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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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부와 강자기. 슈퍼타이거 소속의 랭킹 3, 4위 헌터였다.
“두, 두 사람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죠?”
“우린 원래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협회 본부하고도 일하고 있거든. 머리가 좋으니, 여기저기에 많이 얽혀 있지.”
은근 잘난 척이네. 하지만 잘난 척할 만하다. 두 사람 덕에 목숨을 건졌다.
강자기는 날 치료하고, 신진부는 몸에서 전격을 뿜어내며 엠퍼러를 공격했다.
“이 녀석들! 크아아악!”
난 강자기의 도움으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강자기는 내 몸에 계속 손을 대면서 말했다.
“네 능력은 흥미롭군. 혹시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라도 있는 거냐?”
흠칫. 난 놀란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강자기에게 말했다.
“그쪽이야말로 지금 내 능력 카피하려고 손 대고 있는 거 아니야?”
“그래, 맞아. 내 능력은 단순 카피지만, 넌 아니지?”
똑똑한 녀석한테 관심 받으니까, 상당히 거북해진다. 이 녀석은 내가 한 마디만 해도 모든 걸 알아차릴 것 같다.
“이, 일단 치료부터 좀…….”
“흥.”
확실히 강자기는 천재다. 녀석은 카피한 치료술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자유자재로 다뤘다.
“하아아앗!”
신진부의 전기는 엠퍼러를 감전시키며 그를 몰아붙였다. 엠퍼러는 전신이 섬광에 둘러싸인 채 신진부에게 물었다.
“신진부 맞지? 역시 강하군. 하지만…….”
엠퍼러는 기합을 한 번 지르더니, 신진부의 전격을 몸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전기가 회오리치면서 몸으로 스며드는 모습이 무슨 마법 같았다.
“후웁!”
엠퍼러가 숨을 들이마시자, 그의 육체가 번쩍이면서 형광등처럼 빛을 뿜기 시작했다.
“미친 몸뚱이군.”
신진부는 안경을 벗으며 H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나와 강자기를 보며 소리쳤다.
“사람들 데리고 피해!”
“넵.”
우리는 즉시 대답하고, 부상자들을 빠르게 옮겼다. 한 번에 두 명씩. 여러 번 왕복해야 했기에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뭘 하려는 거지?”
내 질문에 강자기는 짧게 대답했다.
“필살기.”
“필살기!”
그렇다면 더욱 빨리 움직이자!
우리가 마지막 사람을 데리고 수풀에 몸을 낮췄을 때 저 멀리 신진부의 몸에서 뿜어지는 섬광이 일대를 집어삼키며 우리까지 그 영향 범위에 들어갔다.
“크으으윽!”
전격은 강하지 않지만, 전신의 털이 쭈뼛거리며 정전기처럼 따끔한 감각이 느껴졌다.
섬광은 금세 그쳤고, 내 시야에 여전히 서 있는 엠퍼러와 신진부의 뒷모습이 보였다.
“정신 차리고, 빨리 일어나. 가서 우리도 도와야 해.”
강자기는 섬광이 그치자마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난 멀미처럼 머리가 어지러워서 쉽게 일어나질 못했다.
“우리는 거리가 멀어서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어. 엄살 그만 피워!”
강자기의 호통에 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서 두 사람에게 달려갔다.
“셋이서 날 해치우려고?”
엠퍼러는 달려온 나와 강자기를 보더니, 허탈하게 웃었다.
“애송이, 녀석들! 쿨럭!”
그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육체가 붕괴되며, 연약한 킹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악, 하악…….”
킹은 힘에 겨워 겨우 숨만 쉬고 있었다.
“이제 그만 포기하시죠? 당신의 육체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이 이상 싸웠다간 죽을 겁니다.”
신진부는 품속에서 새 안경을 꺼내 썼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냈다.
“허억, 허억. 날 구속할 셈인가?”
“그래야죠. 흉악범이잖아요?”
“아니, 아직이야.”
킹은 떨리는 손을 겨우 움직여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우리 셋은 설마 이 상태까지 와서 뭔가 더 수작을 부릴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딱히 그의 행동을 제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실수였다.
“그, 그것은……!”
알약. 분명 내가 디마에게 받은 그것이었다.
난 황급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킹이 들고 있는 알약이 내가 갖고 있던 것임을 깨달았다.
“합.”
킹은 알약을 입에 털어 넣고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 직후 약효가 나타나면서 그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H력이 뿜어져 나왔다.
“으아아악!”
킹은 기합이 아니라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몸은 엠퍼러를 넘어서서 더 비대하고, 거대해졌다.
“그만……그만……!”
킹은 고통스럽게 몸부림쳤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몸은 괴기스럽게 변해 갔다.
엠퍼러 때는 그래도 최소한 인간의 형상을 유지했었지만, 지금의 그는 인간을 벗어나 괴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젠장! 물러서!”
신진부의 외침에 우리는 후다닥 킹으로부터 멀어졌다.
킹은 집채만큼 커져서 멈출 줄 몰랐다.
“이러다가 수십 미터로 커지겠는데요?”
강자기의 말에 신진부는 미간을 찌푸렸다.
“젠장. 그럼 전격도 안 통할 텐데……. 핵무기라도 써야 하나?”
“쿠오오오!”
킹의 육체는 변이를 마치고 잠시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어두운 밤이라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그가 너무 거대한 나머지 지고 있던 달을 가려 버렸단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앗!”
저 멀리 군용 헬기가 날아왔다. 그리고 거대해진 킹에게 무차별적으로 기관포와 미사일을 발사했다.
“오오!”
킹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덕분에 헬기들은 마음껏 공격할 수 있었다. 화려한 불꽃놀이가 눈앞에서 펼쳐졌다.
“잘 싸우고 있긴 한데, 타격이 전혀 없는데요?”
강자기가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신진부에게 물었다. 신진부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김상팔, 일단 기지로 후퇴하자. 사람들 챙겨!”
강자기는 언제 I의 능력을 카피한 것인지 팔을 네 개로 만들었다. 그리고 강자기는 넷, 나와 신진부는 각각 두 명씩 짊어진 채 기지로 도망쳤다.
“헉, 헉, 헉…….”
우리가 기지에 도착해서도 헬기의 공격은 쭉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부상자를 의무병에게 맡긴 후 디마를 따라 통신실로 들어갔다.
“알파 원, 알파 원! 여기는 찰리 트리, 여기는 찰리 트리!”
디마는 다급하게 어딘가로 무전을 날렸다.
“지원 요청이 필요하다! 현재 목표가…….”
쿵. 거대한 소리와 함께 지면이 뒤흔들렸다. 그리고 디마는 신경질적으로 송수화기를 집어던졌다.
“왜요?”
내 질문에 디마는 대답 대신 통신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당연히 우리도 그를 따라갔다.
“엥?”
통신실 위에 세워져 있던 안테나가 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안테나는 아예 사라져서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사라졌지?”
그때 부서진 헬기가 하늘에서 날아와 우리가 있던 통신실로 떨어졌다.
커다란 폭발과 함께 불이 붙은 헬기 잔해가 계속 굴러가서 기지 바깥으로 나갔다.
“저렇게 사라졌구나.”
헬기들이 계속 기지로 떨어졌다. 우리는 병사들과 함께 황급히 기지를 떠나 숲으로 숨었다.
“헉!”
쿵쿵쿵. 이번엔 지면이 끊임없이 흔들렸다. 거대한 무언가가 걷는 듯한 소리. 우리는 그게 무엇인지 듣자마자 깨달았다.
“젠장! 저런 게 움직이면…….”
우리는 손가락만 빨면서 구경해야만 했다. 싸우기엔 부상자가 너무 많고, 전력도 완전 엉망이었다.
반면에 괴수가 된 킹은 여유롭게 기지를 넘어서서 어딘가로 걸어 나갔다.
몇몇 헬기와 장갑차가 끝까지 쫓으며 공격했지만, 녀석은 이미 그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어디로 가는 거죠?”
내 질문에 디마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그래도 일단 살았네요.”
그게 끝?
난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햇살을 보면서 승리한 것도, 패배한 것도 아닌 상태로 아침을 맞았다.
***
대괴수 킹리자드.
그것이 새롭게 태어난 킹에게 붙은 이름이었다.
협회는 녀석을 인간이 아닌 괴물로 판별했고, 사상 최초로 10급 이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군대는 무인기를 이용해 계속 킹리자드의 동태를 감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 녀석이 태평양을 건너 동아시아로 가고 있단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거대한 항공모함을 탄 채 바다에서 녀석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
전체적으로 거대한 악어 같은 형체. 그러나 사족 보행이 아닌 이족 보행이었고, 앞다리가 아닌 팔이 길쭉해서 무릎까지 내려왔다.
백 미터가 족히 넘는 신장에 등껍질은 악어거북처럼 비늘 하나하나가 가시처럼 튀어나와 위협적이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괴수.
건물을 파괴하고, 군대를 쓰러뜨리고, 세상을 멸망으로 이끌던 존재.
항공모함 옆 호위함을 넘어 저 멀리, 지금 괴수가 내 눈앞에서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난 두려움보단 감상에 빠져 킹리자드를 바라봤다.
그때 디마가 커피 두 잔을 들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중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한국, 일본, 중국, 어쩌면 러시아로 상륙할지도 모른다고 하네요.”
난 커피를 한 입 홀짝이며 순순히 디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내가 대꾸하든, 말든 자기 혼자 떠들었다.
“1차, 2차, 3차에 걸쳐 함대와 전투기가 공격을 개시할 거예요. 만약 그걸로 쓰러뜨릴 수 없다면……태평양 중앙에 도착했을 때 핵을 쓸 거예요.”
핵, 폭, 탄!
난 입을 쩍 벌리며 디마를 쳐다봤다.
“1시간 전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정이 내려왔어요. 잘 됐죠?”
“정말 그럴까요?”
핵무기라면 헌터고, 군대고 할 것 없이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뭔가 불길한 기운이 자꾸만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디마의 말처럼 일주일간 세 차례의 공격이 이어졌다. 그러나 모두 실패.
결국 핵무기가 나서게 됐다.
공격 전 함대는 괴수로부터 이탈해 하와이의 진주만에 정박했다. 그리고 하와이 열도 전체에 사이렌이 울리며, 시민들의 대피가 이어졌다.
“앗!”
난 갑판 위에 서서 내 머리 위로 핵폭격기가 지나가는 것을 구경했다.
하늘 높이 날아가는 F―35 전투기는 킹리자드를 향해 똑바로 날아갔다.
“상팔 씨! 어서 배 안으로 들어오세요!”
디마가 내 팔을 억지로 끌어당겼고, 우리는 함께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방에 있는 작은 창문으로 버섯구름이 보일까요?”
내 질문에 디마는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대신 지휘실에서 모니터로 생중계될 거예요. 같이 가시죠.”
우리는 관제실 바로 밑에 있는 지휘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다른 동료들과 군 간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방 안 모니터는 두 개의 영상을 비추고 있었다. 하나는 직접 킹리자드를 비춘 드론의 것. 다른 하나는 킹리자드를 추적한 레이더.
그리고 몇 분 후.
모니터에서 강한 불빛과 함께 굉음이 들리고, 그 다음 강한 진동으로 배가 흔들리며 창밖으로 강풍이 휘몰아치는 게 보였다.
킹리자드를 직접 비추고 있던 드론은 소멸. 하지만 레이더는 제대로 동작하고 있었다.
바람이 멈추자 함대 사령관이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어서 다시 드론을 내보내! 영상이 필요하다!”
그의 명령에 무인 전투기가 이륙. 조금 시간이 지나고, 카메라를 통해 다시 화면이 나왔다.
“오오!”
다시 나온 킹리자드의 모습은 그야말로 반쪽이 되어 있었다. 확실히 타격이 있던 것이다.
“좋아. 지금 당장 안전보장이사회에 연락해서 한 번 더 폭격을 요구해! 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