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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8화 (8/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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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

다음 날, 신유성은 새로 온 여자들에게 튀긴 어묵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신기하네요. 이렇게도 먹을 수 있다는 게.”

나츠에게는 신기한 조리 방법이었다. 어묵을 만드는 방식으로 어육을 뭉쳐 삶아 먹는 요리는 이미 일본에 존재했다. 나츠도 종종 먹던 요리였다. 하지만 이를 기름에 튀겨낸 것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이걸로는 부족해.”

신유성은 어묵 장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다. 어차피 어묵 장사로 얻는 돈은 앞으로 얻어야 할 것에 비하면 푼돈이었다. 그래서 아낌없이 알려주었다. 일단 소씨 가문과 가까워지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아직 어린 나츠는 신유성의 설명을 들으며 푹 빠졌다.

‘이런 것을 혼자 생각해 내다니.’

나츠에게 신유성은 무척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다시 볼이 붉어졌다.

“자, 그럼 이쪽으로.”

슬며시 손을 잡자 얼굴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부끄러워 숨고 싶지만 나츠는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졌다.

소 마사모리는 불만으로 가득했다. 조선의 왜관에 가는 일이 요시시게에게 넘어간 탓이었다.

‘젠장. 어떻게 방법이 없나?’

마사모리는 야망이 큰 남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요시시게가 싫었다.

조선과의 교역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이것을 장차 요시시게가 독점하게 될 거란 생각에 잠도 오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안 돼. 방법을 찾아야 해.’

재력은 중요했다. 재력이 뒷받침 되면 많은 무사를 끌어 모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조선과의 교역을 책임지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마사모리는 이것을 빼앗고 싶었다.

왜관을 자신의 손에 넣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차에 이상한 소식을 접했다.

“뭐? 조선인을 가문에 받아들이려 한다고?”

“그렇습니다. 그 일로 당주님이 양녀를 들였다고 합니다.”

나츠의 일은 다 알려졌다.

“그 놈이 그렇게 대단한가?”

“이제 7살인데 명나라 말까지 한다고 합니다.”

“흥! 말만 잘 해봐야.”

소용없다고 말을 하지만 마사모리는 불안했다. 영주 간의 전쟁으로 학식보다는 무력이 보편적으로 더 인정받는 추세였다. 하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책사는 항상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명나라 말까지 잘하는 인재라면 더욱 인정받을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기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절대 안 돼.’

마사모리는 나쁜 마음을 먹었다. 요시시게가 더 유리해지는 꼴은 볼 수 없었다.

차돌은 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유모와 짝이 되며 틈만 나면 유모와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신유성은 이런 상황을 더 두고 볼 순 없었다.

“가서 검술이라도 배워라. 매일 그러다가 돼지 된다.”

건강을 생각해주는 척하지만 사실 조금 짜증이 난 것도 있었다.

‘난 아직도 못 하는데.’

몸은 아직도 정신과 어울리지 않았다. 아직 성장기라 성적인 반응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더 빨리 커야해.’

그래서 많이 먹고 운동도 자주 했다. 최근에는 생선을 많이 먹어 단백질 섭취량이 더욱 늘어났다. 생선만 먹지 않고 해조류도 구해서 먹었다. 야채를 구하기 힘든 것을 다른 방법으로 보충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차돌은 신유성의 명에 의해 검술을 배우게 되었다.

“내가 가르쳐주지.”

가르쳐줄 사람은 넘쳤다. 왜관의 선원들 중 칼질 못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차하는 순간 화물을 보호하기 위해 싸움에 동원되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들이 굶주리면 해적으로 돌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차돌을 가르치게 된 것은 선원이 아니었다.

선원들을 이끄는 무사였다.

사나다의 키는 작았지만 눈매가 매우 날카로웠다.

‘생긴 것부터 칼 같네.’

차돌은 긴장했다. 목검을 마주한 두 사람은 이윽고 대련에 들어갔다. 사나다 또한 장일도와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많이 싸워봐야 안다.

이것이었다. 그러니 다짜고짜 대련이었다. 허나, 대련은 장일도와 할 때와는 조금 달랐다.

탁!

손목을 맞은 차돌은 손에 힘이 빠졌다. 그러자 사나다는 뒤로 물러났다.

“넌 손을 베였다. 네가 졌다.”

대련을 지켜보던 신유성은 번역을 해주었다. 그러자 차돌은 고개를 저었다. 상전의 앞에서 패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난 아직 싸울 수 있습니다.”

“목검으로 싸운다는 생각은 버려라. 우리가 들고 있는 것을 진검이라고 생각해라.”

사나다에게 들은 것을 그대로 통역해준 신유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차돌에게 받아들이라는 의미였다.

‘맞는 말이지. 진검으로 싸우는 거라면 이미 손모가지가 날아간 거야. 그게 아니더라도 손은 못 쓰지.’

더구나 중요한 혈관이 베였다면? 과다출혈로 조금만 시간을 끌면 죽게 된다.

‘병기를 들고 싸울 땐 꼭 급소를 노릴 필요는 없다. 팔이나 다리만 베어도 충분해.’

급소를 찔리면 죽지만 출혈이 심해져도 죽는 것은 똑같았다. 무엇보다 다리를 베이게 되면 움직임이 둔해진다. 목숨을 건 싸움에서 꼭 급소를 노릴 필요는 없었다.

‘이건 현실이야. 집중하자.’

신유성은 차돌과 사나다의 대결에 집중하며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세계를 돌아다니게 된다면 언젠가 싸움에 휘말릴 수 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일찌감치 익숙해지는 편이 좋았다.

차돌은 팔과 다리를 수도 없이 맞았다. 사나다는 무리해서 머리나 몸통을 노리지 않았다. 머리나 몸통을 치기 위해선 가까이 붙어야 했다. 그리고 가까이 붙는 만큼 위험은 커진다. 상대를 베더라도 같이 베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사나다는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두고 팔이나 다리를 노렸다.

‘계속 당할 줄 알고!’

계속 맞던 차돌은 속임수를 쓰기 시작했다. 팔을 슬쩍 대주는 척하다가 빼면서 반격을 넣는 것이었다.

허나, 사나다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긴장을 풀고 있지 않다.’

반격도 항상 염두에 두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익!”

결국 한 대 때리고자 차돌은 사나다를 따라 움직였고 그러다 또 맞았다.

이번에는 옆구리를 맞았다.

“흥분은 금물이다. 조급함을 버려라. 조급함이 네 목숨을 앗아갈 거다.”

이번에는 통증이 심해서 일어나지 못했다. 차돌이 일어나지 못하자 사나다는 물러났다.

쓰러진 차돌은 조용히 누워 대련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고통과 함께 조언들은 몸에 확실히 새겨졌다.

차돌과 사나다의 대련을 보며 신유성도 많은 것을 배웠다.

“무기를 들었을 땐 상대와 나의 거리를 가장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자세에 따라 공격이 나올 방향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격투에 타격 메카니즘이 있다면 검술에도 검격 메카니즘이 있구나.’

가장 큰 수확은 이것이었다. 관절이 역방향으로 꺾이거나 팔이 갑자기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 이상 공격 할 수 있는 방향은 자세를 보고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했다.

‘가장 안정적인 자세는 중단.’

가슴 높이로 검을 든 자세는 공격과 방어 어느 쪽으로든 나아갈 수 있는 안정적인 자세였다. 몸을 공격하기 위해선 반드시 앞으로 내밀어진 검을 해결해야 했다. 반대로 자신의 몸을 검의 뒤에 둠으로써 공격을 할 때도 안정적이었다. 다만 찌르기 이외에 강력한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검을 당겨야 하기 때문에 동작이 늘어난다는 단점이 있었다.

“검에 많은 힘을 쏟을 필요는 없다. 목검으로 할 땐 강하게 쳐야 상대를 아프게 하지만 검은 때리는 것이 아니라 베라고 만들어진 물건이다.”

사나다는 강한 검보다는 기습적인 검을 선호했다. 이것은 유파마다 차이가 있었다. 변화를 중심으로 수련하는 유파가 있는가 하면 힘과 속도로 압도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유파도 있었다. 이에 따라 수련 방향이 정해지기도 했다.

사나다는 검으로 뼈까지 벨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갑옷을 입은 상대와 싸우는 거라면 위험하지 않나요?”

신유성은 떠오른 것을 바로 질문했다. 그러자 사나다가 움찔했다.

“물론 그렇다.”

사나다도 인정했다. 갑옷을 입은 자와 싸우기 위한 수련은 또 다르다고.

“전장에서 싸우고 싶다면 거기에 맞는 검술을 익히면 된다. 하지만 그런 검술은 평상시에 쓸 일이 별로 없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갑옷을 입고 펼치는 검술에 익숙해지면 다른 것을 익히기 힘들다.”

전장 검술은 일반 검술과 달리 파괴력에 중점을 두는 면이 있었다. 이땐 정말 절단 낼 기세로 때려야 보호 장비를 뚫고 상대의 살에 상처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슬쩍 베는 것은 그냥 갑옷만 긁고 끝날 확률이 높았다.

때문에 검을 쓰는 방식이 아예 달랐다. 그리고 전장에서는 검만 쓰는 것도 아니었다. 창도 있고 수많은 무기들이 등장한다.

신유성은 고민했지만 사나다의 권유대로 일단 검만 가지고 싸우는 방식을 익히도록 했다.

저녁.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신유성은 검술 수련을 시작했다. 아직 여물지 않은 몸이라 격하게 할 순 없었다. 다만 자세를 잡고 낮에 보고 배운 것들을 복기하며 상상했다.

‘보통 검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은 검 끝에서 약간 정도.’

검이 휘둘러지며 힘이 최대한 모여 타격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정해져 있었다. 이 때문에 간격을 잘 맞추지 않으면 상대를 제대로 베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적이 가까이 붙었을 땐 당긴다.’

하지만 제대로 베지 못했다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막히면 밀거나 당겨서 다시 베면 된다.

‘생각하기 전에 몸으로.’

평소에 연습을 하는 이유는 바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몸에 익으면 자연스럽게 반응하기 때문이었다.

신유성은 머릿속으로 사나다와 차돌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그리고 가끔 보여준 다른 선원들의 모습도 떠올렸다.

모든 것을 머릿속에 그려내자 실제로 눈앞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아지경에 빠진 신유성은 조용히 움직였다.

슈욱.

저녁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신유성은 검에 푹 빠진 상태였다.

주변의 모든 것을 잊고 오직 상상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적만을 바라보았다.

무시무시한 집중력이었다.

‘벤다.’

거리를 재고 뛰어들고 상상 속에 베고 베였다. 상대가 피하면 거기에 대응하는 것도 떠올리며.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상상하며 계속 심상 수련에 매진했다.

한참을 그렇게 수련하다가 멈춘 것은 옷이 흥건하게 땀에 젖었을 때였다. 그만큼 지친 것이었다.

“후우.......”

어린 아이의 몸으로 하는 것이라 어른만큼의 파괴력도 없었고 빠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신유성은 착실하게 검에 적응해나갔다.

검을 수련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검술은 의외로 재미있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몸을 쉴 때는 다른 사람들의 대련을 눈에 담았다. 사람들의 공격과 움직임을 보며 학습하는 것이었다. 간혹 새로운 움직임이 나오면 눈을 빛내며 따라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은 더욱 늘어났다. 그러나 이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빠진 것 아니더냐?”

“잠깐 하는 겁니다.”

잠깐이라는 말에 신겸혁은 더 이상 따지지 못했다. 다른 것을 전부 내팽개치고 검에만 빠졌다면 모를까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얼마 안 가 생각을 뒤집는 사건이 벌어졌다.

때는 늦은 오후. 태양이 땅 너머로 쓰러지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시각.

신유성은 저녁 장사를 잠깐 살피기 위해 가게를 살폈다. 어묵이 튀겨지는 냄새와 어묵탕이 끓으면서 나는 육수의 향이 가게 안에 가득했다. 여기에 선원들이 마시는 술 냄새와 남자들의 소란스러움이 뒤섞였다.

“절 보러 오신 건가요?”

“응, 힘들지 않아?”

“전혀요. 고마워요.”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나츠였다. 나츠는 나이가 어렸지만 대마도주의 양녀였다. 선원들이 거칠다고는 하나 왜관에서 대마도주의 양녀를 건드릴 만큼 간덩이가 붓지는 않았다. 덕분에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다들 시끄럽게 굴지만 문제는 일으키지 않고 먹고 마시고 돌아갔다. 그러나 신유성이 가게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야! 그거 내꺼라고!”

“뭐야? 넌 돈이나 내고 말해!”

“이 자식이? 너 저번에 내가 점찍은 여자한테 손 댄 거 모를 줄 알았냐!”

“무슨 소릴!”

왜일까? 어묵을 하나 더 먹었을 뿐인데 여자 문제로 싸움이 번졌다. 술 취한 선원들의 싸움은 순식간에 거칠어졌다. 이해하기 힘든 이유였으나 가게에서 난동을 부리니 우선 말려야 했다.

그러나 그러기도 전에 문제가 벌어졌다.

퍼억!

몸싸움을 하더니 덩치가 큰 남자가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작은 남자가 뒤로 넘어졌다.

“이 자식이!”

넘어진 남자는 이를 갈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덤비는 순간 다들 놀라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때였다. 덩치 큰 남자가 작은 남자를 피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신유성은 볼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칼날을.

“안 돼에에에에에에!”

나츠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조금 먼 곳에 있던 차돌이 몸을 날렸다. 하지만 작은 남자의 손에 들린 칼이 신유성에게 닿는 것을 막기는 힘들어 보였다.

‘칼!’

위기를 느낀 순간 신유성의 몸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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