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
238.
민머리용.
바로 작년에 한 마리가 사냥되었기에 자료는 의외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우선 외관은 쉽게 말해 인면룡에 가깝다.
흰 비늘을 가진 비쩍 마른 드래곤의 몸에 어딘가 서글픈 표정을 하고 있는 둥그스름한 머리.
사진으로만 봤지만, 괴물보단 귀신. 공포 영화에 나올 것 같은 기분 나쁜 생김새다.
“이걸 잡으란 말이지?”
마지막 민머리용.
감회가 좀 새로웠다.
물론 괴물은 천연기념물이 아니다. 두루미나 황새는 근처에 사람이 있다고 냅다 달려들어 대량 학살을 하진 않는다.
“근데 10급이면 군부대 지원이 오려나?”
여태까지 사냥한 괴물 중 순수하게 헌터들의 실력으로 쓰러뜨렸던 건 9급까지.
10급부터는 군부대의 협력이 필요했다.
“그나저나 로얄은 전부 다 참여하는 건가?”
킹리저드와의 싸움은 경기도 전체가 걸린 중요한 싸움이었다. 지부는 가능한 모든 로얄과 2군을 호출했을 것이다.
그리고 모인 사람은 12명.
무려 8명이나 오지 않았다.
우선 10위와 20위는 공석.
오지 않은 두 사람의 로얄 중 8위는 전 어금니의 헌터인 한유리인데, 원래 단체 행동을 안 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참고로 헌팅페스티벌에서 드래건을 산 채로 잡아 왔던 게 바로 그녀다.
9위는 오이해. 이 인간은 뭐 기대도 안 했다. 그래도 이번엔 올 것이다.
지부에서 참석하지 않는 로얄과 2군에게는 현재 랭킹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엄포를 놨기 때문이다.
나머지 2군 넷은 모두 슈퍼타이거 소속으로, 그들은 당시 정부 부처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엔 정말로 모든 로얄과 2군이 모일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랭킹을 잃고 싶어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근데 난 랭킹 헌터도 아닌데, 왜 참가해야 되지?”
돈도 그다지 필요 없다.
딩동.
그때 내 휴대전화로 지부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가 왔다.
“뭐야? 이 사람들은 내가 무슨 콜서비스인 줄 아나?”
난 푸념을 하며 휴대전화를 켰다. 그리고 메시지를 읽었다.
“엥?”
지부에서 날 랭킹 20위에 임명했다.
“와, 10위도 공석인데…….”
이왕 부려먹을 거면 10위 주지.
난 혀를 차면서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집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
도착한 곳은 태한의 저택.
난 저택 본관의 수련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태한을 만났다.
태한은 수련장 한가운데 앉아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자꾸 이렇게 찾아와서 미안.”
“괜찮아. 어차피 한가하거든.”
태한은 벌떡 일어서서 나와 악수를 나눴다.
난 그에게 민머리용을 사냥할 당시의 상황에 대해 물었다.
“좀 천천히 시작할게. 이야기가 길거든.”
이야기는 1년하고 몇 개월 전 상황에서부터 시작했다.
***
이태한의 기억.
첫 번째 민머리용 사냥 당시.
정부는 비공식적으로 한국 지부에 민머리용의 사냥을 의뢰했다.
이유는 한반도 평화 유지.
당시 국민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었지만, 두 마리의 민머리용은 난폭하게 날뛰며 장벽을 넘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천민일 지부장은 민머리용 사냥에 무려 200명이나 되는 헌터를 동원했다.
물론 그 중엔 태한도 있었다.
그는 항상 들고 다니는 타로카드 덱을 섞으며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전원이 모이고, 집합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지부 직원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왜 출발하지 않는 거지?”
“무슨 사고라도 생긴 건가?”
“역시 이래야 한국 지부지!”
헌터들은 수군대기 시작했고, 직원들은 그들이 이상한 소릴 하지 못하도록 말리는 게 고작이었다.
태한은 직원들의 동태와 지부의 어수선한 상황을 통해 자신들이 출발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챘다.
그는 조용히 섞고 있던 카드 덱 맨 위에서 한 장을 뽑아 카드 점을 봤다.
“불길하군.”
백마를 타고 있는 해골. 그야말로 죽음의 형상이었다. 그 주변에는 절망에 빠져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
“쳇.”
태한은 카드를 덱에 넣은 다음, 덱을 겉옷 안주머니에 넣었다.
현재 그들이 있는 장소는 지부 앞 주차장. 수십 대의 버스와 갖가지 장비를 실은 트럭은 시동조차 걸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아직 지부장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한은 직원 하나를 불러 조용히 물었다.
“우린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야. 어서 출발하지 않으면 하나둘 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길 거야.”
“하지만 아직 지부장님이…….”
“연설 같은 건 집어치우고, 사냥 구역으로 직접 오라고 해. 여기 모인 200명 중에 떨거지들은 몰라도 로얄하고 2군은 벌써 떠날 생각하고 있는 사람 많아.”
물론 무단이탈할 경우 랭킹 자격은 소멸. 그러나 어차피 실력 있는 헌터는 다시 또 랭킹을 따면 그만이었다.
적어도 태한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헌터들은 삼삼오오로 무리를 지어 지부 여기저기에 흩어진 상태였다.
“10분 내로 출발하지 않으면, 난 돌아가겠어. 난 그 영감이 갑자기 정한 날짜 때문에 데이트도 퇴짜 놓고 왔거든.”
랭킹 2위 태한의 이탈 선언.
그것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직원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이, 일단 보, 보고를 올…….”
“흥.”
태한은 그대로 뒤돌아서서 주차시켜 놓은 자신의 스포츠카에 올라탔다. 그리고 시동을 건 채 오직 시계만을 주시했다.
1분, 2분, 3분……9분.
“집합해 주세요! 집하아아압!”
직원들은 열심히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태한은 지금이라도 그냥 엑셀을 밟고 지부를 떠날까 고민했다. 그러나 애처롭게 뛰어다니는 직원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젠장.”
태한은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버스에 올랐다. 버스 스피커에서 목소리 하나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전 지부장님 밑에서 일하고 있는 김익조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이 사냥은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결국 지휘자가 교체되면서, 공식적으로 ‘민머리용 사냥 원정대’가 출발할 수 있었다.
―이 사냥은 저희 계획에 따라 약 열흘간 행해질 예정입니다. 운이 좋아 민머리용을 빨리 만난다면, 더 빠르게 일을 끝낼 수 있을 겁니다.
버스는 빠르게 도로를 달려 10급 사냥 구역에 도착했다. 거기서 모두 하차한 후 다들 군인들에게 간단한 소지품 검사를 받았다.
군인들은 트럭에도 올라타 폭발물을 찾았다. 그런데 태한의 눈에 군인 중 하나가 김익조와 아주 찐하게 악수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뭘, 받은 거지?”
김익조의 손아귀에서 군인의 손아귀로.
뭔가가 이동했다.
태한은 그것이 분명 뇌물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 외에 딱히 주고받을 것도 없었다.
지부장의 직속 부하인 그가 뭐 때문에 군인에게 뇌물을 주는 걸까?
설마 민머리용 사냥 성공을 위한 원활한 협조를 위해?
태한이 아는 한, 천민일과 김익조는 그렇게까지 성의 있는 인간들이 아니었다.
저들 머릿속엔 200명의 헌터 중 절반 이상은 가볍게 죽일 생각을 품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역시 불길해.”
태한은 사냥 구역에 들어가기 직전, 여자 친구인 이하란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랑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문자.
태한은 사실 이 사냥에 참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지부의 제안을 거절할 경우, 지금 입원 중인 이하란이 곤란해질 수 있었다.
“결국 또 놀아나는군.”
헌터들은 10명씩 한 조가 되어서 섰다.
태한의 조에는 아는 얼굴부터 모르는 얼굴까지 다양한 사람이 섞여 있었다.
“다들 잘 부탁해. 조장인 내 명령을 가장 우선시해서 따라 줘.”
태한은 필요한 말만 하고는 바로 옆에 있는 조원을 가리켰다.
“한 사람씩, 자기소개.”
“랭킹 19위인 조양수입니다.”
“랭킹 39위, 장준.”
“41위인 오이해라고 합니다. 변호사를 하고 있죠. 이건 제 명함입니다.”
오이해는 품속에서 명함을 꺼내 조원들에게 나눠 줬다.
“100위인 안필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랭킹 14위, 김필호.”
“27위인 김두라고 한다.”
여기까지가 랭킹 헌터.
“‘드미트리 김’이라고 합니다. 혼혈이고, 귀화했으니까 국적 문제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200명 중 유일한 백인의 외모. 다른 조원들도 힐끔힐끔 드미트리를 쳐다봤다.
“구지태라고 합니다.”
마지막은 화제의 인물.
“전 조루호라고 합니다.”
최강의 신예로 불리는 조루호.
그는 랭킹 진입이 거의 확실시되는 인물이었다.
조장인 태한을 포함해 10명은 서로 통신이 가능한 무전기를 지부 직원으로부터 받았다.
―들어가겠습니다.
이번 원정대의 대장을 맡은 김용의 목소리.
다들 긴장한 채 정문 앞에 섰다.
문은 삐걱거리며 아주 천천히 열렸고, 헌터들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열렸을 때부터 한 줄로 빠르게 들어갔다.
―각 조는 조원들끼리 잘 뭉쳐서 사냥 구역을 수색하시기 바랍니다. 목표를 발견하시면, 저희 조에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조’
태한은 그 말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는 오로지 2종류.
김용의 조.
그리고 그 외.
그게 원정대 조 편성의 전부였다.
“왠지 제 발로 죽으러 가는 길 같군.”
태한은 조원들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체계적이지 않은 조직은 부실 공사로 지은 건물과 같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머무는 동안만 이 망할 건물이 무너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원정대는 각 조별로 사냥 구역 여기저기에 흩어졌다.
다른 조는 적극적으로 민머리용을 찾아 나섰지만, 태한은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늦장을 부렸다.
20개의 조 중 뛰지 않는 조는 태한의 조와 김용의 조뿐이었다.
돈을 원하는 자.
경쟁이 붙은 자.
싸우고 싶은 자.
뒤가 구린 자.
의심하는 자.
다들 저마다의 목적을 가진 채 헌터들은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비극이 시작됐다.
“용이다! 으아아악!”
사람 하나가 흰색 불꽃에 휩싸이며 아주 손쉽게 불에 탔다.
민머리용.
그 번쩍이는 위용에 헌터들은 각 조마다 힘을 합쳐 분투했다.
사상자를 제대로 살필 겨를도 없이 태한은 조원들에게 외쳤다.
“오른쪽 뒷다리를 노려!”
태한은 광탄을 만들어서 민머리용의 눈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왼팔에 H력을 모으며 검기를 준비했다.
태한의 조원들은 그의 말에 따라 민머리용의 뒷다리를 향해 달렸다.
거대한 뒷다리에는 이미 다른 조가 붙어서 공격하는 중이었다.
“공격!”
태한의 호령에 조원들은 각자 능력과 무기를 쓰며 덤벼들었다.
“하아아압!”
태한은 뒤에서 대기하며 양팔에 검기를 모았다. 그리고 조원들의 활약을 살폈다.
민머리용은 자신에게 덤벼드는 헌터들을 내려다보며 다리와 꼬리를 휘둘러 벌레처럼 짓이겼다.
그나마 조원들은 요리조리 피하며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히이이익!”
구지태는 겁에 질린 채 태한의 뒤로 숨었다. 민머리용이 한 번 날뛸 때마다 시체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아아앗!”
조루호는 거대한 사슴으로 변신. 그 거대한 자체에 다른 헌터들은 넋을 놓을 정도였다.
조원들은 거대한 사슴을 중심으로 민머리용에게 덤벼들었다.
두 괴물의 덩치 차이는 머리 하나 차이. 그럼에도 사슴은 민머리용에게 뿔을 앞세워 힘껏 부딪쳤다. 그러나 민머리용은 사슴의 박치기를 가볍게 꼬리로 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