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218화 (218/250)

218.

218.

***

난 다시 티라노 공룡 옷을 입었다.

요즘 들어 안 건데, 이 인형 옷은 보기보다 꽤 입고 다니기 쾌적하다.

협회 본부의 기술력으로 만든 물건인 걸까?

“다들 준비됐죠?”

난 팀원들을 보며 물었다.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결의를 굳혔다. 한 명, 한 명 고된 훈련을 마치고 이제 그것을 펼쳐 보일 일만 남았다.

“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네오강화도 투기장의 대기실. 조금 있으면 랭킹전이 시작될 것이다.

이번 랭킹전의 규칙에 대한 설명은 이곳에 막 도착하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다.

5판 3선승제.

희한하게도 매 경기마다 룰렛을 돌려 정한다고 한다.

머릿수로 따지면 상대적 약세인 우리로선 다소 불리한 방식이다.

“뭔가 음모가 있는 건가?”

상대가 상대인지라 방심은 금물. 끝까지 최선을 다할 뿐이다.

―현한발, 나와 주십시오.

벽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이서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다함께 필드로 나갔다.

“후우.”

필드엔 이미 헌한발의 정예, 수십 명이 우리보다 먼저 나와 있었다.

원래 저 팀이 우리 팀이었는데!

아는 얼굴보단 모르는 얼굴이 다수. 그 중엔 가증스런 김용도 있었다.

김용은 벌써 승리한 것처럼 양팔을 벌려 우리를 환영했다.

“어서 오십시오, 현한발 여러분. 설마 이런 식으로 쇼를 벌이실 줄이야, 광대가 따로 없군요.”

여유에서 나오는 존댓말. 불과 며칠 전까지 서로 죽이려고 싸웠던 상대라는 사실이 떠올렸다.

한 번 더 저 역겨운 가식의 가면을 벗겨 줄 것이다.

“후후후, 잘 부탁드립니다.”

난 김대팔의 행세를 하며 원래 멤버들을 살폈다.

다들 어딘가 죄책감에 자신 없는 표정. 싸우려는 사람 얼굴이 아니었다.

동료들과 마주 서자, 나도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아란, 유정, 노건도 슬쩍 고개를 돌리며 헌한발 동료들을 외면했다.

고육지책.

이번 일을 확실히 매듭 짓지 않으면, 이런 일은 앞으로 얼마든지 반복될 것이다.

우리 앞에 선 이서현은 지부장의 몸임에도 몸소 마이크를 들고 진행에 나섰다.

은근 진행을 즐기는 것 같다.

“양 팀 합쳐 60명! 시합 방식이 정해질 때마다 선수를 추려서 내보내면 됩니다. 먼저 3승을 따내는 쪽이 승리!”

현한발, 13명.

헌한발, 47명.

이서현은 왼손으로 주아란을, 오른손으로 김용을 가리켰다.

“현한발이 승리할 시 두 사람의 랭킹은 서로 뒤바뀝니다! 반대로 헌한발이 방어에 성공할 시 김용 씨에게 상금이 주어집니다.”

상금은 우리가 참가비로 지부에 낸, 일천 억.

돈은 모두가 모아서 마련했다. 물론 대부분은 태한과 나존귀가 냈다.

난 죽은 것으로 되어 있기에 내 소유의 돈은 쓸 수 없었다.

이 와중에 놀라운 점은 의외로 폭발대제 세 사람이 저축을 잘 해놨단 점이다.

수많은 관객이 필드를 빙 둘러싼 관람석에 앉아 우리를 향해 환호를 질렀다.

이서현은 관중의 호응에 힘입어 힘껏 소리쳤다.

“그럼 첫 번째 시합을 정하겠습니다! 룰렛!”

갖가지 시합 방식이 적힌 룰렛이 전광판에 비쳤다.

룰렛이 회전. 이서현은 관중에게 말했다.

“모두 셋을 세 주십시오! 그럼, 하나, 둘……!”

셋.

양 팀 선수와 관객이 한 마음이 되어 외쳤다.

룰렛이 멈추고, 첫 번째 시합이 정해졌다.

[1대1 승부]

가장 기본적인 방식.

심플 이즈 베스트!

“그럼 양 팀은 각자 대기실로 돌아가서 시합에 나올 선수를 뽑아 주세요!”

우리는 이서현의 말에 따라 전원 대기실로 돌아왔다.

“누가 나가죠?”

들어오자마자, 아란이 물어 왔다. 명목상 팀장은 그녀였지만, 실질적인 선택권은 나에게 있었다.

그녀는 벌써부터 H력을 뿜어내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결정은 그녀가 아니었다.

“마바일 씨.”

내 부름에 마바일은 즉시 내 앞에 섰다.

“내가 나가는 건가?”

“네. 부탁드려요.”

현한발 멤버 중 경력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성향으로 보나 가장 안정적인 게 바로 마바일이다.

오늘 시합은 랜덤이란 특성상 여차하면 한 번 나갔던 사람이 또 나갈 수도 있다.

그러니 가급적 우리 쪽 손실을 적게 하면서 이겨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내 요구에 충실히 따라 줄 수 있는 사람 중 하나가 마바일인 것이다.

“그럼 다녀오지.”

마바일이 선택되자, 적지형과 하상룡도 순순히 인정하며 잠자코 있었다.

그가 필드로 나가고, 남은 우리는 대기실에 설치된 TV화면을 통해 시합을 지켜봤다.

“쳇!”

김용도 비슷한 생각을 했나?

헌한발에서 나온 선수는 바로 어금니 출신의 랭킹 17위 최강지.

두 사람이 필드에 마주보며 서자, 이서현이 그 가운데서 크게 외쳤다.

“대망의 랭킹전! 그 첫 번째는 무려 랭킹 17위와 18위의 격돌! 막상막하, 용호상박, 용쟁호투, 난형난제! 누가 이길까요?”

한국지부 입장에선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다.

관객 표 값부터 시작해 생방송 시청료와 광고료까지. 신이 날 만하다.

“당연히 나지.”

최강지가 손으로 옆구리를 짚으며 기선 싸움에서 선수를 쳤다.

관중은 자극적인 쪽의 편. 그녀를 향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마바일은 팔짱만 낀 채 침묵을 지켰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상대를 기절시키거나, 항복을 받아 내면 승리. 지상으로부터 30cm 높이로 올라온 필드에서 상대를 떨어뜨려 장외 패배시키면 승리. 단, 상대를 죽이면 실격. 이 세 가지만 명심해 주세요.”

물론 맨손 승부.

유정같이 무기를 써야 제 능력이 나오는 사람한텐 다소 불리한 방식이다.

“시작!”

이서현이 퇴장하고, 두 사람은 빠르게 전신에서 H력을 끌어냈다.

“네 능력으로는 날 이길 수 없어. 정말 싸울 생각인가?”

마바일은 전신을 바위로 바꾸며 말했다. 그는 태산처럼 우뚝 서서 최강지를 쳐다보기만 했다.

“당연하지. 하지만 나도 각오하고 있어. 과연 당신은 어떨까?”

최강지는 머리카락을 바늘처럼 빳빳이 세워서 하늘로 날렸다. 수십 개의 머리카락 침이 두 사람 주변을 빙빙 돌았다.

“하아아압!”

최강지의 기합에 머리카락 침들이 반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절반은 마바일에게, 나머지 절반은 최강지에게 날아갔다.

“흥!”

마바일에게 날아간 침들은 허무하게 튕겨 나가며 전부 필드로 떨어졌다.

반면에 최강지에게 날아간 침들은 그녀의 몸에 제대로 박혔다.

끔찍하게도 그녀는 인간 선인장처럼 전신에 바늘이 꽂힌 꼴이 되었다.

“후후후.”

최강지는 고통스러워 보이는 외관에도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이 상태가 된 난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지!”

“그래?”

마바일은 주먹을 쥐어서 힘껏 내질렀다.

선인장인간 대 바위인간.

최강지는 마바일의 주먹에 얼굴을 맞아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기권해라. 넌 날 못 이겨.”

선인장이 아무리 강해도 바위 앞에선 그저 계란 신세였다.

“래, 랭킹은 내가 더 높아!”

최강지는 벌떡 일어나 얼른 전투 자세를 취했다.

“랭킹은 상관없어. 그저 네 기량이 나보다 떨어지는 것뿐이야.”

마바일의 팩트 폭행.

최강지는 머리카락 전체를 쭈뼛 세우며 머리를 성게처럼 만들었다.

“받아라!”

최강지는 그대로 마바일에게 박치기를 했다. 그러나 역시 계란으로 바위치기. 오히려 공격한 그녀의 머리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크으으윽!”

마바일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자해라도 할 셈인가? 그런 식으로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이길 수 없어.”

마바일은 천천히 지르기 자세를 취했다. 그것을 본 최강지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젠장.”

같은 2군이지만, 확실한 실력의 차이.

마바일은 최강지가 도망치자, 굳이 쫓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다.

거구에 몸 구성 자체가 바위인 그로선 너무 큰 움직임은 빠른 체력 소모를 야기할 수 있었다.

“역시 강해. 하지만……!”

최강지는 머리카락 침을 전부 오른손에 모았다.

그리고 오른손이 밤송이처럼 변한 상태에서 모든 침 끝을 한군데로 모아 거대한 송곳의 형상을 만들었다.

“지지 않아!”

그녀의 기합과 동시에 송곳을 이룬 각각의 침들이 한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마치 드릴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와!”

대기실에 있는 모두의 입에서 감탄이 나왔다.

“흠.”

마바일도 최강지의 드릴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살짝 몸을 뒤로 빼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이게 바로 내 새 기술이야!”

최강지는 드릴로 허공을 찌르며 마바일을 위협했다.

두 사람의 간격은 점점 좁아지고, 그녀의 드릴이 그에게 닿았을 때 염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크윽!”

마바일의 오른팔이 드릴에 깎이며 돌가루가 날렸다.

젠장, 예상 밖의 상황.

마바일은 얼굴에 미동도 없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과감히 양손으로 드릴을 꽉 움켜쥐었다.

“뭐야?”

승부수. 극심한 마찰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최강지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바위손에 잡힌 드릴의 회전이 점점 느려졌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마바일의 양손에 점점 금이 갔다.

“하아아앗!”

최강지는 마바일을 밀어붙이며 뒤로 밀었다. 그리고 기어이 그의 손을 분쇄하면서 완전히 그를 쓰러뜨렸다.

“히히히!”

마바일은 고통스런 표정과 함께 잠시 양쪽 손목을 쳐다봤다.

그리고 본인도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실소를 터뜨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엄청난 능력 활용이군.”

바늘 침에서 드릴이 되기까지 수많은 훈련이 있었을 것이다.

마바일은 최후를 준비하며 H력을 끌어올렸다.

그는 전신을 거대한 바윗덩이로 바꾼 후 엄숙히 말했다.

“이걸 받아 내면 너의 승리다.”

바위로 변신한 마바일은 하늘 높이 떠올랐다. 그리고 하늘 위, 작은 점이 된 순간 낙하했다.

그야말로 운석.

강렬한 한 방이었다.

최강지는 무릎을 굽혔다가 펴면서 오른팔을 높게 들었다.

“받아라!”

최강지의 모든 털들이 빠지며 오른손의 드릴 위에 달라붙었다.

반들반들한 대머리가 된 그녀의 노고에 걸맞게 드릴은 두 배 이상으로 커지며 힘차게 돌아갔다.

“하아아앗!”

운석이 드릴로 직격.

깔끔하게 두 동강이 나면서 거대한 바위가 쫙 쪼개졌다.

“으아아아!”

묵직한 비명 소리.

마바일은 그와 동시에 변신이 풀리며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변했다.

그의 전신은 겨우 형체만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난도질 된 상태였다.

“승자, 최강지!”

이서현이 필드로 나와 대머리가 된 최강지의 손을 잡아서 위로 번쩍 들었다.

마바일이 졌어?

나뿐만 아니라 대기실에 있던 팀원 모두 얼이 빠져 버렸다.

최강지가 예상 외로 너무 선전했다. 설마 대머리가 되면서까지 싸울 줄이야……!

이서현은 신이 나서 전광판을 가리켰다.

“그럼 양 팀, 두 번째 룰렛을 돌리겠습니다! 하나, 둘, 셋!”

마바일이 치료실로 실려 나가고, 전광판의 룰렛이 돌았다.

[5대5 사냥]

“네! 5대5 사냥이 당첨! 각 팀에서 뽑은 다섯 선수가 각각의 괴물을 상대로 더 빨리 사냥에 성공하는 팀이 승리하는 방식입니다!”

투기장의 원래 목적이 ‘투괴’ 즉, 괴물들끼리 싸움을 하던 장소임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김상팔!”

적지형이 내 멱살을 잡았다.

“다음엔 무조건 날 내보내! 내가 바일 형의 복수를 하겠어! 다른 녀석들은 필요 없어.”

“그건 내가 결정할 거야.”

난 담담히 적지형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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