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239화 (239/250)

239.

239.

“으아아악!”

헌터들은 튕겨진 사슴에 치여 우수수 날아갔다.

사슴은 다시 벌떡 일어서서 다시 민머리용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몇 번을 돌진하든, 결과는 똑같았다.

“으아아악!”

애꿎은 헌터들만 사슴에 치여 날아갔다.

게다가 사슴은 몇 번의 충돌 후 비틀거리더니, 스르륵 변신이 풀려 버렸다.

“헉, 헉…….”

조루호는 완전히 땀에 젖은 상태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를 구하기 위해 조원 몇이 근처로 다가갔지만, 모두 민머리용이 휘두른 뒷발에 채여 살해당했다.

“으아아악!”

H력으로 능력발동을 하든, 능력발현을 하든 헌터들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사방이 피바다가 되고, 불에 타거나 갈가리 찢긴 시신이 나뒹굴었다.

“조루호, 저 자식! 누가 추천해서 데려온 거야!”

오이해는 버럭 악을 쓰면서 태한이 있는 곳까지 물러섰다. 그의 손에는 같은 조원인 조양수의 왼팔이 들려 있었다.

“이러다간 전멸이야! 왜 김용은 지시를 내리지 않지?”

김두도 피를 뒤집어쓴 채 태한에게 돌아와 물었다.

“내게서 떨어져.”

태한은 나지막이 말하며 팔을 휘둘렀다.

그의 팔에서 나온 거대한 검기는 쏜살같이 날아가 민머리용의 뒷다리를 벴다.

“오오오오!”

다들 일제히 감탄.

민머리용은 뒷다리 두 개가 잘리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울기 시작했다.

“흑흑흑, 흑흑흑…….”

구슬프게 우는 노인의 목소리.

마치 ‘고향의 전설’에 나올 법한 괴기스런 울음이었다.

다들 그 소리에 압도되다 못해 굳어 버리고 말았다.

“흑흑흑…….”

민머리용은 입을 쩍 벌렸다. 녀석의 입은 벌려지는 것을 넘어 시원하게 위아래로 찢어지며 가죽 속 힘줄과 조직이 훤히 드러났다.

“허어어어…….”

울음소리 다음엔 긴 한숨.

괴물은 주변의 인간들을 압도했다. 녀석의 숨소리 하나, 몸집 하나에 헌터들은 숨을 죽였다.

민머리용의 목구멍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흰색 빛이 입으로 올라왔다.

태한은 무전기를 꺼내서 각 조장에게 소리쳤다.

“물러서!”

“히아아아아!”

민머리용의 입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와 헌터들을 덮쳤다.

엄청난 크기의 빛에 닿은 이들은 순식간에 육체가 바스러지며 사라졌다.

“김용은 어디 있는 거야?”

태한은 헌터들 사이로 김용의 조를 찾았다. 그러나 주 전력이 집중된 그의 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태한은 무전기로 김용을 불렀다.

“김용! 지금 어디 있지?”

―상황을 보고 있지.

“어디서?”

―뒤에서.

“당장 합세해! 이러다가 전멸한다고!”

―그럴 수는 없지. 현재 원정대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아. 사상자의 대부분은 일반 헌터거나, 하위 랭킹들뿐이거든.

“그래서?”

―지부를 위해 죽는다면 기꺼이 죽는 게 그들로서도 좋은 거야.

태한은 무전기를 땅바닥에 집어던졌다. 그리고 자신의 조원들에게 소리치며 달렸다.

“물러서! 일단 김용의 조와 합류한 후에…….”

9명의 조원 중 태한의 눈에 보이는 것은 쓰러진 조루호와 홀로 싸우고 있는 김두뿐이었다.

다른 조원들은 죽었는지, 도망쳤는지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망했군.”

태한은 쓰러진 조루호를 들쳐 멨다. 그리고 김두에게 소리쳤다.

“따라와!”

“네 명령 따윈 필요 없어! 난 혼자서 싸운다!”

김두는 H력을 뿜어내며 펄쩍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홀로 민머리용 위에 올라타 주먹을 휘둘렀다.

“으아아악!”

다른 헌터들은 아수라장.

조 따위는 무너진 지 오래였다.

태한은 루호를 데리고 민머리용한테서 멀리 떨어졌다. 그리고 뒤에서 한가로이 다른 헌터들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는 김용의 조를 찾아냈다.

“하하하, 우리 친구 태한 아니신가?”

“김용! 왜 공격하지 않지?”

“원래 싸움은 잔챙이가 먼저 나서는 법이야.”

태한은 말이 안 통하는 김용 대신 그의 조원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들은 태한의 시선을 외면했다.

“어금니는 한국 최고의 헌터팀이라고 떠들면서, 이럴 땐 꽁무니를 빼는 거냐! 최고라는 게 최고로 겁쟁이란 뜻이었나 보지?”

“이건 비즈니스야. 몇 명이 죽든, 성공하기만 하면 돼. 중요한 건 결과야.”

김용은 콧방귀를 뀌면서 요지부동이었다.

1위와 2위의 대치.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사람은 없었다. 대신 아이러니하게도 민머리용을 피해 도망친 헌터들이 그런 두 사람 주변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거기에 헌터들을 따라 민머리용까지 자연스레 김용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싸우겠지?”

태한은 이를 갈면서 물었다.

“하는 수 없군.”

김용은 선글라스를 벗어서 겉옷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H력을 뿜어내며 자신의 조원들에게 말했다.

“다리부터 자릅시다.”

김용의 양팔이 비늘로 덥히며 거대해지고, 그의 양 어깨에서 용의 날개가 돋아났다. 그리고 그를 따라 모든 헌터들이 힘을 합쳐 싸웠다.

태한은 내키지 않았지만, 그의 영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사냥에서 생존자는 30여 명.

지부와 정부는 이 날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공적은 최대한으로 부풀렸다.

***

난 태한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중요한 이름이 많네.”

“뭐, 그렇겠지.”

듣고 보니, 태한도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민머리용에 대한 정보는 대략적으로 세 가지.

1번, 날지는 않는다.

2번, 불을 뿜는다.

3번, 소멸시키는 빛을 뿜는다.

“귀중한 정보를 알려 줘서 고마워. 민머리용에 대한 정보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거든.”

“당연하지. 그 일의 진실은 지부와 정부 입장에선 흑역사니까.”

난 태한의 저택을 나와서 곧장 시내에 있는 헌터 용품 가게로 갔다.

“어서 오세요.”

언제나 그랬듯 가게 주인이 반갑게 맞이해 줬다. 그리고 그의 인사와 동시에 종업원이 다가왔다.

“불하고…….”

“불하고 열에 강한 제품이라면 이쪽입니다.”

역시나 독심술 종업원!

그는 방긋 웃으며 진열대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소방관들이 쓸 법한 기구들이 잔뜩 있었다.

“좀 비싸지만, 김상팔 님이라면 특별히 싼 가격에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가장 열에 강한 게 뭐죠?”

“이겁니다.”

종업원은 무슨 우주복처럼 생긴 방화복을 가리켰다.

“저 옷은 히말라야 거북의 등껍질 성분이 들어 있는데, 최대 1000도까지 버틸 수 있죠.”

“좋아요. 그럼 이걸로 하죠. 그리고…….”

“새로 들어온 신상 총이 있는데 보여 드릴까요?”

“네.”

이 사람, 역시 능력자가 아닐까?

그는 웃는 얼굴로 커다란 케이스를 가져왔다. 거기에는 무슨 바주카처럼 생긴 원통이 들어 있었다.

“이게 총이라고요?”

“초대구경 단발총, MS―03 핸드캐논. 구경이 무려 120mm여서 웬만한 곡사포 수준의 위력이 나오죠.”

“이게……판매가 된다고요?”

그냥 대포잖아? 이게 총이라고?

“물론 아무한테나 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김상팔 님한테만 특별히 보여 드리는 거죠.”

로얄 정도가 되면 더 이상 무기에 크게 의존하지 않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는 상황이 좀 다르다.

방화복도, 초대구경 단발총도.

다 이유가 있어서 구입하는 것이다.

“일시불이요.”

난 주인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그리고 지갑에서 돈 몇 장을 꺼내 종업원에게 내밀었다.

“팁이에요.”

이 사람은 받을 자격이 있다.

난 지금 살고 있는 집 주소를 쓰고는 가게를 나왔다. 오늘 결제한 물건들은 빠른 배송을 통해 배달될 것이었다.

“이제 물건은 다 샀고…….”

난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한 허름한 카페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보게 됐다.

“저 사람은?”

김용.

그는 허름한 양복 차림으로 누군가와 거친 논쟁을 나누고 있었다.

난 잠시 숨어서 그들의 대화를 지켜봤다.

상대는 김용에 비해 말쑥한 차림.

김용은 필사적으로 그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상대는 그를 내치고 카페를 빠져나갔다.

김용은 머리를 감싼 채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몰락. 혹은 그러한 과정.

그에겐 너무나 값싼 대가였다.

“감옥에 가도 열 번은 갔어야 했는데…….”

현실은 언제나 정정당당하지 못한 법이었다.

그는 날 원망하고 있을까?

그러나 그를 저 지경으로 만든 건 그 자신일 뿐이었다.

난 조용히 시내를 나와 집 뒷문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주인집 마당.

난 거기서 준비운동을 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몸이 뻐근해서 살짝 근육의 긴장을 풀어 줄 필요가 있었다.

“하아아앗!”

H력을 살짝만 써서 능력발동.

우선 가볍게 지르기와 발차기를 했다.

슉슉.

바람을 가르는 주먹과 다리의 경쾌한 소리.

난 마당을 미친놈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몸을 움직였다.

“그럼 마지막으로…….”

두 다리에 힘을 줘서 제자리높이뛰기.

내 몸은 수직으로 솟구쳐 높이 뛰어올랐다.

확실히 킹과의 싸움으로 능력이 몇 단계, 비약적으로 상승한 게 느껴졌다.

“근데 착지는 어떻게 하지?”

발아래.

집이 미니어처처럼 작게 보였다.

난 떨어지는 중력가속도를 느끼며 서둘러 H력을 모두 짜내서 능력발현을 했다.

그러자 내 몸이 흰색의 강한 재질로 변하며 거구로 바뀌었다.

“하압!”

착지.

강한 진동과 함께 흙먼지가 풀풀 날렸다.

다행히 내 몸은 무사했지만, 주인집 마당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아이고!”

난 능력을 해제하고 서둘러 우리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삽을 꺼내와 그날 하루 종일 구덩이를 매웠다.

***

제2차 민머리용 사냥 원정 당일.

로얄 9명, 전원.

2군 10명, 전원.

그 외 80명의 헌터.

모두 99명의 헌터가 지부 앞에 모여 있었다.

수십 대의 버스와 갖가지 장비를 실은 트럭은 시동이 걸린 채 금방이라도 출발할 준비를 했다.

버스 스피커에서 이서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지부장 이서현이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민머리용 사냥 원정을 출발하겠습니다.

공식적으로 ‘민머리용 사냥 원정대’가 출발. 버스와 트럭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이 사냥은 저희 계획에 따라 약 열흘간 행해질 예정입니다. 운이 좋아 민머리용을 빨리 만난다면, 더 빠르게 일을 끝낼 수 있을 겁니다.

버스는 빠르게 도로를 달렸다.

어쩌면 마지막 사냥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랭킹 순서대로 앉아 있기에 내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헌한발 해체 후에는 일부러 전 팀원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10급 사냥 구역에 도착.

거기서 모두 하차한 후 다들 군인들에게 간단한 소지품 검사를 받았다.

“김상팔 씨, 지부장님께서 부르십니다.”맡아주다

“예?”

갑자기 직원 하나가 날 이서현에게 데려갔다.

“무슨 일이죠?”

이서현은 목소리를 낮춰 나에게 속삭였다.

“조를 짰는데, 괜찮으시면 원정대를 이끌어 주시겠어요?

“제가요? 전 20위인데요?”

장난하냐?

“그건 알지만, 솔직히 다른 로얄분들은 좀…….”

“신진부 씨랑 강자기 씨는요?”

둘 다 천재라 나보다 훨씬 똑똑할 텐데?

“이준 씨도 있고요.”

이준은 로얄가드맨을 포함해 수 많은 연맹 팀을 이끌고 있다.

“세 분 다 훌륭하시지만, 저희 입장에선 상팔 씨가 대장을 맡는 게 더 좋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뭐지? 희생양으로 삼기 좋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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