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244화 (244/250)

244.

244.

익룡은 제거.

하지만 원정대의 피해가 너무 컸다.

“잠깐 눈 좀 붙인 사이에 이게 무슨…….”

크리스티나는 위에서 싸움이 벌어지든, 누가 죽어 나가든, 누가 떨어지고 다시 올라타든, 계속 움직였다.

그 덕분에 우리는 정확히 반나절 뒤에 목표인 민머리용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저건 또 뭐야?”

구체.

그것은 이제 더 이상 구체가 아니었다.

구체라기 보단 번데기? 고치?

그런 형태가 되어 돌산에 붙어 있었다.

여기서 크리스티나는 정지.

원정대는 하루 휴식하면서 전력을 정비 및 정보 조사를 하기로 했다.

99명 중 남은 건 66명.

그나마 신속하게 익룡을 처리해서 피해가 최소화된 것이었다.

정보 조사를 위한 정찰조는 나, 신진부, 루호, 마다랑이 맡기로 했다.

우리 넷은 몸을 낮추며 고치 가까이로 접근했다.

흰색의 고치는 살짝 반투명해서 내부에서 뭔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덩치는 좀 작아졌군.”

신진부는 고치의 크기를 제면서 말했다.

“길이는 대략 10미터.”

10미터도 크지만, 크리스티나보단 훨씬 작다.

“지금 그냥 크리스티나로 밟으면 어떨까요?”

루호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말했다. 그러나 마다랑이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그러다가 고치 안에 있는 녀석이 깨어나서 깽판 칠 수도 있어. 예전에도 저렇게 모습을 바꾸는 괴물하고 싸워 봤거든.”

킹메라를 말하는 건가. 그러고 보니, 그러네.

신진부는 마다랑을 불러서 고치 아랫부분을 가리켰다.

“자네 다크마이트 드릴 빔으로 한 번 쏴 봐.”

“그래도 될까요?”

“강도 테스트 같은 거야.”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 그 의견에 동의했다.

마다랑은 떨리는 손으로 고치를 겨누며 다크마이트 드릴 빔을 천천히 뿜어냈다.

느릿한 광선은 그의 의지대로 나아가 고치 표면에 닿았다.

“가를까요?”

마다랑의 질문에 신진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우선 1센티미터만 들어가 봐.”

광선은 찔끔 앞으로 나아가 고치를 누르듯이 파고들었다.

고치에 특별한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5센티미터.”

광선은 조금 더 전진.

광선이 들어간 상처에서 흰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고치에선 큰 변화가 없었다.

“5센티미터.”

마다랑은 신진부의 지시에 따라 또 광선을 전진시켰다. 그러자 고치 전체가 꿀렁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지!”

신진부의 외침에 광선도 멈췄다. 그러자 고치의 움직임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다시 5센티미터.”

그렇게 전진과 정지를 번갈아 가면서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고치는 다크마이트 드릴 빔에 의해 완전히 꿰뚫려서 흰색 액체를 콸콸 쏟아 내고 있었다.

“아예 절단까지 가는 게 어떨까요?”

루호의 의견은 신진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지. 마다랑.”

“예예, 알겠습니다요.”

다크마이트 드릴 빔은 수직으로 움직여 고치를 갈랐다. 의외로 손쉽게 고치는 좌우로 갈라졌다.

“엥?”

갈라져서 속이 들어난 고치 안은 대부분이 그 자체로 거대한 껍질이었다. 내용물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고치 속 고작 2미터 정도.

나머지는 전부 껍질이었다. 그리고 속에서 나온 것은 2미터 크기의 인간형 괴물이었다.

“젠장!”

마다랑은 혀를 차면서 길게 뻗은 광선으로 괴물을 베려고 했다. 그러나 괴물은 느리게 휘둘러진 광선을 가볍게 피했다.

“흑흑흑.”

기분 나쁜 울음소리.

그 소리에 다들 소름이 돋아서 뒤로 물러섰다.

“일단 크리스티나로 돌아가요!”

우리는 허겁지겁 크리스티나 위로 올라갔다. 인간 형태가 된 민머리용은 가만히 선 채 울고만 있었다.

“사고 친 거 아니야?”

남주나는 목소리를 높이며 마다랑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내 탓이 아니야.”

마다랑은 신진부를 가리켰다. 신진부는 헛기침을 하면서 황급히 자기 조로 돌아갔다.

루호는 귓속말로 나에게 한 가지를 물었다.

“다크마이트 드릴 빔으로 분명 껍질은 두 동강이 났는데, 왜 내용물인 괴물은 멀쩡한 거죠?”

그러게.

어떻게 된 거지?

다크마이트 드릴 빔이 통과하기라도 했나?

설마 그렇다면, 우태훈처럼 통과 능력?

“범위 공격을 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내 대답에 루호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만약 정말로 통과 능력이 있다면, 일반적인 공격 말고 다른 걸 써야지.”

난 어딘가를 가리켰다. 내가 가리킨 사람을 보며 루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좋은 생각이네요.”

우리는 함께 마음을 다잡은 후 갈리에게 다가갔다.

***

나와 강자기는 갈리의 능력을 복제했다.

갈리는 낮게 목소리를 깔면서 설명했다.

“킥킥킥. 내 능력은 너무 강하게 쓰면 사용자한테도 ‘약화’ 현상이 일어나니까, 조심하라고.”

“며, 명심하겠습니다.”

작전은 이렇다.

먼저 나, 강자기, 갈리가 괴물을 ‘약화’시킨다.

그 다음 다른 헌터들이 각자의 최강 공격을 준비한 후 일제히 날린다.

마지막, 공격이 날아오는 타이밍에 맞춰 약화 능력을 낮춘다. 자칫 원정대의 공격까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좋아, 다들 준비해 주세요.”

무전기로 마지막 점검.

이번 작전에선 크리스티나가 빠졌다. 당연히 녀석을 조종한 변해라도 뒤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다들 행운을 빌어요.”

난 무전기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말을 한 후 강자기, 갈리와 함께 가만히 서 있는 괴물에게 다가갔다.

괴물은 가만히 서 있었다.

인간과 비슷한 형태.

전체적으로 보면 털 없는 사람이 흰색 쫄쫄이를 입은 것 같은 모양새다.

심지어 얼굴도 있다.

녀석은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냥 앞만 보고 있었다.

“하나, 둘, 셋 하면 가는 겁니다.”

내 말에 강자기와 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와 달리 두 사람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나, 둘, 셋!”

우리는 동시에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역시 동시에 능력을 사용했다.

“낄낄낄!”

갈리의 웃음소리를 신호로 우리는 괴물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H력이 꾸불꾸불 흘러나와 괴물을 둘러쌌다.

“흑흑……흑흑…….”

괴물은 H력이 자신을 둘러싸는 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마침내 약화의 힘을 지닌 H력이 괴물을 완전히 둘러싸고, 괴물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인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난 한손으로 무전기를 꺼내 뒤에 대기 중인 원정대에게 말했다.

“공격 준비!”

내 말에 원정대가 우리 뒤에 서서 각자 H력을 끌어올렸다.

“하아아앗!”

수십 명이 동시에 뿜어내는 H력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자연현상이 되어 주변을 가득 채웠다.

“김상팔, 저길 봐!”

강자기의 외침.

괴물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난 강자기와 갈리에게 말했다.

“조금 더 세게!”

“끽끽끽!”

“하아아앗!”

H력의 출력량을 높이자, 일어서려던 괴물이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녀석은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제발 그냥 가만히 있어!”

괴물도 엄청난 힘을 주고 있는지, 녀석의 몸 표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흑흑흑.”

괴물은 몸을 비틀면서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녀석의 몸에 난 금은 더 커지면서 몸이 갈가리 찢겨 나가려 했다.

“차라리 그대로 죽어라!”

쫘아아악.

몸이 갈라지면서 허물을 벗듯 괴물의 내피가 모습을 드러냈다.

“흑흑.”

외피를 벗은 괴물은 ‘약화’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몸을 폈다. 그리고 가볍게 준비운동을 하면서 몸을 풀었다.

“어떻게 된 거지?”

“흑흑.”

긴 백발.

균형 잡힌 근육질 몸매.

여전히 흰색.

이젠 용이나, 괴물이라도 칭하기에도 좀 애매한 형태가 되었다.

“울음소리만 똑같네.”

“흑흑!”

민머리용이 기합처럼 울부짖자, 녀석을 둘러싸고 있던 ‘약화’의 H력들이 주변으로 흩어졌다.

“젠장!”

“발사!”

원정대의 모든 힘이 실린 공격들이 괴물에게 날아들었다.

“지금이에요!”

내 외침에 ‘약화’를 일시 약화.

그 틈을 타 수많은 공격들이 민머리용에게 떨어졌다. 각 공격들은 탄환처럼 녀석의 몸을 관통하거나, 닿자마자 폭발, 더러는 튕겨 나갔다.

“흑흑!”

민머리용은 공격을 받으면서도 무려 사람처럼 자세를 취했다.

다리는 어깨 너비만큼 벌리고, 무릎을 살짝 굽힌다. 그런 다음 양 주먹을 허리에.

“흑흑흑!”

순간, 엄청난 양의 H력이 민머리용에게서 나오며 날아오던 공격들과 ‘약화’를 멀리 튕겨 냈다. 더구나 그로 인해 생긴 거센 바람으로 인해 원정대는 전원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미, 미친……!”

“흑흑.”

민머리용은 머리를 찰랑이며 우리 앞으로 걸어왔다. 녀석의 태도는 여유가 넘쳤다.

―다들 빨리 일어서! 적이 코앞에 있어!

신진부의 말이 모두를 채찍질했다. 나도 얼른 몸을 일으켜서 다시 ‘약화’의 힘을 내뿜었다.

“하아아앗!”

나를 따라 강자기와 갈리도 한 번 더 약화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민머리용의 힘은 이미 우리의 약화가 소용없는 수준이었다.

“흑흑흑!”

녀석의 울부짖는 소리에 엄청난 양의 H력이 또 뿜어져 나왔다.

난 무전기를 꺼내 크리스티나에서 대기하고 있는 변해라에게 말했다.

“출동!”

―무, 무슨 일인데?

“출, 동!”

쿵쿵.

크리스티나가 전진.

원정대는 양옆으로 갈라져 녀석이 앞설 수 있게 했다.

크리스티나는 육중한 몸으로 민머리용에게 접근. 거대한 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가즈아!”

거대한 몸집에서 나오는 강력한 한 방. 크리스티나의 발바닥이 민머리용과 닿자, 그 압력만으로도 주변에 거대한 구덩이가 파이며 지면이 박살 났다. 그리고 엄청난 풍압과 함께 가장 가까이 있던 우리 셋의 몸이 붕 떠서 원정대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으아아악!”

난 거구화를 한 다음, 팔을 쭉 뻗어서 강자기와 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두 사람을 안쪽에 품은 채 몸을 둥글게 말았다.

쿵.

몸이 땅바닥에 부딪친 후 회전하면서 쭉 굴러갔다.

“아오! 영화에선 이러면 살던데, 더럽게 아프네!”

회전이 멈추고, 난 두 사람을 놨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흩어져서 구토했다.

“우웨에엑!”

극강의 멀미.

우리 셋이 토하는 동안, 지진이 일어나며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엥?”

민머리용.

녀석이 두 손으로 크리스티나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크리스티나의 발이 녀석의 손에 잡혀서 점점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미친……!”

실화냐?

“흑흑흑!”

민머리용은 크리스티나의 다리를 가뿐하게 옆으로 던졌다.

크리스티나의 몸이 위로 떴다가 떨어지고, 폭탄이 터진 것처럼 주변에 강한 후폭풍이 몰아쳤다.

원정대는 완전히 거기에 휘말려 뿔뿔이 흩어져 날아갔다.

“젠장!”

난 거구화된 몸으로 겨우 버텼다. 그리고 홀로 H력을 모아서 양손으로 무광탄을 쐈다.

“이 자식!”

무광탄이 날아가 민머리용에게 명중.

폭발과 함께 녀석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밀려난 거리는 불과 1미터 내외. 그러고 나선 금방 다시 앞으로 걸어왔다.

“흑흑.”

민머리용은 빠르게 달려서 내게 몸으로 부딪쳤다. 거구화가 되었음에도 내 몸에 직접적으로 육중한 무게가 밀려드는 게 느껴졌다.

“크으으윽!”

난 양팔로 민머리용을 움켜쥔 채 힘껏 버텼다. 그러나 상대는 10급 괴물.

내가 혼자서 어떻게 해 볼 상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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