꺾으며 고통을 참았다.
“와라. 여기엔 우리뿐이야.”
센, 혹은 한손.
내가 한돈 아저씨라 불렀던 그는 차가운 눈빛을 지었다.
“왜 이렇게까지 한 거죠?”
난 자세를 고치며 총을 들었다.
“하고 싶으니까…….”
센은 단정 지으면서 물었다.
“넌 왜 지금 여기에 서 있지? 돈과 명성을 위해서? 아님, 그 잘난 꿈을 위해서?”
“저도, 그냥 하고 싶으니까요.”
우리는 서로에게 총구를 향했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길 엄두는 내지 못했다.
“모든 게 처음부터 계획된 건가요? 처음 제게 알약을 내밀 때부터요?”
난 뭔가 대단한 대답을 원한 게 아니었다. 그저 이 상황, 아저씨의 진심을 수긍할 뭔가가 필요했다.
“넌 그저 실험용 쥐였을 뿐이야. 쥐새끼를 고르는 데 거창한 이유는 필요 없지. 덕분에 약이 완성될 수 있었어.”
때마침 먹구름이 하늘에 가득 드리우며 우중충해졌다. 그리고 이내 천둥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면서 빠르게 우리 몸을 적셨다. 그리고 습해진 공기가 폐에 스며들며 몸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겨울비라 그런지 젖는 건 둘째 치고, 그 차가움이 뼛속까지 얼리는 것 같았다.
“시간이 가고 있어. 가만히 넋을 놓고 있다간 폭발에 휩쓸릴 거야.”
“으아아아!”
난 센의 말에 자극을 받아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가슴은 흥분해서 끓어올라도 머리는 냉정했다.
나와 센, 둘 다 자세를 낮추며 상대방의 총구 궤도를 피해 몸을 옆으로 날렸다.
우리는 서로에게 총격을 주고받으며 비로 젖은 바닥에 미끄러졌다.
“끌끌끌!”
센은 익숙한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바닥을 박차며 내게로 미끄러져 돌진했다.
난 높이 뛰어서 센을 넘었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그의 등에 총을 쐈다.
“으아아악!”
세 발. 총알이 무정하게 센의 등을 관통했다.
“끌끌끌!”
센은 익숙한 소리로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면에 착지한 나에게 총을 쏘면서 뛰어왔다.
“하압!”
나도 뒤를 돌아 센을 주시하면서 계속 총을 쐈다. 센의 총알이 내 다리와 옆구리를 스쳐 갔다.
“크윽!”
우리는 총을 쏘며, 서로를 향해 다가가다가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멈췄다. 그리고 한 손으로 총을 쥔 채 다른 손으로 상대방의 팔을 밀쳤다.
총과 총이 엇갈리고, 팔과 팔이 교차했다. 우리는 서로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기 위해 움직였다.
“김상팔!”
“아저씨!”
총알이 헛나가도 그것을 반동 삼아 팔을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우리는 총을 검처럼 맞대며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탄창에 채워진 총알은 정해져 있었다.
철컥, 철컥.
우리는 동시에 총알이 떨어졌다.
“받아라!”
센은 버럭 소리치며, 총을 버리고 주먹을 날렸다.
비에 젖은 내 뺨에 센의 주먹이 달라붙으며 더 강하게 내 두개골을 흔들었다.
“하아아앗!”
나도 권총을 놓고 무릎을 높게 올려 센의 턱을 후려쳤다.
“크윽!”
우리는 동시에 넘어졌다. 그러나 난 금방 다시 몸을 일으켜서 센을 덮쳤다.
“젠장!”
난 얼굴을 찡그리며 울먹였다. 그리고 주먹에 서글픔을 담아 사정없이 센을 때렸다.
센은 입술이 터지고, 뺨이 붓고, 코가 부러지고, 눈이 붉어졌다. 그러나 자신이 다칠수록 그는 더욱 크게 웃었다.
“끌끌끌!”
센은 내 주먹에 맞으면서 씩 웃었다. 그의 얼굴은 아무리 맞아도 금세 회복됐다.
“겨우 그게 다냐?”
센은 무릎으로 내 사타구니를 올려 찍었다.
“으악!”
난 다리를 오므리며 옆으로 굴렀다. 그 사이 센은 몸을 일으켜 내 앞에 섰다. 그리고 영문 모를 말을 지껄였다.
“오늘 백 명을 살려도, 내일 천 명이 죽어! 겉으론 날 존경한다고 말해도, 속으론 날 비웃지. 전쟁터를 누비면서 깨달은 진리야.”
센은 날 걷어찼다.
“우리를 정의하는 건 속에 있는 게 아니야. 드러나 있는 것들이지! 그게 전부야, 김상팔!”
센은 발뒤꿈치에 힘을 실어서 내 가슴을 밟았다.
“억!”
순간, 숨이 막혔다. 아무래도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100년을 살면서 내 인내심은 바닥이 났어. 전쟁은 멈추고 않고, 인간은 그 속에서 미쳐 버렸어. 이젠 나도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없게 됐거든!”
센은 지쳤는지 구타를 멈췄다. 그리고 거친 숨을 내쉬며 몸을 구부렸다.
“하앗!”
난 마지막 H력을 짜내서 센에게 광탄을 쐈다. 기습적으로 쏜 거라 위력은 별로였다.
내가 쏜 광탄은 빠르게 센의 안면으로 날아가 폭파했다.
환한 빛과 함께 폭발의 충격이 센을 밀쳤다.
“크아아악!”
센은 손으로 눈을 비비며 고통스럽게 발버둥 쳤다.
난 가슴을 누르며 조심스레 일어섰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센을 발로 찼다.
“끌끌……끌……!”
센은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손으로 내 발을 잡아 휙 당겼다.
난 몸이 뒤로 숙여짐과 동시에 상체를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손으로 땅을 짚으며 센의 손에서 발을 빼냈다.
“하압!”
우리는 거의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살짝 상체를 숙인 채 서로를 노려봤다.
그때 건물 전체가 흔들리면서 우리가 서 있던 옥상이 기울어졌다.
시간 경과.
폭발의 위력으로 건물이 비틀어졌다.
“으아아악!”
우리는 서로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남은 시간이 없기에 방어는 생략. 소모전으로 들어간 치킨 게임이었다.
난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센의 팔과 다리를 집중 공격했다.
센은 자체 재생 능력으로 꿋꿋이 버티면서 무식하게 공격해 왔지만, 전투 기술의 숙련도는 나보다 한참 모자랐다.
추운 겨울, 우리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전신의 근육이 움직이는 덕에 몸에서 하얀 김이 났다.
“크아아악!”
체력 소모 때문인지 센의 재생은 점점 무뎌졌다.
내가 알고 있던 아저씨의 재생에 비해 너무 허약했다.
“H8이란 사람이 벌써 지친 건가요?”
내 말에 센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어린놈의 자식이……!”
내 주먹이 센의 명치에 꽂히고, 그는 입에서 피를 토했다.
센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몸을 웅크렸다.
“끌끌끌, 드디어 내 능력이 억제되기 시작했어.”
“뭐라고요?”
난 센을 경계하면서 조금씩 다가갔다.
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 끝이야.”
센은 고개를 들어 날 쳐다봤다. 그의 눈동자는 오래된 동태 눈알처럼 탁한 흰자위만 있었다.
“그 알약으로……내 능력은 변질 됐어……이젠 더 이상 살아나지 않을 거야……크윽…….”
센은 고개를 바닥에 처박으며 무너졌다.
“아저씨!”
난 센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하려 했다.
그때 옥상 전체가 폭삭 주저앉았다.
나와 센은 어쩔 틈도 없이 붕괴에 휘말려 벌레처럼 떨어졌다.
“악은……반드시……무너진다.”
그것이 아저씨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
“으으으윽.”
난 병실에 누워 흰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곳은 태한이 소개시켜 준 개인 병원의 1인실. 덕분에 조용히 쉴 수 있었다.
[한국지부 전격 해체!]
[김익조 전 지부장 구속 수사!]
[끊임없이 발견되는 비리 증거!]
[뉴 월드 교주, 시체로 발견!]
[플레잉 한국조직, 완전 붕괴!]
[도주한 주모자들은 어디에?]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기사들. 며칠째 이 이야기로 소란스럽다.
한국지부도, 플레잉도, 뉴 월드도, 그리고 아저씨와 한백년도 자취를 감췄다.
완전히 허허벌판이 된 사냥업계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똑똑똑.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디마였다. 그는 양복 차림으로 손에는 큰 여행 가방과 웬 인형 옷을 들고 있었다.
“상팔 씨, 몸은 좀 어떠세요?”
“그럭저럭 괜찮아요.”
디마는 활짝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상냥하게 악수를 나눴다.
“전 이제 영국으로 돌아가야 해서요.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영국이요? 러시아가 아니라요?”
디마는 짐을 내려놓고, 품속에서 여권을 꺼내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