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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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헌터 협회 본부 감찰관 김대팔’이라고 쓰여 있었다.
“도대체 정확한 국적이 뭐예요?”
러시아인도 아니고, 이름은 한국인이고, 직장은 영국?
어쩌면 반전이랍시고, 아랍인일지 모른다.
“전 국적이 여러 개예요. 헌터 협회 본부에서 힘을 좀 써줬거든요.”
“김대팔이 본명인 건 맞죠?”
“후후후.”
디마, 혹은 김대팔은 검지를 세워서 입술에 댔다.
“그건 비밀이에요.”
그는 가져온 인형 옷을 내 침대에 내려놨다. 그것은 그가 어금니의 헌터로 활동할 때 입었던 공룡 인형이었다.
“이건 선물이에요. 비행기 화물로 싣기엔 좀…….”
“지금 선물이라고 하면서 저한테 버리시는 거예요?”
이 인간은 끝까지 날 골탕 먹이네.
디마는 윙크를 하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상팔 씨의 랭킹 1위를 기대하고 있을게요.”
디마는 병실을 나갔다.
난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섭섭한 기분으로 인형 옷을 바라봤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야지.”
티라노 대가리.
난 인형 옷을 병실 한쪽에 잘 놔뒀다.
내가 치료를 받는 동안 세상은 빠르게 변해 갔다.
한국지부는 협회 본부에서 직접 해체를 선언한 뒤, 다시 설립하기로 했다.
새로 창립되는 신생 한국지부의 지부장으로는 이서현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플레잉은 한백년과 아저씨를 제외한 대부분의 조직원이 검거됐고, 뉴 월드는 교주가 죽은 뒤 자기들끼리 돈 갖고 싸우더니 알아서 사라졌다.
플레잉에 협력한 어금니 헌터들과 김용은 구속 처리됐으나, 재판 과정에서 모두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참고로 이들을 변호한 사람은 바로 오이해였다.
“하여간 돈이라면…….”
난 겨울이 지나고, 한창 봄이 왔을 때 퇴원할 수 있었다.
평소라면 다들 불러서 시끌벅적하게 축하파티라도 했겠지만, 이번엔 별로 내키지 않았다.
“후우.”
난 손에 든 짐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갔다.
“저기 있다! 김상팔이다!”
응?
집 앞에 웬 군대 규모의 사람들이 있었다. 손에 든 카메라와 갖가지 녹음 장비로 보건대, 누가 봐도 취재진이었다.
“숙박업소를 갈 걸 그랬나?”
하여간 이 나라엔 사생활이 없다.
취재진은 날 둘러싸고 닥치는 대로 찍었다.
“김상팔 씨, 한 말씀해 주시죠!”
“아니요, 아무 말도 안 할 겁니다. 오늘은 그냥 쉬고 싶어요. 입장 표명은 나중에 하겠습니다.”
난 그들에게 눈길도 안 준 채 저택의 뒷문을 열었다.
“김상팔 씨! 신생 한국지부에서 새로운 랭킹 1위로 김상팔 씨를 지목할 거라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내가……?
난 ‘1등’이란 말에 멈춰 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 취재진을 쳐다봤다.
“대부분의 랭킹은 유지될 테지만, 김용 씨는 플레잉에게 협력한 대가로 협회에서 추방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새로운 1위로 김상팔 씨, 아니면 2위인 조루호 씨가 거론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요?”
난 나도 모르게 취재진과 말을 주고받았다.
“네, 네. 그래서 김상팔 씨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꼭 알고 싶습니다.”
“어……. 그거 참…….”
취재진은 환한 얼굴로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꿈만 같네요.”
“그래요?”
셔터와 수십, 수백 번 터지며 눈을 부시게 했다.
난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저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김상팔 씨! 한 마디만 더……!”
취재진의 간절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꿈만 같은 기분을 품은 채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조금이나마 찝찝한 기분이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며칠 후, 헌터 협회 본부의 주도 아래 새로운 한국지부가 출범했다.
정부는 능력자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대신, 그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신생 지부의 협조를 받아 능력자로 이루어진 정부 기관을 출범하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
기자들이 말했듯이 새로운 랭킹 100위가 발표됐는데……!
“와!”
난 랭킹표가 뜬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1위 김상팔]
“이서현 만세!”
난 모니터를 번쩍 들어서 흔들었다. 덕분에 모니터와 PC 본체가 이어진 선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며 연결이 끊어졌다.
[김상팔, 최단 랭킹1위 당설!]
[김상팔, 그는 대체 누구?]
[김상팔, 그의 첫 랭킹방어전은?]
[김상팔과 헌한발에 대한 고찰.]
우리는 완전히 스타가 되어 있었다. 여러 매체에서 끊임없이 우리에 대해 조사했고, 매일매일 취재 요구가 빗발쳤다.
관심이 과도해진 만큼 난 집 안에 틀어박혀서 지냈다.
랭킹 1위가 된 것도 좋고, 유명해진 것도 좋고, 포상금을 받은 것도 좋고, 태한에게 맡겼던 돈도 받아서 좋은데…….
갑자기 무기력해졌다.
“하아아암.”
난 콘솔 게임기를 TV에 연결해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어휴, 재미없어.”
그냥 어디서 많이 보던 게임들의 복제품일 뿐이었다.
“상상력이 결여됐나?”
띠리리링. 전화벨이 울렸다.
휴대전화기 액정 화면에는 ‘이서현’이라고 쓰여 있었다.
난 게임 컨트롤러를 놓고,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김상팔 씨? 오랜만이에요.
“그렇긴 하죠. 무슨 일이세요?”
―김상팔 씨께 드릴 부탁이 있어요.
또?
이상하게 이 사람하고 엮이면 개고생하게 되던데…….
“할게요. 그런데 저 혼자 필요하신 일인가요?”
―네. 그럼 내일 아침, 지부 건물로 와 주세요.
새로운 한국지부 건물. 그곳은 예전에 있던 허허벌판이 아닌 네오강화도의 헌팅 페스티벌 건물이었다.
“알겠습니다.”
난 흥미 위주로 이서현의 부탁을 승낙했다.
다음날. 이서현을 만난 난 그녀로부터 전혀 뜻밖의 부탁을 듣게 됐다.
“예? 저희 팀을 이끌고 외국 원정을 가라고요?”
외국?
한돈 아저씨가 생각났다.
“네. 헌터 협회 본부에서 직접 요청해 온 거예요. 그래서 저희도 가장 믿음직한 팀을 보내려고요.”
하하, 현직 지부장이 가장 신뢰하는 팀이 우리라는 건가. 참 좋은 일이긴 한데…….
“액수는요?”
이서현은 피식 웃으며 가볍게 말했다.
“삼백 억이요.”
나쁘지 않네.
“목표물은요?”
외국 원정 사냥이면, 상당한 거물이겠지?
이서현은 이번에도 대놓고 말해 줬다. 주변에 있는 비서나 기타 수행원의 눈치는 조금도 살피지 않았다.
“목표물은 10급의…….”
그녀의 말에 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일단 의뢰를 받아들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후우.”
팀원들에게 문자를 보낸 즉시, 답신이 왔다. 다들 새로운 차원의 의뢰에 흥분한 모양이었다.
“어디 보자. 이번엔 외국 원정이니까 소수정예로…….”
10급. 하이브리드가 변신한 탱크와 싸워 봤지만, 녀석은 해당 등급에서 규격 외로 쳐야 할 특성을 지니고 있다.
사실 하이브리드도 활용도만 본다면, 작은 국가 하나는 가볍게 말아먹을 수준의 괴물이긴 했다.
다만, 활용한 쪽에서 그럴 마음이 없었을 뿐이다.
이번 원정은 대단히 위험하기에 우리 팀원 중에서도 놔두고 갈 인원을 정해야 했다.
“일단…….”
난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껏 명단을 작성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만전을 기하는 게 중요했다.
***
원정 당일.
인천 국제공항에 내가 부른 인원들이 집결했다.
다들 해외란 말에 짐 가방을 한가득 싸서 왔다.
“우리 놀러 가는 거 아니에요. 장비는 다 현지에서 조달할 건데, 왜 이렇게 짐을 쌌어요?”
난 아란을 보며 물었다. 그녀는 올해로 합법적인 성년. 이제 자유로이 활동하기에 문제가 없는 나이였다.
더구나 플레잉 사태 때의 활약으로 인해 그녀의 랭킹은 아주 큰 폭으로 상승해 있었다.
한백년에게 결정타를 먹인 부분이 크게 평가된 모양이다.
현재 우리 팀의 랭킹은 이렇다.
[랭킹 1위 김상팔]
[랭킹 2위 조루호]
[랭킹 51위 주아란]
[랭킹 60위 변해라]
[랭킹 81위 노건]
[랭킹 82위 호규]
[랭킹 83위 유정]
[랭킹 84위 이이]
[랭킹 89위 이육]
[랭킹 92위 이팔]
[랭킹 93위 이구]
[랭킹 94위 이십]
[랭킹 95위 이칠]
[랭킹 96위 이삼]
[랭킹 97위 이오]
[랭킹 98위 이사]
“저희 정말로 사막에 가는 거예요?”
아란은 가방에서 선크림을 꺼냈다.
“네, 사막으로 가요. 거기 가면 피부를 가리는 것도 중요해요. 긴팔 가져왔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 중 하나가 사막에서 짧은 소매 옷을 입는 것이다.
사막은 습기가 없기 때문에 햇볕만 차단해도 꽤 쾌적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예? 긴팔 옷은 안 가져왔는데요?”
이런……!
우리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초조선을 제외한 우리팀 17명. 이게 이번 사냥 멤버의 전부다.
더 부르고 싶지만, 비행기 정원 때문에 힘들었다.
게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협회 본부에서 보내 준 지원군과 합류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12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네오두바이에 도착했다.
이곳은 괴물들의 출현으로 지도에서 사라진 두바이의 옆 사막에 세워진 도시였다.
예전, 진짜 두바이로 불리던 곳은 해변을 따라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장벽이 쳐졌다.
그곳이 바로 우리의 목표인 10급 사냥 구역이었다.
비행기 창문으로 저녁노을이 보였다.
“김상팔 씨입니까?”
공항을 나오자, 검은 양복 차림의 남성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신분증을 내밀었다.
“제 이름은 토마스라고 합니다. 그냥 톰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콜로넬, 토마스 리빙스턴.
대령이라기엔 상당히 젊은데?
헌터 협회 마크가 찍힌 걸로 봐선 이들이 바로 오늘 우리와 만나기로 한 특수부대 사람들이 분명했다.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이 꽤나 떠들썩했다죠?”
유창한 한국어. 한국어를 잘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왠지 수상쩍게 느껴졌다.
우리는 짧은 악수를 나눴다.
“대령님이야말로 상당한 실력자신 것 같은데요?”
“뭐, 그렇죠. 평화로운 한국과 달리 이곳 네오두바이의 사냥 구역은 아주 불완전합니다. 언제라도 괴물들이 장벽을 넘으려는 시도를 할 수 있거든요.”
우리가 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톰과 그 부하들을 따라 미리 준비된 수송 차량에 올랐다.
무려 군용 장갑차였다.
“와!”
다들 뭔가 관광 온 기분으로 수송 차량에 올라탔다.
“작전은 내일 새벽에 시작될 겁니다. 그때까진 저희 주둔지에서 편히 계시면 됩니다.”
톰은 주의 사항과 기밀 유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물론 카메라나, 녹음 장치 등은 압수됩니다.”
톰은 묘하게 날 의식하며 말했다.
우리는 사냥 구역 바로 옆에 세워진 특수부대 주둔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기서 막사 하나를 배정받은 뒤 가볍게 식사를 했다.
“웰컴! 반가워요!”
특수부대원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군인들은 전원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들은 톰과 달리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우리는, 같은 편이, 입니다. 서로, 열심히, 노력, 하세요. 만나서, 반갑냐? 하하하!”
반면에 아란은 열심히 영어를 짜내서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웨어 아유 프롬? 아임 프롬 코리아! 하우 두 유 두? 아임 파인 땡큐! 왓 이즈 유어 네임? 마임 네임 이즈 아란 주!”
아란의 영어를 듣고, 부대원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톰은 조용히 나에게 속삭였다.
“저 문장들은 주입식으로 교육 받은 겁니까? 왜 혼자 질문하고, 혼자 답하는 거죠?”
굳이 영어권이 아니더라도 부자연스러웠다.
난 어색하며 웃으며 아란을 외면했다.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 새벽 작전 브리핑과 함께 작전에 들어가겠습니다.”
톰은 막사 하나를 통째로 우리에게 빌려 주었다. 간이 건물로 된 숙소였지만, 상당히 깔끔하고 쾌적했다.
“그런데 저희가 상대할 괴물은 뭐예요?”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루호가 나에게 물어 왔다. 녀석의 질문에 모두가 날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