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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230화 (230/250)

230.

230.

수백 갈래의 아지랑이는 단순한 기류를 넘어 확실한 형상을 갖추며 킹에게 흡수되었다.

“그만둬!”

난 광탄을 발사해 킹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내가 쏜 광탄은 허무할 정도로 그에게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했다.

킹은 H력을 흡수하면서 점점 전신이 흐릿해져 갔다.

“멈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은 스르륵 사라졌다. 그러나 분명 그 자리에 그의 기척은 존재했다.

“하아아압!”

이판사판.

난 킹의 기척을 예의 주시하면서 양팔에 검기를 모았다.

“하하하! 그런 걸로 날 죽일 수 있겠나? 형편없군!”

킹의 신체는 H력을 모두 흡수하자, 다시 실체를 드러냈다. 그리고 날 보며 양팔을 활짝 벌렸다.

“자아. 피하지 않고 맞아 줄 테니까, 어서 한번 공격해 봐.”

수백 명의 H력. 그 엄청난 에너지가 단 한 사람의 몸에 응축되어 있었다.

난 양팔을 번쩍 들어서 하나로 착 맞댔다. 그리고 두 검기를 합쳐서 하나의 강대한 힘으로 만들었다.

“응?”

내 팔에 형성된 검기를 본 킹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제법이군.”

“하앗!”

난 양팔을 크게 앞으로 휘둘렀다. 그리고 거대한 검기를 킹에게 날렸다.

“크윽!”

킹은 양팔을 교차해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내가 날린 검기에 맞았다.

거대한 검기는 그 크기만큼 강력한 힘으로 킹을 밀어붙였다. 킹은 검기에 밀리며 방 안쪽까지 질질 끌려갔다.

“젠장!”

킹의 등이 벽에 닿은 상황. 그럼에도 검기는 그의 팔을 베지 못하고 힘껏 누르고만 있었다.

“재미있는 기술이지만……그릇의 크기가 달라!”

시간이 지나면서 검기의 힘이 떨어지고, 킹은 양팔을 힘껏 뻗어서 검기를 밀어냈다. 그리고 거칠게 팔을 흔들어 약해진 검기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엄청난 위력이군. 네가 만든 거냐? 아니면 배운 건가?”

“오리지널 기술은 배운 거지만, 지금 날린 건 내가 개발한 응용 기술이야.”

완전히 망했다.

킹은 히죽 웃으면서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리고 한 번 더 내 시야에서 모습을 감췄다.

“또?”

기척이 수십……이번엔 수백으로 불어났다. 방 안에 나 혼자 수백 명을 상대하는 것 같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다만, 미세하게 각각의 개체가 풍겨 오는 기척 그 자체는 옅어져 있었다.

“어쩔 거지? 이제 슬슬 내 능력에 대해 눈치채지 않았나? 이렇게까지 힌트를 준 건 네가 처음인데?”

투명 능력과 분신 능력을 동시에 쓰는 걸까?

약을 과다 복용해서 복수의 능력을 쓰는 나 같은 경우도 있으니,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다. 애초에 이 약을 만든 장본인이라면…….

“미리 말해 두겠는데, 난 한 가지 능력밖에 없다네.”

아니구나. 그렇다면……?

난 양손에 광권과 광탄을 만들며 시간을 끌었다.

“이왕 힌트를 주는 김에 좀 더 주면 안 될까?”

“그렇게 뻔히 보이는 수작을 걸다니……. 어지간히 궁지에 몰렸나 보군. 후후후.”

내가 약한 척을 하자 킹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킹의 여유. 그러나 난 그것을 받아치면서 거침없이 말했다.

“그렇다면 분열하는 능력이지? 하지만 다른 분신, 분열 능력과는 달라. 차원이 다른 능력이지. 당신의 능력은 자기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분열하는 거야. 그래서 개체 수가 많으면, 많아질수록 투명인간처럼 모습 자체가 보이지 않게 되지. 존재감이 옅어지는 것처럼…….”

원자 분열이라고 했어야 했나? 과학은 서툴러서 그쪽으론 잘 설명할 자신이 없다.

사방에서 수백 개의 박수가 쏟아졌다.

“뭐, 비슷하다고 해 두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이 상태가 되어도 자칫 공격당할 수 있지만, 분열했어도 내 신체 능력은 동일하거든.”

그야말로 1인 군대. 단순히 불어나기만 했다면 별로 대수롭지 않겠지만, 상대는 로얄급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 볼까? 간다!”

수백 개의 발소리가 나에게 다가왔다. 난 광탄을 쏘면서 계단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곧장 뒤에서 다가오는 기척이 가까이 접근하자, 광권을 뻗어서 터뜨렸다.

“으아아아!”

광탄을 아무리 쏴도 기척의 숫자는 줄지 않았다. 접근을 막는 게 고작이었다.

킹은 지금 날 갖고 노는 중이었다. 녀석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수백 개의 손이 내 머리를 잡아서 몸에서 떼어 낼 것이었다.

“젠장.”

계단까지 가는 경로에는 이미 기척으로 꽉 차 있었다. 애초에 포위된 상황인지라 힘으로 뚫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재빨리 움직여도 기척들은 일사분란하게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하는 수 없지.”

난 제자리를 빙빙 돌면서 마구 광탄을 쏴댔다. 그러면서 한손에 시한 무광탄을 만들었다.

“뭐 하는 거지? 고작 그런 걸로 시간이나 벌 셈인가? 미안하지만, 군대가 여기까지 와도 그때쯤이면, 이미 넌 저세상 신세야!”

기척들은 점점 내 곁으로 와서 날 에워쌌다. 빙글빙글 도는 와중에도 어지러움보단 내 슈트를 잡으려는 투명한 손들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가지 많은 나무에 몸을 비비는 것 같았다.

잡히면 그대로 사망.

“하아아앗!”

난 시간을 끌면서 만든 시한 무광탄을 천장을 향해 쐈다. 그러자 무광탄이 굵고 짧은 폭발을 일으키며, 천장에 박혔다.

“좋았어!”

“서, 설마……!”

킹의 기척들은 재빨리 천장으로 뛰어올라 내가 쏜 시한 무광탄에 접근하려 했다. 그러나 두 번째 폭발이 일면서 천장 전체에 금이 갔다.

“이 녀석!”

기척들 중 상당수는 두 번째 폭발에 5층 사방으로 날렸다.

실험관들은 죄다 깨져서 바닥에 초록색 액체와 실험체들이 즐비했다.

“으아아악!”

난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광탄을 난사했다. 그러자 군대의 공격에도 꿋꿋이 버티던 천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크아아악!”

상당수의 기척이 사라졌다.

비록 로얄급의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투명할 정도로 존재감이 얕은 이상, 방어력 자체는 약한 것이 분명했다.

물론 전멸은 하지 않았다.

난 높이 뛰어올라 천장의 구멍을 통해 4층으로 도망쳤다. 당연히 내 뒤를 따라 킹의 기척들도 4층에 올라왔다.

“도망치게 놔둘 수 없다!”

“흥!”

난 광탄을 쏴서 그나마 남아 있던 4층의 바닥을 무너뜨렸다.

“하아아앗!”

기척 몇 개가 내 바로 앞까지 접근하는 게 느껴졌다.

난 아무런 망설임 없이 뒤로 돌아서서 창고의 출입문으로 나갔다. 그리고 통로를 달리며 디마를 불렀다.

“지금 많이 위급한 상황이거든요? 빨리 좀 와 주세요!”

―지금 3층까지 왔어요.

오오, 바로 위다!

“킹은 분열하면서 투명해지는 능력을 갖고 있어요. 기척을 쫓으면 쉽게 감지할 수 있지만, 아주 강력하니 조심하세요.”

―알겠…….

난 3층으로 가는 계단을 밟았다. 그러나 3층에 올랐을 때 내 눈엔 믿기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뭐야?”

따끈따끈한 피와 시체.

아까 교전에서 사망한 게 아니라 지금 막 살해당한 병사들이었다.

놀랍게도 내가 시체 더미를 발견하자마자 쫓아오던 기척들이 거짓말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게 무슨……?”

“상팔 씨?”

내 목소리에 시체 더미 속에서 디마가 고개를 내밀었다.

“상팔 씨셨군요!”

잘도 숨어 있었네.

디마는 시체 더미에서 나와 몸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당해 버렸어요.”

진작 다른 층에 분열한 개체를 보내 놨을 줄이야…….

디마는 자신의 몸에서 피와 시체조각을 털면서 말했다.

“일단 위에 지원 요청을 했으니까, 병력이 또 내려올 거예요. 이번엔 적외선 스코프를 준비하라고 연락할게요.”

디마는 이어폰으로 급히 무전을 날린 후 나에게 말했다.

“제 생각엔 오히려 아래쪽이 더 안전할 것 같은데요?”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킹이라도 외부로 탈출하기 위해 지상과 가까운 쪽의 적을 더 신경 쓸 것이다.

“하지만 겨우 잡았는데, 이렇게 놓칠 수는 없어요!”

난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디마는 그런 내 손을 잡으며 4층 계단으로 끌었다.

“좋은 생각이 있어요. 일단 절 따라와 주세요.”

난 디마를 따라 5층으로 내려갔다. 디마는 거기서 찾은 실험관들을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오오? 이런 규모로 인체 실험을 하고 있었다니……!”

그는 실험체를 보며 긍정적인 투로 감탄했다. 그리고 이리저리 살피다가 실험관들 뒤에서 뭔가를 찾아냈다.

“후후후.”

디마는 깨진 컴퓨터 부품을 집어서 흔들었다.

“하드디스크의 일부군요. 겉면이 벗겨졌지만, 데이터를 복원해 낼지도 몰라요.”

―이, 이봐! 누구 지원해 줄 사람 없어?

이어폰에서 C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이쪽은 매우 위급한 상황이야! 적이 너무 많아! 이러다간 지하1층까지 돌파당하겠어!

나와 디마는 그 무전을 받고 즉각 지상으로 올라갔다.

“상팔 씨, 이거 받으세요!”

뛰어가는 도중, 디마는 나에게 작은 무언가를 던졌다.

“뭐죠?”

받고 나서 손을 펴 보니, 내 손안에는 알약이 있었다.

“이, 이건……!”

아저씨의 알약.

디마가 5층에서 찾아낸 건가?

디마는 나에게 찡긋 윙크를 했다.

“한 번 드셔 보세요. 새로운 힘을 얻을지도 모르잖아요?”

미치겠네.

난 이미 4알이나 복용한 상태. 일단 병원 검사에선 건강하단 결과가 나왔지만, 또 먹었다간……!

아저씨가 나에게 또 알약을 권하지 않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일단 맡아 둘게요.”

우리는 빠르게 지하 1층으로 가는 계단 앞에 당도했다.

“크윽!”

여기도 참혹한 시체 천지. 병사들은 거의 소모품처럼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계단 위에는 C를 포함한 능력자들이 전신에 상처를 입은 채 지키고 있었다.

“K다! 디마도 있어! 이봐! 여기야!”

우리는 무사히 계단으로 올라갔다. 난 우리를 반겨 준 C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된 거죠?”

“디마의 말대로 적외선 스코프를 착용한 채로 수백은 될 적과 사투를 벌였어. 병사들은 전멸했고, 남은 건 우리뿐이야.”

“킹은요?”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모르겠는데? 일단 전부 다 쓰러뜨려서 사라진 것 같아.”

쓰러뜨려서 사라졌다? 그럼 능력이 해제됐을 텐데, 본체는 어디 있지?

“서, 설마……!”

처음부터 본체는……!

난 뭔가에 홀린 듯 기지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자 거기엔 우리를 놀리듯이 킹이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안타깝지만, 더는 놀아 줄 수가 없겠어. 힘의 회수가 끝난 이상,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거든.”

킹은 그 말을 마치고, 다시 스르륵 사라지려 했다.

“어딜……!”

난 광탄을 쏘면서 킹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힘껏 주먹을 뻗어서 그의 얼굴을 때렸다.

어떻게든 킹을 잡겠단 의지의 표명이었다.

“후후후.”

킹은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했다.

“의지만 가지고선 날 잡을 수 없어. 역시 젊다는 건 미숙하군.”

“뭐?”

난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냉정하게 그를 공격했다. 그래서 주먹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동시에 손에 광권을 만들었다.

“하아아앗!”

근거리에서 광권이 폭발.

그 충격에 킹은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그는 툭툭 털고 일어나 미간을 찌푸렸다.

“슬슬 짜증나려 하는군.”

킹은 H력을 뿜어냈다. 그의 몸에서 피어오른 아지랑이는 이 일대를 뒤덮으며 내 몸을 짓눌렀다.

“크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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