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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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몸에서 미약하게 H력이 뿜어져 나왔다. 검은 아우라와 달리 아지랑이 형태로 나오는 H력은 금방이라도 바닥날 듯 아슬아슬하게 움직였다.
“이것만큼은 쓰지 않으려 했지만……!”
엠퍼러가 뿜어낸 H력은 천천히 본인의 입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상처투성이였던 육체가 조금씩, 조금씩 회복되면서 흰색으로 물들었다.
“뭐지?”
난 불길한 예감에 광탄을 준비했다. 그리고 변화하는 엠퍼러를 향해 광탄을 난사했다.
“하아아앗!”
광탄이 폭발하면서 엠퍼러의 몸을 두들겼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몸은 나처럼 완전히 희게 변하며 덩치가 오그라들었다.
“후후후.”
엠퍼러는 광탄을 맞으며 몸을 활짝 폈다. 그가 정면으로 내 광탄을 받아 내는 것을 보자, 그의 몸이 쪼그라든 게 아니라 압축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간다!”
엠퍼러는 광탄을 맞으며 한 걸음에 달려왔다.
난 광탄 발사를 중지. 코앞까지 온 엠퍼러에게 주먹을 날렸다.
“어딜……!”
엠퍼러는 내 주먹을 가볍게 잡았다. 그리고 내 주먹째로 팔을 밀면서 내 몸을 압박했다.
“이젠 이길 수 있다!”
“쳇!”
난 왼쪽 다리를 들어서 무릎으로 엠퍼러의 턱을 올려쳤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내 주먹을 빼내어 뒤로 물러섰다.
“후후후.”
엠퍼러는 다시 여유를 되찾은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럼 이제 다음 라운드를 시작해 볼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승리할 것 같았는데, 이젠 상황이 정반대가 되었다.
“하아아압!”
우리는 서로 주먹을 주고받으며 다시 육탄전을 벌였다. 그러나 전과는 달리, 이번엔 점점 싸움이 길어질수록 내가 밀리고 있었다.
“으아아아!”
엠퍼러의 주먹이 내 얼굴을 때리면서 점점 시야가 흐릿해졌다. 아무리 팔과 다리를 빠르게 움직여도 그가 근소한 차이로 날 앞섰다.
“크아아악!”
주먹과 주먹. 발과 발. 맞부딪쳐도 내 것만 튕겨 나갔다.
“으악!”
엠퍼러의 주먹이 내 복부를 깊게 파고들었고, 그 충격이 외피를 가로질러 몸 전체에 울렸다.
“커어어억!”
쩍 벌어진 입에서 붉은 피가 쏟아졌다. 위장이 찢어진 걸까?
난 배를 부여잡고 엠퍼러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하하!”
엠퍼러는 날 힘껏 걷어차서 하늘 높이 날렸다.
난 내 몸이 추락할 걱정보단 어떻게 녀석을 이길지 생각하느라 바빴다.
“간다!”
난 몸이 날리는 와중에 양손을 모아 그 사이에 H력을 응축했다.
“하아아앗!”
응축, 또 응축. 광탄에서 무광탄을 만들 때를 회상하며 최대한 H력을 압축하면서, 또한 동시에 남은 H력을 전부 끌어내 분출할 준비를 했다.
“앗!”
내가 H력을 모으느라 움직일 수 없는 사이, 엠퍼러가 펄쩍 뛰어서 내 위로 날아왔다.
“젠……!”
퉁. 둔기로 후려친 것 같은 굉음이 들리며 머리에 강한 충격이 일었다.
“케엑!”
자동으로 입이 벌어지며 힘겹게 숨소리가 토해졌다. 그리고 내 몸이 엄청난 속도로 추락하며 지면에 처박혔다.
“아직…….”
다행히 양손의 H력은 무사했다. 난 얼른 몸을 돌려 등을 위로 했다. 그러자 이내 곧 위에서 엠퍼러가 낙하하며 주먹으로 내 등을 두들겼다.
“하하하!”
내 몸은 둔탁한 주먹에 연속으로 맞으며, 점점 땅속을 파고들었다.
난 맞는 와중에도 계속 H력을 모아 반격을 준비했다.
“크윽……!”
난 다리로 힘껏 지하를 차면서 흙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수영을 하듯 두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땅속을 움직였다.
“후우우우!”
땅을 뚫고 지면 위로 솟아났을 때 바로 코앞에 엠퍼러가 보였다. 그는 날 잡으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하아아아!”
난 양손을 엠퍼러에게 뻗었다. 나에게 달려들던 그는 오히려 내가 쏜 공격에 직접 다가와 맞아 준 꼴이 되었다.
“무광포!”
보이지 않는 광선을 영거리로 사격. 압축되어 있던 H력이 한순간에 해방되면서 엄청난 힘이 뻗어 나갔다.
얼마나 힘이 강한지, 쏘고 있는 내 손바닥이 얼얼함을 넘어 찢겨 나갈 것 같았다.
“으아아악!”
비명 섞인 기합. 난 모든 것을 쏟아 냈다.
“쿠에에엑!”
엠퍼러는 잠시도 버티지 못한 채 무광포에 맞아 뒤로 밀려났다.
“이, 이럴 수가……! 사상 최강이 된 내가……!”
엠퍼러의 육체는 무광포의 위력에 빠르게 뭉개졌다. 그리고 그의 육체는 산산이 부서져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커어어억…….”
다시 킹으로 돌아온 그는 무광포에 알몸이 된 채 바닥에 누워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아, 하아…….”
무력화된 킹을 봐서인지, 나도 스르르 능력이 풀리며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난 킹에게 걸어가 그의 앞에 섰다.
“항복해. 이제 다 끝났어.”
킹은 눈알을 부라리며 날 노려봤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폭발적인 H력이 뿜어졌다.
“하하하! 속았구나, 김상팔!”
뭐라고?
내 몸은 킹의 H력에 휘감기며 구속됐다. 더욱이 그의 H력이 내 몸속으로 파고들어와 얼마 남지 않은 내 H력을 빨아들였다.
“크으으윽!”
난 그대로 푹 앞으로 고꾸라졌다. H력이 완전히 바닥난 덕에 겨우 유지하던 체력이 완전히 거덜 난 것이었다.
“하하하! 싸움은 최후에 최후까지 끝난 게 아니야!”
킹은 H력을 끌어모아 다시 엠퍼러로 변신했다. 거구가 된 그는 날 한손으로 잡아서 번쩍 들어 올렸다.
“힘의 차이가 느껴지나?”
훔친 주제에……!
엠퍼러는 힘껏 내 목을 조였다. 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숨만 헐떡였다.
“커억!”
“하하하! 이제 금방 그 숨통을…….”
“하아아앗!”
그때 엠퍼러의 뒤통수로 주먹과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응?”
엠퍼러는 잠시 목조르기를 중단하고는 여유롭게 뒤를 돌아봤다.
“이것들은 또 뭐야?”
다른 동료들이 능력발동만 한 채 엠퍼러를 공격하고 있었다. 엠퍼러는 가소롭다는 듯 그들을 비웃었다.
“능력발현도 못하는 주제에, 고작 이 따위 공격으로 나한테 덤비는 거야? 하하하!”
“가자!”
동료들이 본격적으로 덤벼들자, 엠퍼러는 날 집어던지고 그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 사이, 디마가 엉금엉금 기어와 나에게 손을 댔다. 그의 H력이 내 몸으로 스며들면서 빠르게 몸이 회복됐다.
“왜 약을 드시지 않으세요?”
난 찡긋 웃었다.
“먹으면 큰일 나요.”
아마도…….
디마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H력을 회복한 난 다시 능력발동을 하며 신체를 거구로 만들었다. 디마는 그런 날 보며 가볍게 박수를 쳤다.
“능력이 진화한 모양이네요?”
진화라……. 난 개인적으로 돌연변이라 본다.
“알약 덕분인가 봐요.”
난 다시 엠퍼러에게 덤벼들었다.
“받아라!”
엠퍼러는 다른 동료들을 전멸시키고 나서 갖고 노는 중이었다. 그는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 내가 지른 주먹에 대응하지 못했다.
“커억!”
내 주먹이 깊게 엠퍼러의 안면에 꽂혔다. 엠퍼러는 기습에 당해서 몸이 허공에 붕 떴다.
“하아아앗!”
난 주먹을 꽂은 채 팔을 휘둘러 엠퍼러를 그대로 지면에 내리쳤다. 그의 몸은 내 주먹째로 지면에 꽂혀서 구덩이를 만들었다.
“커어어억!”
엠퍼러는 피를 토하며 비명을 질렀다. 난 주먹을 통해 그의 고통을 직접 느끼며 팔을 들었다.
“한 방 더!”
이번엔 복부를 강타했다. 그러자 엠퍼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그만! 그만해!”
난 주먹을 멈추고 엠퍼러를 바라봤다. 그의 전신은 완전히 박살이 나서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퉤엣!”
내가 멈칫하는 틈을 타 엠퍼러는 입에서 뭔가를 뱉었다. 그것이 내 얼굴에 묻자,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뜨거운 열기가 내 얼굴을 태웠다.
“으아아악!”
강산이 내 얼굴을 녹이며 시각, 청각, 후각이 마비됐다. 아무리 몸이 단단해져도 녹아드는 고통에는 버틸 도리가 없었다.
“지금이다!”
엠퍼러의 외침. 갑자기 내 몸에 있는 H력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겨우 강산이 증발해서 시야가 회복될 쯤, 내 몸을 감싼 검은 아우라가 내 H력을 뽑아내서 엠퍼러에게 보내는 게 보였다.
“젠장!”
설마, 내 H력을 흡수할 줄이야!
저항해서 뿌리치려고 했지만, 이미 내 몸은 상당한 힘을 뺏겨서 원래대로 돌아온 상태였다.
반면에 엠퍼러는 다시 육중한 체구를 회복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하하!”
엠퍼러는 내 머리를 한손으로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잔뜩 힘을 줘 내 머리를 통째로 터뜨리려 했다.
“으아아악!”
난 남은 H력을 머리에 집중해서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 시간을 끄는 것에 불과했다.
“그만둬!”
디마의 외침과 함께 엠퍼러가 날 냅다 집어던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디마가 광탄을 쏘면서 그와 싸우고 있었다.
물론 싸운다는 게 양쪽이 비등하다는 건 아니고, 지극히 일방적인 전투였다.
디마는 겨우겨우 엠퍼러의 공격을 피하며 그의 얼굴을 향해 광탄을 쐈다.
“젠장.”
동료들은 전멸. 남은 건 나와 디마뿐이다. 이렇게 절체절명의 상황인데도 귀에 낀 이어폰이 멀쩡한 게 참 신기했다.
―상팔 씨,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어주세요.
디마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전해졌다.
―지원군을 요청했으니까, 그때까지만 좀 버텨 주세요.
지원군? 이 상황을 역전할 수 있는 히든카드인가?
난 디마의 말에 기운을 얻어서 남은 H력을 쥐어짰다. 그리고 최후의 광탄을 만들어서 소중히 손에 쥐었다.
“이봐!”
난 당당하게 엠퍼러를 불렀다. 그는 천천히 날 돌아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더 할 말 있나?”
엠퍼러는 혀를 길게 내밀었다. 혀끝에서 떨어지는 침방울이 지면에 뚝뚝 떨어지자 강한 산성 소리를 내면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앗!”
난 광탄을 힘껏 던졌다. 내가 던진 광탄은 나선형을 그리며 엠퍼러의 입으로 날아갔다.
“하압!”
“하하하!”
엠퍼러는 광탄을 피하기는커녕, 입을 쩍 벌려서 광탄을 꿀꺽 삼켜 버렸다.
펑 소리와 함께 그의 배에서 작은 폭발이 일었지만, 그는 입으로 검은 연기만 조금 뿜어낼 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이젠 정말 방법이 없나 보지?”
엠퍼러는 혀를 길게 내밀어서 채찍처럼 휘둘렀다. 난 몸을 옆으로 날려 그의 혀를 피했다.
“하하하!”
엠퍼러의 채찍 공격은 계속됐다. 난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며 그의 혀를 피했지만, 결국 내 발끼리 엉키면서 벌러덩 넘어졌다.
실수라기보다는 이제 정말 체력적, 정신적 한계였다.
“이제 끝이다!”
엠퍼러의 주먹이 내 위로 날아와 강하게 내려찍었다.
“커헉!”
고작 한 방. H력 없이 제대로 맞은 공격에 전신의 뼈가 으스러지면서 완전히 무력화됐다.
“주, 죽겠다.”
“하하하!”
엠퍼러는 크게 웃으며 주먹을 내 얼굴 위에 띄운 채 살랑살랑 흔들었다.
“이젠 정말 다들 끝장이다! 우선 김상팔, 너부터 죽여주마!”
난 피할 수 없었다. 팔다리는커녕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주먹이 낙하. 그때 옆에서 푸른 섬광이 번쩍이며 나와 엠퍼러를 감쌌다.
“크아아악!”
엠퍼러는 비명을 지르며 멀리 날아갔고, 섬광을 일으킨 장본인이 내 앞에 섰다.
“한심하군, 김상팔. 네오서울에서 보여 준 그 멋진 모습은 다 어디로 간 거지?”
“당신들은……!”
지원군은 안경을 고쳐 쓰며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로 바바리코트 차림의 사내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